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자(老子) BC 6세기경
중국 고대의 철학자, 도가(·道家)의 창시자. 성은 李, 자는 담(聃). 이름 耳. 노담(老聃)이라고도 한다. 초(楚)나라 고현(苦縣) 출생. 춘추시대(春秋時代) 말기 주(周)나라의 수장실사(守藏室史-장서실 관리인)였다.
공자(BC 552~479)가 젊었을 때 낙양(洛陽)으로 노자를 찾아가 예(禮)에 관한 가르침을 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周나라의 쇠퇴(衰退)를 한탄(恨歎)하고 은퇴(隱退)할 것을 결심한 후서방(西方)으로 떠나는 도중 관문지기의 요청으로 상하(上下) 2편의 책을 써 주었다고 한다.
이것을《노자(老子)》라고 하며 《도덕경(道德經)》(2권)이라고도 하는데, 도가사상의 효시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이 전기에는 의문이 많아, 노자의 생존을 공자보다 100년 후로 보는 설이 있는가 하면, 그 실재 자체를 부정하는 설도 있다.
노자는 도(道)의 개념을 철학사상 처음으로 제기(提起)하였으며, 이 도(道)는 천지만물뿐만 아니라 상제(上帝-하늘을 다스리는 신) 보다도 앞서 존재한다고 하였다. 그것은 형상과 소리가 없어서 경험할 수도 없고 언어로 표현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그것은 무(無)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천지만물(天地萬物)은 그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생성 소멸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보면 그것은 무(無)가 아니라 유(有)이다. 천지만물과 달리 도(道)는 어떤 것에도 의존(依存)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실체이다.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한다는 면에서 보면 그것은 자연(自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것도 간섭·지배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보면 그것은 무위(無爲)하다고 할 수 있다. 통치자가 만약 이러한 무위자연을 본받아 백성들을 간섭· 지배하지 않고 그들의 자발성에 맡긴다면, 세상은 저절로 좋아진다.
노자에 의하면 일체 사물·사건들은 그들 자신과 상반하는 대립자들을 지니고 있다. 유(有)가 있으면 무(無)가 있고 앞이 있으면 뒤가 있다. 이들 대립자들은 서로 전화한다.
과(禍)는 복(福)이 되고 흥성(興盛)한 것은 멸망(滅亡)한다. 이러한 대립전화(對立轉化)의 법칙을 알고 유(柔)를 지키면 강(剛)을 이길 수 있다. 이를 귀유(貴柔)사상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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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자[莊子] BC365?~BC290? 도가(道家) 사상가
성은 장(莊). 이름은 주(周). 송(宋)의 몽읍(蒙邑-河南省商邱縣 근처) 출생. 정확한 생몰연대는 미상이나 맹자(孟子)와 거의 비슷한 시대에 활약한 것으로 전한다.
관영(官營)인 칠원(漆園)에서 일한 적도 있었으나, 그 이후는 평생 벼슬길에 들지 않았으며 10여 만자에 이르는 저술(著述)을 완성하였다. 초(楚)나라의 위왕(威王)이 그를 재상(宰相)으로 맞아들이려 하였으나 사양(辭讓)하였다.
저서인《장자》는 원래 52편(篇)이었다고 하는데, 현존하는 것은 진대(晉代)의 곽상(郭象)이 산수(刪修)한 33편(內篇 7, 外篇 15, 雜篇 11)으로, 그 중에서 내편이 원형에 가장 가깝다고 한다.
간의 마음은 일정한 시대 ·지역 ·교육에 의하여 형성되고 환경에 의해 좌우된다.
이 마음이 외부 사물들과 접촉하여 지식이 생긴다.
이러한 지식은 시대 ·지역, 그리고 사람들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보편타당한 객관성을 보장할 수 없다.
장자는 이러한 지식에 입각한 행위를 인위(人爲)라고 한다. 물오리의 다리가 짧다고 하여 그것을 이어주거나 학의 다리가 길다고 하여 그것을 잘라주면 그들을 해치게 되듯이 인위(人爲)는 자연을 훼손할 수 있다.
장자는 노자(老子)와 마찬가지로 도(道)를 천지만물의 근본원리(根本原理)라고 본다. 도는 일(一)이며 대전(大全)이므로 그의 대상이 없다. 도는 어떤 대상을 욕구하거나 사유(私有)하지 않으므로 무위(無爲)하다. 도는 스스로 자기존재를 성립시키며 절로 움직인다. 그러므로 자연(自然)하다.
도(道)는 있지 않은 곳이 없다. 거미 ·가라지 ·기왓장 ·똥 ·오줌 속에도 있다. 이는 일종의 범신론(汎神論)이다. 도(道)가 개별적(個別的) 사물들에 전개된 것을 덕(德)이라고 한다. 도가 천지만물(天地萬物)의 공통(共通)된 본성이라면 덕(德)은 개별적인 사물들의 본성이다. 인간의 본성도 덕(德)이다.
이러한 德을 회복(回復)하려면 습성에 의하여 물들은 심성(心性)을 닦아야 한다. 이를 성수반덕(性脩反德)이라고 한다. 장자는 그 방법으로 심재(心齋)와 좌망(坐忘)을 들었다. 德을 회복하게 되면 道와 간격 없이 만날 수 있다.
道와 일체가 되면 道의 관점에서 사물들을 볼 수 있다. 이를 이도관지(以道觀之)라고 한다.
물(物)의 관점에서 사물들을 보면 자기는 貴하고 상대방은 천(賤)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道의 관점에서 사물들을 보면 만물을 평등(平等)하게 볼 수 있다.
인간은 道와 하나가 됨으로써 자연에 따라 살아갈 수 있으며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이러한 자유는 천지만물과 自我사이의 구별이 사라진 至人이라야 누릴 스 있다. 이 지인은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고 천지만물들과도 사이좋게 살아갈 수 있다.
장자의 사상은 대부분 우언(寓言)으로 풀이되었으며, 그 근본은 老子의 무위사상(無爲思想)을 계승하는 것이지만, 현세와의 타협(妥協)을 배재(排除)하는 점에서는 더욱 철저(徹底)하여, 바로 그와 같은 면에서 장자의 분방한 세계가 펼쳐진다.
이러한 장자사상은 위진현학(魏晉玄學)의 사상적(思想的) 기반(基盤)이 되었으며 남북조 시대에 성행한 반야학(般若學)과 당나라 때 융성한 선종형성(禪宗 形成)에 영향을 주었다. 현종(玄宗)은 그에게 남화진인(南華眞人)이라는 호를 추증하였으므로, 《장자》는《남화진경(南華眞經)》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읽혔다.
송(宋) · 명리학((明理學)은 유학(儒學)을 위주로 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장자철학을 수용하였다. 장자의 이러한 초탈사상(超脫思想)은 자연주의 경향이 있는 문학 예술에도 영향을 주었다.
한국에서는 조선 전기에 이단(異端)으로 배척(排斥)받기도 하였으나 산림(山林)의 선비들과 문인들이 그 문장을 애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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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자[墨子〕BC 470(?)~BC 391(?) 중국의 철학자.
본명은 묵적(墨翟). 보편적 사랑, 즉 겸애(兼愛)를 기본 이념으로 삼는 그의 철학은 수백 년 동안 유학과 맞섰고 묵가(墨家)라고 부르는 종교운동의 토대가 되었다.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묵자(墨子)는 원래 공자의 가르침을 따르던 유학자(儒學者)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유교는 부담스러운 의례(儀禮)를 지나치게강조( 强調)하고 종교적 가르침을 너무 소흘(疏忽)히 한다고 확신(確信)하게 되어 독자적인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묵자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끌렸고, 周나라보다 훨씬 오래된 원시시대(原始時代)의 단순하고 소박한 생활과 솔직한 인간관계를 꿈꾸었다. 그는 많은 책을 읽었고, 중국 고전의 전통에 따라 시를 잘 지었다.
또한 잠시 벼슬에 나섰던 기간을 제외하고는, 그의 가르침을 실천에 옮길수 있는 군주를 만나기 위해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돌아다니며, 대부분의 인생을 보냈다.
그러나 각국을 돌아다녀도 그가 찾는 군주는 없었기 때문에, 학교를 운영하면서 제자들을 관직에 추천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매우 검소(儉素)한 생활을 했고 자신의 가르침을 진지(眞摯)하게 실천하는 스승이었기 때문에 제자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는 공격적(攻擊的)인 전쟁을 비난(非難)했을 뿐 아니라,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전쟁을 막기 위해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곤 했다
〈묵자〉의 중심을 이루는 그 10가지 덕목은
상현(尙賢:어진 사람을 존경함)·
상동(尙同:윗사람의 뜻에 동조함)·
겸애(兼愛:보편적 인류애)·
비공(非攻:침략 전쟁에 대한 비난)·
절용(節用:근검 절약)·
절장(節葬:장례의 간소화)·
천지(天志:하늘의 뜻과 그에 따른 상벌)·
명귀(明鬼:상벌을 내리는 귀신을 섬김)·
비악(非樂:낭비적 활동인 음악에 대한 비난)·
비명(非命:숙명론에 대한 반대) 등을 말한다.
비평가들은 대체로 그의 고귀한 인격은 존경하면서도, 그의 가르침은 지나치게 엄격(嚴格)해 인간의 본성(本性)에 어긋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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