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묘갈,묘비,묘표

慶尙道觀察使淸湖公李暿墓碣銘

야촌(1) 2006. 1. 3. 20:23

■ 경상도 관찰사 증 이조판서 청호공 묘갈명.

  (慶尙道 觀察使 贈 吏曹判書 淸湖公 墓碣銘 )

 

후손 상경 지음(後孫 相慶 撰)

 

부군(府君)의 휘(諱)는 희(暿)요, 字는 명중(明仲)이요, 호(號)는 청호(淸湖)요, 성은 이씨(李氏)니 경주(慶州)사람이다, 신라 좌명공신(新羅 佐命功臣),휘(諱), 알평공(謁平公)이 그의 시조다.

 

고려(高麗)말에 휘 제현(齊賢)공이 계시니 호(號)는 익재(益齋)요,

계림 부원군(鷄林府院君)에 봉군(封君)되시고 시호(諡號)는 文忠(문충)이니, 공(公)의 고조(高祖)시다.

증조(曾祖)의 휘는 달존(達尊)이요, 호는 운와(雲窩)로, 임해군(臨海君)에 추봉(追封)되었다.

 

조부 학림(祖父,學林)은 소부윤(小府尹)을 역임 하셨고, 아버지, 담[擔, 1370 (공민왕 19) - 1405 (태종 5)]은, 밀직사 대언(密直司 代言)을 지내셨다. 어머니는 영양 남씨(英陽南氏)니 전서, 약생(典書, 若生)의 따님으로 영락 갑신[永樂 甲申=1404년(태종 4)]에 공(公)을 낳으셨다.

 

공(公)이 본시 학문(學文)을 좋아하고 예(禮)를 익히며 지성으로 효도에 극진 하였으며 또한 성품이 곧아서 대간(臺諫)의 풍도가 있었다.

 

공(公)이 일찍이 생원(生員),진사(進士)두 양시(兩試)에 합격(合格)하여 남대(南臺)의 추천을 받아 이조참의(吏曹慘議)와 홍문관 부제학(弘文館 副提學)을 지내고, 외직으로 경상도 관찰사 겸 출척사(慶尙道 觀察使 兼 黜陟使)로 안동(安東)에 순찰 오셨다가 객관(客館)에서 하세 하셨다.

 

유명(遺命)으로 안동부(安東府) 남족 낙타산 노림촌(駱駝山, 魯林村)뒤 을좌(乙坐)자리에 안장 하였다.

뒤에 이조판서(吏曹判書)와, 지경연 의금부사 겸(知經筵 義禁府事 兼) 홍문관(弘文館, 藝文館) 각 관의 대제학(大提學)을 추증 받았다.

 

배(配)위는 정부인 죽산안씨(貞夫人, 竹山安氏))니 판서, 정경공(判書,貞景公), 등(騰)의 따님(무남독녀)이다. 묘소는 고양 원당리(高陽 元堂里)에 있다. 자손록은 궐한다.

 

아 ! 부군(府君)이 오백년 전(五百年 前)에 출생(出生)하여, 문장(文章)과 절행(節行)이 족히 세상(世上)에 전할 만한 보배가 될만한데 문헌(文獻)을 증빙할수 없으니 자손(子孫)들의 유감스러운 마음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

 

명(銘)에 가로되, 익재선생(益齋 先生)이 그의 선조(先祖)이며 눌헌(訥軒)이 그의 자손(子孫)이로다.

이어 받음은 있고 걱정이 없으니,학문의 계통을 안 떨어뜨렸도다.

 

남대(南臺)에 들어가서 바른소리 그치지 않아, 수레 불러 영남에 부임하면서 백성에 대한 글귀 많이 읊었네,

 

왕께서 일렀도다,판서와 경연의 벼슬을 함께 추증하라.

그리고 문장도 잘하고 박식(搏識)하여서 청환(淸宦)을 고루고루 다 지냈도다.

 

선대(先代)를 빛내고 후대(後代)에 드리워서 씨족(氏族)이 환하게 빛을 발하네.

저기 꽃동산을 바라보니 꽃다운 풀이 자리풀 같네!

 

또한 징험 있음을 보아 왔으니 이 이치가 하늘에 매여 있도다.

이제 이것을 비석에 세겨 천년만년 뒤에까지 보여 주노라.

 

[참조내용]

◇영락 갑신(永樂 甲申) : 명나라 성조의 연호로 서기 1404년(태종 4)을 말함.

◇소부윤(小府尹) : 정사품 벼슬로 오늘날 부시장급.

◇전서(典署 : 고려의 정4품 벼슬(전의 판서를 고친이름)

◇대간(臺諫) : 사헌부와 사간원의 총칭.

◇생원(生員) : 소과를 말함.

◇남대(南臺) : 학문과 도덕이 있는 사람으로서 이조에서 대관(臺官)으로 추천한 사람의 칭호.

◇출척사(黜陟使) : 못된 사람을 내쫓고 착한 사람을 등용 하는 관리.

◇객관(客館) : 고을에 있는 손님 접대하는집.

◇청환(淸宦) : 조선시대 학식이나 문벌이 높은 사람에게 시키던 규장각 홍문관 선전관청의 벼슬.

◇필자가 소장한 도선생안(道先生案: 고려시대 이후 1970년대 까지의 경상도관찰사의 이, 취임 명적) 자료

    하면 청호공 이희(淸湖公 李暿)선생은 공조참의(工曺參議)로 재직하다.

 

   계해(癸亥) 1443년(세종 25) 6월에 경상도관찰사로 부임 이듬해인 갑자(甲子) 1444년 2월 21일에 졸(卒)한 것

  으로 나타나 있다.

 

  李在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