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문(祭文)]
■ 동춘당(同春堂)선생을 이장할 때 빈소(殯所)에 제사한 글/ 병진년(1676, 숙종 2)
약천 남구만 찬(藥泉 南九萬 撰)
1629년[(인조7) ~1711년(숙종37)]
선생이 별세하실 때에 / 先生之沒
저는 북쪽 감영에 있어 / 我在北臬
염할 때에 옷을 받들지 못하였고 / 斂不奉衣
장례할 때에 무덤에 임하지 못하였습니다. / 窆不憑穴
지난번 산소에 성묘하니 / 頃拜兆域
풀이 이미 사년을 묵었습니다 / 草已四宿
평소의 은혜 저버림이 부끄러우니 / 愧負平生
애통한 마음 어찌 다함이 있겠습니까. / 茹痛何極
이에 미쳐 화견을 하게 되어 / 逮玆和見
급히 달려왔습니다. / 匍匐來赴
옥 같은 모습과 낭랑한 음성 / 玉色金聲
다시 듣고 볼 수 없으나 / 不可聞覩
오직 영위(靈位)를 설치하여 / 惟設靈帷
초종 때와 같이 하였습니다. / 若在初終
슬픈 마음 솟구치매 / 哀懷坌涌
눈물이 가슴에 가득합니다. / 有涕盈胸
아, 선생이시여 / 嗟我先生
실로 그 덕을 온전히 하셨습니다. / 實全其德
학문은 세상의 스승이 되고 / 學爲世師
충성은 국가에 남아 있습니다. / 忠則在國
얼음이 이르는 걱정이 깊어 / 憂深氷至
둔괘(遯卦)를 얻고도 상소를 불태우지 않았는데 / 不焚遯章
먼저 기미(箕尾)를 타고 가시어 / 先騎箕尾
부행(涪行)에 곤궁하지 않았습니다. / 不戹涪行
죽고 사는 즈음에 / 死生之際
마음에 편안한 바를 얻으셨으니 / 得心所安
이 밖의 아득한 일은 / 斯外悠悠
말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 可以無云
이제 길지를 얻어 / 今得吉卜
의관을 다시 장례하니 / 改葬衣冠
자손들이 일을 받듦에 / 子姓將事
먼 사람들이 와서 구경합니다. / 遠人來觀
중니의 슬퍼하고 영화로움이 / 仲尼哀榮
어찌 높은 벼슬에 있겠습니까. / 豈在尊爵
명도의 제목이 / 明道之題
후학에게 충분히 보일 만합니다. / 足示後學
시작이 있고 끝이 있으니 / 有始有卒
예를 기준으로 삼으셨습니다. / 禮以爲準
생각건대 우리 선생께서는 / 念我先生
또 무엇을 한하시겠습니까. / 其又何恨
말은 이에 그치나 / 言則止此
뜻은 다할 수 없습니다. / 意不可窮
한 줌의 향과 맑은 술잔으로 / 瓣香泂酌
저의 작은 정성 올립니다 / 薦我微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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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01]
화견(和見) : 이장할 때에 예전의 육신을 다시 뵘을 이른 것으로 추측된다.
[주02]
얼음이 이르는 걱정 : 큰 화가 닥쳐올 것을 미리 알고 걱정함을 이른다. 《주역》 곤괘(坤卦) 초육(初六) 효사(爻辭)에 “초육은 서리를 밟으면 단단한 얼음이 이른다.” 하였는데, 이는 음기(陰氣)가 처음 뭉쳐 서리가 내리면 날씨가 점점 추워져 단단한 얼음이 어는 것으로 화(禍)의 기미가 있으면 점점 진전되어 막을 수 없는 지경에 이름을 비유한 것이다.
[주03]
둔괘(遯卦)를----않았는데 : 둔괘는 《주역》 64괘의 하나로 좋지 못한 세상을 만나 군자가 은둔하는 괘이다.
남송(南宋) 영종(寧宗) 경원(慶元) 원년(1195) 2월에 간신인 한탁주(韓侂冑)가 승상(丞相) 조여우(趙汝愚)를 모함하여 축출하고 주자 등의 도학파를 위학(僞學)이라 하여 배척하였다.
대부시 승(大府寺丞)으로 있던 여조검(呂祖儉)이 조여우를 변호하다가 소주(韶州)로 유배 가자, 주자는 자신이 여러 조정의 은혜를 받았으며 또 아직도 신하의 반열에 있으므로 침묵할 수 없다 하여, 수만 자에 이르는 장문(長文)의 상소문을 초(草)하여 간신들이 군주의 총명을 가리는 병폐를 극언하였다.
이에 자제와 문생들이 화를 부르게 될 것이라 하여 번갈아 만류하였으나 듣지 않았는데, 마침 채원정(蔡元定)이 들어와 《주역》으로 점을 쳐서 결정할 것을 청하였다. 그리하여 괘(卦)를 뽑아 둔괘의 초육효(初六爻)를 얻으니, “초육은 둔(遯)의 꼬리라 위태로우니, 가는 바를 두지 말라.〔初六遯尾 厲 勿用有攸往〕” 하였다.
이에 주자는 상소문을 불태우고 스스로 둔옹(遯翁)이라 호하여 세상에 깊이 은둔할 뜻을 나타내었다.
《朱子大全附錄 卷4 年譜》 여기서는 곧 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직언하였음을 말한다.
[주04]
먼저----가시어 : 기미(箕尾)는 기성(箕星)과 미성(尾星)으로, 《장자》 대종사(大宗師)에 “부열(傅說)은 그것을 얻어서 무정을 도와 천하를 모두 소유하였으며 동유성(東維星)를 타고 기성과 미성을 몰아 열성과 나란하게 되었다.〔傅說得之 以相武丁 奄有天下 乘東維 騎箕尾 而比於列星〕” 하였는바, 기성과 미성을 탄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죽어서 신선이 된 것을 의미하나 여기서는 미리 세상을 떠나 은둔함을 가리킨다.
송준길(宋浚吉)은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상(服喪) 문제로 예송(禮訟)이 일어나자, 남인(南人)의 삼년제를 반대하고 송시열(宋時烈)과 함께 기년제를 주장하여 일단 승리하였으나 기년제의 잘못을 규탄하는 남인들의 상소로 일찍 사퇴하였다. 이 때문에 후일 유배 가지 않게 되었다.
[주05]
부행(涪行) : 부주(涪州)로 갔다는 뜻으로 귀양 가는 것을 이른다.
송(宋)나라의 학자인 정이(程頤)가 소식(蘇軾)과 대립하다가 쫓겨나 부주로 귀양 간 데서 유래하였다.
[주06]
중니(仲尼)의 슬퍼하고 영화로움 : 중니는 공자의 자(字)로, 《논어(論語)》 자장(子張)에 자공(子貢)이 공자의 덕을 칭송하여 이르기를, “살아 계시면 영광스럽게 여기고 죽으면 슬퍼한다.〔其生也榮 其死也哀〕” 하였다.
[주07]
명도(明道)의 제목 : 정호(程顥)가 별세하자 문언박(文彦博)은 그의 묘에 쓰기를 ‘명도 선생(明道先生)’이라 하였으니, 이는 도를 밝힌 선생이라는 뜻인바, 동춘 역시 정호와 마찬가지로 도학을 밝힌 스승임을 말한 것이다.
약천집 제2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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