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고려시대 인물 37

안향(安珦) 문하(門下)의 육군자(六君子)

■ 안향 문하의 육군자(安珦 門下의 六君子) 성리학의 본향인 송나라의 대표적 성리학자를 송조육현(宋朝六賢)이라고 부른다. 이는 주돈이, 정호, 정이, 장재, 소옹, 주희(주자)를 지칭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문성공(文成公) 안향(安珦)의 문하에 이름난 여섯 학자를 육군자라고 해 추앙해 마지않았다. 육군자는 국재 권부((菊齋 權溥) , 동암 이진(東菴 李瑱), 역동 우탁(易東 禹倬), 매운당 이조년(梅雲堂 李兆年), 이재 백이정(彝齋 白頤正), 덕재 신천(德齋 德齋)등을 일컫는다. 고려 말의 대학자요. 정치가였던 익재 이제현이 동암의 아들이며, 국재 권부의 사위며, 백이정의 문인이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안향의 학문적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안향이 세상을 떠날 때 백이정, 권부 등 문인들에게 “나는 학문이 그대..

안향(安珦)

■ 안향(安珦) [개설] 1243년(고종 30) ~ 1306년(충렬왕 32), 경상북도 흥주(興州 :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 출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사온(士蘊), 호는 회헌(晦軒). 초명은 유(裕)였으나 뒤에 향(珦)으로 고쳤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문종의 이름이 같은 글자였으므로, 이를 피해 초명인 유로 다시 고쳐 부르게 되었다. 회헌이라는 호는 만년에 송나라의 주자(朱子)를 추모하여 그의 호인 회암(晦庵)을 모방한 것이다. 아버지는 밀직부사부(孚)이며, 어머니는 강주 우씨(剛州禹氏)로 예빈승(禮賓丞) 성윤(成允)의 딸이다.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최초로 도입하였다. [생애와 활동사항] 1260년(원종 1) 문과에 급제하여 교서랑(校書郎)이 되고, 이어서 직한림원(直翰林院)으로 자리를 옮겼..

김준(金俊) - 고려 후기의 무신

■ 김준(金俊) [생졸년] 미상-1268(원종 9) [일명] 인준(仁俊) [활동분야] 고려 후기의 무 ------------------------------------------------------------------------------------------------------------------------------------- 고려시대의 무신. 초명은 김인준(金仁俊).아버지는 최충헌(崔忠獻)의 가노인 김윤성(金允成)이다. 활쏘기와 말타기를 잘하였고, 협기가 있어 최우(崔瑀)에게 발탁되어 전전승지(殿前承旨)가 되었으며, 최항(崔沆)이 정권을 세습하는 데 공이 있어 별장이 되었다. 그러나 최항의 뒤를 이은 최의(崔竩)가 최양백(崔良伯)‧ 유능(柳能) 등을 신임하고 자기를 멀리하는 데 불만을 품고..

유천우(兪千遇) - 무안유씨 시조

■유천우(兪千遇) [생졸년] 1209년(희종 5)-1276년(충렬왕 2) [고려문과] 고종(高宗) 19년(1232) 임진(壬辰) 고종 19년 임진방(壬辰榜) 을과(乙科) 3위(3/31) [자] 지일(之一) [호] 퇴사재(退思齋) [시호] 문도(文度) [일명] 유양(兪亮). 유증(兪證) [활동분야] 고려말의 문신 ------------------------------------------------------------------------------------------------------------------------------------- 고려의 문신으로. 무안유씨(務安兪氏)의 시조(始祖)이다. 초명은 양(亮)‧ 증(證), 자는 지일(之一), 호는 퇴사재(退思齋)로.고종(高宗, 고려 제23대왕, ..

김약선(金若先) - 고려

●김약선(金若先) 생졸년 미상. 고려 고종(高宗) 때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아버지는 평장사를 지낸 김태서(金台瑞)이다. 권신 최우(崔瑀)의 사위로서, 1225년(고종 12)에 내전을 수리할 때 그 집을 임시거처로 사용할 만큼 고종의 사랑 을 받았다. 1235년에 딸이 원종의 비가 되자, 여러번 자리를 옮겨 추밀부사가 되었다. 그러나 최우(崔瑀)의 부중에 있는 여자들과 자주 음란한 관계를 가져 물의를 일으켰다. 처도 종과 간통한 사실이 있었는데 이 사실이 탄로날까 두려워한 처의 무고로 최우(崔瑀)에 의해 죽음을 당했으 나, 뒤에 사실이 밝혀져 장익공(莊翼公)에 추시되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정몽주(鄭夢周)

■ 정몽주(鄭夢周) [고려문과] 공민왕(恭愍王) 9년(1360) 경자(庚子) 공민왕 9년 경자방(庚子榜) 을과(乙科) 1[장원(壯元)]위/ 합격연령: 24歲 ----------------------------------------------------------------------------------------------------------------------------------- 1337년(충숙왕 복위 6)∼1392년(공양왕 4). 고려의 문신·학자. 본관은 영일(迎日). 경상도 영천 출생. 초명은 몽란(夢蘭) 또는 몽룡(夢龍), 자는 달가(達可), 호는 포은(圃隱).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정습명(鄭襲明)의 후손으로 정운관(鄭云瓘)의 아들이다. 어머니 영천이씨(永川李氏 膳官署丞 李約의 女)..

제용재(濟用財) - 이보림(李寶林)

경북인물열전 (62) 제용재 설치로 백성들의 횡렴당하는 고통을 없애준 이보림(李寶林) 옮긴이 : 이 웅 재 이보림(李寶林)의 생몰년(미상~1385년(우왕 11) 7월로 고려 후기의 문신이요, 본관은 경주(慶州), 문하시중을 지낸 이제현(李齊賢)의 손자이며, 이서종(李瑞種)의 아들이다. 사람됨이 엄격하고 품행이 방정(方正)하고 정치적 재능이 뛰어났다. 1355년(공민왕 4) 문과에 급제하였고, 1357년 우사간(右司諫)으로 있으면서 나라에서 염철별감(鹽鐵別監)을 여러 도에 보내려고 하자 우간의(右諫議) 이색(李穡) 등과 함께 그 폐단을 들어 혁파하라는 상소를 올렸으나, 재상들의 반대로 실패하였다. 1359년(공민왕 8) 남원부사(南原府使)로 있을 때에는 새로 제용재(濟用財)를 설치하여 모든 경비를 지원케 ..

홍간(洪侃) - 門下侍郞 李瑞種의 丈人

■ 홍간(洪侃) ◇익재 이제현의 사돈(門下侍郞 李瑞種의 丈人) 미상∼1304년(충렬왕 30). 고려 후기의 문신. 자는 자운(子雲) 또는 운부(雲夫), 호는 홍애(洪崖). 본관은 풍산(豊山). 홍지경(洪之慶)의 아들이다.1266년(원종 7)에 민지(閔漬)가 장원하였던 과방(科榜)에 함께 등제하였다. 벼슬이 비서윤(祕書尹)을 거쳐 도첨의사인(都僉議舍人)지제고(知製誥)에 이르렀다. 뒤에 원주의 주관(州官)으로 나갔다가, 언사(言事) 때문에 동래현령으로 좌천되어 그곳에서 죽었다. 시문에 능하였고, 시체가 청려한 것으로 이름이 높았다. 이제현(李齊賢)은《역옹패설(櫟翁稗說)》에서 “그가 시 한 편을 지어 낼 때마다 어진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나 모두 그 시를 좋아하여 서로 전해가며 외웠다.”고 하였다. 그의..

정종호(鄭宗鎬)

■ 정종호(鄭宗鎬) 1875(고종 12)∼1954. 유학자. 본관은 서원(西原). 자는 한조(漢朝), 호는 뇌헌(磊軒). 아버지는 재설(在卨), 어머니는 재령이씨(載寧李氏)이다. 중부(仲父) 재기(在夔)는 파리장서사건(巴里長書事件)의 당사자의 한사람으로서 피체되어 옥고로 사거했다.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수성동 갖말[枝村]에서 정구(鄭逑)의 14대손으로 태어났다. 일찍이 중부 밑에서 학문을 시작하여 결혼 후에는 장인인 노상익(盧相益)과 처숙인 상직(相稷)으로부터도 배웠다. 파리장서사건 때는 그 본문(本文)을 지금의 칠곡군에 있는 장석영(張錫英)으로부터 대구의 윤상태(尹相泰)에게 전하는 일을 맡았었다. 일본경찰이 기미를 알아차리고 수배 중이어서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으나 옷솔기 속에 감추어 전달할 수 있었..

민사평(閔思平)

● 민사평(閔思平) 1295년(충렬왕 21)∼1359년(공민왕 8).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탄부(坦夫), 호는 급암(及庵). 찬성사 민적(閔頔)의 아들이며, 정승 김륜(金倫)의 사위이다. 어려서부터 재능과 도량이 있었다. 학문이 일취월장하여 산원·별장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으며, 충숙왕 때 문과에 급제, 예문춘추관수찬(藝文春秋館修撰)을 거쳐 예문응교(藝文應敎)· 성균대사성이 되고, 1344년(충혜왕 5) 감찰대부(監察大夫)를 역임한 뒤 여흥군(驪興君)에 봉해졌다. 충정왕을 따라 원나라에 들어갔던 공으로 충정왕이 즉위한 1348년 도첨의참리(都僉議參理)가 되었으며, 그뒤 수성병의협찬공신(輸誠秉義協贊功臣)의 호가 주어졌고, 찬성사상의회의도감사(贊成事商議會議都監事)에 이르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