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경주이씨 명인록

이보현(李寶鉉)

야촌(1) 2010. 7. 15. 18:02

■ 37世 이보현(李寶鉉)

 

   [세 계] 평리성암공파 22世 細村공 李文佐의 후손 

   [생졸년] 1893년(고종 30)∼196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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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유학자·한의사. 자는 응선(應善)이고, 호는 봉은(鳳隱)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강원도 양양(襄陽) 지내리(池內里) 출신이다.


승문원검교(承文院檢校)이문좌(李文佐)의 후손이다. 고조는 성와(誠窩)이영주(李永周), 증조는 호군(護軍)이종재(李鐘才), 조부는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이진영(李鎭榮)이고, 부친 이규경(李圭景)과 어머니 경주손씨(慶州孫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외조부는 손을모(孫乙模)이다. 부인은 박병규(朴炳奎)의 딸 밀양박씨(密陽朴氏)와 윤지용(尹祉鏞)의 딸 파평윤씨(坡平尹氏)이다.


타고난 천성이 순후하고 재주가 출중하였다. 7세에 주씨(周氏) 천자문을 읽는데 글자의 뜻을 가르치면 문구를 바로 풀이 하였다. 조금 더 자라 서당에서 공부할 때는 날이 갈수록 실력이 늘어 함께 배우는 친구들이 그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세심헌(洗心軒)이규홍(李圭洪)과 졸재(拙齋)권응정(權應靖)· 학파(鶴坡)이태용(李泰容)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도(道)를 익혔다. 세상을 위해서 일하려고 하였지만 정세가 어지러운 것을 보고 산림(山林)에 은거하며 명리(名利)를 구하는 데 힘쓰지 않았다. 인술(仁術)을 펼쳐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면서 후학들을 이끌어 어질고 선한 풍속을 일으키는 데 힘썼다.


두 부인과의 사이에 3남 3녀를 두었다. 3남은 장량(李章兩)· 만량(李晩兩)· 양량(李陽兩)이고, 딸들은 이순국(李淳國)· 임경상(林敬相)· 박호준(朴皥濬)에게 출가했다.


7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묘소는 예천(醴泉) 치서(治西) 개포(開浦) 공도산(孔島山)에 자리하고 있다.

그의 문집 《봉은유고(鳳隱遺稿)》는 이원영(李源榮)의 서문과 이만량(李晩兩)의 발문이 붙어 있으며, 부록(府錄)에는 그의 가장(家狀)과 묘갈명(墓碣銘) 등이 수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鳳隱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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