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한시(漢詩)

개성윤(開城尹) 이창로(李彰路)가 술을 가지고 방문해 준 데에 사례하다. - 이색

야촌(1) 2010. 9. 11. 02:24

목은시고 제16권>詩

 

■ 이 개성(李開城 : 彰路)이 술을 가지고 방문해 준 데에 사례하다.

 

백발 나이로 병도 많은 한산 늙은이는 / 白頭多病韓山翁
그 당시 뻔뻔스레 군웅을 시종했는데 / 強顔當日陪群雄
성상 은총 특별하여 등에 땀 흘리면서 / 恩榮不次背流汗
여러 공을 따라 중서성을 오르고 보니 / 跡逐臺省登諸公
봄의 꽃과 가을 달은 읊조리는 속에 있고 / 春花秋月嘯詠裏
천둥과 비이슬은 주상의 경륜이었네 / 雷霆雨露經綸中


나는 지금 의상에서 적막을 지키노니 / 如今蟻牀守寂寞
약도 넉넉지 못해라 내 궁함을 알겠네. / 藥餌不給知吾窮


밝은 달밤에 앉았으면 눈동자가 구르고 / 夜坐月明轉眼月
바람 거센 봄 놀이엔 두풍이 걱정인데 / 春游風急愁頭風
어찌 알았으랴 노쇠한 허리 다리 뻣뻣할 줄 / 那知老衰腰脚頑
천지의 정신과 서로 융화됨은 점차 기쁘구려! / 漸喜天地精神融


금년에는 즐거운 일이 전년보다 나아라 / 今年樂事勝前年
서로 만나 술잔 드니 기쁘기 한량없네. / 會面擧酒欣欣然


비운과 행운의 왕래함은 정해진 이치건만 / 艱極泰來理固爾
안배하는 건 머리 위의 푸른 하늘뿐일세 / 安排頭上唯蒼天


위대하여라 개성은 바로 내 옛 친구인데 / 偉哉開城是久要
일생의 호기를 그 누가 앞설 자 있으랴 / 一生豪氣誰居先


솔 사이에 손 있으면 우물에 빗장 던져라 / 松間有客井投轄
진천 공자의 화려한 자리에 대작을 하니 / 對酒秦川公子筵
정당시의 역마 둔 일 오래 적적했던 터에 / 當時置驛久牢落
뛰어난 풍류가 뭇 어진 이를 경도하누나. / 風流卓爾傾群賢


별장에서 즐겨 놂은 아량을 부친 것일 뿐 / 遨遊別墅寄雅量
시냇가 그윽한 풀을 유독 가련히 여기네. / 幽草澗邊時獨憐


나는 그대 따라 문득 세상 잊고자 하여 / 我欲從公便忘世
연래엔 자못 세 귀 생긴 걸 싫어하노라 / 年來頗厭生三耳


고금에 그 누구나 교유를 중시하거니와 / 紛紛今古重交游
더구나 우리 사문의 하나뿐인 아들이랴 / 況我恩門唯一子
술 갖고 자주 들르는 것도 나쁘진 않으나 / 携酒頻過雖不惡
송정을 빌려 주어 취해 기대도록 해줬으면 / 幸借松亭容醉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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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01]천둥과 …… 경륜(經綸)이었네 : 임금이 때에 따라 은혜와 위엄으로 천하(天下)를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백거이(白居易)의 〈화사귀락(和思歸樂)〉 시에 “임금의 은혜는 비이슬과 같고, 임금의 위엄은 천둥과도 같네.[君恩若雨露 君威若雷霆]” 하였다.


[주02]나는 …… 지키노니 : 이질(耳疾)이 있음을 뜻한다. 의상(蟻牀)은, 진(晉)나라 때 은사(殷師)가 일찍이 이질을 앓던 중, 와상 밑에서 개미들이 움직이는 소리를 소가 싸우는 소리로 잘못 들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03]솔 사이에 …… 던져라 : 다정하게 빈객(賓客)을 만류하는 것을 뜻한다. 한(漢)나라 진준(陳遵)이 술을 몹시 좋아하여 빈객들을 초청해서 술을 마실 때마다 대문을 걸어 잠그고 빈객의 수레의 비녀장을 뽑아 우물에 던져서 빈객을 가지 못하게 했던 데서 온 말이다. 《漢書 卷92 陳遵傳》


[주04]진천 공자(秦川公子)의 …… 하니 : 두보(杜甫)가 일찍이 장사(長史) 하란양(賀蘭楊)의 주연(酒宴)에서 취하여 노래한 〈낙유원가(樂遊園歌)〉에 “공자의 화려한 자리는 지세가 가장 높으니, 술잔 대하매 진천이 편평하기 손바닥 같네.[公子華筵勢最高 秦川對酒平如掌]” 한 데서 온 말로, 공자는 장사 하란양을 가리키고, 진천은 바로 그곳의 물 이름인데, 여기서는 곧 귀공자(貴公子)로부터 술 대접 받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주05]정당시(鄭當時)의 …… 일 : 한 경제(漢景帝) 때 정당시가 태자 사인(太子舍人)으로 있을 적에 항상 장안(長安)의 여러 교외(郊外)에 역마(驛馬)를 두어 교통의 편의를 제공해서 빈객(賓客)들을 초청해다가 밤새도록 주연을 베풀어 융숭히 접대하곤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06]별장에서 …… 뿐 : 진(晉)나라 때 사안(謝安)이 일찍이 벼슬을 사양하고 회계(會稽)의 동산에 은거하다가 40세가 넘은 뒤에야 벼슬길에 나갔는데, 전진(前秦)의 부견(苻堅)이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쳐들어와서 경사(京師)가 진동할 때를 당하여, 효무제(孝武帝)가 사안에게 정토 대도독(征討大都督)을 임명하자, 그는 이때 수레를 명하여 산중의 별장으로 나가서 여러 친구들이 다 모인 가운데 자기 조카인 사현(謝玄)과 내기 바둑을 두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위급한 때를 당해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대장(大將)의 풍도를 의미한다.


[주07]시냇가 …… 여기네 : 국가의 환난(患難)을 걱정하는 것을 뜻한다. 당(唐)나라 위응물(韋應物)의 〈제주서간(滁州西澗)〉 시에 “유독 가련하다 그윽한 풀은 시냇가에 났고, 위에는 꾀꼬리가 깊은 나무에서 우누나. 봄 조수는 비를 띠어 석양에 급히 몰아오는데, 들 나루엔 사람은 없고 배만 절로 비껴 있네.[獨憐幽草澗邊生 上有黃鸝深樹鳴 春潮帶雨晚來急 野渡無人舟自橫]” 한 데서 온 말인데, 그 주석에 의하면, 봄 조수가 비를 띠어 급히 몰아온다는 것을 국가에 환난이 많은 데에 비유한 것으로 해석하였다.


[주08]세 귀 …… 싫어하노라 : 세 귀가 생긴다는 것은, 수(隋)나라 때 장심통(張審通)이란 사람이 일찍이 명부(冥府)의 서기(書記)가 되어 판결문(判決文)을 한 번 잘못 써서 상관(上官)으로부터 귀 하나를 막아 버리는 벌(罰)을 받았다가, 그 후 다시 판결문을 한 번 잘 써서 그에 대한 상으로 귀 세 개를 받은 일이 있었는데, 마침내 그가 부활(復活)한 지 수일 후에 갑자기 이마가 가렵다가 이마에서 귀 하나가 더 나와서 귀가 모두 셋이 된 후로는 그가 더욱 총명(聰明)해졌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여기서는 곧 세상일을 도무지 듣고 싶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09]우리 …… 아들이랴 : 여기서 사문(師門)은 곧 저자의 스승인 이제현(李齊賢)을 가리키고, 하나뿐인 아들이란 바로 그 당시 이제현의 세 아들 중에 서종(瑞種), 달존(達尊) 형제는 이미 죽고 막내아들인 개성 윤(開城尹) 창로(彰路)만 생존하였으므로 그를 가리켜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