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이상설 10

[단독]1910년 ‘성명회선언서’ 탄생한 이상설 선생 거주지 찾았다.

[단독]1910년 ‘성명회선언서’ 탄생한 이상설 선생 거주지 찾았다. [동아일보]유원모 기자 입력 2019-04-22 03:00수정 2019-04-22 03:29 ‘더채널’ 김광만 PD, 당시 러시아 경찰 비밀보고서에서 확인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 인근 위치… 연해주 독립운동 세력 중심지 역할 한인 8,624명 서명 성명회 창립… 일제 방해공작으로 한 달만에 해체 이후 권업회-대한광복군정부 거쳐 1919년 임시정부 한축으로 발전 ↑1910년 8월 23일(화) 한일 강제병합 소식을 들은 직후 러시아 연해주에 거주하던 한인 8,624명이 서명한 ‘성명회선언서’(왼쪽). 일제강점기 최초의 독립선언서로 평가받는 이 선언서가 작성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시의 이상설 거주지가 처음 확인됐다. 러시아 국립극동문서보관소에..

내손으로 뽑는 독립운동가 선정 온라인 국민투표 실시 중......

내손으로 뽑는 독립운동가 선정 온라인 국민투표 실시 중...... 국가 보훈처에서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지난 5년간 빅 데이터(뉴스, 블로그, 트위터)에 의한 139억 건을 분석하여 국민들의 관심도가 높은 314명의 독립운동가 중 48명의 후보에 오른 인물 중에서 ‘2019년 이달의 독립운동가’ 12명을 선정하기 위한 온라인 투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국민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독립운동가 '이상설'

[카드뉴스]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독립운동가 '이상설' 2017. 11. 11. 7:35 러시아 우수리스크, 수이푼 강에 자리 잡고 있는 비석에는 한 많은 독립운동가의 영령이 잠들고 있습니다.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헤이그 특사사건의 주역’ 이상설 선생의 일대기를 시민연대 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제작: 우리 역사바로잡기 시민연대 카드 뉴스팀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제공 nodistortion@naver.com

서전중고등학교

보재 이상설 애국·희생정신 깃든 서전중·서전고 개교 [중도일보]2017-05-24 10:38 보재 이상설(1870~1917) 선생이 만주에 세웠던 신학문 교육기관인 ‘서전서숙(瑞甸書塾)’의 역사성을 계승한 서전고와 서전중이 24일 진천군 덕산면 예자로 42(두춘리 2744)의 혁신도시에서 각각 개교식을 가졌다. 충북도교육청에 따르면 서전고는 1학년 8학급과 특수학급 1학급에 162명으로, 서전중은 1학년 4학급, 2학년 2학급, 3학년 1학급 등 7학급에 152명으로 지난 2017년 3월 2일 문을 열었다. 이들 학교의 명칭은 이상설 선생의 애국·희생정신의 교육열정을 본받자는 취지로 ‘상서로운 배움터’란 뜻을 지닌 서전으로 지어졌으며 학교교육과정이 안정궤도에 오면서 이날 개교식을 갖게 됐다. 전국 최초의..

보재 이상설 평전 출간

[MBN이 본 신간] 보재 이상설 평전 기사입력 2017-02-01 10:13 l 최종수정 2017-02-01 10:13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에 특사로 파견됐던 독립운동가 이상설(1870∼1917)의 삶을 조명한 책. 이상설의 이름은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이준, 이위종과 함께 네덜란드에 파견된 헤이그 특사의 일원 정도. 몽양 여운형, 우사 김규식, 위당 정인보 등 다양한 인물의 평전을 집필한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하고 독립운동사에 그리고 역사 교과서에 고딕체로 기록해야 하는 독립운동의 독보적인 선구자"라고 평가한다. 여순감옥에 갇혀 재판을 받던 안중근 의사는 이상설을 "세계대세에 통하고 동양의 시국을 간파하고 있다"고 전했다. 25살의 나이에 ..

보재 이상설선생 순국98주기 추모사진

보재 이상설선생 순국 98주기 추모행사 엄수 (사)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이재정이사장/경기도교육감) 주최와, 진천군유도회의 주관으로 2015년 4월 22일(수)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 134-2에 소재하는 이상설선생의 사당, 숭렬사에서 순국 98주기 추모행사가 제1부 제례, 제2부 기념식, 제3부 친교 및 오찬순으로 각 유관단체와 주민, 문중인사 200여명이 참석한가운데 엄수되었다. 이날 제례는 초헌관엔 김병우 충청북도교육감, 아헌관엔 김대훈청주보훈지청장, 종헌관엔 문중대표로 이상용 경주이씨 대전광역시화수회장의 순으로 이루어졌다. 이상설 선생은 1870년 진천읍 산척리에서 태어났고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이준·이위종 열사와 함께 국권 회복을 국제여론에 호소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10년 경술..

이상설(李相卨)

독립운동가 이상설 1870. 12. 7 충북 진천출생~1917. 3. 2. 연해주 니콜리스크에서 순국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의 특사로 파견되었으나 외교권이 없는 나라의 대표라는 제국주의 열강의 반대로 실패하고, 이후 각국에서 외교운동을 벌였다. 1914년 이동휘(李東輝)·이동녕(李東寧) 등과 함께 중국과 러시아령 등에 있는 동지를 모아 대한광복군정부를 세웠다. 본관은 경주. 자는 순오(舜五), 호는 보재(溥齋)이다. 관직생활 및 국권회복운동 아버지는 행우(行雨)이나, 1876년 용우(龍雨)의 양자로 입양되었다. 1894년 조선왕조 마지막 과거인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춘방시독관에 제수되고 다음해 비서감비서랑에 임명되었다. 1896년 성균관 교수가 되고, 탁지부재무관에 임명되었으며, 이무렵 헐버트와 친교를..

보재 이상설 선생 국적 없이 100주기 맞나

보재 이상설 선생 국적 없이 100주기 맞나 【진천=뉴시스】강신욱 기자기사등록 일시 [2013-04-25 09:02:46] 【진천=뉴시스】강신욱 기자 = 지난 22일 충북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 숭렬사에서 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린 이상설 선생 96주기 추모식에서 초헌관을 맡은 유영훈 진천군수가 참배하고 있다. photo@newsis.com 2013-04-25 【진천=뉴시스】강신욱 기자 = 충북 진천 출신 독립운동가로 이른바 '헤이그 밀사 사건'의 주역인 보재 이상설(1870~1917) 선생이 대한민국 국적 없이 100주기(周忌)를 맞을 처지에 놓였다. 진천군은 2017년 100주기를 앞두고 올해부터 숭모사업을 본격 추진하지만 정작 보재 선생은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하고 있다. (사)이상설선생..

보재 이상설선생 약사(溥齋李相卨先生略史)

보재 이상설선생 약사(溥齋 李相卨先生 略史) 조국(祖國)을 찾아 민족정기(民族正氣)를 세우려던 수많은 애국지사(愛國志士)중에서도 대표적인 지도자이며 큰 어른이 보재(溥齋)이상설(李相卨)이다. 이상설은 제국주의 열강(列强)이 한반도(韓半島)를 에워싸던 1870년(高宗7년), 음력 12월7일 오늘날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 산직(山尺里 山直)마을에서 선비 이행우(李行雨)와 벽진이씨(碧珍李氏)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자(字)는 순오(舜五), 호(號)는 보재(溥齋), 본관(本貫)은 경주(慶州)이다. 고려조(高麗朝)의 명유 익재 이제현(名儒 益齋 李齊賢)의 22대손(代孫)이 되며, 6세가 되던 1876년에 이조참의(吏曺參議)를 지내던 이용우(李龍雨)에게 출계(出系)하여 학문(學問)에 전심 하였다. 이상설은 2..

보재(溥齋) 이상설(李相卨)

▲보재(溥齋) 이상설(李相卨), 1870년(고종 7년). 1월 27일(음력12월 7일) ~ 1917년. 3월. 2일(음력 2월 9일 금요일) 보재(溥齋) 이상설(李相卨)선생은 1870년 1월 27일(음력 12월 7일) 충북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 산직마을에서 경주 이씨 이행우(李行雨) 선생과 벽진이씨(碧珍李氏)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7세때 이조(吏曹)와 형조참의(刑曹參議)를 지낸 동부승지(同副承旨) 이용우(李龍雨)선생의 양자로 출계(出系)되어 서울로 상경한 그는 한학을 공부하는 한편, 독학으로 신학문을 깨우치는 등 두뇌가 명석하고 학문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였다. 25세 때인 1894년에는 조선의 마지막 과거인 갑오문과에 급제하여 27세에 성균관 관장, 한성사범학교 교관 등을 역임하였다. 선생은 일제의 황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