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판 이양구(李養久)가 안변(安邊)에 부임하는 것을 전송하다.
※이양구(李養久)는 벽오 이시발(碧梧 李時發)의 자(字)이다.
지은이 : 청음 김상헌(淸陰 金尙憲)
내가 반자 되었을 때 공은 방백이었거니 / 我爲半刺公方伯
한해 가는 첫 들머리 원수대의 앞이었네 / 元帥臺前瀚海頭
군막 속서 걱정하매 계획 못나 창피했고 / 幕裏百憂慚婉畫
술동이 앞 한 웃음에 시의 물결 더해졌네 / 樽前一笑忝詩流
위험한 일 겪는 새에 양쪽 살쩍 희었는데 / 危途歷盡雙垂白
지나간 일 생각하니 벌써 십 년 지나갔네 / 往事追思十過秋
오늘 다시 관문 밖의 이별하게 되었으매 / 今日又成關外別
동쪽으로 철령 보니 다시금 또 유유하네 / 鐵門東望更悠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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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01]이시발(李時發)
1569년(선조 2) ~1626년(인조 4).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양구(養久)이며 호는 벽오(碧梧), 후영어은(後潁漁隱)이다. 임진왜란 때 많은 공을 세웠고, 이후 경상도 관찰사에 임명되어 4년간 선정을 베풀었으며, 1605년(선조 38)에 함경도 관찰사가 되어 포루(砲樓)와 성곽을 수축하였다.
광해군 때에는 오도찬획사(五道贊劃使)에 임명되어 평안도 지방에 둔전(屯田)을 설치하여 군량을 충족하게 하였으나, 광해군 친척의 일로 광해군이 노하여 책임을 묻자 신병을 칭탁하고 사직하였다. 인조반정 이후에 한성부 판윤에 등용되었고, 이어 형조 판서에 올랐으며, 이후 삼남도 검찰사(三南道檢察使)가 되어 남한산성의 역사(役事)를 감독하였다. 저서로는 《주변록(籌邊錄)》, 《벽오유고(碧梧遺稿)》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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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해]
[주01] 반자(半刺)
관찰사나 목사, 부사 등의 보좌관을 말한다.
[주03] 방백(方伯)
관찰사(觀察使)
[주04] 원수대(元帥臺)
◇함경남북도 경계인 마천령에 있던 누대.
◇오늘날 함경북도 경성군 오촌면 남부동에 있는데 문숙공 윤관(文肅公 尹瓘)의 승전지(勝戰地)에 세운 비각으로 익헌
공: 헌주(憲柱)이 1718년(숙종 44)에 비문을 썼다. 정북사 동편의 해변가에 있다.
[주05] 한해(瀚海)
몽고의 항원산(杭爰山)에 대한 음역(音譯)으로, 흔히 변경 지방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한나라 때 곽거병(霍去病)이 이곳에 여섯 번 출정하여, 멀리 사막을 건너고 봉선(封禪)을 행하며 한해에 등림(登臨)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史記 卷111》
출천 : 청음집 제5권 >칠언율시(七言律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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