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世 이별(李鼈)
[세 계] 익재공파. 창평공 이공린(昌平公 李公鱗)의 5째 아들.
[생졸년] (1475년 추정)~몰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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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낭선(浪仙), 또는강은(江隱)이며, 호(號)는장륙당(臟六堂)이다.
고려말 문하시중(門下侍中)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7대손이며, 평안도관찰사(平安道觀察使) 이윤인(李尹仁)의 손이며, 창평현령(昌平縣令) 이공린(李公麟)의 아들이다.
아버지 이공린[李公麟 : 1437년(세조 3)~1509년(중종 4)]은 세조(世祖)의 왕위 찬탈에 반대한 취금헌 박팽년(醉琴軒 朴彭年)의 사위라는 이유로 연좌되어20여 년간 금고에 묶여 있다가 1482년(성종 13)에야 겨우 해금 되었고,이별(李鼈) 또한 세조 때 사마시에 합격했으나 세째형 재사당 이원(再思堂 李黿)이 점필재 김종직(佔畢齋 金宗直)의 제자라는 이유로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史禍)에 연루됨으로서부모형제 모두가 전국으로 뿔뿔히 흩어져 귀양가고, 이어서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甲子士禍)에희생되면서 그는 황해도(黃海道) 평산(平山) 옥계산 귀양지에서 은거하며 생을 마쳤다.
시명(詩名)이 높았고. 이별(李鼈)은 시조(時調)의 한 장르인 〈장육당육가(臟六堂六歌)〉를 남겼는데, 후에 퇴계(退溪)이황(李滉)이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으로 이를 계승하였다. 패관잡기(稗官雜記)에는 진사(進士) 이별(李鼈)이 소를 타고 다녔다는 기록이 있다.
[참고문헌]
◇國朝人物考
◇稗官雜記
◇이별(李鼈)의 平山 隱居와 《臟六堂六歌》/최재남 지음(국문학 경남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