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한시(漢詩)

동창이 밝았느냐?-南九萬

야촌(1) 2005. 8. 25. 18:22

■ 동창이 밝았느냐?

 

지은이 : 남구만(南九萬)/(인조7년 1629 - 숙종37년 1711)

 

동창(東窓)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희는 상기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니...^^

 

●지은이의 약사(略史)

 

조선 중기의 문신·서예가. 자는 운로(雲路), 호는 약천(藥泉)·미재(美齋). 본관은 의령(宜寧). 송준길(宋浚吉)의 문인(門人)으로 1656년(효종7)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정언(正言)· 이조정랑(吏曹正郎)을 지냈으며, 사인(舍人)· 함경감사(咸鏡監司) 등을 거쳐 1687년(숙종13) 영의정에 이르렀다.

 

1674년(현종15) 함경도 관찰사로 있으면서 유학(儒學)을 진흥시켰고 변경의 사정을 연구하여 무산부(茂山府)를 설치했으며 갑산(甲山)·길주(吉州) 사이에 새 도로를 만들고 변방수비에 힘썼다.

 

1683년 병조판서 때에는 폐사군(廢四郡)의 복치(復置)를 주장하여 무창(茂昌)· 자성(慈城)의 2군을 설치하

였다. 그 무렵 서인(西人)이 노(老)·소(少)로 분열되자 소론의 영수(領袖)가 되었다.

 

1701년(숙종 27) 희빈(禧嬪) 장씨의 처벌에 대해 가벼운 형벌을 주장하다가 퇴관하여 학문에 몰두하였다.

청렴한 신하로서 경사(經史)에 밝았으며 문사(文詞)·서화(書畵)에도 뛰어났다.

 

저서에《약천집(藥泉集)》.《주역참동계주(周易參同契註)가 있고 글씨에는《좌상남지비(左相南智碑).  《형판김우석비(刑判金禹錫碑). 《찬성장현광비(贊成張顯光碑)》등이 있다.

 

 

'■ 보학 > 한시(漢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金山寺(益齋 李齊賢)  (0) 2008.11.11
고풍(古風)  (0) 2008.11.11
오촌공(梧村公) 이빙시(履氷詩).  (0) 2008.06.04
구룸이 무심탄 말이-李存吾  (0) 2008.02.10
산중설야(山中雪夜)-益齋 李齊賢  (0) 2007.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