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상고사(上古史)

[추모경] BC39년 낙랑국은 남옥저...

야촌(1) 2018. 6. 16. 04:59

[추모경] BC39년 낙랑국은 남옥저...

 

三月 以漢素爲太師 賜金魚大綬章 以加菽公妃萱花公主 順奴王妃乙旃公主 武骨公妃仲室夫人爲天后 賜翟服金魚玉馬金尺大綬章重各七十斤 以奧犍爲順奴王 奧命比如候 奧春靑河伯 各賜金印玉章 是月 召西奴生女阿爾 與樂浪王柴吉定界 柴吉欲得奄東盖斯之地曰 "我本南沃沮也 願得沃沮故地" 上許之 烏伊諫曰 "吾等攘曷而得地 柴吉坐領此地可乎 不如伐之" 上曰 "柴吉小虜也 驕而無謀 姑安之而擒之未晚 末曷雖喪其衆 必來報復 不可不備也 且黃龍荇人卒本沸流等皆是强敵也 不可與小虜先爭而損耗也 吾聞延陀勃病不能視事 其女召西奴代政 而年少自危 可以計取之 然後北定沸流西壓黃龍 則吾計可就矣" 烏伊服之

 

3월, 漢素(한소)를 太師(태사)로 삼아, 金魚大綬章(금어대수장)을 하사하였다. 加菽公(가숙공)의 妃(비) 萱花公主(훤화공주)와 順奴王(순노왕)의 妃(비) 乙旃公主(을전공주)와 武骨公(무골공)의 妃(비) 仲室夫人(중실부인)을 天后(천후)로 삼아, 翟服(적복)과 金魚玉馬(금어옥마)와 金尺大綬章(금척대수장) 重各(중각) 七十斤(70근)을 하사하였다.

 

奧犍(오건)을 順奴王(순노왕)으로 삼았고, 奧命(오명)을 比如候(비여후)로 삼았고, 奧春(오춘)을 靑河伯(청하백)으로 삼아, 각각 金印玉章(금인옥장)을 하사하였다.

 

이 달, 召西奴(소서노)는 딸 阿爾(아이)를 낳았다. 樂浪王(낙랑왕) 柴吉(시길)과 경계를 정하였다. 柴吉(시길)은 奄東(엄동)의 盖斯(개사)의 땅을 갖고 싶어서 말하길 "저희는 본래 南沃沮(남옥저)입니다.

 

沃沮故地(옥저고지)를 얻기를 원합니다." 라고 하였다. 상은 허락하였다. 烏伊(오이)가 간하길 "저희는 曷(갈)을 물리쳐서 땅을 얻었는데, 柴吉(시길)은 앉아서 이 땅을 차지하니 옳습니까?

 

그를 치는 것이 낫습니다"라고 하였다. 상이 말하길 "柴吉(시길)은 小虜(소로)이다. 교만하고 無謀(무모)하니, 잠시 그를 안심시켜 사로잡아도 늦지 않다. 비록 末曷(말갈)이 그 무리들을 잃었다고 하나, 필시 報復(보복)하러 올 터이니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되고, 또한 黃龍(황룡), 荇人(행인), 卒本(졸본), 沸流(비류)등은 모두 强敵(강적)이다.

 

小虜(소로)와 먼저 다툴 수 없고, 그러면 損耗(손노)하게 된다. 내가 듣기에 延陀勃(연타발)은 병으로 정사를 살필 수 없어, 그의 딸 召西奴(소서노)가 정사를 대신하지만, 나이가 어려서 스스로 위태로우니, 計(계)로서 그녀를 취할 만하다.

 

그런 然後(연후)에 북쪽으로 沸流(비류)를 평정하고, 서쪽으로 黃龍(황룡)을 누르면, 나의 계략은 성취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烏伊(오이)는 승복하였다.

 

◇壬午(임오, BC39년) 3월, 召西奴(소서노)는 딸 阿爾(아이)를 낳았다.

◇翟衣(적의)= 옛날 황후(皇后)가 입던, 붉은 비단(緋緞) 바탕에 청색(靑色)의 꿩을 수놓고 깃고대 둘레에 붉은 선

   은 두르고, 선 위에는 용(龍)이나 봉(鳳)을 그린 옷

◇損耗(손노)= 써서 닳아 없어짐

 

출처 : 역사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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