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만사. 만장 18

충정공 김덕함(忠貞公 金德諴)에 대한 만사(挽詞)

충정공 김덕함 전장만사(忠貞公 金德諴 遷葬 挽詞. 1562년(명종 17) ∼ 1636년(인조 14) 遷葬挽詞/李慶徽(이경휘) 禍迫金墉日。公爲抗義臣。一言扶社稷。千古植彝倫。栫棘投荒裔。遭逢際盛辰。鳳來徵有道。玉立逈無塵。終始知何憾。貞孤志不磷。少從牀下拜。如見卷中人。逝水長留感。遺風尙隔晨。易名恩奬大。遷隧葬儀新。白日佳城啓。寒山素翣陳。九原那可作。題挽重沾巾。 [문헌자료] : 醒翁先生遺稿卷之四○別集 ----------------------------------------------------------------------------------------------------------------------------------- 遷葬挽詞/李慶億(이경억) 良玉精金學士眞。一言當日正彝倫。淸時異渥官銜貴。亂後他山宰樹春。已喜新岡稱吉地..

김재석 선생의 만장(金在錫/英陽人)과 간찰

영천출신의 학자로《希巖遺稿》를 남긴 희암(希岩) 김재석(金在錫/英陽人) 선생의 丁未(1907)年 간찰과 만장(挽章)이다. 44 × 20.8cm 등 ●김재석(金在錫), 1857~1925.때의 유학자.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극중(極中), 호는 희암(希岩). 용산(龍山) 우성(宇聲)의 아들로 막내숙부 연호(蓮湖)에게 처음 글을 배웠고, 뒤에 종형 재명(在明)에게 배웠다. 이만인(李晩寅)의 문인으로 자질이 매우 영특하였으며,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어, 나이가 들어갈수록 학문의 경지가 더욱 깊었다. 과거에 낙방한 뒤로는 독서와 과농(課農)을 지도하는데 힘썼다. 경북 영천에는 김재석(金在錫)을 기리는 원관정(遠觀亭)과 그의 형, 김재영(金在濚)을 기리는 난포정(蘭圃亭)이 세워져 있다.

만사와 만장이란?

만사(挽詞)란? 죽은 사람을 애도하여 지은 글을 천이나 종이에 적어 깃발처럼 만든 것. 만장(挽章)이란? 죽은 사람을 슬퍼하여 지은 글을 천이나 종이에 적어 깃발처럼 만든 것. 크기>가로 39cm x세로 1m 15cm 크기>가로 39cm x세로 1m 15cm 일제강점기 慈善. 育英事業家 誠菴 孫昌源 장례시 挽章 2점이다. 한말의 巨商이며 京城孤兒院에 백미 30석을 매년 기증하고 1921년 避病院建立基金 2000원을 기부하고 1922년 경기도 고양에 인창고등학교의 前身인 仁昌義塾을 설립하였던 육영사업가 성암 손창원(1860 ~ 1926) 葬禮時 사업가 李思欽, 敎育者 朴健鍾이 쓴 만장 2점인데. 두터운 한지에 목판 양식의 종이에 썼다.

권국재(權菊齊)의 만사(挽詞) - 이제현

익재난고 제4권 ■ 문정공(文正公) 권 국재(權菊齊)의 만사(挽詞)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 청화한 관직 거쳐 상태에 이르니 / 揚歷淸華到上台 임금은 오로지 동량같이 여기네 / 君王獨倚棟樑材 시서는 집에 가득해도 번소 같은 첩이 없고 / 詩書滿屋無樊素 잠리가 많은 중에 노래 같은 자손이 있네 / 簪履盈門有老箂 천세의 학은 삼교의 달에 돌아갔고 / 千歲鶴歸三嶠月 구연의 용이 오경의 우뢰(雨雷)에 변했네 / 九淵龍化五更雷 재주 없어 높은 덕을 명할 수 없고 / 才疏未足銘淸德 옥경대 옛 생각에 눈물만 뿌리네 / 淚酒當年玉鏡臺 평생에 덕망과 지위를 겸전하였고 / 平生德爵已雙全 수명은 곽분양(郭汾陽)보다 일 년이 더하네 / 壽比汾陽更一年 좌망이지 질병은 아니라 여겼는데 / 將謂坐忘非示病 시해하여 도선할 줄 어이..

백사선생에 대한 만사/상촌 신흠

상촌 선생 집 제11권>시(詩)○오언배율(五言排律) ■ 백사 상공에 대한 만사[挽白沙相公] 2수 세상에 남 늦었다 말하지 말자 / 生世休言晩 내 오히려 이 공을 만나보았네 / 吾猶及此公 담박한 흉금 본디 시원하였고 / 冲襟元洒落 툭 트인 풍도 절로 깊고도 높아 / 曠度自深崇 만물 함께 사라져 몸 관계 없고 / 物化身何與 사람 죽어도 도는 무궁하다네 / 人亡道不窮 어쩌다 세상 온 건 꿈이었고요 / 倘來曾是幻 때마침 되돌아가 형적이 없네 / 適去任成空 강물은 흘러 흘러 끝이 없는데 / 江漢流無盡 기상에 적힌 공적 이미 풍성해 / 旂常績已豐 침문의 통곡 속에 마음 서글퍼 / 傷心寢門慟 머리 들어 서풍을 향해 그리네 / 矯首遡西風 지난해 평구에서 작별할 적에 / 去歲平丘別 땅바닥에 섶 깔고 함께 앉았지 / 班荊..

멀리 있는 선산의 옥산(玉山) 이우(李瑀) 죽음을 애도하며 -최립

■멀리 이 고부 계헌(李古阜季獻)의 죽음을 애도하며 옥산 이우는 율곡의 아우로 형의 그늘에 가려진 당대의 천재였다. 나와 율곡 공의 교분으로 말한다면 / 余於栗谷公 그야말로 형제나 다름이 없었는데 / 交義實弟兄 계헌은 바로 공의 막내 동생이라 / 季獻其少弟 어린아이 때부터 돌보아 주었다오 / 撫視自孩嬰 수려한 그 용모 얼마나 멋있었던가 / 眉眼瑩可念 예에 노닐며 글씨로 이름 날렸나니/ 游藝以書鳴 장인 어르신은 바로 매학 노인장/ 作贅梅鶴翁 초성의 명성과 거의 비등하였다네/ 草聖幾齊名 우리 율곡 공이 세상을 등진 뒤론 / 一自公亡後 사학의 성취를 한참 보지 못했는데 / 阻觀仕學成 마침 내가 남쪽 고을 맡고 있던 날 / 適余南州日 계헌은 병산의 청렴한 원님이었다오 / 作縣屛山淸 시관(試官)으로 여유가 많았던..

菊齋 權 文正公 挽詞(權溥)/益齋 李齊賢 撰

菊齋權文正公挽詞(權溥) 지은이 : 益齋 李齊賢 揚歷淸華到上台(양력청화도상태) / 청직 화직 다 지내고 정승에 올라 ? 君王獨倚棟梁材(군왕독의동량재) / 임금께서 나라의 대들보로 여기셨도다. 詩書滿屋無樊素(시서만옥무번소) / 시서가 집에 가득하나 노래 잘하는 번소는 없고 簪履盈門有老萊(잠리영문유로래) / 벼슬 높은 자손 중에는 노래자같은 효자도 있었다. 千歲鶴歸三嶠月(천세학귀삼교월) / 천 년 만에 학은 삼교의 달로 돌아갔고 九淵龍化五更雷(구연룡화오경뢰) / 구연의 용이 오경 우뢰로 변화했다네. 才疏未足銘淸德(재소미족명청덕) / 서투른 재주로 맑은 덕을 만족하게 비명으로 짓지 못하니 淚?當年玉鏡臺(루쇄당년옥경대) / 예 갖추어 사위되던 옛날 생각에 눈물을 뿌립니다. 익재난고> 益齋亂稿卷第四>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