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중국사(中國史)

위환공(衛桓公)

야촌(1) 2012. 6. 24. 02:24

■위환공(衛桓公, BC 734 ~ 719) - 위(衛)나라의 12대 군주

 

선군 위장공(BC 757~735)은 부인 장강이 아이를 낳지 못하자 진후(陳侯)의 딸 여규를 들였으나 그녀도 아이를 낳지 못했다. 여규의 친정동생인 대규를 받아들여 아들 둘이 태어났는데 하나는 완(完)이고 다른 하나는 진(晉)이다. 둘 다 후에 군주가 되는데 위환공과 위선공이다.

 

천성이 착한 정부인 장강은 한 궁녀를 위장공에게 천거했는데 거기서 난 아들이 주우(州旴)였다. 주우는 장성하면서 천성이 포악하고 무예를 좋아했다. 장공은 그런 주우를 가장 사랑했다. 대부 석작에게는 아들 석후란 자가 있었는데 음탕하고 사치가 많았는데 주우와 친하게 지냈다.

 

위장공이 세상을 떠나자 공자 완이 군위를 계승했는데 그가 바로 위환공이다.

 

위환공은 매사 결단력이 없고 나약하였다. 주우는 석후와 더불어 밤낮 형의 군위를 찬탈할 계획을 꾸미고 의논하였다. 마침 주 왕실에서는 평왕이 죽어 환공이 조문하러 주나라로 떠나자 주우는 계획을 꾸며 배웅하는 것처럼 속여 중간에서 환공을 죽이고 스스로 군주자리에 올랐다. 

 

석후는 상대부가 되었고, 죽은 환공의 친동생 진(晉)은 형나라로 달아났다. 백성들이 주우를 형을 죽인 놈이라고 저주한다는 보고를 받자 주우는 민심을 돌리기 위해 정나라를 쳤다. 그런데도 민심이 돌아오지 않자, 석후는 백성들의 신임이 두터운 아비 석작에게 물었다. 

 

석작은 주우에게 주 왕실에 가 품명하고 인증을 받으면 민심이 돌아올 것이라 말하고 주환왕에게는 비밀히 편지를 보내 두 역적을 사로잡아 달라 부탁하였다. 결국 두 사람은 붙잡혀 석작의 지시로 불귀(不歸)의 객(客)이 되고 말았다.

 

형나라로 도망갔던 진이 돌아와 주우의 머리를 죽은 친형 위환공의 묘에 바치고 군위에 올랐는데 그가 패륜의 위선공이다. 좌구명은 고사(古史)를 편찬하다가 석작이 친자식 석후를 죽이는 대목에 이르러 「석작은 대의를 위해 친자식을 죽였으니 진실로 순수한 신하로다」하고 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