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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복(三伏)

야촌(1) 2006. 8. 6. 20:46

■ 삼복(三伏)

 

삼복(三伏)은 음력(陰曆)의 개념이 아닌 양력(陽曆)의 개념을 적용한 것으로 초복(初伏)은 하지(夏至)로 부터 세번째 돌아오는 경일(庚日)이고, 중복(中伏)은 네번째 경일(庚日)이며, 말복(末伏)은 입추(立秋)로 부터 첫번째 경일(庚日)이다.

 

그리고 경일(庚日)이란 60 甲子 중에서 경(庚)자로 시작되는 날을 말합니다. 그런데 삼복과 관련하여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 조선의 정조와 순조 시대의 학자인 홍석모의 저서를 말함)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복(伏)날 먹는 음식으로 개를 푹 삶아 파를넣고 끓인것을 개장이라하고 하는데 이것에 닭이나 죽순을 넣으면 더욱 좋고 또 개국에 고추가루를 타서 밥을 말아 시절(계절)음식으로 먹고 땀을 흘리고 나면 더위를 물리 치게되며 또한 몸이 허한것을 보강할수 있다한다. 그리고 이것은 시장(市場)에서 많이 판다고 기록되 있다.

 

그리고 사기(史記)에 의하면 진덕공 2년에 비로소 삼복(三伏),제사를 지내는데 성안의 4대문(四大門)에서 개를잡아 충재(蟲災)를 막았다고 했다. 그래서 개 잡는 일이 복날의 옛 행사요. 지금까지의 풍습에도 개장이 삼복중의 제일좋은 음식으로 자리잡게 된것같다.

 

또 조선의 영조와 정조때의 실학자인 유득공이 지은 경도잡지(京都雜志)에도 위와 비슷한 내용이 기록되 있고 정조때 학자 김매순이 지은 열양세시기(列陽歲時記)는 이렇게 적고있다. 개를 잡아서 삶은국을 끓여 양기(陽氣)를 돕고 팥죽으로서 여역(廬疫)을 예방 한다고 적고있다. 속담에 대추나무는 삼복에 열매가 열리는데 비가오면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고 한다.

 

충청도 청산(淸山 : 충북 옥천군 청산면)과 보은의 두 고을엔 지리적으로 대추가 잘 열려 옛부터 그것으로 생업을 삼기에 적당하고 따라서 그곳을 지나다 보면 많은 대추밭이 보이곤 했는데 이곳 사람들은 당시 혼인 비용과 의식(衣食)문제 까지 이 대추로 해결 하기가 충분했다 한다.

 

따라서 때론 떠벌이기를 좋아하는자가 이를 풍자해서 조선말에 삼복에 비오면 보은 처녀의 눈물이 비오듯 쏟아진다고 했다 한다.

 

[참고]

 

●홍석모(洪錫謨)

생몰년은 미상이다.풍산(豊山)홍씨로 조선 순조 때의 학자學者)이다.

자(字)는 경부(敬敷)요. 호(號)는 도애(陶厓)로 대제학(大提學),양호(良浩)의 손자다.

그는 음서(陰敍)로 부사(府史)를 역임했다.

 

◇사기(史記) : 중국 한나라때의 학자인 사마천이 지은책.

◇충재(蟲災) : 해충으로 인하여 생기는 농작물의 재앙.

◇유득공(柳得恭) : 1749(영조25)~1807(순조 12)

 

문화 유씨(文化柳氏)로 자(字)는 혜보(惠甫),또는 혜풍(惠風),호(號)를 영재, 영암, 고운당, 고운거사, 가상루(歌商樓, 冷齋,

冷庵, 古芸堂, 古芸居士) 등으로 진사(進士),흔(아름다운 옥흔)의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고 그의 증조부와 외조부가 서자였기 때문에 서얼 출신의 신분 이였다.

 

그리고 선생 께서는 아버지가 일찍 요절하여 어머니 밑에서 자랐고 18세 되던 나이에 숙부인 유련(柳璉)의 영향을 받아 시짓기를 배웠고, 20세세가 지나자, 이덕무(李德懋), 박제가(朴齊家), 이서구(李書九)와 교유하기 시작하여 그들과 함께 건연집(巾衍集)이라는 사가시집(四家詩集)을 내었으며,1774년 (영조 50)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生員)이 되었고 1779년 그의 나이 30세 되던 해 비로소 신분 제약에서 벗으나 규장각 검서에 올랐다.

 

그 후 포천현감, 양근과 가평의 군수를 지냈고 말년에는 첨지추부사, 풍천도호 부사를 지내다,

정조가 승하하자 벼슬을 버리고 은거 하시다, 58세를 일기로 세상을 가셨는데 산소는 지금의 의정부시 송산동에 있다.

 

선생께서는 본인의 시문을 모은 영재집과, 한국의 역대 시문을 엮은 동시맹(東詩萌:1772년간)이 있고 그후 1777년에 중국 여행과 관련된 것으로 청나라 문사들의 시문을 모은 중주십일가시선(中州十一家詩選)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이분은 시인 이였지만 훌륭한 시를 짓기 위해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문학 작품들을 섭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는데 따라서 중국서적 및 몽골,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타이완, 일본, 서양의 영국 네델란드 까지 관심을 가짐으로서 중국 일변도의 세계관에서 벗어 날수 있었고 비록 그의 역사관이 체계적으로 보여 주는 것은 없지만 "발해고"와 "사군지"를 저술하여 한국 사학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김매순(金邁淳)

안동 김씨로 1776(영조52)-1840(현종6)때의 사람이다. 자(字)는 덕수(德,늙은이수)이고,호(號)는 대산(臺山)이다.

군수(郡首),범행(範行)의 손자(孫子)요, 참봉(參奉)이용(履鏞)의 아들이다.

 

1795(정조 19년),정시문과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사인을 그쳐 예조 참판을 지냈고 1821(순조21)년에는 강화부 유수를 지냈다. 고종 때 판서에 추증되고 시호(諡號)는 문청(文淸)이다. 덕행(德行)으로 이름났으며 문장에 뛰어나 여한십대가(麗韓十大家)의 한사람이다.

 

문집(文集)으로 대산집(臺山集)이 있고, 저서엔 전여일록(篆餘日錄), 대산공 이점록(臺山公 移占錄), 주자대전차문표보(朱子大全箚問標補) 열량세시기(洌陽歲時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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