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묘갈명,묘비,묘표

충렬공 김방경 묘비문/이시발

야촌(1) 2013. 4. 19. 02:05

  고려 선충협모 정란정국공신 벽상삼한삼중대광 상락충렬공김방경묘지

(高麗 宣忠協謀 靖難定國功臣 壁上三韓三重大匡 上洛忠烈公金方慶墓誌)   

 

이시발 찬             

 

안동김씨의 가계는 신라 경순왕에서 나왔다. 공은 15세손인데 고려시대에 나서 고종, 원종, 충렬왕조에 벼슬하여 공훈(功勳)이 무성하게 드러나고 고금에 크게 떨쳤음이 국사(國史)와 행장(行狀)에 실려 있어 뚜렷하게 살필 수 있다.

 

잠시 그 뚜렷이 드러난 것만을 모아 말한다면, 충직(忠直)하고 신후(信厚)함은 천성(天性)에서 나왔으며, 행동을 절제하였고 부지런하고 검소하고 과묵하였으며, 조정에서 복무할 때는 충성을 다하여 나라를 받들었고, 전투에 나아가서는 법도가 있어 싸우면 이기고 공격하면 취했으니, 진도 싸움과 일본 정벌 등이 그 대략이다.

 

그 뒤로 내 ․외손들의 종적이 아름답고 크게 빛나기를 지금까지 300년이니, 어찌 이른 바 덕이 깊은 사람이 끼친 후광이 아니겠는가? 묘는 예안현(오늘날 안동시 녹전면 죽송동 능촌) 내의 서쪽 능동에 있고, 신도비는 고려 왕명으로 비를 세웠으나 세월이 오래되어 징험할 수 없다. 

 

후손 예생이 일찍이 이 현의 현감이 되어 묘갈을 세워 표식 하였는데 지금은 그 묘갈이 깨어지고 부러져 버렸다.

아! 후세 사람들이 어떻게 공의 묘소임을 알 수 있겠는가?

 

참봉 김기와 생원 김평은 외 후손들로 묘 아래에 살았는데, 후손 참봉 경건과 더불어 가까이 사는 여러 후손들이 다른 돌로 바꾸어 새롭게 하려고 하고, 또한 봉식(封植)을 더하고자 하며 내게 찾아와 말하였다. 나는 공으로부터 어머니의 성으로 13대 후손이 되어 일찍이 공의 묘소에 참배하였고 비석을 세우는 데 재물을 도왔다. 이에 그 대강을 기록하도다.

 

가선대부 경상도관찰사 겸 병마수군절도사 대구 부 도호부사 순찰사 이시발 지음.

선무랑 전 행 제용감 참봉 조우인 씀.

황명 만력 30년(1602. 선조 35) 2월 세움.

-------------------------------------------------------------------------------------------------------------------------------------

 

[原文]

 

高麗宣忠協謀靖難定國功臣。壁上三韓三重大匡。上洛忠烈公金方慶墓誌。

                                                                                              

慶尙道觀察使 李時發 撰

 

安東之金。系出新羅敬順王。公爲十五世孫。生麗代。仕高元忠烈朝。勳業茂著。轟輵古今。載在國史及行狀。斑斑可攷。姑撮其表表者言之。則忠直信厚。得於天性。制行也勤儉寡默。立朝也竭忠奉國。至於行師有律。戰克攻取。珍島之役。日本之征。此其大較也。厥後內外苗裔趾美舃赫。三百年于茲。豈非所謂德厚者流光歟。墓在禮安縣治西陵洞。神道有麗王命立碑。世久無徵。姓孫禮生(주1)曾監此縣。竪碣爲標。今幷與此碣而破折。嗚呼。後之人何以知爲公之墓乎。參奉金圻(주2),生員金坪(주3)。以外裔居墓下。與姓孫參奉慶建(주4)曁在近諸孫。謀易他石以新之。且加封植。來語余。余於公。爲母姓十三代孫。嘗拜公之墓。爲之助其資。仍識其梗曁云。嘉善大夫慶尙道觀察使兼兵馬水軍節度使。大丘莩護府使。巡察使李時發。志。

宣務郞 前行濟用監 參奉 曺友仁 書。

皇明 萬曆 三十年 壬寅 二月 立。<끝>

 

출전 : 碧梧先生遺稿卷之五. 墓誌. 47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