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재난고 제3권> 詩
◇한국고전번역원
■ 측천(則天)의 능(陵)에서
익재 이제현
구양영숙(歐陽永叔)이 무후(武后)를 당기(唐紀) 속에 넣은 것은 대개 사마천(司馬遷)과 반고(班固)의 잘못을 이은 것으로서 그 과실이 더욱 크다. 여씨(呂氏)는 비록 천하를 자기 마음대로 다스렸지만 어린 아들을 내세워 한(漢) 나라의 왕통이 있음을 밝혔는데, 무후는 이씨(李氏)를 억제하고 무씨(武氏)를 높였으며, 당 나라라는 이름을 없애고 주(周) 나라라 칭한 다음, 종사(宗祀)를 세우고 연호(年號)를 정했으니, 흉역(凶逆)이 이보다 더 심할 수 없다.
마땅히 이것을 밝혀서 후세를 경계하여야 할 것인데, 도리어 높인단 말인가.
또 당기(唐紀)라 하면서 주(周)의 연호를 썼으니 옳다고 할 수 있겠는가?
혹자는
“일을 기록하는 자가 반드시 연호 밑에 일을 기록하는 것은 역사의 조강(條綱)으로 하여금 문란하지 않게 하려고 하는 것인데, 만약 그대의 말과 같이 한다면 중종(中宗)이 폐위를 당한 뒤에는 그 연호를 빼버리고 쓰지 않을 것이니, 천하의 일을 어디에다 붙여 기록하겠는가?”
하였다.
나는 대답하기를
“노 소공(魯昭公)이 계씨(季氏)에게 쫓겨나 건후(乾候)에 있을 때에도 《춘추(春秋)》에 한번도 소공의 연호를 쓰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방릉(房陵)의 폐위가 어찌 이와 다르겠는가. 역사를 저술하면서 《춘추》를 본받지 않는다면 나는 그것이 옳은지 모르겠다.” 하였다.
久客萬事慵(구객만사용) / 오랜 객지 생활 만사가 귀찮건만,
好古意未歇(호고의미헐) / 옛것을 좋아하는 마음 쉬지 않아.
停驂問遺民(정참문유민) / 가던 말 멈추고 백성에게 말 물으며,
枉道尋斷碣(왕도심단갈) / 길을 돌아 단갈을 찾았노라.
關輔古帝畿(관보고제기) / 관보는 옛 제왕들의 서울로서,
壯觀不湮沒(장관불인몰) / 좋은 경관 인멸되지 않았구려.
千年阿婆陵(천년아파릉) / 천 년 묵은 아파릉은.
百里見城闕(백리견성궐) / 백 리 밖 성궐이 보이누나 .
根連隴坂長(근연롱판장) / 뿌리는 저 긴 농판에 연결했고,
氣壓秦川闊(기압진천활) / 기세는 진천의 광활함도 눌렀어라.
麒麟與獅子(기린여사자) / 기린과 사자가,
左右勢馳突(좌우세치돌) / 좌우로 달리는 듯.
侍臣羅簪纓(시신나잠영) / 잠영으로 장식한 시신들 둘러 있고,
猛士列鈇鉞(맹사열부월) / 부월을 잡은 맹사들 벌여 있네.
當時竭財力(당시갈재력) / 당시 재력을 다하여,
慮欲固扃鐍(려욕고경휼) / 나라 굳게 지키려고 하였건만,
興廢理難逃(흥폐리난도) / 흥망의 이치 피할 수 없어,
久爲狐兎窟(구위호토굴) / 오랫동안 짐승들의 소굴이 되었었네.
憶昔陰乘陽(억석음승양) / 옛부터 음이 양을 이기면,
四海憂禍烈(사해우화열) / 사해에 근심과 화란이 심하였네.
牝鳴殷家素(빈명은가소) / 암탉이 울자 은 나라 쇠해졌고,
燕漢嗣絶(연탁한사절) / 제비가 쪼아먹어 한 나라 왕통 끊겼었지.
文皇順天心(문황순천심) / 문황이 천심을 순응하여,
百戰啓王室(백전계왕실) / 수많은 전쟁 끝에 왕업을 얻었는데,
居然攘神器(거연양신기) / 하루아침에 제위(帝位)를 찬탈하였으니,
背念黃裳吉(배념황상길) / 어찌 황상의 길함을 생각했겠는가.
丁寧雙陸夢(정녕쌍륙몽) / 쌍륙의 꿈 정녕했고,
黯慘虞淵日(암참우연일) / 우연의 태양 암담했네.
尙賴得忠賢(상뢰득충현) / 그러나 다행히 충현을 얻어,
終能返故物(종능반고물) / 끝내 왕업을 되찾았구려.
歐公信名儒(구공신명유) / 구공은 참으로 훌륭한 선비였건만,
筆削未免失(필삭미면실) / 필삭에 실수를 면치 못하였네.
那將周餘分(나장주여분) / 어찌하여 주 나라의 여분을 가져다
續我唐日月(속아당일월) / 당 나라의 일월을 잇는단 말인가.
區區女媧石(구구여왜석) / 구구한 여와씨의 돌로,
豈補靑天缺(기보청천결) / 어찌 청천의 결함을 기울 수 있겠는가.
擬作擿瑕編(의작적하편) / 적하편을 지으려 하였으나,
才疏愧王勃(재소괴왕발) / 왕발 같은 재주 없음 부끄럽네.
뒤에 회암(晦庵)의 감우시(感遇詩)를 보고는 책을 덮어 놓고 감탄하였다.
나 같은 후생 말학(後生末學)으로서 이론 한 것이 주자(朱子)와 어긋나지 않았을 줄 어찌 생각했으랴.
또 범씨(范氏)의 《당감(唐鑑)》을 읽어보니 역시 나와 같은 의론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절로 웃으면서 너무 젊어서 지은 것을 후회하였다.
중사(仲思 : 익재의 호)는 기록한다.
●측천(則天)의 능(陵)
측천은 측천무후(則天武后)로 이름은 조(曌). 처음에 태종(太宗)의 재인(才人)으로 있다가 뒤에 고종(高宗)의 후(后)가 되었으며, 고종이 죽자 아들인 중종(中宗)을 세웠다가 폐위시키고는 다시 예종(睿宗)을 세웠으나 곧 폐위시키고 자기가 직접 황제의 위에 오른 다음 국호(國號)를 주(周)라 하고 연호를 광택(光宅)이라 고쳤으며, 무씨(武氏)의 칠묘(七廟)를 세웠다.
충신 적인걸(狄仁傑)ㆍ장간지(張柬之) 등의 말을 따라 재위 21년 만에 다시 중종을 복위시키고 물러났다. 뒤에 건주(乾州)의 서북쪽에 있는 고종의 능인 건릉(乾陵)에 합장하였다.《新唐書 則天順聖武皇后本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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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구양영숙(歐陽永叔)이 …… 이은 것 : 영숙은 송(宋)의 학자이며 문장가인 구양수(歐陽脩)의 자(字). 그는 일찍이 《신당서(新唐書)》를 찬했는데, 여기에 측천무후를 당기(唐紀)에 그대로 넣었다.
이는 한 혜제(漢惠帝)가 죽은 다음, 여후(呂后 고조(高祖)의 후(后)임)가 직접 정치를 했는데,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와 반고(班固)의 《한서(漢書)》에 여후기(呂后紀)가 있는 것을 따른 것이다.
[02]방릉(房陵) : 중종(中宗)의 능으로 곧 중종을 가리킨다.
[03]관보(關輔) : 모두 경사(京師)에 가까운 지역으로 관중(關中)과 우부풍(右扶風)ㆍ좌풍익(左馮翊)ㆍ경조윤(京兆尹)의 삼보(三輔)를 가리킨다.
[04]아파릉(阿婆陵) : 아파는 노부(老婦)에 대한 존칭이므로 곧 측천무후의 능을 가리킨다.
[05]뿌리는 …… 눌렀어라 : 건릉(乾陵)의 산세를 말한 것으로 농판(隴坂)은 감숙성(甘肅省) 청수현(淸水縣)에 있는데 큰 들이 있으므로 판(坂)이라 한 것이며, 진천(秦川)은 청수현에 있는 강 이름이다. 섬서성(陝西省)과 감숙성의 지역을 가리킨다.
[06]암탉이 …… 쇠해졌고 : 은(殷) 나라 주왕(紂王)의 아내인 달기(妲己)가 집정(執政)하여 은 나라가 망했음을 말한 것이다. 《書經》 牧誓에 “옛사람의 말에 ‘암탉은 새벽에 울지 말아야 하니, 암탉이 새벽에 울면 집안이 비색해진다.’ 하였는데, 이제 상왕 수(商王受 곧 주(紂)임)가 오직 부인의 말만 따른다.” 하였다.
[07]제비가 …… 끊겼었지 : 한 성제(漢成帝)의 후(后)인 조비연(趙飛燕)과 그의 동생 조소의(趙昭儀) 때문에 전한(前漢)이 왕망(王莽)에게 찬탈당했음을 말한 것이다. 성제는 조비연을 사랑하여 황후로 삼고 그의 동생을 소의로 삼았는데, 소의가 황제의 아들을 살해하여 아들이 없으므로 정도왕(定陶王) 흔(欣)을 세우니 이가 곧 애제(哀帝)이며, 다시 아들이 없어 평제(平帝)가 섰으나 왕망에게 시해되고 결국 전한은 멸망하였다.
이보다 앞서 동요(童謠)에 “제비가 날아와 황손을 쪼아먹는다.[燕飛來 啄皇孫]” 하였는데, 제비는 곧 조비연 자매를 가리킨 것이라 한다.《漢書 外戚傳 孝成趙皇后傳》
[08]문황(文皇) : 당 태종(唐太宗)을 가리킨다.
[09]황상(黃裳)의 길함 : 《주역(周易)》곤괘(坤卦) 육오 효사(六五爻辭)에 “누른 치마라 크게 길하다.[黃裳元吉]” 하였는데, 곤괘는 여자(女子)의 상(象)인바, 황색은 중색(中色)이며 치마는 아래에 있는 것이므로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분수를 알아 자신을 낮게 처하면 길하다는 뜻이다.
[10]쌍륙(雙陸)의 꿈 : 쌍륙은 장기의 일종으로 쌍륙(雙六)이라고도 한다.《新唐書》 狄仁傑傳에 “한번은 무후가 적인걸을 불러 말하기를 ‘내가 요즘 자주 꿈에 쌍륙을 두어 지는데, 어떠한가?’ 하고 묻자,
인걸은 함께 자리에 있던 왕방경(王方慶)과 동시에 대답하기를 ‘쌍륙을 두어 이기지 못하는 것은 아들이 없을 조짐이니 하늘이 폐하를 경계하는 뜻인가 합니다.’ 하여 중종(中宗)을 복위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하였다.
[11]우연(虞淵)의 태양 : 우연은 해가 지는 곳이라 하는데, 해는 임금의 상(象)이므로 곧 당 나라가 망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12]구공(歐公)은 …… 잇는단 말인가 : 구공은 구양수(歐陽脩)를 가리키며, 필삭(筆削)은 필즉필 삭즉삭(筆則筆 削則削)의 준말로 역사를 편찬함에 있어 쓸 만한 것은 쓰고 삭제할 만한 것은 삭제하는 것을 말한다. 여분(餘分)은 정통(正統)이 되지 못하고 윤통(閏統)에 해당하는 국가에 대한 폄사(貶辭)이다.
[13]구구한 …… 있겠는가 : 여제(女帝)가 하늘을 때웠다는 고사를 부정한 것으로 무후의 선정(善政)을 비판한 것. 여와씨(女媧氏)는 고대 여제라 하는데, 공공(共工)이라는 제후가 지혜와 힘만을 믿고 황제의 명령을 따르지 않다가 마침내 축융(祝融)과 싸워 이기지 못하자, 노하여 머리로 불주산(不周山)을 쳐받으니, 천주(天柱)가 부러지고 지유(地維)가 망가지므로 여와씨는 오색 돌을 구워 하늘의 구멍난 부분을 때웠다 한다.《補史記 三皇本紀》
[14]적하편(擿瑕編)을 …… 부끄럽네 : 왕발(王勃)은 당 나라 사람으로 자는 자안(子安). 어릴 때부터 문재(文才)가 뛰어나 9세에 안사고(顔師古)가 주(注)를 단《한서(漢書)》를 읽고 적하편을 지어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였다.《新唐書 王勃傳》
[15]회암(晦庵)의 감우시(感遇詩) : 회암은 주희(朱熹)의 호(號). 감우시는 원래 진자앙(陳子昂)이 지은 것으로 이것을 본따 재거감흥(齋居感興)이라는 시를 지었는데, 여기에 “무엇 때문에 구양자가 붓을 잡으면서 지공한 것을 몰라 당경에다가 주기를 어지럽혔나. 이 범례를 그 누가 용납하리.[云何歐陽子 秉筆迷至公 唐經亂周紀 凡例孰此容]” 하였다.《朱子大全 卷4》
[16]범씨(范氏)의 《당감(唐鑑)》 : 《당감》은 송(宋)의 범조우(范祖禹)가 찬한 것으로 모두 24권인데, 당 고조(唐高祖)에서부터 소제(昭帝)ㆍ선제(宣帝)까지의 역사에 대하여 기록한 다음 아울러 평론을 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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