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한시(漢詩)

증 사자관 이해룡 병서 - 김성일(金誠一).

야촌(1) 2009. 5. 8. 20:53

학봉집 제2권[해사록(海槎錄) 2]

 

■사자관(寫字官) 이해룡(李海龍)에게 주다. 병서(幷序)

 

지은이 : 김성일(金誠一)

 

만력(萬曆) 18년(1590, 선조 23) 봄에 일본 추장(酋長)이 포로로 잡아갔던 우리나라 사람을 돌려보내고, 우리 변경을 침범했던 왜적의 머리를 베어 바치면서 오직 통신사가 와주기를 간청하였다.

 

그러자 성상(聖上)께서 그의 공손한 것을 보아, 특별히 그들의 청을 들어 주셨다. 그리하여 신(臣) 황윤길(黃允吉) 및 신(臣) 김성일(金誠一)에게 명하여 정사와 부사로 삼아 절월(節鉞)을 주어 보냈는데, 무릇 사신이 이행해야 할 중대한 일에 관해서는 성상의 생각으로 재단하여 성산(成算)을 일러 주어 비록 천만 리 밖에 있을지라도 대궐 뜰 앞에 서서 친히 밝은 명을 받아 일을 행하는 것과 같게 하였다.

 

뜰아래서 하직하던 날 성상의 하교에 이르기를, “듣건대, 왜국의 중들이 제법 문자를 알고, 유구(琉球)의 사신들도 항상 왕래를 한다고 하니, 너희들이 만약 그들과 서로 만나서 글을 주고받는 일이 있을 경우에 글씨도 서투름을 보여서는 안 될 것이다. 너희들은 유념하라.” 하였다.

 

신들이 모두 변변치 못한 자질로 본시 문장과 글씨의 재주가 없는데다가 일에 다다라, 두서가 없어 생각이 이에 미치지 못하였다. 명을 듣고는 황송해 하면서 서로 의논하여 왕명에 부응할 만 한 자를 찾아 사자관 이해룡을 함께 보내 주기를 요청하니, 상께서 그리하라고 하셨다.

 

이해룡은 명이 내려지자, 바로 출발하였지만, 실은 평소에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이것은 실로 인정으로 어려운 바인데, 이해룡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니 이 또한 가상하지 않은가.

 

대마도에 있을 때 현소(玄蘇)가 절에 걸 현판의 글씨를 써 주기를 요청하자, 이해룡이 곧바로 써서 주었더니, 현소가 보배로 삼아서 돌에 새기어 길이 전하고자 하였다.

 

근자에 왜도(倭都)에 들어오자, 글씨를 구하는 자가 구름처럼 모여들어 숙소의 문 앞이 시장과 같았다.

일행들도 또한 귀찮게 여겨 문을 닫아 거절하면 나무를 휘어잡고 담에 올라서 서로 뒤지지 않으려고 다투었는데, 이와 같이 하기를 두어 달이 되도록 그치지 않았다. 이해룡이 이번 길에 써 준 것이 무릇 몇 장이 되는지 모를 정도였다.

 

당초에 이해룡이 올 적에 국내 사람들은 다 집닭[家鷄]으로 여겼으니, 다른 나라에 와서 이렇게까지 귀하게 대접받을 줄을 어찌 헤아렸어랴. 성상의 지혜가 온갖 변화에 두루 주밀하여 일마다 사기(事機)에 적당하게 하시므로 비록 지극히 작은 일일지라도 두루두루 적당하게 대응하시는 것이 모두 이와 같았다.

 

그러니 이보다 더 큰일은 어떠하셨겠는가.

이해룡과 같은 자는 비록 나라를 빛낸 자라고 하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어찌 작은 재주라 하여 가볍게 여기겠는가. 내가 차천로(車天輅)와 함께 그 일을 직접 보았는데 한마디 말이라도 기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각각 한 편의 시를 지어 주고, 또 서문을 지어 시의 첫머리에 적는다.

 

어여쁘다네 성질이 착한데다 / 憐汝性氣良

순하디 순하여 비늘과 껍질이 없는듯 하구나 / 休休無甲鱗

 

일에 닥쳐 부지런하고 삼가며 / 趨事致勤謹

마음가짐은 어찌 그리 순진한고 / 秉心何眞醇

 

손에다가 붓을 가지고서는 / 手持毛錐子

글 쓰는 솜씨가 신묘한 지경에 이르렀네. / 爲藝亦妙臻

 

조정에선 그 어떤 재주도 버리는 일 없어 / 朝家無棄才

사자관의 관직을 그에게 주었네. / 名隷寫字人

 

사대문서 글씨 쓰는 직책에 있었으니 / 職書事大書

홍무체의 글씨가 새로웠도다. / 洪武筆勢新

 

작은 글씨는 터럭에다 새길 정도고 / 細字入秋毫

큰 글씨는 은 갈퀴와 비슷하였네 / 大字如鉤銀

 

어찌 중국 사람들만 놀랬으랴 / 豈但京華人

황제도 글씨 보고 감동했으리 / 應亦動皇宸

 

경인년 되던 그 해의 봄에 / 惟庚寅之春

내가 일본으로 사신길 왔을 때 / 余行晹谷濱

 

성주께서 나라 빛낼 생각하시어 / 聖主念華國

너를 시켜 사신을 따르게 했네 / 命汝隨使臣

 

명령을 받고 저녁에 떠나서 / 承命而夕發

만 리의 바닷길을 건너게 되었네 / 涉萬里海津

 

이는 실로 사람들이 어렵게 여기는 바인데 / 此實人所難

너만은 눈썹도 찡그리지 않았네 / 汝獨不眉顰

 

뒤쫓아 와 충주(忠州)에서 나를 만나서 / 追余及中原

서로 따른 지 지금 며칠이나 되었는고 / 相從今幾旬

 

왜인들이 비루한 건 사실이지만 / 蠻人雖鄙野

그들 역시 명필 글씨 보배로 아네 / 亦知墨妙珍

 

앞 다투어 달려와서 그대 글씨 구하여 / 奔波乞其書

만금보다 중히 여기네 / 重之萬金緡

 

부채에다 써 준 글씨 이미 많은데 / 蒲葵題已遍

편액 글씨 성문 위서 빛을 내도다 / 扁額照城闉

 

오랑캐 땅 서울에선 종이 값이 오르고 / 夷都紙價高

이름은 여러 사람들 입에 진동하였네 / 名字雷衆脣

 

보는 자는 반드시 다 절을 하고 / 見者必加額

두 손 모아 감사하다 말을 하누나 / 兩手謝諄諄

 

마침 네게 작은 병이 있어서 / 屬汝有小痾

며칠 동안 자리에 누웠었더니 / 數日臥床茵

 

중과 관원이 약을 보내오고 / 僧官送藥餌

술과 음식도 들여왔으며 / 酒食爭來陳

 

문병하는 자가 날로 잇따라 / 問者日相續

위로하기 친척 같이 하였네 / 存慰如其親

 

내 알았느니 재주를 사랑하는 마음은 / 始知愛才心

오랑캐나 중국이 모두 똑같은 줄을 / 乃與華夏均

 

나는 비록 한퇴지(韓退之)에게 부끄러우나 / 我雖愧韓君

너는 실로 아매의 짝이로다 / 汝實阿買倫

 

성상께서 두루두루 일 염려하심에 / 聖人慮事周

작고 큰 일 그 모두가 신묘하네 / 細大皆入神

 

글씨를 작은 재주라 하지 말거라 / 無曰是小技

또한 이웃 오랑캐를 감동케 했느니 / 亦可動蠻隣

 

나의 시는 한 푼어치 값도 없으니 / 我詩不直錢

칭찬하려 하여도 할 수가 없네 / 揄揚竟無因

 

가을 창 벌레 소리에 화답하여 / 秋窓和蟲吟

애오라지 날짜만을 기록하노라 / 聊以記時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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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해]

 

[주01]담을 넘어[登牆] : 원문 소주에, “초본에는 등장(騰牆)으로 되어 있다.” 하였다.

 

[주02]집 닭[家雞] : 뛰어나지 못한 글씨를 가리킨다. 진(晉) 나라의 유익(庾翼)이 글씨를 잘 써서 처음에는 왕희지(王羲之)와 이름이 나란하였다. 이에 자기의 서법을 집 닭에다 비유하고 왕희지의 서법을 들꿩[野雉]에다가 비유하였다.

 

그 뒤에 왕희지는 필법이 더욱 진보하여 유익의 아들들조차 아버지의 필체를 배우지 아니하고 왕희지의 필체를 배웠다. 그러자 그가 말하기를, “우리 아이들은 집 안에 있는 닭은 싫어하고 들판에 있는 꿩을 좋아한다.” 하였다. 《太平御覽 卷918》

 

[주03]모추자(毛錐子) : 붓의 별칭이다.

 

[주04]홍무체(洪武體) : 홍무는 명 나라 태조의 연호로, 그때 새로 나온 서체라는 뜻이다.

 

[주05]양곡(暘谷) : 해가 뜨는 곳으로, 여기서는 일본을 가리킨다. 《회남자(淮南子)》 천문훈(天文訓)에, “해가 양곡(暘谷)에서 나와 함지(咸池)에서 목욕한다.” 하였다.

 

[주06]아매(阿買) : 한유 조카의 소명(小名)이다. 한유의 ‘취증장비서시(醉贈張祕書詩)’에

“아매는 문자는 몰라도 제법 팔분(八分)은 쓸 줄 안다.[阿買不識字 頗知書八分]”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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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文]

 

해사록(海槎錄) >金鶴峯海槎錄[二] >[詩]

鶴峯集) >鶴峯先生文集卷之二 >詩

 

贈寫字官李海龍幷序

 

萬曆十八年春。日本蠻酋還俘獻馘。惟信使是請。聖上以其恭也。特俯循夷情。命臣黃允吉曁臣誠一。充正副使。授節遣之。凡係使事之重者。靡不裁自淵衷。指授成算。雖在千萬里外。如立玉陛下。親承明命而行事也。陛辭之日。聖敎若曰。聞倭僧頗識字。琉球使亦嘗往來云。爾等若與之相値有唱酬等事。則書法亦不宜示拙也。爾等其留念乎。臣等俱以庸陋。素乏文墨之技。而臨事茫然。慮不及此。聞命震懼。相與求所以應命者。以寫字官李海龍爲請。上可之。命下卽行。曾無宿昔之眷。此實人情之所難。而海龍猶不以爲意。不亦可嘉也哉。在馬島也。玄蘇請寺額。卽書與之。蘇寶之。願刻珉以傳之。比入倭都。求者雲集。館門如市。一行亦苦之。或閉關以拒之。則攀樹登墻。猶恐或後。如是者積數月不止。海龍今行。所書者未知凡幾紙也。當初海龍之行也。國人皆以家鷄視之。豈料其見貴異國。至於此耶。聖神智周萬變。動中機會。故雖事之至細至微者。無不泛應曲當如此。況有大於此者乎。如海龍者。雖謂之華國可也。何可以小技忽之哉。余與車君。目覩其事。不可無一言以記之。故各賦一詩以與之。又爲之序。以冠篇首云。憐汝性氣良。休休無甲鱗。超事致勤謹。秉心何眞醇。手持毛錐者。爲藝亦妙臻。朝家無棄才。名隷寫字人。識書事大書。洪武筆勢新。細字入秋毫。大字如鉤銀。豈但京華人。應亦動皇宸。惟庚寅之春。余行暘谷濱。聖主念華國。命汝隨使臣。承命朝夕發。涉萬里海津。此實人所難。汝獨眉不顰。追余及中原。相從今幾旬。蠻人雖鄙野。亦知墨妙珍。奔波乞其書。重之萬金緡。蒲葵題已遍。扁額照城闉。夷都紙價高。名字雷衆唇。見者必加額。叉手謝諄諄。屬汝有小痾。數日臥床茵。僧官送藥餌。酒食爭來陳。問者日相續。存慰如其親。始知愛才心。乃與華夏均。我雖愧韓君。汝實阿買倫。聖人慮事周。細大皆入神。無曰是小技。亦可動蠻隣。我時不直錢。揄揚竟無因。秋窓和蟲吟。聊以記時辰。醫官孫文恕。故御醫士銘之子也。以醫術名一國。官至僉知中樞府事。文恕能世其業。聰明强記。博通醫書。發藥多效。世醫咸推之。庚寅春。余赴日域。文恕實從之。一行賴以克濟。賦一詩以與之。<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