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그특사 27

헤이그특사 이상설, 연변에서 근대 교육 시행 반일운동의 발단.

코리안 스피릿 ㅣ 중국 속 우리역사기행 19] 헤이그특사 이상설, 연변에서 근대 교육 시행 반일운동의 발단. 승인 2014.11.25. 09:09:07 l 글/사진=정유철 기자 | hsp3h@ikoreanspirit.com 대성중학교정의 이상설선생기념관 정식명칭은 ‘이상설선생역사전람관’이다. 교정에 세워진 ‘보재 이상설선생역사전람관 준공기’를 통해 이 전람관의 연혁을 살폈다. “민족교육의 요람 서전서숙을 1906년 8월에 용정 땅에 최초로 개숙 하시고 초대 숙장이 되신 보재 이상설선생을 길이 기리려고 민족적 성원과 창학정신을 계승한 용정중학교의 협력을 얻어 오늘여기에 본 역사전람관을 세우고 항일투쟁과 민족교육에서 쌓으신 선생의 업적을 선양하는 바이다. 2000년 8월 15일 세월이 흘러 준공비가 낡고 훼..

세계를 독립운동기지로-이상설

■세계를 독립운동기지로 - 이상설 이상설선생 존영 “이 분의 포부는 매우 크며, 세계 대세에 밝고 동양 시국을 간파하고 있다. 이범윤 같은 인물 만인을 모아도 이상설 한 분에 못 미칠 것이다....수차 만나서 그 인물을 보니 기량이 크고 사리에 통하는 대인물로서 대신(大臣)의 그릇됨이 부족함이 없더라.... 세계 대세에 통하고 애국심이 강하며, 교육 발달을 기도하고 국가 백년대계를 세우는 사람은 이 분일 것이다. 또한 동양 평화주의를 갖는 점에 있어서 이 분과 같이 초절한 마음과 뜻을 가진 사람은 참으로 희귀한 것이다.” 이 글은 안중근 의사가 뤼순[旅順] 감옥에서 처형에 즈음하여 쓴 이상설에 대한 인물평이다. ●이상설의 역사적 배경 이상설(李相卨, 1870~1917)은 1870년에 이행우(李行雨)와 벽..

“을사늑약 체결 끝까지 반대해야”이상설의 상소

“을사늑약 체결 끝까지 반대해야”이상설의 상소 일요신문[1115호] 승인 2015.09.14 10:49:33 우종철 논설주간 | ilyo@ilyoseoul.co.kr [일요서울 | 우종철 논설주간] 이상설(李相卨, 1870~1917)은 25세 때 조선 마지막 과거(1894년)에 급제, 27살에 성균관 교수와 한성사범학교 교관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자 근대교육, 특히 ‘한국 근대수학의 아버지’였다. 1904년 일제는 조선 정부에 황무지 개척권을 요구하였는데, 이상설은 박승봉과 연명으로 황무지 개척권 요구를 반대하는 하는 상소를 올리고, 이를 철회시켰다. 상소의 요지는 “일본의 요구를 물리치지 않으면 국권을 지킬 수 없으며, 황무지의 개척을 자국민이 하지 않으면 국가재정이 파탄될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일본의 ..

근대수학의 아버지 이상설

Korean Journal of mathematics / v.20 no.4, 2012년, pp.541-563 19th Century Chemistry Book of Korean Mathematician Sang-Seol LEE 한국 근대수학교육의 아버지 이상설(李相卨)이 쓴 19세기 근대화학 강의록 『화학계몽초(化學啓蒙抄)』 Son, Yongkeun ( Department of Chemistry, Sungkyunkwan University ) ; Kim, Chae Sik ( Daedong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Sungkyunkwan University ) ; Lee, Sang-Gu ( Department of Mathematics, Sungkyunkwan Universit..

130년 전 수학 교재…이상설 ‘수리’ 첫 공개

[광복 70년 미래 30년] 130년 전 수학 교재..이상설 '수리' 첫 공개 KBS|천춘환|입력2015.08.12. 21:32|수정2015.08.12. 22:26 이상설 선생은 구한말, 헤이그 밀사사건의 주역으로 비운의 애국지사인데요, 우리나라 근대 수학의 선구자이기도 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습니다. 130년 전 이상설 선생이 집필한 수학교재 '수리'를 KBS가 처음으로 공개합니다. 천춘환 기잡니다. 조선의 마지막 과거에 급제하고 성균관 관장에 오른 보재 이상설 선생!. 선생이 집필한 수학교재 '수리'가 130년만에 세상에 나왔습니다. 구면 삼각법, 세제곱근 등 전통 산학 개념 위에 서양 수학의 내용이 더해졌습니다. 역시 선생이 지은 근대 수학교과서 '산술신서'보다 10여 년 앞선 것으로 확인돼 한..

이상설(李相卨)의 과거시권(科擧試券 - 답안지)

■ 지어지선론(止於至善論) ※이 글은 이상설이 과거시험 볼 때, 작성한 답안지(科擧試券) 중 하나로 『대학(大學)』의 「지어지선(止於至 善)」에 대한 논(論)이다. 이상설은 25세 때인 1894년 조선왕조 최후의 과거인 갑오문과(甲午文科)에 병과(丙 科)로 급제하였다. 그의 과거시권으로는 현재 과 등 2매가 전한다. 李相卨 아래와 같이 논한다. “하늘이 물(物)에 명(命)하는 조건은 반드시 한 번 정해지면 바꾸지 못하는 법칙이 있다. 때문에 사람이 사물(事物)에 응하는 조건에도 역시 한 번 정해지면 바꾸지 못하는 법칙이 있다. 어떤 사물이 있고, 그 법칙이 없는 것은 있지않으며 어떤 사물이 없는데 그 법칙이 있는 것도 있지않다. 지금 귀(耳)의 법칙은 소리가 있으면 듣는 것이 그(최선에) 그치는 것이며,..

「KBS 광복70주년특집방송 자문모임」

한국의 근대수학, 과학, 교육, 독립운동의 선구자, 보재 이상설선생 「KBS 광복70주년특집방송 자문모임」 ◇일시 : : 2015년 5월 22일(금요일) l 장소 : 서울역 T 園 ◇참석자 : 이재훈(보재선생기념사업회부회장), 이상구교수(성균관대수학과), 박성래박사(한국외국어대사하과명 예교수), 이상훈박사(보재선생후원회장), 이창건교수(광운대학교사회과학대학 학장), 이재웅박사(성균 관대학교 전부총장). 이재승박사(미국/포항공대특임교수), 이민원박사(동아역사연구소장), 윤병석박사 (인하대학교사학과명예교수), 박종윤교수, 손용근교수, 박영민교수, 김채식박사, KBS, PD, 작가, 이재 용기념사업회사무국장. --------------------------------------------------------..

보재 이상설선생 순국98주기 추모행사 공지

보도자료 사단법인 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 (우)110-530 서울특별시 종로구 혜화로 35(경주이씨중앙화수회관 307호) TEL: 02-747-2285, FAX: 02-747-2286, 금년은 우리 민족의 선구자요, 근대수학의 아버지 보재(溥齋) 이상설(李相卨)선생께서 잃어버린 조국의 국권 회복을 되찾기 위하여 항일 독립운동으로 순국하신지 98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리고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로 참석하시어 나라의 국권을 유린당한 부당성을 세계만방에 호소한지도 또한 108년이 됩니다. 이에 우리는 항일독립운동의 행동철학을 몸소 실천하신 선생의 유덕을 길이고, 지금도 일본의 역사왜곡과 독도의 영유권주장을 일삼는 그들의 군국주의 부활을 경계삼아 조국의 평화통일을 앞당기고, 오늘의 사회분열과 갈등을 해소하기..

이상설선생기념관 진천생가 주변에 건립키로 '가닥’

【진천=뉴시스】강신욱 기자 = 충북 진천군이 지역 출신 독립운동가인 보재 이상설선생의 숭모사업으로 추진하는 기념관을 생가 주변에 건립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2015.03.11. ksw64@newsis.com 2015-03-11 이상설선생기념관 진천 생가 주변에 건립키로 '가닥’ 기사등록 일시 [2015-03-11 10:51:32] 옛 신덕초교에 공립 단설유치원 건립에 따라 【진천=뉴시스】강신욱 기자 = 충북 진천군이 지역 출신 독립운동가인 보재 이상설(1870~1917) 선생의 숭모사업으로 추진하는 기념관을 생가(충북도 기념물 77호) 주변에 건립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군은 생가 인근 옛 신덕초등학교 터를 기념관 후보지로 구상했으나 이곳에 진천교육지원청이 공립 단설유치원을 건립하기로 해 생가 ..

이상설선생 유허비

독립운동가 이상설(李相卨)선생 유허비 우수리스크 외곽의 수이푼 강변에는 독립 운동가였던 보재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가 외로이 세워져 있다. 이상설은 1907년 고종황제의 밀지를 받아 이준과 함께 헤이그의 만국평화회의장으로 가서 을사조약의 파기를 주장하였다. 이상설은 1917년 망명지인 연해주 니콜리스크에서 병으로 죽으면서, “동지들은 합세하여 조국 광복을 기필코 이룩하라. 나는 조국 광복을 이루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니 어찌 고혼인들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은 모두 불태우고 그 재도 바다에 날린 뒤 제사도 지내지 말라.” 즉 내 몸과 유품, 글을 모두 불태워 그 재를 여기 옛 발해의 땅이었던 솔빈강(率賓江) 물에 흘려보내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는 서릿발 같은 유언을 남겼던 것이다. 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