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성씨별관향 95

4. 주요 성씨별 인구.

■ 주요 성씨별 인구 구뷴 인구수 구성비 계 45,985,289 100.0 김(金) 9,925,949 21.6 이(李) 6,794,637 14.8 박(朴) 3,895,121 8.5 최(崔) 2,169,704 4.7 정(鄭) 2,010,117 4.4 강(姜) 1,044,386 2.3 조(趙) 984,913 2.1 윤(尹) 948,600 2.1 장(張) 919,339 2.0 임(林) 762,767 1.7 오(吳) 706,908 1.5 한(韓) 704,365 1.5 신(申) 698,171 1.5 서(徐) 693,954 1.5 권(權) 652,495 1.4 황(黃) 644,294 1.4 안(安) 637,786 1.4 송(宋) 634,345 1.4 유(柳) 603,084 1.3 홍(洪) 518,635 1.1 ※ ..

3. 성씨별 가구 및 인구수(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

■성씨별 가구 및 인구수(2000년 통계청 조사) 순위 성씨 가구 인구 전국 14,326,224 45,985,289 1 김(金) 3,102,537 9,925.949 2 이(李) 2,113,007 6,794,637 3 박(朴) 1,215,918 3,895,121 4 최(崔) 676,773 2,169,704 5 정(鄭) 626,265 2,010,117 6 강(姜) 325,288 1,044,386 7 조(趙) 306,022 984,913 8 윤(尹) 294,708 948,600 9 장(張) 287,195 919,339 10 임(林) 237,145 762,767 11 오(吳) 219,548 706,908 12 한(韓) 218,821 704,365 13 신(申) 217,591 698,171 14 서(徐) 215,..

강화도 교동을 관향으로 하는 성씨들.

■ 강화도 교동을 관향으로 하는 성씨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본토성(土姓)이 셋인데 고(高),인(印),전(田),안(安)등을 들었으며 안씨는 속성(續姓)이라하여 나중에 들어 왔음을 밝히고 있다. 교동지에 의하면 황(창원黃),한(청주韓),전(안동全),권(안동權),방(온양方), 이(전주李)씨등을 대성(大姓)으로 꼽고 있다. ●교동인씨(喬桐 印氏) 교동인씨(印氏)는 중국 진(晉)나라의 서(瑞)가 신라 유례왕때 들어와 아찬(阿)의 벼슬을 하고 그의 후손 빈이 고려 인 종 때 한림학사, 문하시사(門下侍史)를 지내고 교동부원군에 봉해짐으로써 그 자손이 교동으로 관적하게 되었다. 빈이 교동인씨의 시조로 되어왔으나 《교동인씨세보》(1936)에는 빈의 후손 당이 시조(1세)로 되어 있다. 당은 공민왕 때 서북면병마사로서 압..

전주이씨(全州李氏)의 유례.

전주이씨(全州李氏)의 유례. 전주 이씨는 전주(全州)에서 대대로 살아왔다. 시조(始祖)의 휘(諱)는 한(翰)이며 호는 견성(甄城)이시다. 시조께서는 덕망이 높고 문장이 뛰어나 신라 때 사공(司空)벼슬을 지내시고, 태종무열왕의 10세손이며 군윤(軍尹)벼슬을 하신 김은의(金殷義)의 따님과 혼인하시어 대대로 신라에 벼슬 을 하시다가, 6세의 휘자 긍휴(兢休)에 이르러 고려 사공(司空)이 되시었다. 시조의 18세(世)는 목조(穆祖)대왕이시니 휘(諱)는 안사(安社)이시다. 목조께서는 처음 전주의 호족(豪族)으로 살았다. 성격이 호방하고 용기와 지략이 남과 달랐다. 그러나 새로 부임해온 지주사(知州事)의 탐욕과 포악함 을 규탄하니 보복하려 하므로 이를 피하여 강원도 삼척으로 이주하였으나, 그 지주사 가 안렴사(按廉..

싸이버 종친 카페 찿아가기

■ 싸이버 종친카페 찾아가기 (카페 주소를 클릭하면 곧바로 카페로 들어갑니다 ) 강릉 유(劉)씨 모임. - http://cafe.daum.net/Kyoo | 회원수: 124 | 개설일: 2002.05.05 강릉김씨의 뿌리찾기 - http://cafe.daum.net/9370442 | 회원수: 3 | 개설일: 2004.04.21 강릉박씨 - http://cafe.daum.net/KRPSFY | 회원수: 6 | 개설일: 2003.08.17 강릉최씨 - http://cafe.naver.com/gangneungchoi ㅣ회원수: 6 ㆍ 새글/전체글: 2/69 강릉최씨인터넷족보 - http://club.paran.com/gangneungchoi ㅣ 개설일 : 2005.04.22 | 회원수 : 14명 경주김씨서울종..

이씨 인구현황(2000년 기준)

우리나라 이씨 인구현황(2000년 기준 / 통계청) 본관 가구 인구 남자 여자 가구 명 명 명 이(李) 2,113,007 6,794,637 3,413,171 3,381,466 가리 666 1,956 815 1,141 가평 5,108 15,815 7,774 8,041 간성 319 965 443 522 강동 218 720 315 405 강릉 1,335 4,165 1,686 2,479 강양 582 1,903 989 914 강진 1,472 4,686 2,282 2,404 강화 508 1,699 772 927 개령 588 1,927 942 985 개성 1,683 5,473 2,669 2,804 거창 578 1,855 865 990 결성 215 707 343 364 경기 1,728 5,321 2,526 2,795 ..

영천최씨(永川崔氏)

영천 최씨(永川崔氏) 편 성주군 수륜면 남은리 법산 마을에 100여호의 대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는 법산 최씨의 본관은 영천(永川)이다. 최씨(崔氏)의 관향은 125여개 본이 전하고 있으나 이중 시조가 분명히 밝혀져 있는 본관은 약 40여본이다. 그중 종인수 등이 많은 주요한 본관으로는 영천(永川)을 비롯해 경주(慶州) 전주(全州) 계림(鷄林) 동주(東州 : 철원) 해주(海州) 삭녕(朔寧) 강릉(江陵) 화순(和順) 강화(江華) 탐진(耽津 : 康津) 수원(水原) 영흥(永興) 흥해(興海) 통천(通川) 수성(隋城) 우봉(牛峰 : 金川) 충주(忠州) 등이다. 1) 우리나라 최씨의 기원은 박혁거세 탄생전설에 나오는 신라 6부촌장중의 한사람인 돌산 고허촌(突山 高墟村)의 촌장 소벌도리공(蘇伐都利公)으로 하늘에서 ..

중국인의 姓氏에 관한 이야기

중국인의 姓氏에 관한 이야기 중국인의 성씨는 길고도 복잡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성씨가 사람을 가리키는 음부와 기호이고, 성씨의 탄생과 변화 그리고 발전은 국가정치, 경제, 문화발전의 역사적인 산물이자 특징을 보여준다. 중국은 성씨가 가장 먼저 생겨난 나라의 하나이고, 성은 역사시대이전에 이미 출현하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문자로 기재하지를 않았기 때문에 고증이 되지는 않는다. 비교적 믿을 수 있는 것은 모계사회에서 출현하였다는 것이다. 다만 성(姓)과 씨(氏)는 원래 두개의 다른 개념이었다. 상고시대에서 봉건시대의 전반기까지 (기원전 21세기 - 기원전 221년), 성과 씨는 서로 구분되었다. "남자는 씨라고 하고, 여자는 성이라고 하였다. 씨는 귀천을 구분하기 위한 것이고, 성은 혼인을 구분하기 위한 ..

동래정씨인물록(東萊鄭氏人物錄).

1.동래정씨인물록(東萊鄭氏人物錄) 정갑손(鄭甲孫) 정건조(鄭健朝) 정결(鄭潔) 정경서(鄭景瑞) 정경순(鄭景淳) 정계순(鄭啓淳) 정관수(鄭觀綏) 정괄(鄭佸){1} 정광경(鄭廣敬) 정광성(鄭廣成) 정광세(鄭光世) 정광재(鄭光材) 정광천(鄭光天) 정광필(鄭光弼) 정구(鄭矩){1} 정구(鄭球){2} 정규응(鄭圭應) 정기(鄭錡) 정기룡(鄭奇龍) 정기면(鄭基勉) 정기선(鄭基善){1} 정기세(鄭基世) 정기원(鄭期遠){1} 정기일(鄭基一) 정기춘(鄭基春) 정기회(鄭基會) 정난종(鄭蘭宗) 정내상(鄭來祥) 정내주(鄭來周) 정대년(鄭大年) 정대용(鄭大容) 정도건(鄭道鍵) 정동간(鄭東榦) 정동관(鄭東觀) 정동만(鄭東晩) 정동유(鄭東愈) 정동일(鄭東逸) 정동준(鄭東浚) 정동협(鄭東俠) 정동후(鄭東後) 정리(鄭釐) 정만순(鄭晩淳..

박은과 심온의 관계

박은과 청송 심 씨 안효공 심온 과의 관계 (2006-02-19 오전 7:48:57) Hit : 213 Vote : 22ㅣ writer 박태서 -------------------------------------------------------------------------------------------------------------------------------------------- 청송심씨들은 7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안효공 심 온 선생의 죽음이 박은(朴訔)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조선조 개국 후 태종 이방원이 왕권강화를 위해 왕의 외척들을 제거한 정책을 개인의 사감으로 오해를 하고 있다..흡사 “나무는 보고 숲을 못 본다” 는 이야기가 있는 것 같은 경우다. 평소에 심 온 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