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지리지(地理志)

선인부사도강형(仙人浮楂渡江形)

야촌(1) 2015. 1. 6. 06:23

음양진풍수지리연구소

 

선인부사도강형(仙人浮楂渡江形)

 

금산군 제원면 천내리 선인부사도강형(仙人浮楂渡江形)

 

우리 일행은 선인부사 도강형을 답사하기 위해 천내리(川內里) 입구에 있는 제원교(濟原橋) 옆, 아래 주차장에 차(車)를 세우고 왕릉(王陵)의 예정지로 지정(指定)하여 용석(龍石)과 호석(虎石)을 세워둔 곳에서 내력(來歷)을 알고 주변을 한번 둘러보니 과연 동국(東國)의 제2지라 할 만큼의 국세(局勢)라고는 선뜻 눈에 들어오지 않는 형세(形勢)이니, 하물며 후학인(後學人)들은 어떻게 하겠는가.

 

 

20년 전에 둘러보았던 산(山)하고 지금의 산천(山川)은 많이 변해 있었다. 그러나 산(山)을 보고 다니는 사람은 그 산의 특징적인 것은 잊어버리지 않는가 보다, 옛 기억을 더듬어 병오룡(丙午龍) 5得 2破,(5得 2破는 巳酉得 內破는 乾破이며 坎癸丑得 外破는 寅破가 된다)와 묘을좌(卯乙坐)를 상기하여 주변(周邊)을 차로 한번 둘러보니 지금도 금수강산(錦繡江山)의 자태(姿態)는 아직도 보존(保存)되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충북(忠北) 영동군(永同郡) 학산면(鶴山面)과 용화면(龍化面) 경계점(境界點)으로, 전북(全北) 무주군(茂朱郡) 무주읍(茂朱邑) 삼개읍면(三個邑面)을 두르고 솟아 있는 백하산(白霞山)이 대간(大幹)의 소조(小祖)를 이뤄 간인(艮寅)으로 출맥(出脈)하여 임해(壬亥)로 내려와 인갑(寅甲)으로 과협(過峽)을 하여 칠봉산(七峰山)에 이렀다.

 

손사(巽巳)로 인압제에서 묘을(卯乙)로 박환(剝換) 다시 손진(巽辰)으로 성주산(聖主山)에서 개장(開帳: 개장이란 용이 나아가는 대격(大格)으로 마치 귀인(貴人)이 행차하는 것 같고 반드시 장막(帳幕)을 펴서 만드는 것은 그 몸이 매우 위엄(威嚴)이 있고 존엄(尊嚴)하기 때문에, 격(格)이 있어 한번 펼치면 만리(萬里), 천리(千里), 백리(百里)를 또는 수십(數十) 리(里)로 펼치는데 대소(大小)가 같지는 않으나 각각 장(帳)을 이룬다.)을 하고 기웃재 기두(起頭)로 병오룡(丙午龍)으로 출맥(出脈)하여 월영봉(月迎峰)을 위세로 백두대간(白頭大幹)의 간룡(幹龍) 유간(有幹)의 일락지(一落地)로 초락(初落) 중락(中落)을 거쳐 말락지(末落地)로 국세을 조판하니 창천수성(漲天水星: 봉긋하게 떠오르는 해에 파도와 같은 겹쳐진 모습으로 보이는 수성체)으로 힘차게 내려오는 너울과 대간룡(大幹龍)의 기세(氣勢)는 권렴용(捲簾龍: 발을 늘어트린 것처럼 옆으로 가지런한 맥이 목룡(木龍) 이거나 토룡(土龍)이면 진혈(眞穴)이 있는데 나아가면서 전변(轉變)해야 대귀격(大貴格)이다.

 

편사(偏斜)를 불문(不問)하고 황갑급제(黃甲及第)한다. 중중(重重)한 횡산(橫山)이 상차(上次)하고 단지 정맥(正脈)이 일두(一頭)에 있고 횡처(橫處)에 탈맥(脫脈) 봉우리가 있으면 권렴전시(捲簾殿試)로 횡으로 덮은 것은 어폐(御陛)이다. 공동(空洞)인 것은 흔렴(掀簾)이다 독봉(獨峰)인 것은 취시(就試)이다. 만약 맥(脈)이 중출(中出)하지 않고 편사(偏斜)하게 되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용명(龍名)을 알지 못하고 가볍고 쉽게 띄워서 이야기하면 그것은 잃는것이 뚜렸하다. 만약 용명을 알고 그것이 귀룡(貴龍)이면 그것은 편사(偏斜)함이 적다고 할수 있다.)의 기틀을 만들어 그 위용은 구성(九星)의 녹존(祿存)으로 평지횡장(平地橫障)하여 층층강락(層層降落)하는 평지룡(平地龍)으로 본다.

 

 

↑위에서 본 천내리 전경

 

풍수(風水)를 하시는 분들은 하루에 하나를 보시더라도 주위를 모두 탐사(探査)하고 보이지 않은 암공사(暗拱砂), 암공수(暗拱水)까지라도 파악(把握)을 해서 공부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요즈음 답산(踏山)은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산을 보아 답하는 방식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왜 이런 말씀을 드리냐 하면 부사도강형(浮楂渡江形)이라는 것은 산도(山圖)에도 있고 선사(先師)들의 기록(記錄)에도 많이 나오지만, 그곳의 주민(住民)에게 물어봐도 알려진 내용이기에, 그런 정도는 다 알고 있다고 보아야 됩니다.

 

선인부사도강형(仙人浮楂渡江形)이라고 하면 도강형(渡江形)이 물을 거슬러 차는 도강형(渡江形)인지 물을 따라 흘러가는 도강형(渡江形)인지를 알아야만, 체(體)와 용(用)을 구분 할 줄을알 것인데 아쉬운 기록이 너무 많은것 같다. 지금까지 답사(踏査)를 해왔던 내용을 보면 천내리(川內里) 마을 위쪽 고인돌 유적지(遺跡地)가 있는 곳을 답사(踏査)하거나 다니기 편한 곳 주변에 산소(山所)가 있는 곳, 정도에서, 아니면 안동장(安東張)씨 묘(墓)가 있는 곳에서 옥소룡(玉梳龍)이라고 하는곳 까지 급(急)이 줄 다름으로 관망(觀望)하고 오는 형편이다.

 

옛 선인(先人)들께서는 혈(穴) 하나를 보기위해 3~4일의 답사기간(踏査其間)의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선사(先師)분들께서는 산천을 아래와 같이 둘러보았다고 합니다.

 

첫 째 : 기두(起頭)로써 용의 내력을 알아 어느좌(坐)를 정할수 있는가를 알고.

둘 째 : 조산봉(祖山峰)을 알아 국세(局勢)와 개장(開帳)은 어떻게 하였는가를 알아야 하며

셋 째 : 과협(過峽)은 몇 개인지 알고, 무슨 형기(形氣)인지를 파악하여야 되고,

넷 째 : 협(峽)은 무슨협인지? 예: 王字峽인지, 十字峽인지, 迎送峽, 乾天峽인지 알아야 한다.

다섯째 : 입수(入首)는 몇 절인지? 예: 입수 5절~6절 ㅇㅇㅇㅇ, 입수 4절이면ㅇㅇㅇㅇ, 3절이면 ㅇㅇㅇㅇ, 2절이면

                군수 현감지지 등이 있고 7~8절 10절~12절도 있으니 잘 파악해야 한다.

 

여섯째 : 무슨 입수(入首)를 하였는지, 이기(理氣)로 들어가는 부분이며, 한개의 방위(方位)를 정하고 있는 이런 내

               용의 득(得)과 파(破)가 정확한 해석을 내놓게 됩니다.

 

           〔입수를 알면 득(得)을 정하고 향(向)을 정할수 있다고 볼 수있으며. 시원처(始原處): 처음 보이는곳, 시견

              처(始見處)가 아니며 한 방위의 득(得)과, 한 방위의 파(破)를 적용,⟪예: 경유득(庚酉得)의 을진파(乙辰

              破) 양방위 (兩方位)를 말하는게 아닙니다.

 

             전북 부안군 동진면 봉덕리 신승 진묵대사(震黙大師)의 소점, 지응대사(紙應大師) 모친 묘소(墓所)의 비석

             비문(碑文)을 읽어 보시면 참고가 되시리라 봅니다. 신유룡(辛酉龍)에 신입수(辛入首) 건좌(乾坐) 곤득(坤

            得) 인파(寅破)로 되어 있습니다. 이 내용은 국사(國師)지리정경 십사명사(十四明師)소점, 기록(記錄) 정리

            하였습니다.

 

            龍 : 辛염정(廉貞) 酉탐랑(貪狼) 坐: 乾坐 入首: 辛入首 (陰) 참고: 현무정에서 내려온 맥이 승금처로 들어

                    가는것은 입수가 아닌 것으로 판단한 것 같습니다. 坤得: 거문(巨門) 寅破: 무곡(武曲)

 

일곱째 : 좌(坐)를 알면 파(破)⟪물이 감추어 합수되어 청룡, 백호를 완전이 빠저 나가 는 곳, 물이 산을 바로 돌아 나

               간 곳이 아닙니다⟫를 정할 수 있습니다.

여덟째 : 그리고 나서 안(案)과 조산(朝山)을 정할수 있다고 보며, 그 외(外) 사(砂)를 봅니다.

 

그 곳(천내리)을 답사하여 자세히 보면 어수선한 구릉(丘陵)의 형세(形勢)와 산(山)이 아니라 뗏목자체는 한쪽으로 바르게 엮어저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혈(穴)의 정체(正體)는 물론 형세(形勢)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잘 모르는 사람의 기록이 많으니, 배우는 후학(後學)들은 가령 창천수성(漲天水星) 조차도, 어떤 것이며 뜻도 잘 모르는데, 어찌 이기론(理氣論)을 운운하고 있는지 참 대단한 풍수사들 입니다.

 

어떤분들의 이론은 내가 보지 못하고 만약 혈(穴)을 찾지 못하게 되면 전무(全無)한 것으로 말하고, 선인(先人)들의 결록을 믿을수 없다하는 글로 폄하하고 말하니, 배우는 한 사람의 풍수가로써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라고 봅니다.

 

만산결(萬山訣)의 내용을 보면(정확하게 본 내용은 아니지만 기록상에 표기 됨)

 

● 금산군(錦山郡) 천내리(川內里) 병오룡(丙午龍) 사유감계축득(巳酉坎癸丑得) 진파(辰破)

 

선인부사도강형(仙人浮楂渡江形) 횡작삼혈순승(橫作三穴順承) 위안취적봉단좌(爲案翠積峰端坐) 월용봉삽천(月龍峰揷天) 후유룡(後有龍) 전유낙안평(前有落雁坪:난들마을) 수구인암립(水口印岩立) 동방이지(東方二地) 선등과갑(先登科甲) 명현비여주문공삼인병출(名賢比如朱文公 三人幷出) 부귀차여왕공자이십팔인병출(富貴此如王公子 二十八人幷出) 기간문무장상계계불핍지지(其間文武將相繼繼不乏之地) 하유천기(下有千基)

 

내용을 읽어보면 금산군(錦山郡) 천내리(川內里) 병오룡(丙午龍)으로 입수(入首)한 터는 사유(巳酉) 감계축방(坎癸丑方)에서 득수(得水)하고, 파구(破口)는 진방(辰方: 파구를 잘못 기재된 것으로 사료 됨)에 되어있는 선인부사도강형(仙人浮楂渡江形)의 혈(穴)인데, 횡(橫)으로 길게 벌리어 삼혈(세자리의 혈)을 작혈(作穴)하였다. 기록함

 

본인이 형기(形氣) 공부를 하여 찾으려 하지 않고 기록에 의존하는 후학자가 많은게 현실입니다.

전방(前方)에 취적봉(聚積峰)은 안산(案山)으로 단정하게 응기(應氣)하고, 뒤로 솟구친 월영봉(月影峰)이 혈을 후조(後照: 橫作穴은 落山이 받처야 좋은 형상)한다.

 

강건너 펼쳐지는 낙안평(落雁坪)은 포근하게 감싸 안으며, 물이 돌아가는 수구(水口)에 인암사(印岩砂)가 직립(直立)하였으며, 동방(東方)에서 두 번째로 치는 대혈(大穴)이 있는데 그 자리를 얻게 되면 자손들이 등과(登科)하는데, 주문공(朱文公)같은 명현(名賢)이 셋이나 배출되고 부귀(富貴)를 겸전(兼全)한 왕공자(王公子)와 같은 인물이 28인이(28人이 나오는 숫자 : 청룡(靑龍)과 득수(得水)방위를 보며 안산(案山)과 사법(砂法)방향으로 어떠한 인물이 출(出)할 것인가를 알수 있으며, 몇 대(代)를 갈수 있는지를 논(論) 할수 있다고 보며)나오며, 문무장상(文武將相)은 끊이지 않는다.

 

그 아래 천년기업지지(千年基業之地)가 될 택지(宅地: 陽宅을 말함)가 있다고 적고 있다.

고(故) 장익호 선사(先師)가 1983년 6월 이곳을 답사(踏査)하고 내용을 유산록(遊山錄) 책자에 남기신 글이다.

 

또 다른 분 근대의 풍수대가로 활동을 하셨던 장ㅇㅇ분의 유택은 유산록에 동국삼대지중일야(東國三大地中一也)라 하는 곳 배양산하(培養山下) 어옹수조형(漁翁垂釣形) 옥룡자운(玉龍子云) 사자생손지지,운운(死子生孫之地,云云: 죽은자가 자식을 볼 수 있다는 땅이라 운운(云云)을 찾아, 유산록 기록상으로 현(現) 미금면(美金面) 이패리(二牌里)의 우편(右便)에 점혈(點穴)하여 고인(故人)의 유체(有體)가 편안히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모르시는 분들은 자리도 아니라고 언성(言聲)을 높여 말씀들을 하신다.

 

근대(近代)의 명성(名聲)을 얻은 풍수가(風水家)께서 신후지지(身後之地)도 제대로 잡지 못했다고, 말씀 하시는 후학님들 저마다 한 마디씩하고 답사(踏査)를 한다. 그러나 그분의 깊은 뜻을 헤아리는 자(者) 몇이나 어디에 있을런지, 글을 쓰는 저는 그 분하고 일면식(一面識)도 없으며, 그분의 글을 배워보지도 가르침을 받지도 않았음을 알림니다. 그 학회(學會) 회원도 아니며 후(後)에 우연이 책을 구입해서 읽어 보기는 하였습니다.

 

또한 그 분의 유택을 가보기도 하였습니다.(혹 잘못 올려진 글이라도 연관이 있으신 학회나 회원님들께서는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고(故) 장익호선사(先師)의 글을 보면 금산(錦山) 동국(東國) 제2지라는 선인부사도강형(仙人浮楂渡江形)을 찾아 천내리(川內里) 도달 제원교상(濟原橋上)에서 사방(四方)을 둘러보니 금수강산(錦繡江山)이다. 

 

산세(山勢) 수세(水勢)가 과연 천하일품(天下一品)이라 하였으며. 금강(錦江)은 동남방(東南方)에서 흘러와 대원(大圓)을 그리며, 제 고비를 돌아 다시 동방(東方)으로 소수(消水)하여 금산(錦山)에서 흘러오는 대천(大川)과 신술(辛戌) 건해방(乾亥方)에서 흘러오는 대천들은 이곳에서 합류(合流)하여 일대천심취적(一大天心聚積)되니 처음보는 수세(水勢)의 장관(壯觀)이라 하겠다.

 

산세(山勢) 역시(亦是) 동조공로(同祖共路:동일한 조종산에서 오는 용맥) 수백리(數百里)를 초초래조(迢迢來朝: 먼데서부터 달려와 모이고)하여 상호공립(相互拱立: 서로 두손을 맞잡고 껴안아 서며)하였으니 환봉형세(環峰形勢: 고리처럼 산봉우리들이 연결되는 형세)또한 장관(壯觀)이라 할수 있다.

 

혹은 봉황래조(鳳凰來朝): 봉황이 내려오듯) 혹은 호거(虎踞: 범이 웅크리고 있듯) 용반(龍盤: 용의 떠 받치듯)혹은 장군(將軍). 혹은 학군형태(鶴群形態: 학이 무리지여 있는 모양)로 래진(來盡: 달려와 멈추듯이)하여 옹위(擁衛: 끌어 안듯이)하니 산세 수세의 일대도회처(一大都會處: 산과 물이 어울려 한데로 섞는 자리)요, 천하일품이라 감탄하지 않을수 없다.

 

주산(主山)에 올라 내세(來勢)를 관망하니 녹존(祿存) 대룡평지행룡(大龍平地行龍)하여 종횡주(縱橫走: 옆으로 길게 벌리어 나아가며)하여 강락(降落)하는 형세는 갑묘(甲卯)로 천굴(穿屈: 甲卯방향으로 낙맥하거나 굽어서 행진)하면서 돈립(頓立 : 구름을 뚫고 은하수로 들어가 서있는 모습)하여 병오(丙午) 임자(壬子)로 횡장(橫障: 자방(子方)에서 오방(午方)으로 길게 벌리는)하기를 십여단(十餘段: 십여차례) 층층강락(層層降落: 층층으로 떨어지듯) 소위 옥계장락자(玉階障落者: 아래에서 위로 쭉 뻗어 올라간 계단 모양이면 재상(宰相)이 되거나 제후(諸侯)에 봉(奉)해지고, 옥전(玉殿) 주사(奏事) 대간(臺諫) 과부(過府)로 귀(貴)하다.

 

그러나 이미 편사(偏斜)하니 반드시 전후(前後) 및 중간(中間)에 대천심(大穿心)의 증거가 지나고 있어야 참된 귀기(貴氣)인 것 이라고 뜻을 말함)이다. 극히 존귀(尊貴)한 용세(龍勢)이다.

 

 

평지강락(平地降落)이 다하니 천주일돌연후(穿珠一突然後: 구슬을 뚫어 꿰듯 불륵하게 솟아난 형) 녹존소치형(祿存梳齒形: 양끝이 둥글면서 아래로 여려맥이 내려왔으니 옥으로 만든 빗처럼 곱다.일명 옥소룡(一名 玉梳龍: 옥(玉)으로 만든 빗처럼 고운 형태. 한국 여성이 흔이 쓰는 얼기빗 또는 얼레빗 형태를 말함)으로 대결(大結)하여 마치 흡사(恰似) 뗏목과 같은 형태를 이루니 부사도강형(浮楂渡江形)이라 함이 가당(可當)하다. 

 

속락일혈(速落一穴)하였으니 정미입수(丁未入首)에 정좌계향(丁坐癸向)이며, 임감(壬坎), 계득(癸得)에 간인파(艮寅破)며 주혈(主穴)은 아니다. (차혈지처(次穴地處)를 말하는데, 소문에 의하면 장 선사의 소점으로 알려지고 있는 것 같다) 

 

또 다시 재결(再結: 다시 맺음)하였으니 이것이 일대간룡결혈자(一大幹龍結穴者: 큰 줄기에 맺은 주혈)이다. 혹자(或者) 이를 일자문성(一字文星) 운운(云云)하였으나, 기실(其實)은 평지녹존소치(平地祿存梳齒) 횡작대결혈(橫作大結穴: 양옆으로 길게 벌려서 맺은 大穴)이다. 

 

녹존척맥(祿存脊脈) 대회전(大回轉)하였으니 마치 일자문성양(一字文星様: 일자문성 의 모양), 배(背)와 면(面)이 분명하나 속사부지차혈(俗師不知此穴: 세속의 지사 또는 지관은 찾지 못하는 어려운 혈)이다. 

 

무식배(無識輩: 지리를 모르는 여러사람) 혈(穴)을 얻으러 하나 용맥락세난난무정처(龍脈落勢難難無定處: 용맥 떨어진 형세가 어려워 정하기가 쉽지 않고)이니 혈형(穴形)이 또한 모연(暮然)하니, 이것이 곧 조물주(造物主)가 대혈(大穴)을 비장(秘藏)하는 방도(方途)이다. 

 

음래양수(陰來陽受)하였으며 양중음작(陽中陰作)되였으니 암중약동(暗中躍動:내적으로 움직이는 기운)함을 그 어찌 속사(俗師)의 우안(愚眼)으로 식별(識別)할수 있으리오, 은은기괴(隱隱奇怪:기이하고 괴상하게 숨어 찾지 못하는 형)하게 결혈(結穴)하였으니 을좌(乙坐)와 묘좌(卯坐)이며, 물은 손사(巽巳), 경유(庚酉), 신술(辛戌), 건해방(乾亥方)에서 오더라. ⟪물은 두 개의 방위가 아닌 巳, 酉, 戌, 乾方 乾破의 內破와 子, 癸, 丑方에 寅破, 外破가 된다⟫ 

 

或은 범장(犯葬: 어긋난 자리에 用事한 장처(葬處)하였으며 장분지처(將分之處:좋은 장소가 아닌곳)에 隱葬(은장: 숨겨놓은 葬處)되였으니 이 주혈(柱穴)만이 일대간결(一大幹結)이며 삼백리원기(三百里元氣)의 수기자(受氣者)이다. 

 

사수(砂水)가 대강(大江)이니 행룡(行龍)이 심원(深遠)함을 알 수 있으며, 조수(朝水) 또한 대수(大水)이며, 안산(案山) 또한 원원단좌(遠遠端坐: 멀리 단정히 앉은 모습)하였고, 수구산(水口山)이 높고, 긴폐(緊閉)되었으니 이 또한 대혈(大穴)의 증좌(證佐)이다. 

 

대저 소혈(小穴)일수록 근산(近山)이 긴밀(緊密)하며, 다정하나 원산(遠山)은 공조(拱朝)치 않는다. 또한 대혈(大穴)일수록 근산(近山)이 긴밀(緊密)치 않으며 무정한듯, 그러나 원산원수(遠山遠水)는 긴밀하게 공조환요(拱朝環繞: 산이 마주 겹치고 둥글게 띠를 두르고)한다. 

 

장선사(張先師)님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속사(俗師)들의 안목(眼目)으로는 식별하기가 곤란하며, 목도(目睹: 눈으로 직접 구별하는 것)하더라도 천기(賤棄: 천하다고 업신 여기어 버림)하는 것이 상식(常識)이다. 

 

이곳 역시 무수(無數)한 묘(墓)가 산재(散在)하여 있으나 모두가 허사(虛事)이다. 한 노인(老人)의 말씀에 의하면 허다(許多)한 인사(人事)들이 이를 찾으려 다녀 간다는 것이다. 결록(訣錄)에 의하면 동방제2지(東方第二地)라 하였으니 참말로 부귀불가(富貴不可) 형언지지(形言之地)이다. 

 

강변(江邊)에는 용석(龍石)과 호석(虎石)이 인작(人作)으로 되어 있어, 문화재관리국(文化財管理局)에서 보호(保護)하고 있다고 하며 그 연유(緣由)를 알길이 없더라. 하고 글을 적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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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천수성(漲天水星)의 이해를 돕자면 금수(金水)로 이루어저 금수(金水)가 서로 화목(和睦)함을 사람이 다 아는바 인데, 수(水)가 성(盛)하고 금(金)이 약(弱)하면 금(金)은 수(水)가 기만(欺瞞)하고 수류(水流)가 멈추지 않고 금(金)이 가라앉아 더욱 작아진다. 

 

무직(武職)이 빈궁(貧窮)하나 빼어나서 손지(孫枝)가 있다. 사람은 금(金)이 수(水)를 생(生)하고 둘은 화목하다는 것은 다 알지만 수(水)가 성(盛)하고 금(金)이 약(弱)하면 또한 길(吉)하지 않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가령 수(水)가 금(金)을 생(生)하고 있으면 모름지기 수(水)가 낙(落)하여 물결이 청(淸)하다. 사(沙)가 가히 도도(陶陶)하고 후(後)의 금(金)이 정로(呈露)를 얻어 세상에 쓰임을 본다. 만약 거침망양(巨浸茫洋) 홍도표탕(洪濤飄蕩)하면 비록 금(金)이 있더라도 가히 얻어 취(取)할 수 있다. 

 

선인부사도강형(仙人浮楂渡江形)은 천내리(川內里)에서 월영봉(月影峰) 방향(方向)을 바라보면 우측(右側)으로 제좌기봉(帝座起峰)을 하고 있으며 일명(一名) 어대좌(御臺座) 대귀인(大貴人)의 혈(穴)을 응(應)한다.

 

이 성(星)은 가장 귀(貴)하며 가외양(假外陽) 귀인(貴人)이 돕지 않더라도 스스로 역량(力量)이 있고, 대부(大富) 대귀(大貴)를 주장하며 주자만문(朱紫滿文)하고 공후(公侯).장상(將相). 팔좌(八座).오마(五馬)이며 자손(子孫) 육속(陸續)이 끊이지 않는다.

 

이 성(星)은 탐랑목(貪狼木)이 높이 솟아 구름에 들어가니 왕(王)에 봉(封)함을 주장하고, 자손이 습작(襲爵)하며 비후(妃后)가 나오고, 남자(男子)는 오히려 공주(公主)를 높인다. 대개 더욱 높으면 더욱 귀(貴)한 것이다. 

 

명당경(明堂經)에 이르기를 일봉(一峰)이 솟아나고 양 어깨가 균평(均平)하면 천자(天子)가 조(朝)를 받는데 밝음을 향하여 양(陽)을 대하고, 천장(遷葬)을 하면 삼공(三公) 구경(九卿)이다. 만약 다시 첨수(尖秀)하여 구름에 들어가면 남자(男子)는 왕(王)이요,

 

여자(女子)는 왕후(王后)이며, 국척(國戚) 제빈(帝賓)이요. 주자의(朱紫衣)가 문(門)에 가득하고 황제(皇帝)의 딸이 아내로 온다. 소위 천자(天子)가 조(朝)를 받는데 밝음을 향하여 양(陽)을 대하는 것은 곧 어좌(御座)를 일컫는 것 뿐이고, 진짜 천자(天子)를 일컫는 것이 아니다. . 

 

제가(諸家)의 일성(一星)만이 홀로 명자(名字)가 하나가 아니고, 혹은 좌조성(坐朝星)이라 하고 혹은 용두의(龍頭倚)라 하고, 혹은 귀인대좌(貴人大座)라 하고 혹은 옥간금상(玉簡金床)이라 하고,혹은 황왕출전(皇王出殿)이라 하는데그 가리키는 요점인 즉(則) 하나로 돌아가며 각기 표명(標名)을 세운 것에 불과하다. 

 

☞외람되고 거만한 말이지만 본인은 회원 5명과 선인부사도강형의 진혈의 근처를 찿아서 서로의 이해를 돕고 혈이 되는 형기적인 과정과 일반지사나 학자들이 못찿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토론을 하였다.만약 진혈처를 올린다면 누설이 되어 죄인이요, 

 

고생하지 않고 인터넷 풍수로 쉽게 그 혈처만 얻으려는자 많으니 진정한 그 혈처를 원한다면 공부를 제대로 해야지만 다음편에 선인부사도강형 2편에 상식부분만 올리겠읍니다. 

 

참고로 한마디를 한다면 선인(仙人)이 문곡방으로 필진사가 있고 청어대(靑魚袋)두른 혈처는 사회에서 목어대(木魚袋)로 말하며, 목생화(木生火) 화생토(火生土)로 현공(玄空)으로 보면 4 9 2가 되어 학문이 꽃이 피고 결실(結實)을 맺어 뿌리를 내리니 주자만문지지(朱紫滿門之地)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좋은 이기(理氣)라해도 산천(形氣)이 먼저 있고 이기가 있다고, 보며 형기를 모르면 숫자에 불과 하다고 볼 수있다. 형기(形氣)를 무시하는 이기(理氣)는 방법론에서 착오(錯誤)가 많이 벌어지니 형기와 이기를 겸(兼)하지 않으면 여기 금산군 제원면에 있는 선인부사도강형(仙人浮楂渡江形)의 진혈처(眞穴處)는 처녀지(處女地)로 주인을 기다리고 있으며 볼 수도 없고 찿을수 없음을 알아야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사람의 성미가 급하여 먼저 가려는 습성때문에 세월이 많이 걸리는 현장을 답사하는 형기보다는 힘을 안드리고 앉아서 터득하는 도통군자처럼 이기가 제격이지만, 공부를 거꾸로 하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모르고 있다. 

 

알면은 때늦은 후회만이 있을뿐이며 얼풍수로 더 많은 세월이 흐른다. 비결(秘訣)에서도 형기(形氣)와 사법(砂法)의 글이 많이 나오는데 이기자(理氣者)들은 용법의 이런 문구가 없으면 예를들면: ㅇㅇ용 건해기두 경태박환 손사정미분각 경태룡 건해입수 0좌 0향 00파로 지주결망처럼 실을 따라 찿아가듯 하는 풍수, 또는 월형도처럼 그림자를 밟는 것처럼 딱 들어 맞는혈장만이 진혈이다고 하는데 찿으려 하지않고 찿는법은 가르쳐 주지 않고 모두를 쥐어 달라고 하는데 이것이 진문서(眞文書)요.

 

형기(形氣)만 있으면 본인 또는 가르치는 자(者) 형기를 통달하지 못해서 잘 모르니 헛문서라고 일축하거나 형기는 혈을 찿는 보조수단일뿐이라 말해 버린다. 그래서 어느책에 나오는 문구처럼 일왈(一曰) 형기(形氣)다. 

 

그런데 형기를 무시해 버렸으니 이 선인부사도강형을 찿지 못하고 뗏목(楂)과 노(櫓)바닥만을 오르내리며 가르치고 관산을 하면서 남이 애써 점혈한 묘(墓)를 보고 부족한 감평만을 하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여기는 이기적 내력이 있고 산도가 있어도 못찿는 원인이 그 내력을 쓰신분도 제대로 혈장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근대의 한분의 선사 글이 있어 래왕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내가 찿은 혈은 지금까지 누구도 찿지 못하고 있는 혈들 중 많이 찿아보지는 않았어도....그러나 가르처 달라고 하지 마시요.

 

양택으로 경기북부 수대지 오동엽형, 경기동부 수대지 여주 금반형이 있으며,(모르니 김좌근씨댁으로 표기를 한다) 상주의 우복동의 진혈처가 있으며, 담양 삼인산 하 만물시생형, 음택으로는 문경에 연주패옥형도 있으며,(명사비전의 산도와 결록이 있어도 형기를 모르니 못 찿는 혈), 영암의 14대 천자지지가 있고, 진짜 천자(天子)는 지중(池中)에 석순(石芛)이 생(生)하고 있고, 화염(火焰)이 수중(水中)에 득지(得地)하여 일어나면 이것의 귀(貴)는 말로 하기 어려우니 그대는 설명하거나 알려 하지 말라.

 

이 천자사(天子砂)는 전남(全南) 영암군에 있는 월출산(月出山)을 관산(觀山)하여 보면 천황봉(天皇峰)에서 내려 다 보는 것과 구정봉(九鼎峰)에서 올려다 보는 차이(差異)가 있기는 하나 이 곳이 동방(東方)의 구등대지(九等大地)로 유명한 14대(代) 천자지지(天子之地)이니 스스로 깨닫는 자(者) 공부 자(者) 요,

 

관산(觀山)을 하고도 얻지 못한다면 그대는 ㅇㅇㅇ 자(者) 일뿐이다. 전주 작약화심 선인야유상격은 한 회원에게 공부를 크게 하라고 알려 주었으며, 금산 추부의 서대산 진혈처를 찿았으며, 장성 손룡선녀직금형도 지금까지 처녀지로 남아 있으며, 참고로 알려드리면 황앵탁목의 안(案)이다.

 

보령의 목단반개형 화분안으로 된 혈과 익산 미륵산의 236대 발복지 목단반개형이 있으며,변산의 일이승대사 보신곳이 아닌 비룡상천형과 석치 와우형이 있으며, 진안 구봉산의 일광선조도, 진전읍의 옥녀탄금의 만대영화지지도 있고, 남양주 이패리 어옹수조형, (고 장선사님이 보신 곳이 아닌곳,

 

주변이 개발중이다) 비인면 종천리의 부내복종형(지금까지 못 찿은 것으로 봄) 지리산 노고단의 노고영랑형과 확인하고, 지리산 반야봉의 정혈처는 현재 찿는 중 2015년 3차 탐사예정, 등등 다 열거를 하지 못하지만 지금것 초야에 묻혀 벙어리로 살았지만 진정한 공부를 하고자 한다면 같이 나눌 대화의 장으로 나가리라 마음을 굳힙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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