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고사성어

칭찬(稱讚)도 과유불급(過猶不及)

야촌(1) 2016. 6. 7. 07:45

칭찬(稱讚)도 과유불급(過猶不及)

 

또 스스로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데는

역시 걸맞은 실상이 있어야 합니다.

저 긍섭이 일찍이 옛 성현의 글을 보니,

남을 하늘 위로 추어올리고

스스로는 낮은 곳에 처하는 말은 아직까지 없었습니다.

 

且自牧以尊人, 亦有其實.

차자목이존인 역유기실

 

兢嘗竊觀古聖賢文字,

긍상절관고성현문자

 

曾未有吹人天上、自處汚下之言.

증미유취인천상 자처오하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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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긍섭(曺兢燮, 1873∼1933), 『암서집(巖棲集)』 권7, 「상곽면우선생(上郭俛宇先生)」

 

[해설]

 

2002년에 나온 밀리언셀러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이 있다. 세계적인 경영 컨설턴트 켄 블랜차드가 쓴 이 책은, 그 책장을 넘겨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제목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남녀노소 누구나 ‘칭찬’하면 이 말을 떠올리곤 한다. 대한민국에 칭찬 열풍을 몰고 온 이 책 덕분에 칭찬에 인색하던 우리 사회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 나의 긍정적인 태도와 관심과 칭찬이 상대를 바꿀 수 있다는 이 메시지에는 사람의 실제 행동을 잘 이끌어내는 밝고 따뜻한 힘이 있으니, 상당히 훌륭한 대인관계론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요즘 매스컴이나 SNS상에 넘치는 과도한 칭찬들을 보다 보면, 이 칭찬 열풍에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곳곳에서 범람하는 오버액션이나 지나친 칭찬을 접할 때면 공감은커녕 괴리감이 들면서 언짢아지곤 한다. 실상과 동떨어진 칭찬은 오히려 아부에 가깝다.

 

칭찬하는 사람은 할 때는 비굴하고 돌아서면 민망하며, 받는 사람 역시 그것이 과분함을 알기에 받을 때는 흐뭇하나 돌아서면 찜찜하다. 그러니 피차 안 하느니만 못한 것이다. 설령 아부하려는 의도 없이 그냥 서로 간에 듣기 좋자고 하는 칭찬이라 하더라도, 이것은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

 

그런 칭찬을 주고받다 보면 정작 꼭해야 하는 비판을 꺼리게 되어 직시해야 할 문제를 간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실정에 맞는 칭찬을 강조한 위 편지의 글귀는 경청할 만하다. 조긍섭은 조선 말기의 학자이고, 면우(俛宇)는 그가 스승으로 모셨던 곽종석(郭鍾錫, 1846~1919)의 호이다.

 

면우는 당시 영남의 큰 선비로, 유생들이 연서(連書)한 독립호소문을 파리강화회의에 발송했다가 투옥되어 병사한 독립투사이기도 하다. 자신보다 27살 아래인 조긍섭의 이기(理氣)와 심성(心性)에 대한 질의와 논변에 대해, 면우가 “고명하고 탁월하다”, “앞으로 가르침을 구하도록 하겠다”라고 칭찬하자,

 

그 말씀이 지나치다며 이렇게 정색을 하고 질정에 나선 것이다. 그러면서 당시 사제 간이나 친구 사이에, 실상과 상관없이 서로 추켜세우고 겸손을 부리는 말과 모습을 일삼다 보니 경박하고 가식적인 풍조[澆僞之風]가 만연하게 되었다고 꼬집었다.

 

칭찬은 인간관계의 윤활유이지만, 이 또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인색하지도 않고 지나치지도 않게, 그리고 실정에 맞게 칭찬하는 적정선이 필요하다.

 

글쓴이 : 박은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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