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축문. 제문

정익공 이완(李浣)의 묘소에 치제한 글 - 정조(正祖)

야촌(1) 2010. 10. 10. 01:05

■ 정익공(貞翼公) 이완(李浣)의 묘소에 치제한 글

 

    조선 제22대 왕 정조(正祖:1752~1800)

 

상하의 우주 가운데 / 上宇下宙

이에 인걸이 빼어났으니 / 迺挺人傑

농서의 종이고 / 隴西之種

사중의 길이었네 / 師中之吉

 

의를 잡고 일어나 / 仗義而起

나라의 간성이 되었으니 / 爲王干城

충신의 갑주로서 / 忠信甲冑

사방을 경영하였네 / 四國是營

 

군문(軍門)이 삼엄한데 / 轅門如海

풍우 속에서 격문을 초하니 / 風雨草檄

장군이 되고 재상이 되는 것이 / 爲將爲相

무엇인들 적합하지 않았으리 / 誰之不適

 

마침내 무과(武科)를 통해 / 遂從鞍戰

한걸음에 호방에 오르니 / 一蹴虎榜

청명과 부월을 지니고 / 靑冥鈇鉞

아득한 서방에 있었네 / 逖矣西方

 

곡식을 못 사 가게 하여 유흥치(劉興治)를 노하게 만들고 / 遏糴嚇劉

기치를 세우고 무장하여 용골대(龍骨大)를 달아나게 했으며 / 揭竿走英

동선령(洞仙嶺)에 군사를 잠복시켰다가 / 魏陵潛伏

적진을 먼저 공격했네 / 鄭陴先勁

 

계책이 매우 훌륭했으니 / 謀言孔臧

누가 나와 함께 대적할까 / 疇與我敵

토산(兔山)에서 치달리고 뛰니 / 兔原騰躍

천지가 힘을 합해 도와주었네 / 天地同力

 

배를 타고 개주로 향하였으나 / 蓋州之楫

우러러 구름과 별에 맹세하여 / 仰誓雲星

이미 우리 백성을 살리고 / 旣活我民

능히 명 나라를 높였네 / 克尊王京

 

아, 갑신의 해에 / 嗚呼涒灘

만사가 처참하고 암담하게 되었으니 / 萬事悽黲

내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 曰余何歸

이에 와신상담(臥薪嘗膽)을 각오하였네 / 載薪載膽

 

우리 문정공과 함께 / 曁我文正

유악에서 친밀하였으니 / 疏附帷幄

생사의 사이에 뜻을 함께하여 / 死生以之

군신 간이 골육의 사이와 같았네 / 君臣骨肉

 

한밤중 내전에 누우니 / 半夜臥內

궁궐이 비어 사람이 없는 듯하네 / 宮虛無人

새벽의 북은 둥둥 울리고 / 曉鼓鼕鼕

성상의 말씀 순순하였네 / 天語諄諄

 

경이 북영에 있던 / 卿在北營

기해년 여름에 / 己亥維夏

탄식을 듣는 듯하였으니 / 如聞嘆息

이 무슨 소리였던가 / 是何聲也

 

소리가 궁궐에 있어 / 聲在禁苑

만목이 삼삼하니 / 萬木森森

유막(油幕)을 걷어올리고 방황하며 / 褰油徊徨

눈물이 가득 넘쳤네 / 有涕浸淫

 

활과 칼을 붙잡고 따라 오르지 못하니 / 弓劒莫攀

재상의 자리가 영화롭지 않네 / 鼎鼐非榮

모래 담은 자루만 부질없이 설치하고 / 沙囊徒設

전함은 절로 가로놓였네 / 戰艦自橫

 

효종대왕 능 곁에 장사 지내니 / 從葬于周

창오(蒼梧)의 구름에 매우 가깝고 / 密邇梧雲

대로의 사당도 / 大老遺祠

또한 여주(驪州)의 강가에 있네 / 亦江之濆

 

측근의 신하였던 정승과 장수가 / 相將劒履

임금을 지하에서 호위했으니 / 衛護鑾輅

마암이 북쪽에서 에워싸고 / 馬巖北拱

여강(驪江)이 동쪽으로 흘러드네 / 驪水東注

 

혁혁한 정령이 / 有赫精爽

좌우에 있으니 / 在之左右

아, 내가 재계하며 밤을 지내고 / 慨予宿齋

일찍 신종황제께 참배하네 / 夙拜神后

 

고인을 보지 못하는 한스러운 생각에 / 拊髀之想

이 제문을 드리고 / 矢此侑詞

경의 후손을 이르게 하여 / 來汝後孫

관작을 맡긴다네 / 有爵斯縻

 

답답한 가슴을 씻어 주기 위하여 / 爲澆磈磊

큰 술잔에 가득 술을 따르노니 / 大酒盈酌

경을 알고자 하는 이는 / 欲知卿者

주자(朱子)의 통감강목(通鑑綱目)을 볼지어다 / 紫陽綱目

 

[01]농서(隴西)의 종(種)이고 : 농서는 한 나라 장군 이광(李廣)의 고향으로, 이곳은 예로부터 명장이 많이 나오는

       고장이므로 일컫는 말이다.

 

[02]사중(師中)의 길(吉)이었네 : 《주역(周易)》 사괘(師卦) 구이(九二)에 “군대를 전제함에 있어서 중도를 얻으

        면 길하여 허물이 없으리라.”고 한 말을 두고 일컬은 것이다.

 

[03]배를 …… 향하였으나 : 1640년(인조18) 황해 병사(黃海兵使)로 있을 때 청 나라의 요청에 의하여 주사대장

       (舟師大將) 임경업(林慶業)의 부장(副將)으로 명(明) 나라 공격에 나섰던 일을 말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명

       나라에 이 사실을 알려, 하루 종일 싸웠는데도 불구하고 양쪽에 사상자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출처 : 홍재전서 제24권> 제문(祭文)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