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보재이상설선생. 158

안중근 의사가 가장 존경한 이상설

도마 안중근(1879~1910) 의사가 가장 존경했던 인물은 누구일까?. 그건 백범 김구도, 몽양 여운형도, 우남 이승만도 아니었다. 안중근 의사는 뤼순 감옥에 수감돼 있을 때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은 이상설이다. 이범윤 같은 의병장 1만이 모여도 이 한 분에 미치지 못한다” 고 말한 바 있다. 식민지 시대, 숱한 항일 인사들 중에서도 안중근은 유독 ‘이상설(1870~1917)’을 꼽았다. 그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중국 뤼순 감옥에 수감돼 있던 안중근 의사. ⓒ중앙포토 ↑러시아 우수리스크에서 남쪽 크라스키노로 세 시간 버스를 달려서 만난 안중근 의사의 단지동맹비. 멀리 보이는 검정 비석에 안 의사의 단지한 손바닥이 새겨져 있다. 내년 '3·1 독립만세운동 100주년'을 ..

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약사

수신 : 정제우 박사 2020. 04. 05(일요일) (jeu7285@hanmail.net 제목 : 보재 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약사 이메일 송부 건 1.반갑습니다. 오랜만입니다. 아래와 같이 이상설선생 기념사업회 약사를 보내오니 참조 바랍니다. ----------------------------------------------------------------------------------------------------------------------- ■ 보재 이상설(溥齋 李相卨), [문과] 고종(高宗) 31년(1894) 갑오(甲午)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2위(12/57) [생년] 1870년(고종 7년). 1월 27일(음력12월 7일) [졸년] 1917년. 3월. 2일(음력 2월 9일 금요일) 최..

[단독]1910년 ‘성명회선언서’ 탄생한 이상설 선생 거주지 찾았다.

[단독]1910년 ‘성명회선언서’ 탄생한 이상설 선생 거주지 찾았다. [동아일보]유원모 기자 입력 2019-04-22 03:00수정 2019-04-22 03:29 ‘더채널’ 김광만 PD, 당시 러시아 경찰 비밀보고서에서 확인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 인근 위치… 연해주 독립운동 세력 중심지 역할 한인 8,624명 서명 성명회 창립… 일제 방해공작으로 한 달만에 해체 이후 권업회-대한광복군정부 거쳐 1919년 임시정부 한축으로 발전 ↑1910년 8월 23일(화) 한일 강제병합 소식을 들은 직후 러시아 연해주에 거주하던 한인 8,624명이 서명한 ‘성명회선언서’(왼쪽). 일제강점기 최초의 독립선언서로 평가받는 이 선언서가 작성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시의 이상설 거주지가 처음 확인됐다. 러시아 국립극동문서보관소에..

한국 근대수학의 개척자 – 이상설

[한국 근대수학의 개척자 – 이상설①] 베델 “신구학문 겸비 당대 제일 학자” 평가 [아시아기자협회] 2018. 07.23 [아시아엔=이상구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 19세기 말 서양선교사를 통하여 서양 수학과 과학이 조선에 들어왔다. 1883년 뮐렌도르프(P. G. von Möllendorff, 穆麟德, 1848~1901)의 추천으로 최초의 관립 영어교육기관 동문학(同文學通辯學校, 1883년 8월)이 세워지고, 영국인 핼리팍스(T. H. Hallifax, 奚來百士, 1842~1908)가 그 해 11월에 부임하여 주도적으로 학교를 운영하였다. 동문학에서는 영어, 일어, 필산(筆算)을 가르쳤다. 해관(海關) 업무를 위한 학교이므로 간단한 계산법을 가르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독교 선교사들이 전도를 위하여 설..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독립운동가 '이상설'

[카드뉴스]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독립운동가 '이상설' 2017. 11. 11. 7:35 러시아 우수리스크, 수이푼 강에 자리 잡고 있는 비석에는 한 많은 독립운동가의 영령이 잠들고 있습니다.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헤이그 특사사건의 주역’ 이상설 선생의 일대기를 시민연대 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제작: 우리 역사바로잡기 시민연대 카드 뉴스팀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제공 nodistortion@naver.com

헤이그 특사 이상설 신간 출간|

To : 제위 분들께 세상에는 예나 지금이나 늘 배신자(背信者)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5천년 우리 역사에 배신자가 단, 국경인(鞠景仁, ? ~1592, 선조 25) 한사람 뿐이겠는가! 이들은 나라가 풍전 등화 일때도, 나라는 생각 하질 않고, 오직 저만 잘 살자고, 나라를 배신한 것이다. 구 한말 나라를 팔아 먹은 매국노 을사오적(乙巳五賊)의 학부대신 이완용(李完用, 1858~1926/牛峰人), 외부대신 박제순(朴齊純,1858∼1916/潘南人., 내부대신 이지용(李址鎔,1870∼1928/全州人), 군부대신 이근택(李根澤,1865~1919/全州人), 농상공부대신 권중현(權重顯,1854~1934/安東人)이 대표적인 배신자들이지만, 이들은 아직도 매국노와 배신자로 낙인찍혀 자자손손 사람들의 뇌리에 잊혀지지 않..

[이창호 칼럼] 보재 이상설, 순국 100주년에 붙임|

[이창호 칼럼] 보재 이상설, 순국 100주년에 붙임 [생졸년] 1870(고종 7)∼1917.(향년 48세) 승인 2017. 08.28 15:05:08 금천뉴스 노익희 기자 | gcns05@daum.ne [금천뉴스 노익희 선임기자] 올해 2017년은 보재 이상설이 순국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다. ‘보재 이상설’이라고 하면 아마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설령 이상설을 안다고 하여도 헤이그 특사의 일원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최초의 망명정부인 대한광복군정부를 세웠던, 독립운동사에 그리고 역사교과서에 선명히 기록되어야 할 독립운동의 독보적인 선구자다. 1870년 충청북도 진천에서 태어난 이상설은 시대를 뛰어넘는 냉철한 지성을 지녔던 독립지사다. 이상설은 10대 시절부터..

순국 100주기 이상설 "100억 재산으로 독립운동 투신"

[뉴시스]순국100주기 이상설"100억 재산으로 독립운동 투신" 강신욱 기자입력 2017.08.10. 16:40 박걸순 교수 "순국일 1917년 4월1일이 맞다" "안중근 의거 실질 배후로 동양평화론 영향“ [청주=뉴시스] 강신욱 기자 = 박걸순 충북대 사학과 교수는 올해로 순국 100주기를 맞은 보재 이상설 선생이 고향인 충북 진천에 현 시가로 100억원에 이르는 재산가였음을 1901년 '충청북도 진천군 양안' 분석을 통해 밝혀냈다. 사진은 진천군 초평면 금곡리 양안의 이상설 선생 소유 토지 현황(왼쪽)과 선생의 부고 기사가 보도된 1917년 4월17일 자 매일신보. 2017.08.10. (사진=박걸순 교수 제공) photo@newsis.com [청주=뉴시스] 강신욱 기자='헤이그 특사'인 독립운동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