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한시(漢詩)

이 개성(李開城)을 찾아 - 목은 이색[詩]

야촌(1) 2010. 9. 11. 02:03

목은집 >목은시고 제15권>시(詩)

 

■이 개성(李開城)을 찾아갔다가 만나지 못하고 홀로 소나무 사이에 앉아서 느낌이 있어 짓다.

 

현릉이 초과 열어 익재옹이 관장했는데 / 玄陵初科鎖益翁
뜰 가득 응시자 중엔 영웅도 많았었지만 / 白袍滿庭多英雄


나는 재주도 없이 가장 요행을 입었으니 / 穡以非才最徼幸
하늘인지 운명인지 공은 지공했을 뿐이네 / 天耶命耶公至公


나는 지금 삼중대광으로 사필을 관장해 / 三重大匡領史翰
백발로 한가히 지내니 낙이 여기에 있고 / 白首閑居樂在中


때로는 감격의 눈물이 물처럼 쏟아지는데 / 有時感恩淚如水
얼굴 쳐들면 끝없는 하늘만 보일 뿐이네 / 仰面但見靑無窮


막내가 가장 젊어 가장 사랑을 받았고 / 有季最少最鍾愛

손자가 승중하여 가풍을 전하고 있는데 / 有孫承重傳家風

 

문생들이 이따금 술을 가지고 오거든 / 門生往往佩酒來
미친 노래로 형체 잊고 화기가 융융하네 / 狂歌忘形和氣融


늙은 목은은 아파 누운 지 지금 몇 년인고 / 老牧臥病今幾年
옛 놀이 앉아 생각하니 맘이 쓸쓸하구나 / 坐想舊游心悄然


소나무 심던 당시엔 한 자 남짓했는데 / 當時種松高尺餘
이젠 이미 해를 가려 하늘에 치솟았구려 / 今已蔽日將參天


혹자는 솔 심는 걸 십 년 계책이라 했는데 / 人言栽松十年耳
십 년이 번쩍해라 누가 서로 앞을 다툴꼬 / 十年石火誰爭先


병든 나머지 말 타는 것도 매우 드문데 / 病餘上馬亦甚少
두 번이나 와서 좋은 자리 오르질 못해 / 再至不獲登華筵


모이고 흩어짐에 주재한 자 있음을 알고 / 乃知聚散有主者
솔 새에서 읊조리며 선배들을 생각하네 / 長嘯松間思往賢


율정 면재가 좌주를 모시고 있을 적에 / 栗亭勉齋侍座主
천진한 애는 사랑 믿고 어리광을 떨었지 / 驕兒恃愛求恩憐


그 한아한 풍류가 온 세상을 덮었는데 / 風流閑雅蓋一世
회상하노니 아득히 꿈만 같을 뿐이로다 / 回首悠悠如夢耳


누가 알았으랴 천하가 장수를 중시하여/ 誰知天下注意將

지금 제자를 높은 다락에 묶어 둘 줄을 / 高閣如今束諸子


반드시 내가 다시 상산옹을 방문하여 / 會當更訪商山翁

푸른 소나무 사이를 함께 배회하련다 / 蒼蒼雲松聊徙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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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해]

 

[주01] 이 개성(李開城) :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막내아들로 개성 윤(開城尹)을 지낸 창로(彰路)를 가리다.

[주01] 현릉(玄陵)이 …… 관장했는데 : 현릉은 공민왕(恭愍王)의 능호(陵號)이다. 1353년(공민왕2)에 공민왕이 초과(初科)를 베풀었을 때 이제현(李齊賢)이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고시(考試)를 주관한 일을 가리키는데, 저자는 이때 을과(乙科)의 제일인(第一人)으로 합격했었다.


[주02] 막내가 …… 있는데 : 여기서 막내는 곧 이제현(李齊賢)의 막내아들인 개성 윤(開城尹) 창로(彰路)를 가리키고, 승중(承重)한 손자는 바로 이제현의 장자(長子) 서종(瑞種)의 소생 중 장손(長孫)으로서 벼슬이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이르고 계림군(鷄林君)에 봉해진 보림(寶林)을 가리킨다.


[주03] 혹자는 …… 했는데 : 소식(蘇軾)의 〈만송정(萬松亭)〉 시에 “십 년 계책 솔 심은 건 백 년을 생각한 건데, 호덕한 사람이 내 생각 도와줄 이가 없네.[十年栽松百年規 好德無人助我儀]” 하고, 그 자주(自注)에 “십 년의 계책은 나무를 심는 것이다.[十年之計 樹之以木]” 한 데서 온 말이다.


[주04] 율정(栗亭) …… 있을 적에 : 율정은 고려 말기의 문신으로 벼슬이 찬성사(贊成事)에 이른 윤택(尹澤)의 호이고, 면재(勉齋)는 역시 고려 말기의 문신으로 벼슬이 찬성사에 이르고 청천군(菁川君)에 봉해진 정을보(鄭乙輔)의 호이며, 좌주(座主)는 바로 이들의 좌주였던 이제현을 가리킨다.


[주05] 천하가 장수를 중시하여 : 세상이 어지러움을 뜻한다. 《사기(史記)》 역생육가열전(酈生陸賈列傳)에 “천하가 편안하면 재상을 중시하고, 천하가 위태로우면 장수를 중시한다.[天下安 注意相 天下危 注意將]” 한 데서 온 말이다.


[주06] 지금 …… 줄을 : 여기서 말한 제자(諸子)는 문신(文臣)들을 가리킨 것으로, 즉 문신들이 쓰이지 않음을 뜻한다. 진(晉)나라 때 두예(杜乂), 은호(殷浩) 등의 재명(才名)이 세상에 으뜸이었으나, 도독(都督) 유익(庾翼)은 매양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이 사람들은 의당 높은 다락에 묶어 두었다가 후일 천하가 태평해진 다음에 그들의 직임(職任)을 논해야 할 것이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주07] 상산옹(商山翁)을 …… 배회하련다 : 상산옹은 상산사호(商山四皓)의 준말인데, 여기서는 곧 집 주위에 소나무가 많았던 개성 윤(開城尹) 이창로(李彰路)를 가리킨 것으로, 소식(蘇軾)이 일찍이 〈제이존사송수장자가(題李尊師松樹障子歌)〉에 “솔 아래 노인들 두건과 신이 똑같으니, 서로 마주 앉은 모습이 마치 상산옹 같구려.[松下丈人巾屨同 偶坐似是商山翁]” 한 데서 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