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벽오에게 주다[贈 碧梧]
지은이 : 상촌 신흠(象村 申欽)
호서에서 함께 놀던 지난날을 회상하니 / 憶曾湖外共留連
쌍벽 이룬 두 소년 사람들이 칭송했네 / 聯璧人稱兩少年
풍진 속의 갈림길에 다 함께 늙어가는데 / 岐路風塵俱老大
타향에서 다행히도 얼굴 마주 대하네 / 異鄕顔面幸團圓
좋은 자리 헤어질 제 이별 술잔 넘치고 / 瓊筵欲散離觴凸
촛불은 타오르는데 바다 달이 가냘프네 / 蠟燭高燒海月弦
강산이 능히 흥취를 돋운다 말을 마소 / 莫道江山能殢興
고향으로 돌아갈 길 날로 아득하기만 / 故園歸計日茫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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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내용]
벽오와 상촌은 허물없는 벗으로 두 분의 약사는 아래와 같다.
●碧梧 李時發
1569년(선조 2)∼1626년(인조 4).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양구(養久), 호는 벽오(碧梧) 또는 후영어은潁漁隱), 경주부윤(慶州府尹)등 여러벼슬을 거쳐 1602년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從二品), 1604년 형조참판(刑曹參判-從二品), 이듬해 함경도관찰사(咸鏡道觀察使-從二品), 그해 가을에 예조와 병조(兵曹)의 참판(參判-從二品),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正二品)에 등용되었고, 이어 형조판서(刑曹判書-正二品)에 올랐다.
저서로 《주변록(籌邊錄)》·《벽오유고(碧梧先生遺稿)》《기유일록(己酉日錄)》이 있다. 영의정(領議政-正一品)에 추증되고,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상촌 신흠(象村 申欽)
1566년(명종 21)∼1628년(인조 6).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평산(平山). 자(字)는 경숙(敬叔), 호(號)는 현헌(玄軒)· 상촌(象村)· 현옹(玄翁)· 방옹(放翁).이라 한다.
여러벼슬을 역임한후 1599년 선조(宣祖-조선 제14대왕)의 총애를 받아 장남 익성(翊聖)이 선조의 딸인 정숙옹주(貞淑翁主)의 부마로 간택됨과 함께 동부승지(同副承旨-正三品)에 발탁되었고, 같은해 형조참의 겸 승문원부제조를 거쳐 병조참지(兵曹參知-正三品)· 우부승지(右副承旨-正三品)· 이조참의(吏曹參議-正三品)· 예조참의(禮曹參議-正三品)· 대사간(大司諫-正三品)· 병조참의(兵曹參議-正三品)를 역임하였다.
그후 1604년에 자헌대부(資憲大夫-正二品)에 오르면서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正二品)이 되었고, 그뒤 병조판서(兵曹判書-正二品)· 예조판서(禮曹判書-正二品)· 상호군(上護軍-正三品)· 경기관찰사(京畿道觀察使-從二品)등을 역임하였다.
그후 1623년(인조 1) 3월 인조(仁祖-조선 제16대왕)의 즉위와 함께 이조판서(吏曹判書-正二品) 겸 예문관(藝文館-正三品衙門)· 홍문관(弘文館-正三品衙門)의 대제학(大提學-正二品)에 중용되었고, 같은해 7월에 우의정(右議政-正一品)에 발탁되었으며,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좌의정(左議政-正一品)으로서 세자를 수행하고 전주에 피난하였으며, 같은해 9월 영의정(領議政-正一品)에 올랐다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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