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한시(漢詩)

남아(南兒)/한용운(韓龍雲)

야촌(1) 2014. 8. 21. 13:18

■ 남아(南兒) - 한용운(韓龍雲)

 

사나이 되었으니

무슨 일을 하여 볼까.

밭을 팔아 책을 살까.

책을 덮고 칼을 갈까.

아마도 칼 차고 글 읽는 것이

대장부인가 하노라.

--------------------------------------------------------------------------------------------------------------------------------------

 

한용운(韓龍雲/1879~1944)은 승려요. 시인이요. 독립 운동가로. 충남 홍성에서 출생하여. 이름은 봉완(奉琓), 법명은 용운. 호는 만해(萬海). 1896년에 동학운동에 가담했다가 실패하자, 설악산 오세 암에 피신한 것이 인연이 되어 불문에 귀의하여 1905년에 승려가 되었다.

 

“吾等은 玆에 我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 1919년 3월 1일 민족 대표 33인은 서울 인사동의 태화관에 모였고, 33인의 한 사람으로 그 자리에 참석한 한용운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일본 경찰에 잡혀갔고, 만해(萬海) 한용운은 이때에 투옥되어 3년의 옥고를 치렀다.

 

그는 「님의 침묵」이란 시인으로 현대시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시인이기도 하다.

“님은 갔습니다. 아, 사랑하는 나의님은 갔습니다.”를 한번쯤 읊조려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정도로 그의 시는 서정적이면서 강한 저항 의식이 담겨있다.

 

그가 승려로서 구도자(求道者>진리나 종교적인 깨달음의 경지를 구하는 사람)의 삶을 택했던 만해는 일반인보다는 고뇌가 더욱 심하였던 듯하다.

 

지난겨울은 눈도 꽃이려니(昨冬雪如花)

이번 봄날엔 꽃도 눈이런가(今春花如雪)

눈이야 꽃이야 모두 참이 아니건만(雪花共非眞)

어찌하여 이 마음 찢어지려 하는가(如何心欲裂)

 

위의 "꽃이 핀들 봄이련가"의 漢詩에서 눈이건 꽃이건 진리에 견주어 보면 모두 허상에 불과한 것이라 마음 쓸 것이 없겠지만 조국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어 마음이 찢어지도록 아파하였다.

 

시대를 아파하며 현실을 외면하지 못했던 만해는 자신이 갈 길을 시조의 형식을 빌어 위와 같이 같이 말하고 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변절하여 시대의 아픔에 눈감았을 때에, 만해는 끝까지 절의를 지키며 활동하였다. 그러나 끝내 해방된 조국을 보지 못한 채 해방 한 해 전인 1944년에 생을 마감했다.

 

이정원 글 참고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