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익재이제현선생

익재공의 고향 경남 김해로 밝혀져

야촌(1) 2017. 9. 10. 08:43

익재 이제현『1287년(충렬왕 13) ~ 1367년(공민왕 16)』의 고향은 경남 김해(金海)로 밝혀져......

 

▲경주이씨 익재공파 보은 장산문중이 국립청주박물관에 기탁한 익재공 영정

 

지금까지 동암 공과 익재공 부자(父子)분의 고향이 알려진 바는 없습니다.  

아래 자료를 통해 밝힙니다.
익재(益齋) 문집 연보(年譜)나 어떤 문헌기록에도 익재공이 태어난 곳은 말하지 않고, 김해군(金海君)에 봉했다는 기록만 있을 뿐입니다.


군호(君號)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종실(宗室), 외척(外戚), 공신(功臣)에게 준 작호(爵號)인데 이는 왕위의 안전 및 왕권의 확립을 위해 종친이나 외척, 공신을 우대하여 그들에게 명예와 실리(實利)를 부과하여 공(公), 후(侯), 백(伯)의 작호를 주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군호는 봉군(封君) 할 때 본관지의 지명이나 이칭(異稱)을 쓰는 게 보통인데 오문의 중흥조(中興祖) 열헌공(悅軒公, 翮) 가족을 살펴보면 할머니는 김해 김 씨이고 동암공(東菴公, 瑱)의 군호는 임해군(臨海君)이시고 장자 이암공(怡菴公, 琯)은 가락군(駕洛君)이시고 익재(益齋)는 김해군(金海君)이십니다. 

즉 여기에서 임해나 가락은 모두 김해의 옛 지명입니다.

익재공께서 고향이 김해임을 알 수 있는 詩 한 구절이 있는데 익재난고(益齋亂藁) 제4권 53번째 김해부사(金海府使) 정 상서 국경(鄭尙書國俓)을 전송하는 詩에서 어서 호죽으로 우리 고을로 가게 되니/魚書虎竹吾州去(어서호죽오주거) 詩 한 구절을 근거로 본다면 공이 김해 사람임은 의심할 것이 없습니다.

 

물론 당시의 김해는 오늘날의 마산, 창원, 진해 등이 소속된 아주 큰 고을이고 오늘날의 김해지역 정도의 규모는 아닙니다. 또 다른 김해임을 밝히는 詩 한 구절이 있는데 심재 조긍섭(深齋 曺兢燮, 1873 ~ 1933)의 암서집(巖棲集) 제6권 가락에서 옛일을 생각하다[駕洛懷古]란 詩에서


누가 알랴 천세의 선비 역옹도 / 誰識櫟翁千世士(수식역옹천세사)
또한 이곳에서 태어난 것을 / 也曾於此降生來(야증어차항생래)이란 詩에서 천세의 선비 역옹(櫟翁)이란 익재 공의 또 다른 호(號)입니다.


[참고자료]
◇이진[李瑱,1244(고종 31)∼1321(충숙왕 8)]
    1313년에 충숙왕이 즉위하자 검교첨의정승(檢校僉議政丞)이 되고 임해군(臨海君)에 봉하여졌다.

◇이관(李琯)   충렬왕(忠烈王) 21년(1295) 을미(乙未) 진사시(進士試) 1등(一等) 1[壯元]위(1/70)

◇이재현, 1287년(충렬왕 13)∼1367년(공민왕 16),  1325년(충숙왕 12) 광정대부밀직사사(匡靖大夫密直司使)

     에 승진 추성양절공신(推誠亮節功臣)이 되고 정당문학(政堂文學)으로 김해군(金海君)에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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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부사(金海府使) 정 상서 국경(鄭尙書國俓)을 전송하면서 시(時) 자 운을 얻다 

[지은이]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고려 말           

[생졸년] 1287년(충렬왕 13)∼1367년(공민왕 16)


讀書思古人(독서사고인) / 글 읽을 땐 언제나 옛사람 생각하며,

常恨不同時(상한부동시) / 동시에 못 태어남 한탄했는데,

同時見古人(동시견고인) / 지금은 동시에 옛사람 보게 되니,

至樂良在玆(지락양재자) / 지극한 즐거움이 여기에 있다네.

幸哉吾今得吾子(행재오금득오자) / 다행히 내가 지금 그대를 만났으니,

胡不感此前賢詩(호불감차전현시) / 어떻게 전현시에 감탄하지 않겠나.

平生拙翁吾所畏(평생졸옹오소외) / 나는 평생 졸옹을 두려워하는데,

與世齟齬人共嗤(여세저어인공치) / 세상과는 안 어울려 모두들 비웃는다.

東人遺文手自錄(동인유문수자록) / 동인이 남긴 문장 자수로 기록하고,

又有拙藁皆倔奇(우유졸고개굴기) / 졸렬한 나의 초고도 기굴하게 써냈는데

一觀直欲覆醬瓿(일관직욕복장부) / 한 번 보고 장독덮개 하려고 하였더니.

攘攘可笑群兒癡(양양가소군아치) / 뭇 아이의 어리석음 가소롭도다.

殷勤鏤板垂不朽(은근누판수불후) / 그대는 정성들여 출판을 하였으니,

今世古人非子誰(금세고인비자수) / 현세의 고인은 그대 아니고 누구일까.

魚書虎竹吾州去(어서호죽오주거) / 어서 호죽으로 우리 고을로 가게 되니

吾爲吾民多賀之(오위오민다하지) / 우리 백성 위하여 나는 하례하노라.

汝蠱豈不剔(여고기불척) / 너희들 해독이 어찌 제거 안되며,

汝疾豈不醫(여질기불의) / 너희들 질병이 어찌 치료 안되랴.

噓以燠汝骨(허이욱여골) / 훈훈한 입김으로 너희 뼈 따습게 하고,

哺以肥汝肌(포이비여기) / 배불리 먹여서 너희를 살찌우리라.

五袴何止歌來暮(오고하지가래모) / 어떻게 오고가 늦게 옴만 노래하며

一錢何止表去思(일전하지표거사) / 일전이 어떻게 간뒤에 생각 표함뿐이리요.

九原誰喚拙翁起(구원수환졸옹기) / 구원에서 졸옹을 누가 불러내어

滌筆爲作德政碑(척필위작덕정비) / 그대 위해 붓을 들고 덕정비를 쓸 것인가.


※정국경(鄭國俓)이 일찍이 전라도의 안렴사(按廉使)가 되었을 때 급암(及菴) 민 상(閔相)이, 최 졸옹(崔拙翁)의

 《동인지문(東人之文)》과 졸고(拙槀)를 지었는데 정 상서(鄭尙書)가 모두 판각(板刻)을 하여 전하였다.



[原文]

送金海府使鄭尙書國俓。得時字讀書思古人。常恨不同時。同時見古人。至樂良在玆。幸哉吾今得吾子。胡不感此前賢詩。平生拙翁吾所畏。與世齟齬人共嗤。東人遺文手自錄。又有拙稿皆倔奇。一觀直欲覆醬瓿。攘攘可笑群兒癡。殷勤鏤板垂不朽。今世古人非子誰。魚書虎竹吾州去。吾爲吾民多賀之。汝蠱豈不剔。汝疾豈不醫。噓以燠汝骨。哺以肥汝肌。五袴何止歌來暮。一錢何止表去思。九原誰喚拙翁起。滌筆爲作德政碑。

鄭嘗爲全羅道按廉使時。及菴閔相授以崔拙翁東人之文及拙稿。鄭皆刻梓以傳


출전 : 益齋亂稿卷第四


[각주]

01) 장독덮개[覆醬瓿] : 쓸모없는 저서(著書)는 장독이나 덮는다는 말로, 곧 서투르게 지은 시문(詩文)을 버린다는

       뜻이다.《漢書 揚雄傳》

 

02) 어서 호죽(魚書虎竹) : 사신(使臣)이나 자사(刺使)가 가지고 다니는 부절(符節)로, 어부(魚符)ㆍ호부(虎符)ㆍ

       죽부(竹符)를 가리킨 것이다.《唐書 兵志》


03) 오고(五袴)가 …… 노래하며 : 오고는 다섯 벌의 바지란 말로 부유(富裕)함을 뜻한 것이다. 한(漢)나라 염숙도

       (廉叔度 : 숙도는 염범(廉范)의 자)가 촉군 태수(蜀郡太守)로 있을 때 정치를 잘하여 고을이 잘 살게 되자 백성

      들이 “염숙도 어이하여 늦게 왔는가 …… 백성들이 지금은 오고를 두게 되었다네.”라고 노래를 부른 고사에서

      온 말이다.《後漢書 卷31 廉范傳》


04) 일전(一錢)이 …… 표함뿐이리요 : 후한(後漢) 때 유총(劉寵)이 회계(會稽)의 태수(太守)로 있다가 떠날 때 그

       곳 백들이 그의 덕을 보답하는 뜻에서 전별금 백전(百錢)을 모아 주었는데, 청렴한 유총은 그 중에서 일전만

       을 받았다는 고사에서 인용된 말이다.《後漢書 卷76 劉寵傳》 이래서 유총을 일전 태수(一錢太守)라고도 한

       다.


     ⓒ한국고전번역원 장재한 (역) |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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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락에서 옛일을 생각하다[駕洛懷古(가락회고)]

[지은이] 심재 조긍섭(深齋 曺兢燮). / 詩
[생졸년] 1873년(고종 10)∼1933년.

三國當年鼎足分(삼국당년정족분) / 삼국 당시에 솥발처럼 나누어졌는데,
南溟又復出神君(남명우복출신군) / 남쪽 바다에 또 신군이 출현했네.

至今松柏雙陵道(지금송백쌍릉도) / 오늘까지 송백 어우러진 쌍릉 길에
佳氣猶成藹藹雲(가기유성애애운) / 좋은 기운 오히려 구름처럼 무성하네.

鳳凰迢遞擁殘丘(봉황초체옹잔구) / 쇠잔한 봉황대는 저 멀리 임해 있고,
燕子凄凉鎖古樓(연자처량쇄고루) / 오래된 연자 루는 처량하게 잠겨 있네.

一片荒碑舊宮地(일편황비구궁지) / 한 조각 거칠어진 비석 있는 옛 궁터에
半株喬木不勝秋(반주교목불승추) / 반 토막 교목이 가을 기운 이기지 못하네.

人文從古地靈開(인문종고지령개) / 인문은 예로부터 지령이 여나니,
許宋曺盧不乏才(허송조노불핍제) / 허씨, 송씨, 조씨, 노씨 가문의 인재 넉넉했네.

誰識櫟翁千世士(수식역옹역옹천세사) / 누가 알랴 천세의 선비 역옹도.
也曾於此降生來(야증야증어차강생래) / 또한 이곳에서 태어난 것을...

南浦蘆花已著霜(남포노화이저상) / 남포의 갈대꽃에 이미 서리 내리고,
晩汀鷗鷺不成行(만정구로불성행) / 느지막 물가의 갈매기 해오라기 제각기 노네.

重來倘約湖邊伴(중래당약호변반) / 다시 와서 호숫가에 함께 놀길 약속한다면,
料理秋風月一航(요리추풍월일항) / 가을바람 부는 달밤에 한척배 마련하리.

三叉七點逈回環(삼차칠점형회환) / 삼차강칠점산이 멀찌감치 두른 곳.
千頃葑禾一望間(천경풍화일망간) / 천경의 순무와 벼가 눈앞에 펼쳤네.

今日河渠功最大(금일하거공최대) / 오늘 논밭 사이 수로의 공 가장 크니.
可堪留得好江山(가감류득호강산) / 좋은 강산이 여기에 있을 만하네.

 

※익재집(益齋集)의 연보(年譜)에는 태어난 곳을 말하지 않고, 다만 두 차례 김해군(金海君)에 봉했다고만 하였

     다. 문집 가운데 김해 부사를 전송하는 시에“어서와 호죽을 차고 우리 고을로 가네.[魚書虎竹吾州去]”라는 한

    구절이 있다. 이것을 근거로 본다면 공이 김해 사람임은 의심할 것이 없다.



[原文]

駕洛懷古

三國當年鼎足分。南溟又復出神君。至今松柏雙陵道。佳氣猶 成藹藹雲。鳳凰迢遞擁殘丘。燕子凄凉鎖古樓。一片荒碑舊宮地。半株喬木不勝秋。人文從古地靈開。許宋曺盧不乏才。誰識櫟翁千世士。也曾於此降生來。益齋年譜不言所生之地但稱其再封金海君。而集中有送金海府使詩魚書虎竹吾州去一句。據此則公之爲金海人無疑。南浦蘆花已著霜。晩汀鷗鷺不成行。重來倘約湖邊伴。料理秋風月一航。三叉七點逈回環。千頃葑禾一望間。今日河渠功最大。可堪留 得好江山。


[각주]

01) 가락(駕洛) : 경상남도 김해(金海)를 말한다.

 

02) 신군(神君) : 가락국(駕洛國)의 시조 수로왕(首露王)을 말한다.

 

03) 쌍릉(雙陵) : 수로왕(首露王)의 능과 그 부인 허 황후(許皇后)의 능을 말한다. 수로왕릉은 경상남도 김해시 서

       상동(西上洞)에 있고, 허 황후 릉은 구산동(龜山東) 구지봉(龜旨峯) 옆에 있다.

 

04) 쇠잔한 …… 있고 : 이 구절은 수로왕(首露王) 즉위부터 시작된 가락국(駕洛國) 왕궁 터라고 전해지는 봉황대

       (鳳凰臺)를 형용한 것이다. 봉황대의 현재 위치는 경상남도 김해시 봉황동 158번지이다.

 

05) 오래된 …… 있네 : 이 구절은 연자루(燕子樓)를 두고 읊은 것이다. 연자 루는 옛 김해부(金海府)의 공루(公樓)

       인데, 현재 경상남도 김해시 동상동 연화사(蓮華寺) 포교당 근처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062년(고려 인종

       7)에 김해부사 김양일(金良鎰)이 증건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소실과 중건을 거듭하여 일제 강점기 까지 존속하다가 1938년 완전 해체되었다. 《慶尙道誌卷6 樓臺勝

      覽 金海燕子樓條》(朝鮮總督府 中樞院 1938년 발행)

 

06) 역옹(櫟翁) :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의 호이다. 자는 중사(仲思), 다른 호는 익재(益齋), 본관은 경주이

       다. 저서로는 《익재난고(益齊亂藁)》. 역옹패설(櫟翁稗說)이 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07) 문집 …… 시 : 《익재난고(益齊亂藁)》 권4에 실려 있는 〈김해 부사 정상서 국경을 전송하면서 시자 운을 얻

       다.『送金海府使鄭尙書國俓得時字』〉를 말한다.

 

08) 어서(魚書) : 어부(魚符)와 교지(敎旨)를 말한다. 어부는 왕명을 받은 사신이나 지방관이 차고 다니는 부절(符

        節)인데, 호부(虎符)ㆍ죽부(竹符)와 같은 말이다.

 

09) 호죽(虎竹) : 동호부(銅虎符)와 죽사부(竹使符)를 아울러 말한다. 왕명을 받은 사신이나 지방관이 병사를 징발

        하는데 쓰는 것은 동호부이고, 인원과 물자를 징집하는 데 쓰는 것은 죽사부이다.

 

10) 삼차강 : 삼국 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김해를 지나는 낙동강 강물에 의한 퇴적으로 이루어진 삼각주

       가 강물의 흐름을 세 갈래로 갈라놓았다고 하여 삼차수(三叉水) 또는 삼차강(三叉江)이라고 부른다.

 

11) 칠 점산 : 김해의 낙동강 하류 삼각주 지형에 일곱 개의 작은 산이 점처럼 이어졌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지

       금은 그 가운데 하나만 남아 있다.


[참고자료]

◇암서집(巖棲集) 제6권/詩   부산대학교 점필재연구소 | 김홍영 정석태 김보경 (공역) | 2013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