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상고사(上古史) 27

中國 10세 소년, 6.600만년 전 백악기 공룡알 화석 발견

中國 10세 소년, 6.600만년 전 백악기 공룡알 화석 발견 [서울신문 나우뉴스] 2019. 7. 29. 16:00 중국에서 약 6.600만 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공룡알 화석이 둥지 채 발견됐다. 중국 허위안라디오텔레비전은 지난 2019년 7월 23일(현지시간) 광둥성 허위안시의 한 초등학생이 동강( 江) 인근에서 놀다 공룡알 화석을 발견해 신고했다고 전했다. 지역 내 초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장양저(仰喆, 10)는 이날 어머니와 함께 강둑을 거닐던 중 흙 속에서 특이한 모양의 돌 하나를 발견했다. 또래의 다른 학생이었다면 무심코 넘길 수도 있었지만, 평소 공룡에 관심이 많았던 소년은 이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고 자세히 살핀 뒤 공룡알임을 확신했다. 학생의 어머니는 “아들이 공룡알이 있다고 알려 살..

신라 육촌은 고조선의 유민들

■ 신라 육촌 朝鮮遺民分居山谷之間爲六村 (조선유민분거산곡지간위육촌) ◇고조선의 유민들이 남쪽으로 내려와 산을 경계로 육촌을 이루었다. 신라는 고조선을 계승한 나라로 마한에 조공을 바치던 미약한 나라가 남쪽으로 남하한 고조선 유민들로부터 선진문화를 전승하여 제철, 도자, 마필, 농업 등의 경제기술이 집약된 단위 공동체의 육촌을 이루었고 지식, 기술적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다. 4-5세기경에 축조된 거대한 적석목곽분에서 출토된 엄청난 철제와 황금유물은 바로 북방 문화의 신라화를 입증하는 것이다. ↑사진 : 황남대총 북분 출토 금관, 신라시대 대형고분에서 출토된 황금유물들은 북방문화의 신라화를 입증하는 증거이다. ↑사진 : 천마총 출토 금제 관모 ↑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신라역사관 내에 전시된 철제 말머리가..

탈해 왕릉의 불편한 진실과 팔각 석 기둥의 비밀

탈해 왕릉의 불편한 진실과 팔각 석 기둥의 비밀 ■ 경주시 동천동의 탈해 왕릉 경주시 동천동 소금강산 자락에는 경주 이씨의 시조 알평공의 탄강지가 있는 표암이 있고 그 옆에는 아이러니하게도 경주 석씨의 시조인 신라 제4대 탈해 이사금(재위 57∼80)의 능이 있습니다. 경주이씨 시조 알평공을 제향한 사당인 악강묘와 표암재(좌), 표암재와 가까운 곳에 있는 탈해 왕릉 이러한 위치도 이상하지만 탈해 왕릉으로 비정한 마땅한 이유도 딱히 알 수가 없어 항상 의문을 가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경모 비각에서 본 표암재와 악강묘(상,좌), 표암재에서 본 경모비각(상,우), 경모 비각 뒤에 자리한 광임대와 경주 이씨 시조 발상지 비(하,좌), 광임대 안에 있는 초강지(下, 우) 이는 모두 경주이씨 시조 탄강지 권역에 위..

'倭(왜)'자에 대하여

'倭(왜)'자에 대하여 일본 관련역사 왜곡에 있어 '근본적으로 중요한 문제는'...바로 '倭(삥돌,왜)'자를 제대로 이해해야만 고대사가 비로소 제대로 풀립니다...즉, 단순히 '倭(왜나라, 왜)'자의 意味로만 보아버리면, 역사공부는 '그들(역사 왜곡 자들)이 정해준 방향(지금의 통설 같은 삼천포)'으로 갈 수 밖에 없게 되어 버리고 맙니다...간략히 논거하면 『'倭(왜)'자』 = 『意味要素로서 '亻(사람,人)'』 + 『音要素로서 '委(위)'』로 구성된 글자인데,.. 音要素로서 '委(위)'자는 같은 音인 '韋(둘레, 위)'의 意味를 代用한 것이므로...결국,『'倭(왜)'자의 意味』 = 『意味要素로서 '亻(사람,人)'』 + 『'韋(둘레, 위)'의 意味』가 된다. 즉 ‘倭(왜)=삥 둘러있는 사람들’을 말하는 ..

사로국(斯盧國)

■ 사로국(斯盧國) 진한(辰韓) 12국(國) 중의 하나로 나머지 진한 소국들을 통합하여 고대국가인 신라(新羅)로 발전하였다. ◇ 형성 및 변천 『삼국지(三國志)』권30 「위서동이전(三國志魏書東夷傳)」과 「한전(韓傳」을 보면 오늘날 영남 일대에 진변한(辰弁韓)으로 통칭되는 총 24개의 소국(小國) 명칭이 나열되어 있으며, 그중에 사로국(斯盧國)이 있다. 그런데 『삼국사기(三國史記)』를 보면, 신라 시조 혁거세(赫居世)의 건국신화가 기록되어 있는데, 서기전 57년 혁거세는 조선 유민들로 구성된 육촌민의 추대를 받아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서라벌(徐羅伐)이라 하였다고 한다. 한편, 『삼국유사(三國遺事) 』에는 혁거세가 나라를 세우는 과정이 매우 자세할 뿐만 아니라 서라벌(徐羅伐) 이라는 국호의 이칭으로 서벌(徐..

[추모경] BC39년 낙랑국은 남옥저...

[추모경] BC39년 낙랑국은 남옥저... 三月 以漢素爲太師 賜金魚大綬章 以加菽公妃萱花公主 順奴王妃乙旃公主 武骨公妃仲室夫人爲天后 賜翟服金魚玉馬金尺大綬章重各七十斤 以奧犍爲順奴王 奧命比如候 奧春靑河伯 各賜金印玉章 是月 召西奴生女阿爾 與樂浪王柴吉定界 柴吉欲得奄東盖斯之地曰 "我本南沃沮也 願得沃沮故地" 上許之 烏伊諫曰 "吾等攘曷而得地 柴吉坐領此地可乎 不如伐之" 上曰 "柴吉小虜也 驕而無謀 姑安之而擒之未晚 末曷雖喪其衆 必來報復 不可不備也 且黃龍荇人卒本沸流等皆是强敵也 不可與小虜先爭而損耗也 吾聞延陀勃病不能視事 其女召西奴代政 而年少自危 可以計取之 然後北定沸流西壓黃龍 則吾計可就矣" 烏伊服之 3월, 漢素(한소)를 太師(태사)로 삼아, 金魚大綬章(금어대수장)을 하사하였다. 加菽公(가숙공)의 妃(비) 萱花公主(훤화공주)와 順奴王..

낙랑군의 멸망과 漢의 復郡

■ 낙랑군의 멸망과 漢의 復郡 二十七年甲寅,四月, 太子將兵東巡獵, 微行至新都(鴨口), 與女交好. 女爲之破鼓角而迎, 王師大軍自浮海而入拔其都, 虜夫妻而歸, 以其地爲. 自四世八十餘年而國除. 대무신 제27년(AD54) 갑인, 4월, 태자가 군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순수하며 사냥하다가, 미행하여 의 새 도읍(압구)에 이르러 의 딸과 좋아지내었더니, 그녀가 을 위해 고각을 망가뜨리고 (호동을 성 안으로) 받아들이니, 왕이 대군을 옥저(沃沮)에서부터 움직여 들어가서 그 도읍을 뿌리 뽑고 내외를 사로잡았더니 귀복하였고, 그 땅은 죽령군(竹苓郡)이 되었다. 은 로부터 4대 80여년 만에 나라의 문을 닫게 되었다. 十四年 高句麗王無恤 襲樂浪滅之 其國人五千來投 分居六部 유리왕 14년 고구려왕 무휼이 낙랑을 습격하여 멸망시키자..

환웅천왕이 바로 제곡 고신이었다.

환웅천왕이 바로 제곡 고신이었다. 신시(神市)ㆍ단군(檀君)의 시대는 중국 제곡(帝嚳)ㆍ요(堯)ㆍ순(舜)의 시대에 해당한다 [주01] 신시(神市) : 여기서 신시는 환웅을 가리킨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환웅(桓雄)이 무리 3천을 이끌 고 태백산정(太白山頂) 신단수(神檀樹) 아래로 내려왔다. 이를 신시라 하고 환웅 천왕이라 한다.” 하였다. 기언 제32권 원집 외편 >동사(東事) > 유웅씨(고마족)의 왕 헌원과 구려족의 왕 치우가 려산에서 결전을 벌이고 세월이 지난 뒤에 제곡고신이 등장한다. 주몽이 자신의 조상을 제곡고신이라고 하였는데 같은 제곡고신의 후손인 주나라 왕가와의 Y염색체를 비교해보니 과연 같은 Y염색체를 가지고 있었다. [주02] 환웅(桓雄) 환인의 서자(庶子)로서 속호(俗號)는 곤시씨(..

고고학으로 본 낙랑군

■ 고고학으로 본 낙랑군 낙랑군 인구통계 '목간'도 나와 北 학자들 "낙랑국 유적" 주장 일제에 의한 자료조작설도 기원전 108년 한나라 무제는 1년여의 힘겨운 전쟁 끝에 왕검성을 함락하고 고조선을 멸망시켰다. 한나라가 고조선의 옛 땅에 설치한 4개의 군현을 '한사군(漢四郡)'이라고 부른다. 중국 역사서 사기(史記)에는 당시 사건이 생생히 기록되어 있다. 이 중 낙랑군을 제외한 진번·임둔·현도군은 토착민의 반발로 수십 년 만에 통폐합되거나 외곽으로 쫓겨났다. 낙랑군만 서기 313년 고구려에 멸망될 때까지 420여년간 존속했다. 20세기 들어 일본 학자들은 식민사관의 정립 과정에서 낙랑군을 중국 왕조의 '식민지'로 주목하였다. 여기에 적극 부응한 것이 고고학이었다. 식민 지배의 기초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