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축문. 제문

이 우상(완)에게 제한 제문[祭李右相(浣)文]/백호 윤휴

야촌(1) 2010. 9. 11. 23:33

백호전서 제18권>제문(祭文)

 

■ 이 우상 완 에게 제한 제문(李右相 浣 祭文)

 

아! 우리 공께서는 유명한 아버지의 아들이요. 장군 집안의 재상이었지요.

 

걸출한 재상감이었고 단아한 유자풍도 있었으며, 침착한 지모에 무게 있는 행동은 주아부(周亞父)와 같았고, 자기 몸 돌보지 않고 나라에 봉사하기는 채 정로(蔡征虜)와 같았지요.

 

나아가 국경을 지키면 곰 같은 위세에 적이 감히 넘보지 못하였고, 들어와 금려(禁旅)를 맡으면 그 위세 산에 있는 표범이었으며, 강직한 성품은 임금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고, 그 어느 누구도 사적인 것으로 범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군대를 이끌고 서해로 나가 싸움이 한창 치열할 때, 총알이 벼락치듯 쏟아졌으나, 비단 돛대의 배 안에는 귀신도 그 속을 알 수 없을 정도였으므로 중국마저도 그 정성에 감동했으니, 우리는 거기에서도 공의 천하를 바로 세운 의리와 사직을 지켜낸 충성심을 읽을 수 있습니다.

 

공의 충성스런 마음속에 감추어진 기밀을 사람들은 몰라도 하늘은 알고 있었고, 뭇사람은 못한 일을 공은 여유있게 해냈던 것입니다. 지나친 영화를 경계하는 뜻에서 세 번이나 본병(本兵)을 사양했고, 일단 재상에 오르자 주위에서는 매우 촉망했는데, 어찌하여 오늘 별은 떨어지고 마구간의 말이 놀라게 되었답니까.

 

아, 내가 공을 알기는 어린 시절부터였지요.

서로의 처지가 높고 낮은 것이야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나는 공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모했으며, 공은 나를 끝까지 사랑하고 걱정해주셨습니다.

 

그 언젠가 내가 공에게, 상공께서 그 격렬한 싸움터 속에서도 슬기와 용기를 발하여 치밀한 계획하에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어갔던 그 광경을 내가 직접 보고 배우지 못한 것이 한이라고 말하자, 공께서는 웃으며 대답하기를, “옛사람 말이, 지장(智將)은 복장(福將)만 못하다고 했는데, 나는 복장이어서 그랬지 내가 무슨 급난(急難)에 대처할 역량이 있어 그랬겠는가.” 하시어 서로 한바탕 웃고 파한 일도 있었지요.

 

아, 지금이야말로 천지가 흔들리고 산이 잠기고 바다가 들끓어 큰 집이 뒤뚱거리고 비바람이 몰려오고 있는 듯한 상황이므로 사람들이 공을 주석(柱石)처럼 믿고 장성(長城)처럼 의지하고 있는데, 하늘이 이렇게도 가혹하게 앗아가고 말았으니, 이제 계책은 누구와 짤 것이며 용기가 있다 한들 누굴 위해 힘을 낼 것입니까. 아, 공께서는 혹시 이 혼탁한 세상이 싫어 영원히 가신 것입니까?

 

아니면 공께서 상제께 호소하여 비바람이 되고 천둥 번개가 되어 더러운 먼지 다 쓸어버리고 우리 백성들에게 복을 내리려고 가신 것입니까? 이제는 왕이 신임할 만한 신하도, 호랑이같이 용감한 장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나도 광언(狂言)을 터뜨릴 곳이 없습니다. 아, 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내 그리하여 통곡을 하면서 저 푸른 하늘에 묻고 싶은 것입니다. 공의 영령을 일으키기 위하여 한 잔 술을 올리오니, 공께서는 들으시고 흠향하십시오. 아, 슬프외다.

 

[주01]주아부(周亞父) : 한(漢)의 문제(文帝)ㆍ경제(景帝) 때의 장수. 군율이 엄명하기로 이름 있었고 후에 재상에

            임명되었다. 《史記 卷57》

 

[주02]채 정로(蔡征虜) : 후한(後漢) 광무(光武) 때의 채준(蔡遵)을 이름. 전공을 세워 정로장군(征虜將軍)에 임명

           되었고, 비록 군중에 있으면서도 유술(儒術)을 숭상하고 조두(俎豆)를 잊지 않았으며 군법이 엄하였음. 《後

           漢書 卷51》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