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음공[金尙憲]에게 드림[贈淸陰公]
덕수 자유 찬(德水 張維 撰)
규장의 자태 지닌 우리 청음 학사 / 淸陰學士珪璋姿
명당 청묘가 그야말로 어울리네, / 明堂淸廟乃其宜
버려져 땅에 묻혀 있어도 슬퍼할 게 뭐있겠소 / 委擲埋沒亦奚悲
무지개처럼 찬연한 빛 종내 비범함 보이 시리다 / 虹光扈煌終自奇
산기슭 두문불출(杜門不出) 세월은 마냥 흘러가고 / 嶽麓閉戶經幾時
대나무와 국화 보며 달래는 마음 / 寒筠霜菊相因依
하늘이 부여한 기막힌 자질 빈궁의 시름 속에 버려졌는데 / 窮愁遺佚天所資
황폐해진 우리 유도(儒道) 공이 구원해 줘야 하리 / 斯文蕪穢須公治
강회의 화풀이로 땅 기둥 무너지고 / 康回憑怒圮坤維
넘실대는 큰 물결 하늘까지 잇닿을 듯 / 鴻流蕩潏漫赫曦
힘도 없이 외로운 몸 어떻게 해볼거나 / 隻手緜力欲何爲
그저 슬픈 탄식 속에 눈물만 자꾸 흐르누나. / 徒然戚嗟涕交頤
절실한 그 마음 천지신명도 아실 텐데 / 此心炯炯質神祇
불만스러운 울음 중에 대음(大音)은 희성(希聲)이라 / 不平之鳴大聲希
격에 맞게 시문 지어 스스로 즐기면서 / 舂容宣洩以自娭
시 경체(詩經體)의 노랫가락 빠짐없이 망라하고 / 包羅風雅靡所遺
게다가 애절한 초 사체(楚辭體)의 솜씨에다 / 參以南楚悲哀詞
뒤쫓아 갈 수 없는 백설곡(白雪曲)까지 선보이네. / 郢中白雪邈難追
공은 질 나팔 나는 피리 불며 형제처럼 지냈는데 / 吾儕妄擬相塤篪
우리의 도 쇠 하는가 세상은 우릴 몰라주네. / 世莫我知吾道衰
방 안에 있어도 즐거움 그 속에 있는 것을 / 一室之內樂在兹
예로부터의 성패이둔(成敗利鈍) 알고말고요. / 古來利鈍己可知
성현들도 불운하여 온갖 재앙 당했나니 / 賢聖失時逢百罹
태양이 땅속에 들어감이 바로 명이 괘(明夷卦)라 / 日入地中爲明夷
봉황새 오지 않자 중니 탄식하였지요. / 鳳鳥不至傷仲尼
문장가들 어쩜 그리 운명이 기구하였던가. / 文章每苦命多觭
조화의 이치 찾아 봐도 이해가 전혀 가지 않아 / 搜抉造化神不釐
가장사(賈長沙)도 굴원(屈原)의 억울한 죽음 슬퍼했고 / 長沙才子吊湘纍
한소이두 모두들 헐뜯음 면치 못해 / 韓蘇李杜足釁訾
산으로 바다로 쫓겨나 죽을 고비 넘기면서 / 嶺海萬死命如絲
굶주리고 추운 생활 감내했다오. / 往往不免寒且飢
공이 비록 불우해도 그들에 비한다면 / 公雖不遇比於伊
무슨 원망 하리요 조금 위안이 되리이다 / 差可自適那怨咨
만사는 운명인걸, 다시 또 무얼 의심하랴 / 萬事有命更何疑
벌레 팔뚝이 되든 쥐의 간이 되든 모두 조물자에 맡겨야 하리 / 蟲臂鼠肝任鑪錘
늘그막에 절조 지키기 정말 어려워 / 人生晚節誠難期
청정한 생활 지키다가도 세파에 얇아지고 검게 물드나니 / 守玄淸淨終磷緇
공은 부디 노력하여 위행언손(危行言遜) 하오시라 / 願公努力謹遜危
공에게 거는 세상의 기대 어찌 감히 거역하리. / 斯世望公公敢辭
진부한 말씀 올리다 보니 시도 제대로 안 이뤄져 / 俚語贈公不成詩
뇌문에 포고를 울리다니 바보짓 아니고 무엇이랴 / 雷門布鼓寧非癡
공이 가르쳐 주신다면 한 말씀 들으리다 / 公若肯敎吾請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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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해]
[주01]규장(珪璋) : 예식 때의 장식용 옥(玉)으로 인품이 고결하고 덕이 뛰어난 것을 의미한다.
[주02]명당(明堂) 청묘(淸廟) : 왕자(王者)의 태묘(太廟)로서 국가의 정교(政敎)를 행하는 곳을 말한다. 하(夏) 나라는 세실(世室), 은(殷) 나라는 중옥(重屋), 주(周) 나라는 명당 또는 청묘라고 불렀다. 《周禮 考工記 匠人》
[주03]강회의 …… 무너지고 : 강회(康回)는 공공(共工)의 이름이다. 전욱(顓頊)과 제왕의 자리를 놓고 다투다가 실패하자 화풀이로 부주산(不周山)에 몸을 부딪쳤는데 그 결과 하늘의 끈이 끊어지고 땅 기둥이 무너져서 동남쪽으로 기울게 되었다 한다. 《楚辭 天問 注》 여기서는 광해군(光海君) 때의 폐모(廢母) 사건을 비유한 것이다.
[주04]불만스러운 …… 희성(希聲)이라 : 비정상적인 정치 행태에 분노를 느껴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는 세상의 분위기 속에서도 김상헌만은 대도(大道)를 견지하며 의연히 대처하고 있다는 말이다.
한유(韓愈)의 ‘송맹동야서(送孟東野序)’에 “대저 어떤 존재이든 간에 온당함을 얻지 못하게 되면 밖으로 표현해내기 마련이다.[大凡物不得其平則鳴]”이라 하였고, 《고사성어고(故事成語考)》 송옥(訟獄)에 “세상 사람은 불만스러우면 떠들어대지만, 성인은 함께 따지지 않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世人惟不平則鳴 聖人以無訟爲貴]”라고 하였으며, 《노자(老子)》 41장에 “大方無隅 大器晚成 大音希聲 大象無形”이라고 하였다.
[주05]백설곡(白雪曲) : 양춘곡(陽春曲)과 함께 꼽히는 초(楚) 나라의 2대 명곡으로 내용이 너무도 고상하여 예로부터 창화(唱和)하기 어려운 곡으로 일컬어져 온다. 《宋玉 對楚王問》
[주06]공은 …… 지냈는데 : 《시경(詩經)》 소아(小雅) 하인사(何人斯)에 “형은 질나팔 동생은 피리 부네[伯氏吹塤 仲氏吹篪]”라고 하였는데, 형제가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것을 말한다.
[주07]명이괘(明夷卦) : 《주역(周易)》 64괘 중의 하나로서 밝음을 상징하는 이(離 ☲)가 땅을 상징하는 곤(坤 ☷) 아래에 위치하여, 현자가 뜻을 얻지 못한 채 참언을 당하며 고달픈 처지에 놓인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주08]봉황새 …… 탄식하였지요 : 《논어(論語)》 자한(子罕)에 “봉황새가 오지 않고 하도가 나오지 않으니 나도 이제 그만인 모양이다.[鳳鳥不至 河不出圖 吾已矣夫]”라고 한 공자의 말이 실려 있다.
[주09]문장가들 …… 기구하였던가 : 두보(杜甫)의 ‘천말회이백시(天末懷李白詩)’에 나오는 “文章憎命達”이라는 시구를 연상케 하는데, 즉 예로부터 문장지사(文章之士)는 대부분 명운(命運)이 기박했다는 말이다.
[주10]가장사(賈長沙)도 …… 슬퍼했고 : 한(漢) 나라 때 장사왕(長沙王)의 태부(太傅)였던 가의(賈誼)가 모함을 받고 쫓겨난 뒤 상수(湘水)를 건널 때 백여 년 전 멱라(汨羅)에 빠져 죽은 굴원을 애도하면서 ‘조굴원부(弔屈原賦)’를 지은 것을 말한다.
[주11]한소이두(韓蘇李杜) : 한유(韓愈)ㆍ소식(蘇軾)ㆍ이백(李白)ㆍ두보(杜甫)를 말한다. 한유는 당 헌종(唐憲宗) 때 불골표(佛骨表)를 올렸다가 조주자사(潮州刺史)로 쫓겨났으며, 《新唐書 卷176》 소식은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을 반대하다 항주 통판(杭州通判)으로 쫓겨나고 오대시안(烏臺詩案)으로 하옥되는가 하면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지방으로 좌천되었으며, 《宋史 卷368》 이백은 영왕 린(永王璘)의 막좌(幕佐)로 있다가 도망친 뒤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평정되자 사죄(死罪)에 걸려들었으나 곽자의(郭子儀)의 도움으로 야랑(夜郞)에 유배되었으며, 《新唐書 卷202》 두보는 당 현종(唐玄宗) 때 사건에 연루되어 화주(華州)로 쫓겨났다가 검남(劍南)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였다. 《新唐書 卷201》
[주12]벌레 …… 하리 :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에 “조물자가 장차 그대를 쥐의 간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인지 벌레 팔뚝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하였다.
[주13]위행언손(危行言遜) : 《논어(論語)》 헌문(憲問)에 “나라에 도가 행해질 때에는 말과 행동을 모두 준엄하게 해야 하나 나라에 도가 행해지지 않을 때는 행동은 준엄하게 하되 말은 낮춰서 해야 한다.[邦有道 危言危行 邦無道 危行言孫]”고 하였다.
[주14]뇌문에 …… 무엇이랴 : 감히 어른에게 당치 않게도 변변찮은 말을 개진하였다는 뜻이다. 뇌문은 뇌문고(雷門鼓)의 준말로, 그 소리가 백리 밖에까지 들렸다는 월(越) 나라 회계성문(會稽城門)의 큰 북이고, 포고(布鼓)는 포목으로 만들어 아예 소리도 나지 않는 북을 말한다. 《漢書 卷76 王尊傳》
[수록문헌] : 계곡집 제26권> 칠언고시(七言古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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