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벽오 이시발선생 25

경주부윤 이시발 유애비(慶州府尹李時發留愛碑)

↑경주이씨 시조의 사당인 악강묘(嶽降廟) ‘악강묘(嶽降廟)’는 경주이씨 시조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경주 표암재의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입니다. 매년 향사때 비로소 문이 열리고 제례 행사가 열리게 됩니다. ↑좌측 뒤편에 충익공 벽오 이시발 유애비가 보인다. 좌측은 1602년(선조 35)에 처음 세운 비이고 우측이 1786년(정조 10) 3월에 六代孫 李集星(이집성/파서 集斗의 兄)이 영천군수(永川郡守)로 있을 때, 다시 세운 것임. ↑소재지 : 경주 표암재 경내 악강묘 뒤 좌측. ⓒblog.naver.com/우경(2022.06.30) ↑경주 표암재 악강표 좌측 뒷편/ⓒblog.naver.com/우경(2022.06.30) ↑이부윤 유애비 앞면/ⓒblog.naver.com/우경(2022.06.30) ↑앞면 ..

벽오 이시발 약사(碧梧 李時發 略史)

■벽오공 약사(碧梧公의 略史) 공의 휘는 시발(時發)이요, 호(號)는 벽오(碧梧), 후영어은(後潁漁隱), 자(字)는 양구(養久),시호(諡號)는 충익(忠翼), 1569년 충북 청원군 오창면 오근리에서(오늘날 청주시 상당구 오근장동)성균진사 오촌공(梧村公)대건(大建)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589년(선조 22) 증광시(增廣試) 병과(丙科) 8위로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갔다. 임진왜란 발발로 접반관(接伴官)이 되어 경주에서 명나라 장군 낙상지(駱尙志)를 접대하였고 도체찰사(都體察使) 유성룡(柳成龍)의 종사관으로도 활동하였다. 1594년에는 명나라의 유격장을 따라 일본군 부대를 방문하여 정탐하였으며, 1596년 충청도 홍산에서 이몽학(李夢鶴)이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는데 기여하였고, 1605년 홀추가 난을..

충익공 벽오 이시발선생 묘(1569-1626)

◇명(明)나라 지사 두사충(杜師忠)이 자리 잡은 터 ◇산소 소재지 : 충북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산21-3번지(지전길 36-1) ↑벽오 이시발선생의 부모 묘이다. 좌측은 아버지 성균진사 증 의정부 좌찬성 오촌공(1550-1574) 이대건(李大建)묘 이고, 우측은 어머니 증 정경부인 안동 김씨묘이다. 오촌공(梧村公)이 1574년 돌아가셨을 당시에는 청원군 오창면 오근리 벌영산 하에 장례를 치렀는데 1610년 3월에 벽오공 께서 직접 청원군 옥산면 환희리 천내로 직접 이장하고, 그해 4월에 진천초평에 살집을 마련 가족들을 이주시켰다. 이후 초평이씨로 불리울 만큼 후손들이 번성 하였으며, 지금의 이곳 산소는 벽오가 돌아가신 몇해 후 오촌공의 손자들에 의해 2번째 이장한 산소다. ↑증 숭정대부 의정부 좌찬성, ..

벽오 이시발 선생의 초평 낙향 설

■ 벽오 이시발(碧梧 李時發)선생의 초평(草坪) 낙향설(落鄕設) 1592년(宣祖25年)에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난 때였다. 왜군(倭軍)이 아국(我國)의 방방곡곡(坊坊曲哭)에서 전승(戰勝)의 기세(氣勢)가 유난( 蹂躝)이 심(甚)하여지자 대가(大駕)는 의주(義州)로 파천(播遷)하였으며 끝내는 명(明)나라에 청병(請兵)하였다. 이때 이여송(李如松)이 6만대군을 거느리고 래원(來援)하였다. 명나라에서는 전쟁(戰爭)을 할때 반듯이 지사(地師)를 데리고 와서 지리(地理:산천의 형국을 5행에 부치어 길흉을 살피는것)를 살피게 한 후(後) 진지(陣地)를 구축(構築)하였다. 이때 따라온 지사(地師)가 두사충(杜師忠)이다. 이여송(李如松) 장군(將軍)이 여기서 진(陳)을 치면 어떻냐고 두지사에게 물었다. 두지사는 무..

벽오 이시발 신도비명(碧梧 李時發 神道碑銘)

■ 벽오 이시발 신도비명(碧梧 李時發 神道碑銘) [생졸년] 이시발『李時發, 1569년(선조 2) ~ 1626년(인조 4) [신도비 건립연대] 1658년(효종 9년) [유형/재질] 비문/화강암 돌 [문화재지정] 시도유형문화재(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42호) [문화재 지정일] 1984년 12월 31일 [크기] 높이 250Cm, 너비 90Cm [소재지]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192-11 [서체] 서체 : 해서(楷書) [찬자/서자/각자] 송시열(宋時烈) / 송준길(宋浚吉) / 이정영(李正英) [개요] 신도비란 임금이나 고관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무덤 남동쪽에 세워두는 것으로, 이 비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이시발[1569(선조 2)∼1626(인조 4)] 선생의 행적을 기리고 있다. 이시발은 선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