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고전(古典)

나라가 망한 원인

야촌(1) 2014. 10. 9. 09:45

■ 나라가 망한 원인

 

이치가 이미 혼란한데도 사람과 사물이 혼란하지 않는 이치는 없으며,

도가 이미 망했는데도 집안과 나라가 망하지 않는 도리 또한 없다.

 

理旣亂而人物不亂, 未有其理也. 道其亡而家國不亡, 亦未有其道也.

리기란이인물불란, 미유기리야. 도기망이가국불망, 역미유기도야.

- 장현광 (張顯光, 1554~1637)

「피란록(避亂錄)」

『용사일기(龍蛇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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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윗글은 인조 때 산림으로 꼽혔던 여헌(旅軒) 장현광이 임진왜란 시절 쓴 피란 일기에서 나라가 망하게 된 원인을 말한 것입니다. 임진왜란의 원인은 복합적일 것입니다. 그런데 조선이 임진왜란에 잘 대처하지 못한 까닭은 왜군이 전쟁으로 단련된 것 등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것들은 주변적인 것이고, 주된 원인은 스스로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장현광은 그 근본 원인을 우리나라가 이치[理]와 도리[道]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임진왜란 때 나라가 무너진 것은 임금부터 공경대부는 물론이고 백성까지 모두 자신의 직분을 내팽개쳤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치와 도리를 지켜야 할 임금과 관원들이 먼저 도망가는데 군대와 백성이 그 자리를 지킬 이치와 도리는 없습니다. 대포가 있고, 산성이 있고, 군대가 있어도 그것을 지킬 책임 있는 사람이 도망치면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질 뿐입니다.

 

사회, 국가라는 것도 결국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사람들의 모임은 눈에 보이는 규칙이나 보이지 않는 규칙에 의해서 유지됩니다. 그 사회의 규칙은 어떤 궁극적인 가치 기반 위에 있습니다. 장현광이 말하는 이치와 도리라는 것은 그 사회의 규칙과 그 규칙이 의지하는 가치 기반을 말합니다.

 

그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지키기를 바라고 지키리라 믿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사람들 사이의 상호성입니다. 내가 이것을 지키면 저 사람도 이것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그 믿음을 배신하면 이쪽도 더는 그 약속을 지키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치라는 것도 그냥 무너지게 됩니다.

 

세월호 사고 때, 우리는 책임을 맡은 사람이 먼저 도망가 버린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을 믿고 자리를 지킨 사람들은 그대로 물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그 뒤로 사고 수습과 진상 조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이제는 믿음이 위태위태합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 시대의 임진왜란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자신의 책임으로부터 도망가지 않고, 직분을 다함으로써 이치와 도리를 지켜, 백성을 구하고 나라를 구하는 사람이 있기를 서로가 서로에게 바라고 있습니다. 모두가 이 시대의 충무공을 바랄 뿐입니다. 그러나 구세주를 바라기보다는 우리 속에 들어 있는 망국의 원인을 없애야 할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눈앞의 이익과 편리 때문에 불합리를 묵인하고 사람의 도리를 저버리지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끝까지 이치를 따지고 도리를 지켜야 합니다. 이치와 도리가 없으면 결국 망할 뿐입니다. 그것은 40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진리인 것 같습니다.

 

글쓴이 : 남지만(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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