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재집(晦齋集) >晦齋先生集卷之二 >律詩○絶句]
■ 送李進士(乙奎)向洛
(진사 이을규공을 떠나보내며....)
春深回首碧江頭 (춘심회수벽강두)
깊은 봄 강 언덕은 더욱더 푸르니
浩氣聯同大化流 (호기연동대화류)
더 넓은 마음으로 자연과 하나되네.
萬物得時皆自樂 (만물득시개자락)
만물은 때를 얻어 스스로 즐기고
一身隨分亦無憂 (일신수분역무우)
이 한몸 분수룰 아니 근심조차 없네.
愛君溫雅才超衆(아군온아재초중)
그대의 溫雅한 성품과 出衆한 재주는 아깝고,
愧我摧頹鬢滿秋(괴아최퇴빈만추)
늙음을 재촉하는 내 백발은 부끄럽내.
獨抱瑤琴相識少 (독포요금상식소)
홀로 거문고 안으니 알아주는 이 드물고,
別來誰與共尋幽 (별래수여공심유)
그대없이 누구와 그윽한 곳 찾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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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文]
春深回首碧江頭。浩氣聊同大化流。萬物得時皆自樂。一身隨分亦無憂。愛君溫雅才超衆。愧我摧頹鬢滿秋。獨抱瑤琴相識少。別來誰與共尋幽。君歸遊泮謁先師。忠敬應須好自持。軒冕如雲道義重。只求心得不求知。
●이 시(詩)는 회재 이언적(晦齋 李彦迪)이 1530년 사간(司諫)으로 있을 때 김안로(金安老)의 등용을 반대하다가 그들 일당에 의해 몰려 향리인 경주 자옥산(紫玉山) 중에서 한가로이 존양 성찰하고 있을 때, 지은 시(詩)로, 이을규(李乙奎)가 조정(朝廷)으로 불려가자 그의 온아하고 출중한 재주를 마음껏 활용하기를 바라면서 지어준 것이다.
수련(首聯)에서 이언적(李彦迪)은 봄날 우주 변화의 큰 흐름을 느끼며, 호연지기의 기상을 노래했다.
하늘의 변함없는 질서에 순응하며, 자기 내면의 넓은 기상을 배양 시키는 것이다.
함(頷), 경련(頸聯)에서 모든 만물은 계절의 질서를 따라 정해진 이치를 따르고, 자신 또한 거기에 순응하여 분수를 지키니 마음이 한가롭다는 것이다.
미련(尾聯)에서「홀로 거문고를 안으니 알아주는이 드물고 그대없이 누구와 함께 그윽함을 찾을까」고 하였을 때, 그윽함이란 일종의 도덕적 흥취이다.
단순히 꽃피고 새우는 정경의 묘사와 정서적 감흥이 아닌, 수(首), 함련(頷聯)에서 보인 우주 질서에 순응하고 거기서 천리(天理)의 유행(流行)을 깨닫는 데서 오는 그윽함인 것이다.
[참고문헌]
회재 이언적 문학연규/장도규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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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재 이언적(晦齋 李彦迪)
[생졸년] 1491(성종 22) 경북 경주~1553(명종 8).
[문과] 중종(中宗) 9년 (1514) 갑술(甲戌) 별시2(別試) 병과(丙科) 4위/24歲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로, 이설(理說)을 정립하여 이황(李滉)의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본관은 여주(驪州). 초명은 적(迪). 자는 복고(復古), 호는 회재(晦齋)· 자계옹(紫溪翁)이다.
아버지는 생원 번(蕃)이며, 어머니는 계천군(鷄川君) 소(昭)의 딸로 경주손씨(慶州孫氏)이다.
10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외숙인 손중돈(孫仲暾)의 도움으로 생활하며 그에게 배웠다.
1514년(중종 9) 문과에 급제하여 경주 주학교관(州學敎官)이 되었다. 이후 성균관전적· 인동현감· 사헌부지평· 이조정랑· 사헌부장령 등을 역임했다.
1530년 사간(司諫)으로 있을 때 김안로(金安老)의 등용을 반대하다가 그들 일당에 의해 몰려 향리인 경주 자옥산(紫玉山)에 은거하며 학문에 열중했다. 1537년 김안로 일파가 몰락하자 종부시첨정으로 시강관에 겸직발령되고, 교리·응교 등을 거쳐, 1539년에 전주부윤이 되었다.
이후 이조·예조·병조의 판서를 거쳐 경상도관찰사· 한성부판윤이 되었다.
1545년(명종 즉위) 인종이 죽자 좌찬성으로 원상(院相)이 되어 국사를 관장했고, 명종이 즉위하자 〈서계 10조 書啓十條〉를 올렸다. 이해 윤원형(尹元衡)이 주도한 을사사화의 추관(推官)으로 임명되었으나 스스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1547년 윤원형과 이기(李芑) 일파가 조작한 양재역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에 무고하게 연루되어 강계로 유배되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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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을규(李乙奎)
[관향]경주이씨 22世 판전공파
[생몰년] 1508(중종3 - 1545(명종1). 향년 37세
[문과] 중종(中宗) 30년 (1535) 을미(乙未) 알성시(謁聖試) 갑과(甲科) 1[장원(壯元)]위
[생원진사시] 중종(中宗) 26년(1531)신묘(辛卯) 식년시(式年試) 3등(三等) 14위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字)는 문경(文卿), 호(號)는 호계(虎溪). 아버지는 한주(漢柱)이며, 어머니는 조계량(曺繼亮)의 딸이다. 1531년(중종 26)에 진사가 되고, 1535년에 문과별시에 장원급제하여 벼슬이 형조좌랑(刑曹佐郞 : 正六品) 을 거쳐, 승문원교리(承文院校理)에 이르렀다.
1537년에 사은사 겸 진하사(謝恩使兼進賀使)남세웅(南世雄)의 서장관(書狀官) 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것을 비롯하여 모두 3차에 걸친 중국사행을 수행하였다. 경주(慶州)의 북산서원(北山書院)에 배향(配享)되고, 저서로 ≪호계실기(虎溪實記)≫ 1책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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