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중국사(中國史)

조괄(趙括) - 중국의 전국시대 탁상공론 병법장수

야촌(1) 2012. 6. 17. 16:33

■조괄(趙括, ?~기원전 260)

 

 조괄(趙括)의 탁상공론(卓上空論)

 

중국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장군이다. 명장 조사(趙奢)의 아들로써, 조괄 자신도 병법에 통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장평전투(長平之戰)에서 진(秦)나라의 백기(白起)에게 패해 전사했다. 장평전투에서 조(趙)나라 군대는 처음엔 명장 염파(廉頗)의 지휘로 방어전을 펼쳐 진나라는 곤란에 빠졌다. 

 

전국의 타개를 노린 진나라의 재상 범수(范雎)가 계책을 내놓아 “진나라는 조나라의 장수 염파가 아닌 병법에 뛰어난 조괄을 두려워 한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조나라의 효성왕(孝成王)은 이 소문을 믿고 총대장을 염파에서 조괄로 교체시켰다. 

 

조괄의 어머니는 남편이었던 조사로부터 “사람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조괄을 장군으로 쓴다면 전투에서 패배할 것이다”라는 유언을 들었기에 조괄을 장군으로 기용하려는 왕에게 사실을 말했지만 왕은 듣지 않았다.

 

책상위의 병법만을 이해한 조괄은 염파의 전법을 모두 변경하고 진나라군에게 도전했으나, 역전의 용장이었던 백기의 미끼작전에 걸려 군대가 분열당하고 보급로가 끊겨 대패하고, 조나라 군사 40만 명이 기아에 빠지게 되었다.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조괄은 직접 포위망을 뚫으려고 출진했으나 대량의 화살을 맞고 전사했다. 총대장이 죽자 조나라 군사 45만 명이 포로가 되었으나, 이들을 먹일 식량이 진나라군에도 없어 조나라 군사는 백기에 의해 모두 산 채로 매장되어 죽었다. 이 때문에 조나라는 병력이 크게 감소하여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

 

조괄은 여러 차례 “병법을 암기만 할 줄 알고, 그 응용을 알지 못 한다”라는 예로써 적합한 인물로 나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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