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문세가와 재벌가
[번역문]
고부 간에 헐뜯고 동서 간에 티격태격하고, 시누이 간에 비방하는 일이 부귀한 대가(大家)나 세족(世族)에서는 항상 발생한다. 반면 빈천한 집에서는 도리어 이러한 걱정거리가 없으니 왜 그럴까!?.
대체로 대가나 세족의 사람들은 교만하고 방자한 습관이 몸에 배어 자기만 높은 줄 알고 남을 높일 줄 모르며, 자기만 귀한 줄 알고 남을 귀하게 여길 줄 모른다. 사람을 대할 때도 반드시 먼저 그의 잘못을 찾아내어 지적하고, 그 사람에게 장점이 있더라도 그의 장점은 말하지 않은 채 단점만을 들춰내어 설자리가 없게 만들며, 또 주로 비복(婢僕)의 말을 듣고서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로 삼곤 한다.
그리하여 끝내 은혜와 의리가 온전하지 못하게 되니, 이것이야말로 매우 경계해야 할 점이다.
대개 집안에 자녀가 많으면 그 배우자들은 모두 타인이므로 화목하게 지내기가 매우 어렵다.
오직 가장(家長)과 주부는 충(忠)과 신(信)으로 대하고 돈후한 자세를 견지하면서 허물은 덮어 주고 잘한 일은 드러내 주며 가능한 한 모욕을 주지 말고 가리워 막힌 곳을 없애줌으로써 자제들이 저마다 제 자리를 찾아가게 해야 한다. 이것이 한 집안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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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姑婦之相訾. 妯娌之相失. 娣姒之相毀. 恒出於大家世族之富貴者. 乃若貧賤之家. 反無此患何也. 蓋貴盛之家. 習於驕傲慢佚. 自尊而不尊人. 自貴而不貴人. 待人必先尋人之過誤以謫之. 雖有所長. 不言其長. 而但求其短. 使不得容. 又多聽婢僕間言以爲之證. 終至於恩義不全. 此所當深戒也. 大抵人家子女多. 則其所配合皆是別人. 和協甚難. 唯在家長主婦忠信以莅之. 敦厚以持之. 掩過揚善. 忍詬去蔽. 使群從子弟. 各得其所. 此尤人家之所先務也.
- 신흠(申欽, 1566~1628) 「구정록(求正錄)」, 『상촌고(象村稿)』 권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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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조선 4대 문장가로 꼽히는 상촌 신흠이 쓴 「구정록」 가운데 한 대목이다. 상촌은 1613년 계축옥사에 연루되어 파직을 당해 고향인 김포로 낙향했다. 3년 뒤 인목대비 폐위 논의가 일었을 때에는 반대편에 섰다는 이유로 춘천으로 유배됐다. 이 글을 쓸 때는 유배객의 신분이었던 같다.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예조 판서에까지 오른 상촌에게 유배란 관직 생활에서 생각할 수 없는 낯선 일상이었다. 지천명을 넘긴 그는 유배지에서 당시 현실을 조망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이때 쓴 「구정록」은 유배 생활의 단상을 정리한 글 모음으로 정치,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과 역대 사적에 대한 논평이 주류를 이룬다. 인용문은 권문세가 아녀자들의 행태에 대한 비판이다.
당시 부자나 권세가 있는 집에서는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 형제의 아내 사이, 자매들 사이에 유독 시기, 질투, 반목이 많았던 모양이다. 여자들의 갈등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의 산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상촌은 대가나 세족에 만연해 있던 오만하거나 방자한 태도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데서 기인한다고 보았다. 그들에게 주위의 비판이나 충고가 먹혀들 리 만무하다. 이들이 귀담아듣는 말은 주로 비복(婢僕)의 얘기일 뿐이다. 비복들은 주인의 귀에 거슬리는 충언보다는 비위에 맞는 아첨을 늘어놓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권문세가 자녀들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는 불을 보듯 뻔하다.
그들은 상대방을 존중할 줄 모른다. 먼저 상대방의 장점은 보지 못하고 단점을 찾아내 헐뜯는다.
문제는 그들에게는 선과 악, 정의와 부정의, 가치와 몰가치에 대한 보편적인 기준마저 없다는 사실이다.
돈이 많거나 권력이 있는 사람들의 독선적이고 안하무인의 태도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최근 재벌가의 행태를 보면 상촌 신흠의 개탄이 옛날 일만 같지는 않다.
“신분이 높고 돈이 많은 집의 사람들은 교만하고 방자한 습관이 몸에 배어 자기만 높은 줄 알고 남을 높일 줄 모르고 자기만 귀한 줄 알고 남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어느 재벌가 딸의 ‘땅콩 회항’ 사건을 떠올린 사람이 많을 것이다.
사적 감정으로 항공기를 회항시키는 일은 보통 사람이라면 생각할 수도 없는 사건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사건이 발생한 뒤 재벌이 취한 태도이다. 측근들을 동원해 사건을 축소하고 무마하려 했던 그 재벌의 행태는 ‘비복(婢僕)의 말을 듣고서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로 삼으려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문제는 오늘날의 재벌가들은 자본과 부에 대해 제대로 된 상식이나 가치관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19세기 자본주의 초기에만 해도 사람들은 청부(淸富)가 자본주의를 끌고 간다고 믿었다.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청교도 정신을 부르짖으며 자본가의 윤리를 강조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돈이 돈을 먹는 정글자본주의 아래에서 더 이상 자본가나 부자에게 양심과 배려를 기대할 수 없게 됐다.
400년 전 상촌 신흠은 가장과 주부가 버릇없는 자식들은 가르치고 깨우쳐야 한다고 적었다.
가법(家法)을 두어 자녀들의 오만과 방종을 제어하라고 제안했다.
당시 상촌은 권문세가라고 해도 사대부의 범절은 살아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재벌가에게 가정의 법도와 예절은 찾아보기 어렵다.
자녀들에게 양심과 배려를 가르치기는커녕 경영권 승계를 위해 속임수, 편법, 탈법 등을 조장하고 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재벌가 자녀의 상당수가 편법 주식상장을 통해 차익을 보거나 일감 몰아주기 등의 수법으로 수백억에서 수조 원에 달하는 부를 증식했다고 한다.
국내 최고 재벌의 장남은 부모에게 받은 수십억 원으로 20년도 안 돼 9조 원에 가까운 거부를 쌓았다.
수천 명이 수십 년간 노동해야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을 별 노력 없이 거머쥔 것이다.
지난해 10조 원이 넘는 돈을 들여 강남의 노른자 땅을 사들인 자동차 재벌의 장남 역시 주식 시세차익, 일감 몰아주기 등의 수법으로 수조 원의 돈을 불렸다. 이러한 재벌가들에게 정상적인 이윤추구를 바라거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치권이나 시민단체에서 입법이나 경영권 감시 등을 통해 견제해야 할 터인데, 손을 쓰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할 뿐이다. 「구정록」에는 이러한 내용도 있다.
“부귀라는 것은 몸 밖의 물건으로서 하루아침에 엎어지고 나면 곧바로 재앙으로 변할 수 있다.[富貴乃身外之物 一朝顚沛 直爲其祟耳]”
글쓴이 : 조운찬/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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