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고사성어

남의 말만 듣고서

야촌(1) 2015. 12. 17. 11:27

■남의 말만 듣고서

 

다른 이가 누군가를 평가하는 말을 듣고서 그 말을 남에게 전파해 주는 경우에는

자연히 과장된 칭찬이나 비방이 있기 마련이다.

 

聞人之測人言說 而傳播於人者 勢固有溢美溢惡之談

문인지측인언설 이전파어인자 세고유일미일악지담

 

- 최한기(崔漢綺, 1803~1877)

『인정(人政)』권1

「측인문(測人門) 1, 측일미일악(測溢美溢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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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최한기 선생은 인사(人事) 행정 이론서인 『인정(人政)』이란 책에서 사람을 평가할 때 주의할 점의 하나로,

“그 사람에 대한 과장된 칭찬이나 비방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測溢美溢惡]”

는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특히 자신이 직접 그 인물을 보고서 평가하는 것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평가한 말을 남으로부터 전해 듣는 경우를 예로 들고 있는데요, 이를테면 A라는 사람에 대해 B가 어떻다고 내린 평가를 C가 듣고서 D에게 전달해 주는 식의 경우입니다.

 

설령 D가 B의 평가를 직접 들었다 하더라도 이미 한 단계 남의 주관을 거친 것이기에 아무래도 객관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그걸 또 C를 통해 한 번 더 거쳐서 듣게 된다면 결국에는 과장된 칭찬이나 비방이 뒤섞인 왜곡된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또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눈으로 본 사건을 남에게 있는 그대로 전해 주기가 어렵죠. 설령 2할 정도만 과장되고 나머지 8할이 진실이라 하더라도, 그게 또 다른 누군가의 귀와 입을 거치게 되면 그 진실은 5, 6할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티백을 물에 재차 우려낼수록 그 안에 남아있는 차의 풍미(風味)는 계속 옅어지듯이, 말도 전해지면 전해질수록 그 안에 담겨 있는 진실성은 차츰 옅어질 수밖에 없죠. 그렇다면 애초에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이 그 왜곡된 평가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까요? 아마도 아닐 것입니다.

 

수차례 우려내 거의 맹탕이 되어버린 차를 마시면서 이 차의 풍미는 겨우 이것밖에 안 되냐며 투덜댄다면, 그 오판(誤判)의 책임은 차의 참맛을 모르고 섣불리 판단한 본인이 져야지, 차를 우려내 준 사람이 질 순 없죠.

 

그러니 말을 전달해 듣고서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본인 스스로가 그 말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과장인가를 제대로 분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대해 최한기 선생은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두, 세 차례 전달되는 과정에서 말이 계속 보태지고 날개가 붙게 되면 점차 터무니없는 지경에 이르러서 비방할 구석이 없는 부분까지 비방하거나 칭찬할 구석이 없는 부분까지도 칭찬하게 된다.

 

이로부터 남에게 말을 전해 듣는 경우에는 반드시 꼭 잘 살피고 신중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니, 우선 말을 전해주는 사람이 어느 정도의 지각(知覺)을 지닌 위인인가를 참작하고, 또 다른 두세 사람이 함께 전해주는 상이한 이야기들도 다 들어봐야 한다.

 

그러고 나서 그중에 참된 것만 취하고 거짓된 것은 버리며, 대체적인 부분만 취하고 자질구레한 것은 버려야 하니, 그래야만 절반 이상 믿을만한 이야기가 된다.

[至再三傳, 致增演附翼, 轉入虛誕之境, 毀至於無毀, 譽至於無譽. 於是可知傳說之聽固宜審愼, 先參傳言者之知覺分數, 又待二三人之同傳異說. 捨虛無取誠實, 擧大體遺細密, 斯過半矣.]

 

최한기 선생은 이렇듯 신중하게 따져 본 뒤에도 그 가치 판단의 신뢰성을 겨우 ‘절반 이상’ 정도로 국한해서 보고 있습니다. 이처럼 신중한 검토를 거치더라도 남의 말은 여전히 100% 신뢰하기 어려운 것이죠.

 

그러니 남의 말만 곧이곧대로 듣고 판단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이를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꼭 ‘인물 평가’에만 국한된 사항은 아닐 것입니다. 어쩌면 이른바 ‘정보의 홍수’라고 불리는 인터넷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 세대 모두가 늘 명심해야 할 사항입니다.

 

인터넷 상에 널려있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에 휘둘리는 바람에 공연히 애꿎은 사람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가거나 많은 이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사건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직접 보고 들은 일이 아닌데도 함부로 인터넷 상에서 왈가왈부하는 태도는 그만큼 위험하죠.

 

옛 성현들은 “혼자 있을 때도 반드시 몸가짐을 신중히 하라[必愼其獨]”고 하였는데, 요즘 기준으로 맞추어 본다면 “혼자 인터넷 할 때도 반드시 언행을 신중히 하라”라는 뜻으로 전용(轉用)해 보아도 될 듯합니다.

 

남에게 전해 듣는 편파적인 말 한마디에 휘둘리지 말고, 여러 의견을 두루 듣고서 무엇이 옳은지 신중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좀 더 귀를 열고서 세상을 살아가야겠습니다.

 

글쓴이 : 허윤만(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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