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고전(古典)

대각국사집 번역 단상(短想)

야촌(1) 2014. 6. 28. 12:54

■ 대각국사집 번역 단상(短想)

 

[1]

아, 장부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쓰임이 되려고 하는 법이다.

가령 돌아가신 국사(國師)를 다시 일으켜드릴 수만 있다면, 머리카락을 땅에 깔아서 발로 밟고 가시게 하더라도 흠모하며 기꺼이 할 것인데, 더구나 문자(文字)를 가지고 비석(碑石) 아래에 신의 이름을 걸게 하시니, 이 어찌 영광이요 행운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학술(學術)이 고루하고 사어(辭語)가 거칠어서 그윽한 덕의 숨겨진 빛을 드러내어 후예들에게 보여줄 수 없으니, 이것이 한스러울 따름이다.[噫 士爲知己者用 假令死而可作 雖布髮而藉足 亦所忻慕焉 況以文字挂名於碑石之下 豈不論榮幸也哉 而學術固陋 辭語澁吶 不能發幽德之潜光 以示來裔 是所恨焉]

 

이는 『대각국사 외집(大覺國師外集)』제12권에 나오는 「영통사(靈通寺) 대각국사(大覺國師) 비문(碑文)」의 마지막 부분으로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저자 김부식(金富軾)이 지었는데, 그 뒤에 또 지금까지 명문으로 회자되는 장문의 명(銘)이 이어진다.

 

『대각국사집(大覺國師集)』은 고려의 대각국사 의천(義天)의 문집으로, 『대각국사 문집(大覺國師文集)』과 『대각국사 외집(大覺國師外集)』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문집은 의천이 직접 지은 서(序)ㆍ기(記)ㆍ표(表)ㆍ사(辭)ㆍ장(狀)ㆍ서(書)ㆍ소(疏)ㆍ제문(祭文)ㆍ시(詩) 등을 모아놓은 것이고, 외집은 당시의 송(宋)나라ㆍ요(遼)나라ㆍ고창국(古昌國) 등 외국의 황제와 관료ㆍ사문(沙門)ㆍ명사(名士)들이 보내온 서간 및 의천에 대한 진찬(眞贊)ㆍ시(詩)ㆍ비문(碑文) 등을 수록한 것인데, 그 당시 불교계의 국내외 정황을 살피는 데 필수불가결한 근본적인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대각(大覺)은 불타(佛陀)에게나 붙일 수 있는 칭호이다. 그런데 의천(義天)이 생전에 극구 사양했던 그 칭호를, 사후(死後)에 그의 시호(諡號)로 확정하였으니, 당시 사람들이 그를 존경한 정도가 어떠했을지 상상할 수 있다. 오죽하면 김부식이 비문을 지으면서, 국사를 다시 이 세상에서 뵐 수만 있다면 자기의 머리칼을 땅에 깔아서 그 위를 밟고 가게 해드리고 싶다고까지 말을 했을까.

 

[2]

인류의 역사에 하나의 인물이 출현하여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인지, 우리는 대각국사를 통해서도 새삼 확인할 수가 있다. 그는 거대한 산맥(山脈)을 연상케 한다. 이 산맥 속에는 유불도(儒佛道)의 광맥(鑛脈)이 한데 녹아 깊이 뻗쳐 있는 가운데, 화엄(華嚴)ㆍ천태(天台)ㆍ유식(唯識)ㆍ선(禪) 등의 고봉(高峰)이 위용을 자랑하며 높이 솟아 있다. 그 광맥을 채굴하고 그 고봉을 등정하는 것은 우리 후손들의 몫이다.

 

국사는 불행히도 단명(短命)하였다. 향년(享年) 47세, 승랍(僧臘) 36세. 조금만 더 오래 살아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역자만의 심정은 아닐 것이다. 그가 입멸(入滅)하는 대목을 번역할 때에는 마치 그의 임종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 같은 비통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어느 한때 휴식을 취할 사이나 있었을까. 언제나 노심초사하며 온 힘을 기울여 매진했을 국사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르고,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원기(元氣)가 소진되고 말았으리라는 생각에 탄식을 금할 수가 없다.

 

이 문집은 오늘날 국사의 면모를 알아볼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인데, 내용 자체가 어려운 것은 물론이요. 여기에 또 결락(缺落)된 부분이 너무 많아서 번역하기가 쉽지 않았다.

 

조선조의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과 각종 법난(法難) 등으로 현재 온전한 원판(原板)이 한 권도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 문집을 연구하고 번역하며 앞길을 열어 준 선학(先學)들의 노고에 경건히 고개를 숙이면서, 이와 함께 우리 민족문화에 대한 이 같은 기막힌 자학(自虐)의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았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을 가져본다.

 

[3]

역자로서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한다고는 했지만, 누를 끼치지 않았는지 적이 걱정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번역한다는 것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불교의 문헌을 번역한다는 것은 특히 그러하다.

 

일반 한문에 능한 사람은 불교 한문에 약하고, 불교 한문에 능한 사람은 일반 한문에 약한 절름발이와 같은 지금의 딱한 실정에서, 유불선기(儒佛仙基)에 모두 능한 번역자를 기대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지금부터라도 그러한 인재를 양성하는 데에 너와 나를 떠나서 거국적으로 힘을 모아야만 할 것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하고 법고창신(法古創新)하는 진정한 문예부흥(文藝復興)은 제대로 된 번역에서부터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고전번역원이나 사찰의 승가대학(僧伽大學) 같은 곳에서 시범적으로 교과목을 서로들 참고하고 보완하여 수업하면서 조화를 이룰 수는 없을까.

 

아니면 아예 두 곳을 합친 것과 같은 새로운 교육기관을, 신흥무관학교가 아니라 초가집 서당이라도 좋으니 한번 만들어볼 수는 없을는지. 그렇게 되면 역자의 이 졸역 역시 눈 밝은 후학들에 의해 다시 초역(初譯)처럼 개역(改譯)될 수도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혼자서 해보았다. 고도(Godot) 말고 요부(堯夫)와 자운(子雲)을 기다리며···.

 

글쓴이 : 이상현

 

[주요역서]

◇『현종실록』, 『명종실록』, 『선조실록』, 『인조실록』, 『정조실록』, 『중종실록』, 『광해군일기』 등 조선왕조

      실록

◇『계원필경집』, 『고운집』, 『간이집』, 『계곡집』, 『목은집』, 『상촌집』, 『택당집』, 『포저집』, 『가정집』,

『원감국사집』, 『대각국사집』, 『죽석관유집』, 『침굉집』, 『기암집』, 『부휴당대사집』 등 문집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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