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곤 8

공주 제영(公州題詠) - 이하곤(李夏坤)

■ 공주제영(公州題詠) - 담헌(澹軒) 이하곤(李夏坤) 명산(名山)과 대천(大川)과 더불어 역사를 지닌 이곳 공주는 예로부터 한인묵객(翰人墨客) 들의 발걸음이 잦고 이에 따라 그들의 음영(吟詠)도 많거니와 그 중에서도 가장 손꼽을 만한 인물은 단연 담헌 이하곤[李夏坤,1677(숙종 3)~1724(영조 1)] 선생이다. 담헌은 진사시에 합격한 뒤로는 과거와 벼슬에 뜻을 접고 고향인 진천 초평에 내려가 학문과 서화에 힘쓰며 전국을 두루 여행 하였다. 당대의 문사인 이병연[李秉淵,1671년(현종 12)∼1751년(영조 27)]을 비롯하여 화단의 거장인 정선(鄭敾)과 윤두서(尹斗緖) 등과도 교유한 문인이며 화가이기도 하였다. 그는 공주지역에 대하여 각별한 관심을 갖고 수십 수에 달하는 다수의 詩 작품을 남기게 ..

완위각[만권루]

■ 완위각[만권루] [충청타임즈] 세상엿보기 박경희 l 승인 2016. 08. 29. l 수정 2016. 08. 28 18:25 박경희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겠지만 나는 결국 이뤘다. 모든 것은 힘쓰는데 달렸을 따름이다.’(조선의 독서왕 김득신 묘비 글 中) 조선시대 최고의 민간 도서관으로 일컬어지는 완위각을 찾아보기 전에 떠오르는 김득신은 완위각과는 물리적으로 직접 연관성은 없다. 다만 완위각이 당시로는 상상하기 쉽지 않을 정도인 만권이 넘는 책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경이로운 만큼 한권의 책을 11만 번이나 읽었다는 김득신 역시 신비로울 만큼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인물이다.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양촌마을에 완위각(宛委閣)이라는 옛 가옥이 ..

■ 기타/칼 럼 2016.08.31

이하곤, 진천 완위각(宛委閣)에서 추석 달밤을 읊다.

완위각에서 추석 달밤을 읊다/이하곤 등록일: 2012-09-27 오후 4:58:10>조혁연 cho3748@nate.com 진천군 초평면 양촌마을에 완위각(宛委閣)위치하고 있다. 본래는 여러 용도의 7동 한옥으로 구성된 조선후기 전통건물이었으나 지금은 상당부분 망실, 사랑채 1동만 존재하고 있다. 완위각의 최초 건립자는 이하곤(李夏坤·1677~1724)이다. 그는 속종 때 과거에 급제했으나 기사환국으로 정국이 어지러워자 더이상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기사환국은 장희빈 아들의 원자 책봉 문제가 발생했을 때 남인이 숙종의 환심을 사 서인을 대거 몰아낸 사건을 말한다. 그는 선대 고향인 초평으로 내려와 학문과 서화를 즐기며 여생을 보냈다. 이때 건립한 건물이 완위각으로, 당시에는 만권루라고도 불리었다. 조선 후..

동유록(東遊錄) -담헌 이하곤(澹軒李夏坤)

동유록(東遊錄) [지은이] 담헌(澹軒) 이하곤(李夏坤) [생졸년] 1677년(숙종 3) ~ 1724년(영조 즉위년) 금강산으로 향하다 갑오년(1714년, 숙종 40년) 3월 19일. 일찍 밥을 먹고 길을 나서 풍악(楓嶽)으로 향했다. 이유발(李惟發)과 영수암(靈水庵)의 승려 삼임(三稔)과 청담(淸潭)의 승려 신숙(信淑)이 뒤따랐다. 도마치(倒馬峙)를 넘어서 삼승촌(三升村)을 지났는데, 이곳은 이동상(李東相)이 사는 곳이다. 이동상이 항상 산수의 아름다움이 금계(金溪)에 뒤지지 않는다고 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용정(龍亭)에 많이 미치지 못했다. 점심 때 음성(陰城)에 도착했다. 현감(縣監) 이세기(李世機)가 그 아들 이묵(李黙)을 데리고 찾아왔다. 저녁에 유곡(柳谷)의 별장(別將) 집에서 잤다. 금강산으로..

익재 선생 화상기(益齋先生畫像記) - 夏坤 再拜 書

■ 익재선생화상기(益齋先生畫像記) 十五世孫 夏坤 再拜 書 惟我先祖益齋文忠公。事高麗忠宣忠肅諸王。官至三重大匡門下侍中。年八十一而卒。自公之歿。至今四百餘年。公之聲名文章。學士大夫誦之不衰。元延祐間。公從忠宣王在燕都。王搆萬卷堂。招延一時文學之士。如姚公端甫,閻公子靜,趙公子昂,元公複初,張公養浩。皆出入王門下。公相與周旋於翰墨尊俎之間。其文雅風流。亟爲諸公所穪賞。又嘗西至巴蜀。南抵吳會。覽其山川之奇秀。民物之殷富。城郭樓臺之瓌瑋巨麗。登臨俯仰。筆墨淋漓。奇辭傑句。膾炙人口。雖窮徼遐裔之人。莫不知東國有益齋先生。可謂盛矣。然此未足以盡公之平生。而爲公之奇節也。余嘗讀公遺集及牧隱李公所撰公墓誌。槩得公之本末。當忠宣之被讒西遷也。麗之群臣無一人爲其主抗言卞誣者。獨公沬血飮泣。奔走叫號於當時執政貴近者。而其與元郞中書則論列歷朝事大之禮。上王翊戴之功。辭意尤剴切懇惻。故見者莫不憐公之忠感..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는 조선후기 실학자이자, 《해동농서(海東農書)》를 지은 서호수의 아들인 서유구가 만년에 저술한 농업백과사전으로,《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 또는《임원경제십육지(林園經濟十六志》라고도 한다. 총113권 52책으로 구성돼 있으며, 16개의 부분으로 나뉜 논저로 구성되는 이 책은 실학파의 학문적 업적을농정학적인 분야에서 체계화하고 총정리하여 필사한 저술이다. 서문에 따르면 이 책은 전원생활을 하는 선비에게 필요한 지식과 기술 등을 설명하기 위한 생활과학서의 성격을 띤다. 특기할 만한 점으로는 내용 가운데는 농기(農器)의 도보(圖譜)와 전국의 시장 날짜가 들어 있다. --------------------------------------------------------..

조선후기 서적수입과 장서가들

■ 조선후기 서적수입과 장서가들 부산대 강명관 교수가 ≪민족문학사 연구≫ 제9호에 발표한 논문 의 요약분을 출판저널 제198호(1996년 6월 5일)에서 옮긴다. 북경의「유리창」이 공급원. 인간 영역의 중국서적 수입이 이루어 지기는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반부터의 일이다. 경전 따위 고전적 저작물이나 실용서는 그 전에도 많이도 수입되었지만 중국 당대의 문인 지식인들의 저작들은 16세기 말경에 와서야 비로소 조선 지식층의 독서범위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명나라의 문인 진계유(1558~1639)는 당시 조선인의 서적 구입열에 대해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조선인은 책을 가장 좋아한다. 사신의 입공(入貢)은 50인으로 제한되어 있지만, 옛 책과 새책, 패관소설로서 조선에 없는것을 날마다 시중에 나가 책의 ..

완위각지(宛委閣址) 발굴

인터넷 진천자치신문 2009년04월13일 17시48분 초평 완위각지(宛委閣址) 발굴 본격화 ↑소재지 : 충북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399 초평면 용정리 양촌마을에 위치한 조선 후기 4대 장서각 중의 하나였던 완위각지(宛委閣址)에 대한 발굴이 본격 추진된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은 지난 9일 매장문화재조사 현장지도위원 회의를 통해 완위각의 위치, 규모, 건물의 배치 등의 현황을 파악함과 동시에 향후 정비·복원 사업의 기초 자료를 마련하고자 시굴조사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동현 문화재위원은 이 날 조사작업을 통해 “국보급은 아니더라도 지방문화재 지정까지는 무리가 없을 것”이라며 “정확한 조사를 위해 확대·발굴 작업이 면밀히 진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해 완위각지의 문화재적 가치와 보존 및 정비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