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독립운동 26

독립운동 관련 사진자료

작성일 : 2013. 04. 08 ▲이상설(李相卨, 1870~1917) ▲이위종(李瑋鍾) ●이위종 열사 인적사항 [생졸년] 1887 ~ [출생지] 한성부 [국적] 조선 → 대한제국→러시아 제국→소련 [본관] 전주이씨(全州李氏) 광평대군파 [별칭] 블라디미르 세르게예비치 리(Владимир Сергеевич Ли) [직업] 독립운동가, 외교관(대한제국), 군인(러시아 제국) [가족사항] 조부 : 이경하(李景夏) 아버지 : 이범진(李範晋) 어머니 : 풍양조씨豐壤趙氏) 숙부 : 숙부 이범윤(李範允) 형 : 이기종(李璣鍾) 부인 : 옐리자베타 놀켄(Елизавета Валерьяновна Ли-Нолькен) 자녀 : 딸셋(베라(Вера, 1906生) / 니나(Нина, 1909生) / 예브게니야(Евгения..

나라밖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독립운동

■ 나라밖에서 시작한 독립운동 일제가 한국의 강제 병합 이후, 한반도에서 전개된 헌병 경찰을 통한 무단통치가 시행되는 동안 독립 운동은 나라 밖에서 더 활발히 진행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간도와 옌하이저우, 블라디보스토크 등은 한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어서 독립 운동의 본거지 구실을 했던 곳이다. 북간도의 서전서숙(신학문 교육기관)과 서간도의 경학사와 신흥 무관 학교(독립군 양성 기관), 간민회, 중광단, 상하이의 신한 청년당, 옌하이저우의 권업회, 하바로프스크의 한인 사회당(사회주의 정당) 등이 대표적인 독립 운동 단체나 교육 기관이다. 이상설(1870~1917), 이회영(1867~1932), 박은식(1859~1925), 신규식(1879~1922), 유인석, 홍범도, 이범윤, 이동휘 등이 이들 단체를..

고종과 일제, 만국평화회의 밀사 파견 놓고 두뇌싸움/이덕일

고종과 일제, 만국평화회의 밀사 파견 놓고 두뇌싸움 이덕일 事思史 금대를 말하다. [제214호 ㅣ 20110416 입력] 고종 통치의 특징 중 하나가 이중성이다. 을사늑약 체결 주범에게 정권을 주는 한편 의병에게는 밀지를 내려 거병을 촉구했다. 하지만 각 지방의 진위대는 고종의 명령에 따라 의병을 진압했다. 고종은 표면적으로는 통감 이토 히로부미에게 순응하는 한편 헤이그엔 밀사를 보내 외교권을 되찾으려 했다. ↑이회영의 장남인 이규학(왼쪽)과 조남승(오른쪽). 고종의 조카인 조남승·조남익 형제는 고립된 고종과 바깥 세상을 연결하는 통로였다. 망국의 몇 가지 풍경 ④ 헤이그 밀사 고종은 을사늑약 체결 당사자인 박제순을 승진시켜 내각을 맡겼지만 의병들에게는 밀지(密旨)를 내려 거병을 촉구했다. ‘밀지 정치’..

1914년에 이미 한국 임시정부가 존재했다.

■ 1914년에 이미 한국 임시정부가 존재했다. 새로운 사실이 확인되었다. 1919년 이전에 이미 임시정부(臨時政府)가 존재했던 것이다. 러시아에서 설립된 대한광복군정부(大韓光復軍政府)가 그것이다. 3.1운동 이전에 한국 임시정부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한성 임시정부의 수립일인 1919년 3월 2일보다 5년 이전인 19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임시정부 수립의 역사도 보다 연장되었다. 1914년의 한국 임시정부의 초대 수반은 이승만(李承晩)이 아니라 보재 이상설(溥齋 李相卨)이었다. 보재 이상설(溥齋 李相卨)은 1914년 러시아에서 최초로 수립된 한국 임시정부의 초대 수반(정통령=대통령, 대한민국 정부수립 뒤에도 정부통령 선거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대통령과 정통령이라는 말을 함께 사용했다..

신한촌(新韓村)

우리선조들의 한과 독립정신이 깃든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 ↑옛 신한촌 마을의 전경이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로 병해있다. 일제 당시 극동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우리 한인들이 집단으로 거주 했던 이곳 한인촌은 당시 국내외를 막론하고, 독립운동이 가장 치열하게 펼쳐졌던 역사의 현장으로서, 보재(溥齋) 이상설(李相卨)선생,성재(誠 齋) 이동휘(李東輝)선생을 비롯하여,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위암(韋庵) 장지연(張志淵), 최재형(崔才 亨), 이종호(李鍾浩), 장도빈(張道斌-단국대학교설립자),등 기라성 같은 애국지사들이 이 마을을 근거지로 활동했다. ↑1920년의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 전경(수원대 박환교수 제공) 신한촌은 지난 1911년 러시아 당국이 블라디보스토크항 인근 해안가(오늘날 지명 :..

용정의 지명유래는 우리민족의 것

[인용자료]용정의 지명유래는 우리민족의 것 2004.01. 27. 22:30 압록강과 송화강 상류 지방인 백두산 일대를 서간도라 했고 두만강 북부를 북간도라 했다. 우리에게는 북간도가 더 친숙하다. 백두산정계비가 세워진 뒤에도 조선 영토였으며 우리 동포의 손으로 개척한 곳이고, 항일독립전쟁의 근거지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북간도의 큰 도시 연길보다 용정을 더 친근하게 생각한다. 이곳이 우리 조상이 일군 고토(故土)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해란강이 용정을 관통해 흐른다. [선구자]에 나오는 바로 그 강이다. 작사자 윤해영의 친일행적이 발견돼 빛을 잃고 말았지만 항일운동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다. 이범윤을 간도관리사로 파견 '해란(海蘭)'은 느릅나무의 여진말을 한자어로 음차한 것이라고 한다. 북경 민족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