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고려와조선관직 51

조선시대 품계와 관직표

품 계 관계명 외명부 위계 구분 대감 영감 관 직 정 1품 상계 대광보국 숭록대부 정경 부인 당상관 대감 부원군, 삼정승(영의정, 좌.우의정), 영사, 도제조 하계 보국숭록대부 종 1품 상계 숭록대부 군, 좌.우찬성, 판사, 제조 하계 숭정대부 정 2품 상계 정헌대부 정부인 6조 판서, 좌.우참찬, 5위 도총관, 한성판윤, 지사, 홍문관 대제학, 예문관 대제학, 총리영사, 제조 하계 자헌대부 종 2품 상계 가청대부 영감 대사헌, 동지사, 5위 부총관, 한성좌.우윤, 개성유수, 겸사복장, 내금위장, 상선, 제학, 관찰사, 수어청사, 부윤, 포도대장, 병사, 중군, 대장, 제조 하계 가선대부 정 3품 상계 통정대부 숙부인 도승지, 좌승지, 참의, 대사간, 첨지사, 도정, 참찬과, 부제조, 부제학, 성균관 대..

조선시대의 품계와 관직

■조선시대의 품계(品階)와 관직(官職) 『18품(品) 30계(階)로 구성』 ◈동반관직 - 문관의 품계-정1품(종1품)부터 정9품(종9품)까지 18품계. ◈서반관직 - 무관의 품계-정1품(종1품)부터 정9품( 종9품)까지 18품계. ◈관직의 정식 명칭 - 계(품계의 명칭)·사(소속된 관청)·직(맡은 직분)순으로 썼다. ◇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영의정 - 대광보국숭록대부 - 계(품계의 명칭) ◇대광보국숭록대부 - 계(품계의 명칭) - 의정부 - 사(소속된 관청) ◇대광보국숭록대부 - 계(품계의 명칭) - 영의정 - 직(맡은 직분) [품계(品階)] ●정1품관 ◇대군(군 : 정 1품에서 종 2품까지). 공신. 부원군(왕비의 친정 아버지)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도제조(영의정이 겸임하는 관직임) ◇사부(세자..

청백리(淸白吏)

청백리(淸白吏) 선정 시기 성명 생몰연대 본관 출신 최고관직 시호 태조 길재(吉再) 1353-1419 해평 문과 봉상박사 충절(忠節) 서견(徐甄) ? 이천 문과 장령(고려) 세종 김장(金廧) ? 광산 문과 장령 중종 이언적(李彦廸) 1491-1553 여주 문과 좌찬성 문원(文元) 정연(鄭淵) ? 광주 문과 태안군수 선조 성영(成泳) 1547-1623 창녕 문과 이조판서 양혜(襄惠) 김행(金行) 1532-1588 강릉 문과 광주목사 인조 신경진(辛慶晉) 1554-1619 영월 문과 예조참판 김신국(金藎國) 1572-1657 청풍 문과 영중추부사 숙종 강유후(姜裕後) 1606-1666 진주 문과 황해도관찰사 이제(李濟) 1654-1714 전주 음직→문과 대사간 경종 유상운(柳尙運) 1636-1707 문화 문..

조선시대(朝鮮時代) 관리(官吏)의 품계별(品階別) 봉록(俸祿) 일람표(一覽表)

조선시대 관리의 품계별 봉록 일람표 (朝鮮時代 官吏의 品階別 俸祿 一覽表) ◇조미(糙米)는 왕겨만 벗겨낸 메조미쌀[매갈이]를 뜻함 ◇저화(楮貨)는 고려말에서 현종 8년(1667)까지 닥나무 껍질로 만들어 통용된 지폐. 품계 (品階) 4계 (四季) 미 (米) 조미 (糙米) 황두/전미/소맥 黃豆/田米/小麥 정포/저화 正布/楮貨 정1품 춘기 (春期) 미(米) 4석(石) 조미(糙米) 12석*대군 (大君) 은 가(加) 3석 황두(黃豆) 12석 주(紬) 2필(疋) 정포(正布) 4필 저화(楮貨) 10장(張) 하기 (夏期) 미 3석 조미 12석 전미(田米) 1석 소맥(小麥) 5석 주 3필 정포 4필 추기 (秋期) 미 4석 조미 12석 전미 1석 소맥 5석 주 1필 정포 3필 동기 (冬期) 미 3석 조미 12석 황두 1..

처사(處士)와 징사(徵士)

■처사(處士)와 징사(徵士) 묘비명에 처사(處士) ○○○墓, 또는 징사(徵士) ○○○墓,라고 기록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처사(處士)와 징사(徵士)의 구분은 아래와 같습니다. ◈처사(處士) : 벼슬을 하지 아니하고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 ◈징사(徵士) : 나라에서 벼슬하라고 불러도 나가지 않았던 선비. 위와 같은 경우 조선시대 가장 유명한 처사(處士)는 남명(南冥) 조식(曺植)선생이고, 가장 유명한 징사(徵士)는 명재(明齋) 윤증(尹拯) 선생입니다.

군사(郡事)와 군수(郡守)

제후들을 진압하고 그 땅에 군을 설치해 수(守)를 둔 것이 그 기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신라시대에는 군을 설치해 태수(太守)·소수(小守)를 두었다. 고려시대에는 군이라는 행정 단위는 없고 지군(知郡)이 있었는데, 여기에 지군사(知郡事)를 설치하였다. 조선시대에는 1406년(태종 6)에 군현제를 재정비하고, 외관 직제도 유수(留守)·목관(牧官)·도호부·지주(知州)·지군·현령·현감 등으로 편성하였다. 1431년(세종 13)에는 주관(周官) 육익(六翼)의 제도에 의거해 외관의 품질(品秩)을 제정하였다. 즉, 유수관은 종2품, 도호부와 목관은 정3품, 도호부는 종3품, 지군사는 종4품, 판관과 현령은 종5품, 현감은 종6품으로 정하였다. 이후 1466년(세조 12) 관제 개편 때에 지군사가 군수로 바뀌게 된 ..

춘추관(春秋館)

■ 춘추관(春秋館) [요약] 조선시대 정삼품아문(正三品衙門)으로 정사(政事)를 기록하는 일을 관장한다. 국초에는 예문춘추관(藝文春秋館)이라 하다가 1401년(태종 1)에 예문관과 분리하여 춘추관(春秋館)으로 독립하였다. 1894년(고종 31)에 폐지하였다. ----------------------------------------------------------------------------------------------------------------------------- 고려와 조선시대에 시정(時政)의 기록을 관장한 관서로서. 고려 초기에는 사관(史館)이라고 불렀다. 관원으로는 시중(侍中)이 겸임하는 감수국사(監修國史), 2품 이상의 관원이 겸임하는 수국사(修國史)와 동수국사(同修國史), 한림원(..

예문관(藝文館)

■ 예문관(藝文館) [요약] 고려와 조선 시대, 임금의 칙령과 교시를 기록하던 관청 ----------------------------------------------------------------------------------------------------------------------------- 조선시대 임금의 말[言]이나 명령을 대신하여 짓는 것을 담당하기 위해 설치한 관서로.원봉성(元鳳省)·사림원(詞林院)·문한서(文翰署)·한림원(翰林院)이라고도 한다. 4관(館) 또는 관각(館閣)의 하나이다. 조선 왕조가 개창되면서 고려 말의 제도를 그대로 따라 예문춘추관을 두어 교명(敎命)과 국사(國史) 등의 일을 관장하게 하였다. 1401년(태종 1)에 다시 예문관과 춘추관으로 분리, 독립되었다. 그 ..

홍문관(弘文館)

■홍문관(弘文館) [요약] □ 고려시대 임금의 자문기관으로. 995(성종 14)년에 숭문관을 고친것이다. □ 조선시대의 삼사(三司)의하나. 궁중의 경적(經籍), 사적(史籍) 등을 관리하고 문한(文翰)의 처리 및 왕의 자문을 맡아 보던 관아이다. 1894(고종 31)년에 경연청(經筵廳)과 합병하여 이듬해 경연원이라 개칭되었다가 융희원년인 1907년 에 폐지되었다. ------------------------------------------------------------------------------------------------------------------------------------------ 조선시대 궁중의 경서(經書)·사적(史籍)의 관리와 문한(文翰)의 처리 및 왕의 각종 자문에 응하는 ..

포도청(捕盜廳)

■포도청(捕盜廳) 조선시대 죄인의 심문과 도적의 포획 및 도적·화재 예방을 위해 순찰 등의 일을 맡았던 관서로, 일명 포청(捕廳)이라고도 한다. 좌포청(左捕廳)은 중부 정선방(貞善坊) 파자교(把子橋) 동북쪽(현재 서울 종로구 수은동 56번지 일대)에, 우포청(右捕廳)은 서부 서린방(瑞麟坊) 혜정교(惠政橋) 남쪽(현재 종로구 종로1가 89번지 일대)에 있었다. 현재 우포도청 건물이 언제 누구에 의해 이건(移建)되었는지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서울 성북구 돈암동 512의 60번지에 이건되어 형태가 보존되어 있다. 《속대전》 에 의하면 《경국대전》 이후 창설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을 뿐 명확히 알 수 없다. 조선 중기에 설치되었다고 하였으나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성종 초에 설치된 것으로 이해된다. 조선 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