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한민족의 뿌리 31

남인도에서 석탈해와 신라 6촌장을 만나다.

2013년 2월 23일자 불교신문에 게재 된 매우 흥미로운 석탈해왕과 신라 6촌장에 관한 자료. 특집 ④ 남인도에서 석탈해와 신라 6촌장을 만나다 정찬주의 남인도 불교유적 기행. 마두라이를 떠난 일행은 벨란카니(Velankanni)에 도착하여 숙소에 든다. 네온사인으로 빛나는 호텔 이름도 벨란카니(Vailankanni)다. 지도를 보니 남인도에서 유일하게 10세기 초반까지 불교가 융성했던 나가파티남(Nagapattinam)으로부터 남쪽으로 8km 지점이다. 첸나이박물관에 소장된 불교유물 가운데 빼어난 불상들은 대부분 나가파티남에서 발굴된 보물들인 것이다. 현재 나가파티남은 우리나라 소읍 정도이고, 벨란카니는 그보다 더 작은 인구 5000 명이 조금 넘는다고 한다. 벨란카니에 석탈해 후손이 산다. "신라 ..

"표암 암각화는 신라 만월부인의 작품"

박대재 고려대 교수 추정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지난해 경주시 동천동 표암(瓢巖) 바위 표면에서 발견된 불당, 불탑, 불번(깃발) 등의 선각화는 신라 35대 경덕왕의 후비(後妃)인 만월부인(滿月夫人=신라 제35대 경덕왕의 後妃 金氏)이 아들을 낳고자 하는 기원을 담아 남긴 그림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한국고대사 전공인 박대재 고려대 교수는 7일 경주 보문단지 현대호텔에서 동국대 신라문화연구소가 주최한 '새로 발견된 표암 암각화'라는 발표문에서 이들 암각화와 함께 발견된 문자를 "天寶二年滿月夫人干子上世也"라고 판독하면서 이같이 추정했다. 박 교수는 판독에 논란이 분분한 문자를 이처럼 읽어낼 수 있다고 하면서 이 구절은 "천보 2년(서기 743)에 만월부인이 천상세존(天上世存. 부처)께 아들을 기원..

韓國사람들의 創造力-초대 부통령 이시영

■ 韓國 사람의 創造力 韓國 사람의 創造力이 優越(우월)하며. 決코 他民族에 뒤지지 않음을 일일이 列擧(열거)할 수 없으나 大略 世界的으로 第一 앞선 것을 골라 말 한다면 다음과 같다. 저 高麗의 빽빽하게 들어찬 (1)大藏經板(대장경판)은 멀리 900餘年 前의 일로써 그 美術的 價値의 精巧(정교)하고 微密(미밀)함은 世界 第一이다. 이 經板은 現在 陜川의 海印寺에 있는바 可히 世界的 珍本이다. 高麗의 鐵活字는 知白州事 徐贊이 創造한 것인데 지금부터 700餘年 前의 일이다. 李舜臣의 (2)거북선은 壬辰亂(1592~1598) 때 日本의 水軍 10萬名을 하루아침에 殲滅(섬멸) 시켰다. 英國(영국) 海軍省(해군성)에서 쓴 冊(책)에는 「韓國軍艦은 鐵板으로 뒤집어 쌌으며 모양이 마치 거북의 등처럼 생겼으며 前進 ..

韓民族의 言語⋅文字 및 道敎-이시영

韓民族의 言語⋅文字 및 道敎 韓族의 言語는 三國이 分立되어 있던 時代를 前後해서 大體로 統一되어 있었다. 그러나 土話는 統一하지 않은 말이 조금 있었다. 滿洲의 淸나라 乾隆皇帝①(1711~1799)는 『滿洲源流考』라는 冊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卽 金나라의 根源은 滿洲와 高麗이며 根本은 서로 同一한 것이다. 各 地方에 土話가 있기 때문에 서로 같지 않은 것이 있으나 三韓 (馬韓⋅ 辰韓⋅ 弁韓)의 官制 一稱에는 新羅 中葉 以前까지도 韓의 文字를 써 왔다고 하였다. 그리고 陳壽(西晉사람 233~297)가 쓴 『三國志』(二十五史의 하나)에서는 三韓의 官制가 牛馬와 같은 六畜의 이름을 딴 것이 있어(例 牛加⋅ 馬加) 鳥類의 名稱을 딴 中國 官制와는 다르다고 했으며, 發音을 音譯함에 있어서 傳會와 侮辱(모욕)을..

공자는 우리와 한핏줄인가?

■ 동의족(東夷族)과 공자 고대 한민족은 중국에 의해 동이족(東夷族)이라 불리어 젔 다. 오랑캐(夷)란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변방에 살던 미개한 부족들"이라고 나와 있다. 우리는 "오랑캐"라고 배웠으며, 또 지금까지 그렇게 알고 있다. 아래는 중국의 사서에 기록된 내용들이다. 1. "이(夷=오랑개 이)는 동쪽에 사는 사람들이며, 활궁(弓)자와 큰 대(大)에서 따온 글자로, 그 사람들은 어질고 오 래 살며, 죽지 않는 군자가 있는 나라이다." 2.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순리(順理)를 따르는 성향이 있으나, 오직 동이(東夷)만이 큰 것을 따르니 대인이다. (惟東夷從大大人也) 이(夷)의 풍속은 어질고, 어진 사람은 오래 살기 마련이기 때문에(그곳은), 죽지 않는 군자 가 있는 나라이다. (夷俗仁仁者壽故..

한민족의 혈통형성과 몽골지역

■ 한민족의 혈통형성과 몽골지역 세상의 어느 민족이고간에 순수한 혈통임을 내세우는 것처럼 어리석은 주장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민족도 고대에 복잡한 민족 형성과정을 거쳐서 대략 고려초기에 현재의 혈통으로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90년대 동구제국이 개방되고 난 후, 한국의 사학계에선 이전부터 한민족의 뿌리로 여겨졌던 몽골지역에 대한 관심이 들끓었던 적이 있었다. 여러 학계와 언론등에서 한민족 혈통루트를 예상하는 답사의 정점으로 몽골과 중앙아시아지역을 꼽고 이들 지역과 주민들의 혈통을 우리 민족과 꿰맞추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대부분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맞이하곤 이들 지역과 한민족의 고대사 연루에 대한 의문은 미제상태로 남겨졌다. 아니 오히려 이 지역과 한민족의 공통성이 크게 후퇴하는 결과가..

유물·유적 통해 추적해본 한민족의 뿌리

한겨레2009.12.21 17:15 유물·유적을 통해 추적해본 한민족의 뿌리 독일TV ZDF의 다큐멘터리 시리즈 ‘스핑크스, 역사의 비밀’ 중 ‘잃어버린 고리 찾기’ 편은 375년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을 촉발해 로마제국을 멸망시킨 아시아 유목민족 훈족을 집중적으로 추적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훈족의 원류가 아시아 최동단, 즉 한국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실제 신라 및 가야인과 훈족의 유물, 유적 등을 비교해보면 편두(扁頭, 일명 납작머리)와 금관 머리장식 등 여러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김진삼 회백이 동양적 외모를 살려 그린 아틸라 초상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때 당나라를 끌어들였다는 점은 우리의 과거사에서 가장 아쉬운 대목 중 하나다. 통일에 외세를 개입시킨 나쁜 선례를 남긴 데다, 고구려의 광대..

天字文

■ 천자문(千字文) 天(하늘 천) 地(땅 지) 玄(검을 현) 黃(누를 황) 하늘은 위에 있어 그 빛이 검고 땅은 아래 있어서 그 빛이 누르다. 宇(집 우) 宙(집 주) 洪(넓을 홍) 荒(거칠 황) 하늘과 땅 사이는 넓고 커서 끝이 없다. 즉 세상의 넓음을 말한다. 日(날 일) 月(달 월) 盈(찰 영) 仄(기울 측) 해는 서쪽으로 기울고 달도 차면 점차 이지러진다. 즉 우주의 진리를 말한다. 辰(별 진) 宿(잘 숙) 列(벌일 열) 張(베풀 장) 성좌가 해 달과 같이 하늘에 넓게 벌려져 있음을 말한다. 寒(찰 한) 來(올 래) 暑(더울 서) 往(갈 왕) 찬 것이 오면 더운 것이 가고 더운 것이 오면 찬 것이 간다. 즉 사철의 바뀜을 말한다. 秋(가을 추) 收(거둘 수) 冬(겨울 동) 藏(감출 장) 가을에 곡..

한민족의 원류 – 고리(稿離) 국

한민족의 원류 – 고리(稿離) 국 한국인의 三大조상 민족 : 맥(貊), 예(穢), 한(韓), 일본 국민 작가 시바 료타로(司馬 遼太郞 )가 항상 고민하던 문제 중의 하나가 “일본국민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였다고 한다. 이런 화두가 그런 대작가의 전매물만은 아니다. 퉁구스 족에 속해 있고 우랄알타이 어에 속하는 언어를 쓰는 한국국민들도 우리가 도대체 어디서 왔는가에 대한 문제에 한번 관심을 가져 봤을 법하다. 이 의문이 일어나면 우리 모두는 일제히 심리적으로 북쪽을 올려다본다. 한반도 북쪽 저 광활한 대륙 어느 쪽에서 왔을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의문을 가져 보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수학 공식 같은 확실한 정답은 현재 없다. 아직 한국민족에게 문자가 없던 때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저 역사..

낙랑군과 낙랑국의 차이

■ 낙랑군과 낙랑국의 차이는 무엇인가 ㅣ 2004. 09. 30 :00:24 1. 독립된 나라인 '국(國)'과 한 나라의 행정구역인 '군(郡)'은 엄연히 다릅니다. 그런데 왜 낙랑'군'과 낙랑'국'을 구 분하지 않고 가르치십니까? 2.『삼국사기』「고구려본기」에 보면, 낙랑'왕'(王)인 최리(崔里)가 옥저 지방에서 고구려의 호동왕자를 만나 고 왕자에게 "혹시 북쪽 나라(북국. 北國) 사람이 아닌가?"하고 물은 뒤 그를 데리고 돌아와 사위로 삼지 않습 니까? 그렇다면 ― 낙랑왕은 고구려를 자기네 북쪽에 있는 나라로 보았으므로 ― 낙랑'국'(國)은 고구려의 남쪽에 있 어야 하지 않는가요? 따라서 평안도에 있는 낙랑 유물들은 낙랑'국'(國)의 유물이어야 하지 않습니까? 왜 이 것들이 낙랑'군'의 유물이라고 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