■ 보학/한시(漢詩)

우곡(鄭子厚의 號) 연회에서 익재 詩에 차운하다 - 민사평

야촌(1) 2017. 11. 6. 20:25

급암시집 제1권 / 고시(古詩)

 

9일 우곡의 연회에서 익재 詩에 차운하다 / 九日愚谷席上次益齋詩韻

 

흉회는 운몽택 여덟아홉 개를 삼킨 듯 / 胸呑雲夢者八九
나이가 팔순이 넘었는데도 쇠하지 않으셨네 / 壽過八旬不枯朽
우리 공의 이런 모습을 보고 더욱 경애하노니 / 見此我公益敬愛
소문을 들은 후진들은 다투어 달려오네 / 聞風後進爭趨走
여러 번 모임을 열어 도심을 논하고 / 屢開率集論道心
마침내 새 시를 내놓으면 사람들 입으로 전파되네 / 遂出新詩播人口
지초 먹던 상산옹을 실컷 좇았고 / 茹芝猒逐商山翁
국화 따던 도연명도 즐겨 따랐지 / 採菊愛從彭澤叟
문 앞에 이미 백의가 왔으니 / 門前已有白衣來
상자 안 옛 푸른 모포를 전당잡히지 마시길 / 篋中莫典靑氈舊
두 분이 술자리를 베풀면 반드시 나를 초대하니 / 兩公置酒必招予
아마도 선친과 장인이 생각나셨겠지 / 應念先君幷外舅
시에 화답하는 신선 같은 손님은 문창의 무리요 / 賡詩仙客文暢流
장수를 비는 훌륭한 조카는 죽림의 벗일세 / 獻壽賢甥竹林友
산에 오를 때 비록 밀랍 칠한 나막신을 신지 않지만 / 登臨雖非蠟屐游
바람에 모자 떨어진 뒤 호탕함은 점차 더해지네 / 爛熳漸加吹帽後
취하여 읊조리는 우리의 광간함을 비웃지 마오 / 醉吟狂簡人莫嘲
소동파와 황산곡을 믿고서 스스로 뻐기는 것이니 / 恃有蘇黃自矜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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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01] 우곡(愚谷) : 고려 후기의 관료이자 문인인 정자후(鄭子厚, ?~1361)의 호이다.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죽헌(竹軒) 김륜(金倫)과 같은 동네에 살았으므로 사람들은 이들을 철동삼암(鐵洞三菴)이라고 불렀다.

 

김륜이 세상을 떠난 뒤에 그 사위인 급암이 장인인 김륜의 집에 와서 살게 되면서 삼암(三菴)의 칭호는 계속 이어졌다고 한다. 《牧隱藁 牧隱文藁 卷13 題惕若齋學吟後》

 

[주02] 흉회는 …… 듯 : 운몽택(雲夢澤)은 한(漢)나라와 위(魏)나라 이전에는 그리 크지 않은 습지를 지칭했는데, 진(晉)나라 이후로 동정호(洞庭湖)까지 포괄하는 큰 호수를 뜻하게 되었다.

 

한(漢)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자허부(子虛賦)〉에 “운몽과 같은 것 여덟아홉 개를 한꺼번에 집어삼키듯, 그 흉중이 일찍이 막힘이 없었다.〔呑若雲夢者八九 於其胸中曾不蔕芥〕”라고 하였다.

 

이는 정자후(鄭子厚)를 형용한 말로, 나이가 팔십이 넘었는데도 흉중이 막힘이 없다는 말이다.

 

[주03] 지초(芝草) 먹던 상산옹(商山翁) : 상산사호(商山四皓)는 중국 진 시황 때 난리를 피하여 섬서성(陝西省) 상산에 들어가서 숨은 네 사람이다. 그들이 은거할 때 “빛나는 붉은 지초는 요기할 만하도다.〔燁燁紫芝 可以療飢〕”라는 노래를 지어 불렀다. 뒤에 여후(呂后)의 부탁을 받고 한(漢)나라 궁궐에 나아가 태자를 보필하였다.

 

[주-D004] 백의(白衣) : 술을 가져온 심부름꾼이다. 진(晉)나라 때 도잠(陶潛)이 9월 9일에 술이 떨어져 술 생각이 간절하던 차, 마침 강주 자사(江州刺史) 왕홍(王弘)이 흰옷을 입은 사환을 시켜 술을 보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續晉陽秋》

 

[주05] 옛 푸른 모포 : 선대(先代)로부터 전해 온 집안의 귀한 유물을 가리킨다. 진(晉)나라 왕헌지(王獻之)가 방에 도둑이 들어 물건을 모조리 훔쳐 가려 할 적에 “도둑이여, 그 푸른 모포는 우리 집안의 유물이니, 그것만은 놓고 가는 것이 좋겠다.”라고 하자, 도둑이 놀라 도망쳤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晉書 卷80 王羲之列傳 王獻之》

 

[주06] 문창(文暢) : 당(唐)나라 정원(貞元) 때의 승려이다. 그는 일찍이 당대 문사인 한유(韓愈)와 교유하였다. 여기에서는 손님 가운데 고상한 승려가 있었다는 점을 의미한다.

 

[주07] 훌륭한 …… 벗 일세 : 죽림칠현(竹林七賢)은 진(晉)나라 초기에 대숲에 은거하여 술과 청담(淸談)으로 세월을 보냈는데, 그 가운데는 〈영회(詠懷)〉 시로 알려진 완적(阮籍)과 그의 조카 완함(阮咸)이 끼어 있었다. 여기서 훌륭한 조카는 정자후(鄭子厚)의 생질인 황석기(黃石奇)를 가리킨다.

 

[주08] 밀랍 칠한 나막신 : 남조(南朝) 송(宋)나라의 산수 시인(山水詩人)인 사영운(謝靈運)이 임천 내사(臨川內史)로 있을 때 밀랍을 칠한 나막신을 신고 산에 오르기를 좋아하였다.

 

[주09] 바람에 …… 뒤 : 진(晉)나라 환온(桓溫)이 중양절에 용산(龍山)에서 속관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는데, 이때 바람이 불어 맹가(孟嘉)의 모자가 떨어졌지만 맹가는 이를 알지 못했다고 한다. 흔히 풍류가 넘치는 잔치를 열었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주10] 소동파(蘇東坡)와 황산곡(黃山谷) : 여기에서는 정자후(鄭子厚)와 이제현(李齊賢)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