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익재이제현선생

익재난고 제1권 시(詩) 57편 - 이제현(李齊賢)

야촌(1) 2022. 8. 21. 07:37

익재 이제현,1287년(충렬왕 14) ~ 1367년(공민왕 16)

 

■ 익재선생난고 서(益齋先生亂藁序) - 이색(李穡)

 

원(元) 나라가 천하를 차지하여 사해(四海)가 통일되자, 삼광(三光)ㆍ오악(五嶽)의 정기가 뭉치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여 중화(中華)와 변원(邊遠)의 차이가 없었다. 이러므로 세상에 뛰어난 재주가 그 사이에 태어났는데 쌓고 쌓으며 정수(精粹)를 모아 문장을 만들어 한 시대의 성세(盛世)를 빛나게 하였으니 참으로 훌륭하다 하겠다.

 

고려의 익재 선생(益齋先生)은 이때에 태어났는데 성년이 되기도 전에 문장이 벌써 당세에 유명하였다. 이 때문에 충선왕(忠宣王)에게 소중히 여긴 바가 되어 모시고 따라가 있었다. 그리하여 왕의 문하에 놀던 원(元) 나라 조정의 대유(大儒)이며 진신 선생(搢紳先生)인 요공 목암(姚公牧菴)ㆍ염공 자정(閻公子靜)ㆍ조공 자앙(趙公子昂)ㆍ원공 복초(元公復初) 같은 사람들과 모두 교제할 수가 있었기 때문에 견문을 넓히고 기실을 변화하여 학문을 연마한 결과, 진실로 정대하고 고명한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또 천촉(川蜀)에 봉사(奉使)할 때에, 왕을 따라 오회(吳會)까지 갔었다. 만리가 넘는 그 거리에 왕환하는 동안 웅장한 산하(山河)와 이상한 풍속 또는 옛 성현들의 고적 등 굉박(宏博)하고 절특(絶特)한 것을 남김없이 널리 보았으니 그 호탕하고 기이한 것이 자못 자장(子長 서한(西漢) 사마천(司馬遷)의 자)에 뒤지지 않았다.

 

만일 이때 선생께서 이름이 왕관(王官)에 오르고 황제의 제명(制名)을 맡아 대각(臺閣)에서 놀았다면 공업의 성취가 위에서 말한 원 나라의 몇몇 군자에게 결코 뒤지지 않았을 터인데 거두고는 우리나라로 돌아와서 다섯 조정을 도와 네 번이나 총재(冢宰)가 되었으니 우리나라 백성들에게는 다행이었으나 사문(斯文 : 우아하고 고상함)에 대한 실망은 뭐라고 말할 수 없다.

 

비록 그러하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 태산처럼 우러렀으며 문학을 배우는 선비들이 고루한 것을 버리고 차츰 아름답게 되었으니 이는 모두 선생께서 변화시킨 때문이었다. 옛사람도 천자(天子)의 밑에서 벼슬하지 않았지만 교화가 모두 그 나라에 행해지고 여풍(餘風)이 후세에 떨친 자가 있었으니, 숙향(叔向)과 자산(子産) 같은 이를 어찌 작다 할 수 있겠는가?

 

천자(天子)를 보좌하면서 천하에 호령하는 것을 누군들 원하지 않겠는가마는 이름이 전해지고 전해지지 않는 것은 저 벼슬에 있지 않고 이 문장에 있으니 한스럽게 여길 것이 뭐 있겠는가? 선생은 저술한 글이 아주 많았으나 일찍이 “선친 동암(東菴 익재의 아버지인 이진(李瑱)의 호)께서도 아직까지 문집이 세상에 행해지지 않는데 더구나 이 못난 소자(小子)이겠는가?” 하였다.

 

이 때문에 시문(詩文)을 지었다가 즉시 없애버렸는데도 사람들은 곧 간직해두곤 하였다. 지금 막내아들 대부 소경(大府少卿) 창로(彰路)와 장손 내서사인(內書舍人) 보림(寶林)이 서로 수집해서 몇 권을 만든 다음 모두 인쇄하여 영구히 전하려고 하면서 나에게 서문을 청하기에, 나는

 

“선생께서 지은 국사(國史)도 병화에 흩어져 없어짐을 면치 못했는데, 더구나 남의 서랍 속에 남아 있는 이 편언 척자(片言隻字)야 말로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있겠는가? 이 몇 권만이라도 빨리 간행하지 않을 수 없으니 그대들은 힘껏 노력하라.”

                     

하였다. 아, 내가 어찌 글을 잘 안다 할 수 있겠는가마는 부자가 다 문생(門生)이 되었기 때문에 감히 사양할 수 없어 간략히 소견을 기록할 뿐이다.

 

지정(至正 원 순제(元順帝)의 연호) 23년(1363, 공민왕 12) 정월 초하룻날 전(前) 응봉 한림문학승사랑동지제고 겸국사원편수관 정순대부 밀직사우대언 진현관제학지제교 충춘추관수찬관 지군부사사(應奉翰林文學承事郞同知制誥兼國史院編修官正順大夫密直司右代言進賢館提學知製敎充春秋館修撰官知軍簿司事) 한산 이색(韓山李穡)은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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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재집중간서(益齋集重刊序) - 임상원(任相元)

 

익재(益齋)는 여조(麗朝)에 있어 이 문순[李文順 : 이규보(李圭報)의 시호]보다는 조금 나중이고 이 문정[李文靖 문정은 이색(李穡)의 시호]보다는 먼저였다. 문순의 문장은 호방하며 문정의 문장은 전아(典雅 : 단정하고 우아함)했는데 이 두 공은 모두 조예가 지극하여 함께 대가(大家)로 일컬었다. 

 

그러나 익재의 문장은 잘 다듬은 옥처럼 아주 유려(流麗 : 거침이 없이 미끈하고 아름답다)하여 한 시대의 동량(棟梁)이 되어 개천(開天)의 문풍이 많이 있었다. 웅대함은 두 공만 조금 못하다 할지라도 그 품격만은 낫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은 먼 만리 밖까지 임금을 모시고 가서 비상한 공로를 세운 것이 사책에 빛나게 드리워졌으니 한갓 문장만이 후세에 표준될 뿐 아니었다. 그러나 공의 문집이 여러 차례의 난리에 대부분 유실되어 간직한 자가 적으므로 옛것을 좋아하는 이들은 모두 유감으로 여겼었다.

 

허요수(許堯叟)가 경주 부윤(慶州府尹)으로 나갔을 때 그 부중(府中)에 옛날 판본이 있는 것을 보았으나 글자가 모두 이지러져 읽을 수가 없었다. 대개 공은 본래 경주 사람이었기에 옛날 이 판본을 새겨 경주의 문헌(文獻)을 대비했던 것인 듯하다. 드디어 그 중 좋은 본(本)은 사서 장차 속간하려 하면서 나에게 서문을 써 달라는 편지가 왔으므로 나는 요수의 뜻을 기특하게 여겼으며 또 감동하는 바가 있다.

 

대개 우리나라는 본래부터 문학을 숭상해 왔으나 그 실에 있어서는 질박한 풍습을 앞세우고 문장만 일삼기를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여조에는 훌륭한 문장들이 많았다. 그리하여 지금 세상에 전해진 문집이 마치 샛별처럼 빛나는데, 《동문선(東文選)》에 들어 있는 것은 한 시대로는 몇 사람에 지나지 않고 한 사람에게는 몇 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 중에 수록되지 않은 것이라고 어찌 다 버릴 것이겠는가? 그 전고(全稿)들을 다 간행하지 못한 것이 애석하다.

 

사가(四佳 서거정(徐居正)의 호)와 허백(虛白 성현(成俔)의 호)은 아조(我朝)의 대가였으나 그 문집이 모두 산실되었다. 내가 일찍이 비각(秘閣)의 목록을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았는데 하물며 세대가 먼 여조에 있어서랴? 근세의 군자들은 그 지위가 현달하면 죽은 후에는 반드시 한 책의 문집이 출판된다. 판각하는 일은 모두 고을에 부탁하여 영구히 전하도록 하는데 이런 풍습이 퍼지자 날로 새로워지고 달로 성해져 이 수많은 책들을 간직하려면 대지(大池)로 서가를 만든다 하더라도 다 저장할 수 없을 듯하다.

 

지금 요수(堯叟)는 세속에서 하는 일은 싫어하여 하지 않고 옛것에 소급하여 몇 백년 전의 썩은 뼈를 영화롭게 해서 예원(藝苑)의 다행으로 삼으려 하니 그 뜻이 참으로 아름답다 하겠다. 내가 이 때문에 승락하고 서문을 써서 그의 요청에 색책(塞責)하는 바이다.

 

계유(癸酉,1693년) 정월 6일 서하(西河) 임상원(任相元,1638~1697)은 찬한다.

 

[주D-001]개천(開天)의 문풍(文風) : 개천은 당 현종(唐玄宗)의 연호인 개원(開元)ㆍ천보(天寶)를 가리킨 것으로 곧 성당(盛唐)의 문체(文體)를 말한 것이다.

[주D-002]대지(大池) : 한(漢) 나라 건장궁(建章宮)에 있던 태액지(太液池)로 장안(長安)에 있는데, 50장(丈)이나 되는 점대(漸臺)가 있으며 건장궁은 천문 만호(千門萬戶)여서 크기로 유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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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재선생 유상

 

좌는 선조의 유상(遺像)인데 바로 시집 중에 “옛날 남겨둔 나의 얼굴, 양쪽의 귀밑털 새까맣구나[我昔留形影 靑靑兩鬢春]” 한 것이 이 초상을 두고 한 말씀이었다. 삼산(三山: 충북 보은의 옛 이름)의 종인(宗人) 윤(胤)이 이 초상본을 대대로 모시고 있었는데 세월이 오래되자, 이리저리 파손되어 거의 전할 수 없었으므로 화공을 불러 다시 모사하여 삼가 봉안(奉安)해서 영구히 전하게 하고 다시 소상(小像)을 그려 문집 첫머리에 붙여서 후손들에게 이 문집을 볼 때마다 우러러보고 사모하게 하였다.

신축(辛丑) 9월 일

 

[주D-001]삼광(三光)ㆍ오악(五嶽) : 삼광은 일(日)ㆍ월(月)ㆍ성신(星辰), 오악은 중국의 다섯 명산으로 동악(東嶽)인 태산(泰山), 서악(西嶽)인 화산(華山), 남악(南嶽)인 대산(岱山), 북악(北嶽)인 항산(恒山), 중악(中嶽)인 숭산(崇山)을 가리킨다.

[주D-002]요공(姚公)……원공 복초(元公復初) : 모두 원 나라의 유명한 학자들로 목암은 요수(姚燧)의 호이고, 자정(子靜)은 염복(閻復)의 자(字)이며, 자앙(子昂)은 조맹부(趙孟頫)의 자이고, 복초는 원명선(元明善)의 자이다.

[주D-003]천촉(川蜀)에……갔었다 : 천촉은 사천(四川)으로 이곳에 원 나라의 행성(行省)이 있었으며 오회(吳會)는 오현(吳縣)과 회계군(會稽郡)을 합하여 부른 것으로 현재의 강소성(江蘇省) 오현성(吳縣城)을 가리키는데, 원 나라에 있던 충선왕(忠宣王)은 이곳으로 강향(降香)하러 갔었다.

[주D-004]이름이……오르고 : 천자의 조정에서 벼슬하는 것을 말한다.

[주D-005]숙향(叔向)과……있겠는가 : 숙향은 춘추 시대(春秋時代) 진(晉)의 현대부(賢大夫) 양설힐(羊舌肹)의 자이며, 자산(子産)은 정(鄭)의 현대부 공손교(公孫僑)의 자인데, 이들은 모두 제후의 대부였지만 각각 자기 나라에 교화를 폈으므로 작게 평가할 수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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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재난고 제1권 시(詩) 57편

 1. 봉주(鳳州)의 용추(龍湫)에서

2. 버들 꽃

3. 국공(國公) 양안보(楊安普)가 태위(太尉) 심왕(瀋王)을 위해 옥연당(玉淵堂)에서 잔치를 베풀다

4. 칠석(七夕)

5. 정흥(定興) 노상(路上)에서 이때 장차 성도(成都)로 가려고 하였다.

6. 중산부(中山府)를 지나다가 창당(倉唐)의 일에 감탄하다

7. 정형(井陘)

8. 기현(祁縣)을 지나가다가 기해(祁奚)의 일을 감탄하다

9. 분하(汾河)

10. 예양교(豫讓橋)

11. 황하(黃河)

12. 시랑(侍郞) 장희맹(張希孟)이 ‘강호장단구(江湖長短句)’ 한 편을 보이기에 이 시로 사례하다

13. 장 시랑의 시를 부록함

14. 학사(學士) 원복초(元復初)의 증별시에 화답하다

15. 원 학사(元學士)의 시를 부록함

16. 촉도(蜀道)

17. 팔월 십칠일에 배를 타고 아미산(蛾眉山)으로 향해 가다

18. 제갈공명(諸葛孔明)의 사당(祠堂)에서

19. 우부문진(友符文鎭)에 멈추어

20. 아미산(峨眉山)에 올라

21. 뇌동평(雷洞平)에서

22. 미주(眉州)에서

23. 고국(故國)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다

24. 여울로 거슬러 올라가다

25. 촉직(促織)

26. 한 도사(寒道士)의 추풍곡(秋風曲) 타는 소리를 듣고 짓다

27. 노상(路上)에서 촉중(蜀中)에서 연경(燕京)으로 돌아갈 때

28. 함곡관(函谷關)

29. 민지(澠池)에서

30. 이릉(二陵)에서 일찍 떠나다

31. 조 학사(趙學士)의 시를 부록함

32. 맹진(孟津)을 건너면서

33. 비간(比干)의 무덤

34. 연도(燕都)에서 소경(少卿) 박충좌(朴忠佐)가 귀국(歸國)할 때 전송하며

35. 조 학사(趙學士) 자앙(子昂) 에게 화답하다

36. 송도(松都)에서 소경(少卿) 박충좌(朴忠佐)가 북경(北京)으로 올라갈 때 전송하다

37. 곡령(鵠嶺)에 올라

38. 전첨(典籤) 종형(從兄) 군실(君實)이 삼척(三陟)으로 부임할 때 전송하면서 추후에 기록했다.

39. 종형 군실(君實)의 아들 달중(達中)이 사마시(司馬試)에 장원으로 뽑히다

40. 구요당(九曜堂)

41. 최졸옹(崔拙翁)에게 화답하다 진퇴격(進退格)

42. 배 안에서 재상(宰相) 일재(一齋) 권한공(權漢功)에게 화답하다 이때 일재가 강절(江浙)로 가게 되었다.

43. 금산사(金山寺)

44. 초산(焦山)

45. 다경루(多景樓)에서 권일재(權一齋)를 모시고 옛사람의 운에 따라 함께 짓다

46. 오강(吳江)에서 또 일재(一齋)를 모시고 소동파(蘇東坡)의 운에 따라 짓다

47. 고소대(姑蘇臺)에서 권일재(權一齋)가 이태백(李太白)의 운에 따라 지은 시를 화답하다

48. 고정산(高亭山) 백안 승상(伯顔丞相)이 군사를 주둔시켰던 곳

49. 임안(臨安)의 해회사(海會寺)에서 유숙하다

50. 냉천정(冷泉亭)

51. 도장산(道場山)에서 일재(一齋)를 모시고 놀면서 소동파(蘇東坡)의 운에 따라 짓다

52. 호구사(虎丘寺)에서 시월달 북상할 때 거듭 놀게 되었다

53. 눈이 갠 후 다경루(多景樓)에 오르다

54. 회음(淮陰)에 있는 표모(漂母)의 무덤

55. 서도(西都)에서 형 통헌(邢通憲) 군소(君紹) 과 작별하면서

56.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57. 먼 곳 사람에게 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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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봉주(鳳州)의 용추(龍湫)에서

 

山前翠石雙扉啓(산전취석쌍비계) / 산 앞에 푸른 바위 사립문처럼 열렸는데,

石底澄潭萬丈深(석저징담만장심) / 바위 밑에 깊은 못 만 길도 넘는가봐.

明浸日光紛閃閃(명침일광분섬섬) / 밝게 잠긴 햇살은 어지럽게 번쩍이고,

冷涵林影淨沈沈(랭함림영정침침) / 쌀쌀하게 비치는 숲 그림자 깨끗하고도 침침하다.

斯民政要滋湯旱(사민정요자탕한) / 이 백성 모두들 은탕(殷湯)이 가뭄 적셔주길 바라는데,

彼相誰堪作說霖(피상수감작설림) / 저 재상 중에 누가 부열(傅說)의 장마를 만들 것인지,

出沒魚兒休察見(출몰어아휴찰견) / 출몰하는 고기새끼 자세히 보지 말라.

龍應先遣試人心((룡응선견시인심) / 용이 사람 마음 시험하려는 것이리니....

 

[주C-001]봉주(鳳州) : 현재의 섬서성(陝西省) 봉현(鳳縣).

[주D-001]이 백성 …… 만들 것인지 : 은탕(殷湯)은 은(殷)의 성탕(成湯)으로 7년의 혹심한 가뭄이 있었다. 부열(傅說)은 은 고종(殷高宗)인 무정(戊丁)의 현상(賢相)인데 고종은 그에게 “만약 크게 가물면 네가 장마비가 되어라.” 하였으므로 한 말이다.《史記 殷本紀, 書經 說命.

 

[2]유서이화(柳絮梨花)

    버들 꽃

 

似花非雪最顚狂(사화비설최전광) / 꽃 같기도 하고 눈도 아닌 것이 미친 듯 휘날리어,

空濶風微轉渺茫(공활풍미전묘망) / 솔솔 부는 바람에 점점 아득하구나.

晴日欲迷深院落(청일욕미심원락) / 날씨가 개었어도 깊은 정원 희미해지고,

春波不動小池塘(춘파불동소지당) / 자그마한 연못에는 물결이 못 움직인다.

飄來鉛砌輕無影(표래연체경무영) / 섬돌에 날아올 때는 그림조차 없었는데,

吹入紗窓細有香(취입사창세유향) / 사창에 들어오니 향취가 있는 듯하네.

却憶東臯讀書處(각억동고독서처) / 옛날 글 읽던 동고 생각하니,

半隨紅雨撲空床(반수홍우박공상) / 반쯤은 비에 따라 빈 책상에 가득하리.

 

[3]楊安普國公宴太尉瀋王于玉淵堂(양안보국공연태위심왕우옥연당)

   국공(國公) 양안보(楊安普)가 태위(太尉) 심왕(瀋王)을 위해 옥연당(玉淵堂)에서 잔치를 베풀다이팔청춘 미인들 비취무늬 치마로 춤추는구

   나.

 

湖上華堂愜素聞(호상화당협소문) / 호수 위에 화려한 정자 듣던 말과 같은데,

國公開宴樂吾君(국공개연악오군) / 국공이 잔치 열어 우리 임금 즐겁게 하네.

十千美酒鸕鶿杓(십천미주로자鷀표) / 수천 말이 넘는 술 노자새 그린 잔으로 따르고,

二八佳人翡翠裙(이팔가인비취군) / 이팔청춘 미인들 비취무늬 치마로 춤추는구나.

菡萏香中聽過雨(함담향중청과우) / 연 향기 속에 비 지나가는 소리 들을만 하고

菰蒲影際見行雲(고포영제견행운) / 줄풀 속에 뜬 구름이 보인다.

笙歌未歇輪鬧(생가미헐륜제료) / 피리소리 그치지 않고 수레와 말 법석인데,

漠漠西山日欲曛(막막서산일욕훈) / 멀고 먼 서산에 해넘어 가려 하는구나.

 

[주C-001]국공(國公) : 수(隋) 나라 때부터 있었던 벼슬로 군공(郡公)의 위고 군왕(郡王)의 아래였다.

 

[4] 칠석(七夕)

 

脈脈相望邂逅難(맥맥상망해후난) / 끊임없이 바라보아도 만나기가 어렵더니,

天敎此夕一團欒(천교차석일단란) / 하늘이 오늘 저녁 한 차례 모이도록 하는구나.

鵲橋已恨秋波遠(작교이한추파원) / 오작교 밑의 넓은 물 한스러운데,

鴛枕那堪夜漏殘(원침나감야루잔) / 원앙금침 위에 밤 어이 견딜까.

人世可能無聚散(인세가능무취산) / 인간 세상에도 모이면 흩어지지 않을 수 없는데,

神仙也自有悲歡(신선야자유비환) / 신선 역시 슬픔과 기쁨 있다네.

猶勝羿婦偸靈藥(유승예부투령약) / 오히려 낫구나 후예(后羿)의 아내가 불사약 훔쳐먹다가,

萬古覊棲守廣寒(만고기서수광한) / 광한궁에서 외롭게 사는 것보다....

 

※단란(團欒) : 원만하고 즐거움.

※추파(秋波) : 은하수

※야루잔(夜漏殘) : 밤이 지나며 물시계의 물이줄어듦. 즉 밤이 다 지나가고 있다.

※오히려 …… 것보다 : 후예(后羿)는 고대의 활을 잘 쏜 사람이며, 광한궁(廣寒宮)은 달 나라에 있다는 궁전.《淮南子》 覽冥訓에 “후예가 서왕모(西王母)에게 불사약을 구했는데, 후예의 아내인 항아(姮娥)가 훔쳐 가지고 월궁(月宮)으로 달아났다.” 하였으므로 달이 되어 평생 동안 남편을 못 만나는 항아보다는 1년에 한 차례씩 만나는 견우ㆍ직녀가 오히려 낫다는 뜻이다.

 

[5] 정흥(定興) 노상(路上)에서 이때 장차 성도(成都)로 가려고 하였다.

 

雨餘泥滑路逶迤(우여니골로위이) / 비 갠 후에 진흙길 꾸불꾸불한데,

兀兀征鞍撼四支(올올정안감사지) / 오똑한 안장 사지를 흔드는구나.

 安坐豈償男子志(안좌기상남자지) / 편케만 앉아서야 남자의 뜻 이루어낼 수 있으랴만,

멀리 떠도니 부모의 걱정 끼칠까 하노라 / 遠遊還愧老親思。

들뽕나무 우거져서 바람도 적게 불고 / 野桑翳翳風來少。

마을에 수목이 아득하니 해가 더디게 진다 / 村樹茫茫日下遲。

조만간 돌아가 임금님께 복명한 다음 / 早晩歸來報明主。

닭 잡고 기장밥 지어 옛 친구도 만나야겠다 / 却尋鷄黍故人期。

 

[6] 중산부(中山府)를 지나다가 창당(倉唐)의 일에 감탄하다

 

창 당은 어떠한 사람이었던가 / 倉唐何爲者。

위 나라의 배신이었지 / 魏國一陪臣。

시에도 돈독하고 예에도 밝아 / 敦詩又說禮。

깊은 말이 모두 윤리에 적중했네 / 幽語皆中倫。

한마디 말에 그의 임금 깨쳐주고 / 一言悟人主。

멀리했던 아들이 다시 친절해졌네 / 遠子復相親。

고금의 역사 속에 / 古今竹帛上。

누가 그대와 비등할까 / 誰其君與隣。

지극한 정성은 적상을 말하고 / 至誠說狄相。

순수한 효도는 봉인을 칭찬했었네 / 純孝稱封人。

원하노니 사해 안 백성들에게 / 願令四海民。

어진 이 세 분을 한 사당에 모시도록 하오 / 共祠此三仁。

누구든지 한번 보면 한번 감동되어 / 一見一感發。

하늘 이치 서로들 없애지 않을 거야 / 天理不胥淪。

 

[주C-001]창당(倉唐)의 일 : 창당은 전국 시대(戰國時代) 위 문후(魏文侯)의 아들 무후(武侯) 격(擊)의 스승으로 무후를 간하여 효도하게 한 고사를 말한다.《韓詩外傳》에 “위 문후가 아들 격(擊)을 중산(中山)에 봉했는데, 3년이 지나도록 아버지를 찾아가지 않았다. 창당은 ‘아버지는 아들을 잊을지언정 아들은 아버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간하자, 격은 ‘부릴 만한 사람이 없다.’고 핑계하므로 창당은 ‘부릴 사람이 없다면 내가 가겠다.’ 했다.” 하였다.

[주D-001]지극한 …… 칭찬했었네 : 적상(狄相)은 당(唐)의 명재상 적인걸(狄仁傑)을 가리키며, 봉인(封人)은 국경을 맡은 관직으로 춘추 시대 정(鄭)의 봉인 영고숙(穎考叔)을 가리킨다. 당 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는 아들 중종(中宗)을 폐위시키고 자신이 직접 나라를 다스렸는데, 적인걸이 자주 모자간의 은정을 말하자, 측천무후는 깨닫고 방주(房州)에 쫒겨가 있던 중종을 소환하여 다시 임금을 삼았다. 정 장공(鄭莊公)은 어머니 무강(武姜)과 사이가 나빴는데, 아우태숙단(太叔段)을 시켜 반란을 도모하자 장공은 “어머니와는 황천(黃泉)에서나 만나겠다.” 하고는 결별을 선언했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영고숙은 장공을 찾아가 풍간하여 마침내 모자간의 정의를 되찾게 했으므로 군자들은 “영고숙은 순수한 효도이다. 그 어머니를 사랑하여 장공에게까지 미쳤다.[穎考叔 純孝也 愛其母 施及莊公]” 하였다.《新唐書 狄仁傑傳, 春秋左傳 隱公 元年》

 

[7] 정형(井陘)

 

양쪽 봉우리 마주 닿은 정형 어귀에 / 岡巒廻合井陘口。

말을 몰고 험한 언덕으로 올라간다 / 驅馬崎嶇登翠阜。

영웅이 지나간 지 몇천 년 되었어도 / 英雄事去幾千載。

늠름한 그 이름 살아 있는 듯하구나 / 尙有威明凜如在。

옛날 회음후(淮陰侯) 미천한 시절엔 / 却憶淮陰布衣時。

풍운을 품은 씩씩한 뜻 아는 사람 없었건만 / 風雲壯志無人知。

일조에 대장이 되어 임금을 보필하자 / 一朝登壇輔眞主。

번쾌(樊噲)의 무리는 어린애처럼 깔보았다네 / 下視噲等如嬰兒。

붉은 깃발 아래 조 나라 진영을 놀라게 하니 / 火旂焰焰驚趙壁。

휘두르는 칼날에 고래 같은 장수 다 죽었네 / 鯨鯢血汚蓮花鍔。

연 나라 제 나라도 초목처럼 휩쓸리니 / 燕齊草木靡餘風。

유씨(劉氏)와 항씨(項氏) 한마디 승낙에 달렸었네 / 劉項乾坤傾一諾。

천금을 들여서 광무군을 사오지 않았다면 / 千金不購廣武君。

만전의 계책 누가 말했겠는가 / 萬全奇策誰當陳。

백 번 싸워도 싸울 때마다 꼭 이기게 된 것은 / 乃知百戰戰必勝。

군사가 많을수록 좋다는 데에 있지 않았고 / 不在多多益辨。

다만 자신을 굽히고 남을 잘 따르는 데에 있었다오 / 只在屈己能從人。

 

[주C-001]정형(井陘) : 하북성(河北省)에 있는 지명으로 관문이 있어 진한(秦漢) 시대의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다. 한 패공(漢沛公)의 대장군이었던 한신(韓信)은 일찍이 장이(張耳)와 함께 이곳에서 조(趙) 나라의 진여(陳餘)와 대전했었는데, 진여는 광무군(廣武君) 이 좌거(李左車)의 지구전을 반대하고 맞아 싸우다가 한신의 꾀에 빠져 패망하였다.《漢書 韓信傳》

[주D-001]옛날 …… 깔보았다네 : 회음후(淮陰侯)는 한 패공(漢沛公)의 대장이었던 한신(韓信)의 봉호이며, 번쾌(樊噲) 역시 패공의 장군이었는데, 가난하게 살던 한신은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으나 뒤에 소하(蕭何)의 추천으로 대장이 되니 맹장이었던 번쾌 따위들은 모두 그 밑에 있게 되었다.《漢書 韓信傳》

[주D-002]붉은 깃발 …… 죽었네 : 붉은 깃발은 한(漢) 나라는 적색(赤色)을 숭상했으므로 곧 한 나라 기를 가리킨다. 한신은 진여를 맞아 싸울 적에 거짓 패하여 달아나면서 미리 군사들에게 조 나라 군사들이 추격해 오는 틈을 타서 한 나라의 붉은 깃발을 꽂도록 하였다. 뒤늦게 이 사실을 발견한 조 나라 군사들은 크게 놀라 도망쳤으므로 한신은 쉽게 승리하였다.《漢書 韓信傳》

[주D-003]연(燕) 나라 …… 달렸었네 : 유씨(劉氏)는 한(漢)의 유방(劉邦), 항씨(項氏)는 초(楚)의 항우(項羽)를 가리킨다. 한신이 연전 연승한 공으로 제왕(齊王)에 봉해지니, 항우는 점점 두려워하여 변사(辯士) 무섭(武涉)을 보내어 “현재 두 임금의 일이 족하(足下)에게 달렸으니 족하가 한 나라를 돌보면 한이 이기고 초 나라를 돌보면 초가 이긴다.”《漢書 韓信傳》하였으므로 한신의 말 한마디에 초ㆍ한의 승부가 달렸음을 말한 것이다.

[주D-004]천금(千金)을 …… 말했겠는가 : 한신은 조 나라를 탈취한 다음, 진여에게 지구전을 주장하다가 받아지지 않은 광무군(廣武君) 이좌거(李左車)의 뛰어난 지혜를 인정하여, 만일 광무군을 생포해 오는 자가 있으면 천금을 주겠다 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광무군을 데려다가 그의 꾀를 써서 연 나라와 제(齊) 나라를 쉽게 점령하였다.《漢書 韓信傳》

[주D-005]백 번 …… 있었다오 : 한신이 연전 연승한 것은 용병(用兵)을 잘해서가 아니라 광무군 등 남의 의견을 따랐기 때문이라는 뜻. 패공은 뒤에 천하를 통일한 다음 한신에게 “나는 군사를 몇 명이나 거느릴 수 있는가?” 하고 묻자, “10만 명에 불과합니다.” 하였다. 패공은 다시 “장군은 몇 명이나 거느릴 수 있는가?” 하자, 한신은 “저는 많을수록 좋습니다.” 하였다.《漢書 韓信傳》

 

[8] 기현(祁縣)을 지나가다가 기해(祁奚)의 일을 감탄하다

 

내가 진 나라 기 대부를 사모함은 / 吾愛晉朝祁大夫

임금 위해 기오(祈午)와 해호(解狐) 추천한 때문이다 / 爲君能擧午與狐

천지간엔 본래 공정한 도리 있는데 / 乾坤自有公道在

어찌 은혜와 원수로써 현우를 삼으랴 / 肯以恩怨爲賢愚

정직한 사람 궁곤에 빠지지 않도록 하고서 / 不敎遺直困陸沈

소매를 떨치고 사심없이 구름처럼 떠났네 / 拂袖一去雲無心

귀에 대고 속삭이며 와서 사례하였다면 / 當時囁呫來相謝

숙후(叔后)인들 참다운 친구라 하겠는가 / 叔后豈是眞知音

아아 이런 도리 갈수록 없어져 / 嗟哉此道日已微

얼굴을 대해서도 구의산처럼 막히네 / 對面九疑多是非

갈림길에 임해서 옛일을 생각하고 깊이 탄식하니 / 臨岐吊古一長嘆

이와 같은 사람 아니면 누구와 함께 돌아갈거나 / 吾非斯人誰與歸/

[주C-001]기현(祁縣)을 …… 일 : 기현은 산서성(山西省)에 있는 고을로 춘추 시대 진(晉)의 현대부(賢大夫) 기해의 봉읍(封邑). 기해가 나이 많아 퇴로(退老)를 청하자, 진 도공(晉悼公)이 후계자를 물으니, 자기와 원수인 해호(解狐)를 천거했다. 그러나 곧 해호가 죽었으므로 다시 물으니 기해는 자기의 아들 오(午)를 천거하였다. 

 

이때 마침 양설적(羊舌職)이 죽었으므로 그의 후계자를 물었더니 양설직의 아들 적(赤)을 천거하였다. 이 때문에 도공은 기오를 중군위(中軍尉)에, 양설적을 부(副)로 임명하였는데, 군자는 평하기를 “기해는 사람을 잘 천거했다. 원수를 천거했지만 아첨한 것이 아니고 자기 아들을 세웠지만 사사로운 것이 아니며, 자기와 친한 사람을 천거했지만 편당한 것이 아니다.” 했다.《春秋左傳 襄公 3年》

[주D-001]정직한 사람 …… 하겠는가 : 숙후(叔后)는 진(晉)의 현대부(賢大夫) 숙향(叔向)으로 이름은 힐(肹). 숙향의 아우 양설호(羊舌虎)가 난영(欒盈)에 붙어 난리를 꾸미다가 실패하자 숙향도 구속되었었는데, 집안 식구들이 걱정하자 숙향은 “우리를 구원해줄 사람은 반드시. 기대부(祁大夫)일 것이다. 

그는 밖으로 천거할 적엔 원수도 버리지 않았고 안으로 천거할 적엔 친자식을 버리지 않았으니, 나만을 버리겠는가.” 하였는데, 기해는 퇴로해 있다가 이 소식을 듣고는 급히 말을 달려 집권(執權)하고 있던 조선자(趙宣子)를 만나 숙향의 어짊을 말하여 사면하게 한 다음 숙향을 만나보지도 않고 갔으며, 숙향 역시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남기지 않고 떠났는데, 만일 이때 숙향이 기해를 찾아가 인사를 했다면 기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이 된다는 뜻이다.《春秋左傳 襄公 21年》

[주D-002]구의산(九疑山) : 호남성(湖南省) 영원현(寧遠縣)에 있는데 아홉 봉우리가 비슷하기 때문에 구의라 이름하였으므로 의심이 많음을 표현한 것이다.

 

[9] 분하(汾河)

 

주야로 흐르는 분하 넓고 넓은데 / 汾河日夜流浩浩

강가의 행인들 그 얼마나 늙어갔나 / 兩岸行人幾番老

도당씨의 유물로는 산만 홀로 남아 있어 / 陶唐舊物山獨在

만고의 흥망에도 푸른 빛은 변함없네 / 萬古興亡靑未了

유랑은 일찍이 이곳에서 추풍을 노래하니 / 劉郞曾此歌秋風

퉁소 불고 북 치면서 어룡(魚龍)을 놀라게 했지 / 簫鼓動地愁魚龍

평생에 능운의 뜻 있었지만 / 平生謾有凌雲志

빙설(氷雪) 같은 신선 못 보았네 / 未見仙人氷雪容

 

[주D-001]도당씨(陶唐氏) : 고대 성군(聖君)의 하나인 요(堯) 임금을 가리킨다.

[주D-002]유랑(劉郞)은 …… 못 보았네 : 유랑은 한 무제(漢武帝)를 가리키며 능운(凌雲)의 뜻은 진세(塵世)를 떠나 선계(仙界)로 가려는 마음을 말한다. 무제는 신선(神仙)을 좋아하여 봉선(封禪)을 자주 하였는데, 한번은 하동(河東)에 가서 후토(后土)에 제사한 다음 분하(汾河)를 건너다가 중류에서 술자리를 베풀고는 즐거워하여 추풍사(秋風辭)를 지었는데, 여기에 “저 가인을 그리워하여 잊지 못한다. 

 

누선을 띄우고 분하를 건너면서 중류를 가로지르니 흰 물결 일렁이누나. 퉁소와 북 울리며 뱃노래 부른다.[懷佳人兮人能忘 汎樓船兮濟汾河 橫中流兮楊素波 簫鼓鳴兮發揚歌]”는 말이 있는바 가인이란 곧 신선을 가리킨 것이다.《漢書 武帝本紀》

 

[10] 예양교(豫讓橋)

 

한 조각 묵은 다리 바위에다 / 一片荒橋石

누가 국사(國士)의 이름 새겨 두었나 / 誰留國士名

산빛은 천년의 분을 머금은 듯한데 / 山含千載憤

햇살도 구천(九泉)의 정성에 비춰줄 거야 / 日照九泉誠

은혜 갚기 어렵다 하여 / 不爲恩難報

일만 쉽게 되기를 구하지 않았다 / 徒求事易成

그의 말 참으로 격려할 만하구나 / 此言眞有激

간사하고 아첨한 자들 마음이 놀랐으리 / 邪佞合心驚

 

[주C-001]예양교(豫讓橋) : 전국 시대(戰國時代) 지백(智伯)의 충신 예양(豫讓)이 조양자(趙襄子)에게 피살된 다리. 양자가 그의 원수 지백을 죽이고 지씨의 종족을 멸하자, 지백의 국사(國士) 대접을 받던 예양은 원수를 갚기 위해 온몸에 옻칠하여 나환자처럼 꾸미고 숯을 삼켜 벙어리가 된 다음, 시장에서 걸인 행세를 하니 아무도 아는 자가 없었다. 

 

마침 그를 알아본 친구가 “조양자를 섬기다가 기회를 노려 복수하면 쉬울 터인데 뭣하러 이런 고생을 하는가?” 하자 그는 글을 써서 대답하기를 “내가 이 짓을 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는 뜻은 장차 천하 후세의 신하가 되어 두 마음을 품는 자를 부끄럽게 하려고 해서이다.” 하고는 끝내 충절을 지켰으며, 뒤에 양자를 죽이려고 다리 밑에 숨었다가 결국 발각되어 피살되었다.

 

[11] 황하(黃河)

 

황하는 서쪽 곤륜산(崑崙山)에서 흘러오는데 / 黃河西流自崑崙

한 나라 사신 떼를 타고 근원을 찾았었다네 / 漢使乘槎昔窮源

곤륜산 높이 몇 천 길도 넘는 데서 / 崑崙山高幾千仞

하늘의 은하수 끊임없이 쏟아진다 / 天河倒瀉流渾渾

아홉 구비 지나올 때 지축(地軸)이 무너지는 듯 / 崩騰九曲轉坤軸

만리도 넘게 일렁이는 모습 하늘 끝까지 뜨는 것 같다오 / 浩蕩萬里浮天垠

마치 초한이 서로 해하에서 전쟁할 때 / 有如楚漢戰垓下

천병 만마가 들판으로 달리는 듯 / 千兵萬馬驅平原

가끔 막을 수 없는 횡류가 / 橫流往往不可止

전야에 넘쳐서 온 백성들 걱정시켰지 / 泛溢田野愁黎元

양쪽 산을 깎아 동쪽으로 흐르게 하였으니 / 擘開兩山俾東注

신고한 거령 손바닥 자취 남았다오 / 辛苦巨靈留掌痕

아 내 소년 시절 해상에서 놀 제 / 蹇予少年遊海上

호탕한 기운 장생의 곤어 타려고 했었지 / 豪氣欲跨莊生鯤

서강 물도 한 입에 들어 마실 만하고 / 西江眞堪一口吸

운몽은 가슴속에 삼킬 것도 없었네 / 雲夢不足胸中呑

오늘날 백사장 가에서 닻줄을 풀려고 하니 / 今日沙頭欲解纜

고독한 나의 마음 갑자기 아찔해진다 / 兀坐不覺驚心魂

집채처럼 닥치는 물결 바람 따라 머리를 두들기자 / 腥風打頭浪如屋

긴 돛대 산과 함께 흔들리는구나 / 長帆遠與山相掀

뱃사공 땀 흘리면서 힘껏 저어가도 / 篙師絶叫汗流瀋

해저물 때까지 남쪽 마을에 못 이르네 / 日暮未到南岸村

나는 선박을 불태우던 맹명 시처럼 / 我不是焚舟孟明視

진 나라 백성 위해 꼭 설분해야겠다는 것도 아니었고 / 期爲秦民一雪無窮冤

또는 구슬을 물에 던지던 진 공자처럼 / 又不是投璧晉公子

그의 외삼촌과 저버리지 말자고 맹세한 것도 아니었네 / 誓與舅氏不負平生言

만약 철우가 안다면 빙긋이 웃을 텐데 / 鐵牛有知應解笑

왜 험난함을 무릅쓰고 서남으로 달리려 하나 / 胡爲涉險西南奔

 

[주D-001]황하(黃河)는 …… 찾았었다네 : 한 무제(漢武帝) 때 장건(張騫)이 서역(西域)과 통한 뒤로 계속 사신이 왕래하였는데, 《漢書》 張騫傳에 “한 나라 사신이 황하의 근원인 끝까지 가 보니, 그 산엔 옥이 많았으므로 캐 왔다. 천자가 옛 도서(圖書)를 상고해 보니 황하수가 나오는 산은 곤륜산(崑崙山)이다.” 했으므로 한 말이다.

[주D-002]마치 …… 달리는 듯 : 황하의 수세가 급함을 말한다. 해하(垓下)는 현재의 안휘성(安徽省) 영벽현(靈壁縣) 동남쪽에 있는 곳으로 옛날 한 패공(漢沛公)이 초(楚) 나라의 항우(項羽)와 격전을 벌인 곳이다.

[주D-003]신고한 …… 남았다오 : 신(神)이 힘차게 산하(山河)를 만들었다는 뜻. 거령(巨靈)은 하신(河神)의 이름인데, 한(漢) 나라 장형(張衡)의 서경부(西京賦)에 “거령이 힘차게 손바닥으로 높이 떠받들고 발바닥으로 멀리 차 버려 하수를 흐르게 하였다.” 하였다.

[주D-004]장생(莊生)의 곤어(鯤魚) : 장생은 전국 시대 장주(莊周)를 가리킨다. 그가 지은 《장자(莊子)》소요유(逍遙遊)에 “북쪽 바다에 곤어라고 하는 큰 고기가 있는데, 크기가 몇 천 리나 되는지 알 수 없으며 다시 붕새[鵬]로 화하여 9만 리 창공을 난다.” 하여 우언(寓言)으로 뜻이 높은 자신을 비유하였다.

[주D-005]서강(西江) : 여기서는 서쪽에서 흘러오는 큰 강물을 가리킨다.

[주D-006]운몽(雲夢) : 못 이름으로 주위가 9백 리나 된다 한다.

[주D-007]선박을 …… 맹명 시(孟明視) : 맹명은 춘추 시대 진(秦)의 현신(賢臣) 백리해(百里奚)의 아들 백리시(百里視)의 자(字). 《史記》 秦世家에 “목공(穆公)이 패전했던 맹명 등을 다시 후대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진(晉) 나라를 공격하게 하니, 맹명은 황하를 건너 진(晉) 나라의 선박을 불태우고 크게 이겼다.” 하였다.

[주D-008]구슬을 …… 진 공자(晉公子) : 진 공자는 춘추 시대 오패(五霸)의 하나인 문공(文公)을 가리킨다. 문공이 공자로 있을 때 그의 외삼촌 호언(狐偃)과 함께 망명하여 진(秦) 나라에 있었는데, 진 목공(秦穆公)의 힘을 얻어 본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황하에 이르자 호언이 공자에게 구슬을 주면서 “내가 공자를 따라 온 천하를 다니면서 잘못을 많이 저질렀습니다. 이제 작별을 고합니다.” 하니, 문공은 “외삼촌과 마음을 함께 하겠습니다. 저 하수를 두고 맹세합니다.” 하고는 그 구슬을 황하에 던졌다.《左傳 僖公 24年》

[주D-009]만약 …… 달리려 하나 : 철우(鐵牛)는 쇠로 만든 소로 하후씨(夏后氏) 때 범람하는 황하의 수재를 막기 위하여 만들어 세웠다 하는데, 곧 이 철우가 참으로 영감이 있다면 아무런 이유 없이 험한 황하를 건너려는 자신을 비웃을 것이라는 뜻이다.

 

[12] 시랑(侍郞) 장희맹(張希孟)이 ‘강호장단구(江湖長短句)’ 한 편을 보이기에 이 시로 사례하다

 

하늘이 몇백 년 동안 아끼던 문장을 / 天靳文章數百年

일시에 제남 지방 어진이에게 태워 주었네 / 一時輸與濟南賢

번쩍이는 기운 풍성(豐城)의 칼과 같고 / 縱橫寶氣豐城劍

오묘한 소리 청묘의 비파인 듯하다 / 要妙古音淸廟絃

명교(名敎)에 대해서도 공로가 있었는데 / 便覺有功名敎事

길고 짧은 시편에만 애쓴다고 누가 말하랴 장 시랑이 주 회암(朱晦庵 회암은 주희(朱熹)의 호) 사당(祠堂)에 쓴 시에 “공이 만약 영이 있다면 나를 비웃을 거야 한갓 단장편에만 힘써서.” 하였다. / 誰言費力短長篇

흥이 날 때 몇 번씩 소리내어 읽으니 / 興來三復高聲讀

먼 만리 강산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구나 / 萬里江山只眼前

 

[주D-001]풍성(豐城)의 칼 : 풍성은 진(晉) 나라 때 있었던 현(縣)으로 현재의 강서성(江西省) 남창현(南昌縣) 남쪽에 있었다.《晉書》 張華傳에 “장화가 ‘붉은 기운이 언제나 북두성에 뻗쳐있으니 이것이 무슨 기운인가?’ 하고 묻자, 천문에 밝은 뇌환(雷煥)은 ‘보검(寶劍)의 기운이 하늘에 비쳐서입니다.’ 하였다. 몇 해 뒤에 장화는 풍성 원이 되어 옥(獄) 터를 파다가 두 자루의 칼을 얻었는데, 하나는 용천(龍泉), 하나는 태아(太阿)라 새겨진 보검이었다. 이 보검을 발굴한 뒤로는 북두성 사이의 붉은 기운이 보이지 않았다.” 하였다.

[주D-002]청묘(淸廟)의 비파 : 《시경(詩經)》주송(周頌) 청묘시(淸廟詩)에 가락을 맞춘 비파로 줄이 굵고 구멍이 넓어서 여운이 길다.《禮記 樂記》

 

[13] 장 시랑의 시를 부록함

 

삼한의 문물 본래부터 훌륭한데 / 三韓文物盛當年

뛰어난 현인을 또 보았네 / 刮目靑雲又此賢

씩씩한 뜻은 흰 무지개가 고검에 둘러 있고 / 壯志玉虹纏古劍

지극한 정성에 석호도 화살에 쪼개졌네 / 至誠石虎裂驚絃

채찍을 휘두르면서 산놀이할 때 / 一鞭嵐翠遊山騎

달 뜨도록 읊은 시 구슬처럼 아름답구나 / 滿紙珠璣詠月篇

완화계(浣花溪)까지 가주면 봄철 좋으니 / 此去浣花春政好

깨끗한 갈매기 자네를 위해 날아올 거야 / 白鷗應爲子來前

 

[주D-001]지극한 …… 쪼개졌네 : 석호(石虎)는 범처럼 생긴 돌. 옛날 초(楚) 나라의 웅거자(熊渠子)가 밤에 길을 가다가 돌을 보고는 엎드려 있는 범으로 착각한 다음 활을 쏘았는데, 화살이 깊이 박혔다. 뒤에 돌임을 확인하고는 다시 화살을 쏘았으나 촉이 들어가기는커녕 흔적조차 나지 않았다. 이것은 먼젓번에는 거자가 꼭 범인줄 알고 온 정성을 쏟아 쏘았기 때문에 지성에 감동되어 돌이 쪼개진 것이라 한다.《韓詩外傳》

[주D-002]완화계(浣花溪) : 사천(四川)에 있는 시내 이름.

 

[14] 학사(學士) 원복초(元復初)의 증별시에 화답하다

 

옛날에 우연히 청안(靑眼)으로 서로 만나 / 昔從傾蓋眼能靑

술을 싣고 낙성놀이 함께 했었지 / 載酒同遊遍洛城

바로 집편한 노수처럼 하려 하였으니 / 直欲執鞭如魯叟

어찌 결말하게 한 왕생에게 비할 뿐이랴 / 豈惟結襪比王生

등불 켜고 밤늦도록 이야기하며 / 感公燈火三更話

관산의 만리 길 떠나는 나를 위로해 주었지 / 慰我關山萬里行

새로 지은 시 한 편 또 받아보니 / 更得新詩入囊褚

검남 사람들 여남의 평판 안다오 / 劍南人識汝南評

 

[주C-001]원복초(元復初) : 복초는 원명선(元明善)의 자(字).

[주D-001]청안(靑眼) : 백안(白眼)의 반대로 반갑게 본다는 뜻.《晉書》 阮籍傳에 “완적이 상중(喪中)에 있을 때 혜희(嵆喜)가 찾아와 조문하자 백안으로 쳐다보고 그의 아우 혜 강(嵆康)이 술과 거문고를 갖고 오니 청안으로 맞았다.” 했으므로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주D-002]바로 …… 비할 뿐이랴 : 원 학사를 위하여 천한 일을 하겠으며 또 그에게 수고를 끼쳐 더욱 명성을 떨치게 한다는 뜻. 집편(執鞭)은 채찍을 잡는 마부를 가리키며 노수(魯叟)는 공자(孔子)로 일찍이 “부자를 구해서 된다면 나는 집편의 일이라도 하겠다.” 했으므로 여기에서 따온 것이며, 결말(結襪)은 버선을 신겨 주는 것으로 한(漢) 나라의 장석지(張釋之)는 유명한 정위(廷尉)였는데, 왕생(王生)이라는 노인이 버선을 신겨줄 것을 청하자, 석지는 공손히 신겨 주었다. 

 

어떤 사람이 왕생에게 “어찌해서 장 정위(張廷尉)를 모욕하는가?” 하자, 그는 대답하기를 “나는 늙고 미천하니 장 정위를 유익하게 해줄 수가 없다. 장 정위는 온 천하에 유명한 신하이므로 나는 일부러 모욕을 주어서 그의 겸손한 덕을 더욱 드러나게 하려는 것이다.” 하니 사람들은 왕생을 어질게 여기고 장석지를 더욱 존경하였다.《論語 述而, 史記 張釋之傳》

[주D-003]검남(劍南) 사람들 …… 안다오 : 사천(四川) 사람들이 모두 원 학사의 높은 식감을 알고 있다는 뜻. 검남은 사천성 경내에 있는 지명. 후한(後漢) 말엽 여남(汝南)에 살고 있던 허소(許劭)는 식견이 높아 종형 허정(許靖)과 함께 명망이 있었으며, 고을 사람들의 인물을 평판하기 좋아하여 한 달에 한 번씩 품제(品題)를 하니, 이 때문에 여남의 풍속에 월단평(月旦評)이 있게 되었다 한다.《後漢書 許劭傳》

 

[15] 원 학사(元學士)의 시를 부록함

 

아미산 푸른 빛 꿈속에 들어오더니 / 峩眉山色夢中靑

계림에서 보낸 사신 금성으로 들어오네 / 人自鷄林使錦城

구역에 모든 도경 한 성씨에게 돌아오는데 / 九域圖經歸一姓

사천에 좋은 풍경 삼생에 연분일세 / 四川風物契三生

삼성(參星)과 정성(井星)을 만진단 말 참으로 헛말이니 / 捫參歷井眞虛語

바람과 달은 가는 곳마다 읊을 수 있지 / 詠月吟風足此行

공명의 옛날 일 자세히 물어본 다음 / 細問孔明當日事

요동에 유안 만나 평가도 할 거야 / 遼東却對幼安評

 

[주D-001]계림(鷄林)에서 …… 들어오네 : 계림은 경주(慶州)의 고호인데, 이제현의 본관(本貫)이 경주였으므로 한 말이며 금성(錦城)은 파촉(巴蜀) 성도(成都)에 있는 금관성(錦官城)으로 현재의 사천성에 있는바, 곧 경주에서 사천으로 사신왔음을 말한 것이다.

[주D-002]구역(九域)에 …… 연분일세 : 구역은 구주(九州)와 같은 뜻으로 중국 전체를 가리키며 삼생(三生)은 불가의 말로 전생(前生)ㆍ차생(此生)ㆍ내생(來生)을 말하는데, 원(元) 나라가 중국을 통일하여 고려에서 사천까지 사신왔으니 이는 전생의 인연이라는 뜻이다.

[주D-003]삼성(參星)과 …… 헛말이니 : 삼성과 정성(井星)은 28수(宿)의 각각 하나. 이백(李白)의 촉도난(蜀道難) 시에 “삼성과 정성 만질 수 있으니 숨이 찬다.[捫參歷井仰脅息]” 한 말이 있는데, 이는 하도 산이 높아 하늘에 닿을 수 있다는 뜻이다. 삼성과 정성은 파촉(巴蜀)의 분야(分野)이기 때문에 말한 것인데 이제현은 이곳까지 사신왔으므로 이 말이 헛소리라는 뜻이다.

[주D-004]공명(孔明)의 …… 평가도 할 거야 : 공명은 파촉에 있었던 촉한(蜀漢)의 승상(丞相) 제갈량(諸葛亮)의 자. 유안(幼安)은 후한(後漢) 말엽의 고사(高士) 관영(管寧)의 자. 관영은 세상이 어지럽자 요동(遼東)에 은둔해 있으면서 위(魏) 나라에서 여러 차례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三國志 管寧傳》

 

[16] 촉도(蜀道)

 

이 산은 옛날부터 있었는데 / 此山從古有

이 길은 어느 때에 열렸느냐 / 此道幾時開

과와의 솜씨 빌리지 않았다면 / 不借夸媧手

한 덩어리 뭉친 것을 누가 갈랐으랴 / 分混沌肧

하늘은 기 끝에 조금 보이는데 / 天形旂尾擲

산세는 칼날처럼 날카롭구나 / 岡勢劍鋩摧

안개는 온갖 숲에 비를 보내오고 / 霧送千林雨

강 소리는 만리 밖에 뇌정이 울리는 듯한데 / 江奔萬里雷

이리저리 우거진 숲 뚫고 들어가 / 班班穿薈鬱

뾰족뾰족한 봉우리로 올라가니 / 矗矗上崔嵬

말에서 내려도 나란히 가기 곤란하고 / 下馬行難並

사람이 맞닥치면 되돌아가야겠네 / 逢人走却廻

놀라는 원숭이들 제자리에 머뭇거리고 / 驚猿空躑躅

날아가던 새도 빙빙 돌기만 하는구나 / 去鳥但徘徊

아침 햇살 겨우 비치는 듯하다가 / 才喜晨光啓

갑자기 깜깜하게 저물려 하네 / 俄愁暮色催

금우(金牛)의 고사도 허망한 듯하고 / 金牛疑妄矣

유마(流馬)도 운행하기 어려웠겠네 / 流馬笑艱哉

다리에 쓴 손님에게 말하노니 / 寄謝題橋客

다시 오려고 약속할 것 무엇인가 / 何須約重來

 

[주C-001]촉도(蜀道) : 파촉(巴蜀)의 잔도(棧道). 험하기로 유명한데, 이백(李白)은 촉도난(蜀道難)이라는 시를 지어 “촉도의 어려움 하늘 오르는 것보다도 어렵다.” 하였다.

[주D-001]과와(夸媧)의 …… 갈랐으랴 : 과와는 과아(夸蛾)와 여와씨(女媧氏)로 전설적인 인물인데 만일 이들이 아니면 누가 천지(天地)를 만들었겠느냐는 뜻.《列子》 湯問에 “원래 태행(太行)ㆍ왕옥(王屋) 두 산은 기주(冀州)의 남쪽과 하양(河陽)의 북쪽에 있었는데 상제(上帝)는 과아씨의 두 아들을 명하여 두 산을 져다가 하나는 삭동(朔東)에, 하나는 옹남(雍南)에 갖다 놓게 했다.” 하였으며 “또 하늘에 구멍이 뚫렸으므로 여제(女帝)인 여와씨가 오색 돌을 달구어 때웠다.” 하였다.

[주D-002]금우(金牛)의 …… 어려웠겠네 : 금우는 금똥을 눈다는 소. 전국 시대 진 혜왕(秦惠王)은 촉(蜀)을 치려 했으나 길을 알지 못하므로 돌을 깎아 다섯 마리의 소를 만들어 뒤에 금을 넣어 놓고는 이것을 촉도에 갖다 놓았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는 돌소가 금똥을 눈다고 하자, 이 소문을 들은 촉왕(蜀王)은 천여 명의 군사와 다섯 명의 역사(力士)를 동원하여 성도(成都)로 운반해 갔다. 

 

이 때문에 길이 뚫려, 진 나라는 마침내 이 길을 따라 촉을 공격하여 탈취했으므로 이 길을 금우도(金牛道)라 하였다. 유마(流馬)는 삼국 때 촉한(蜀漢)의 승상(丞相) 제갈량(諸葛亮)이 제작한 것인데 촉도(蜀道)가 험하기 때문에 식량을 운반하기 위하여 만들었던 기계로 목우(木牛)와 함께 유명하다.《水經 沔水注, 三國志 蜀志 諸葛亮傳》

[주D-003]다리에 …… 무엇인가 : 다리에 쓴 손님은 전한(前漢) 때의 문장가 사마상여(司馬相如)를 가리킨다. 〈成都紀〉에 “사마상여가 장안(長安)을 가는 길에 고향 촉군(蜀郡)을 지나다가 승선교(升仙橋) 기둥에 ‘사마의 수레를 타지 못하면 다시 이 다리를 지나지 않겠다.[不乘駟馬車 不復過此橋]’ 하는 글을 써 붙였다.” 하였다.

 

[17] 팔월 십칠일에 배를 타고 아미산(蛾眉山)으로 향해 가다

 

금강 위 흰구름 나는 가을에 / 錦江江上白雲秋

여구곡 부르면서 주루에서 내려온다 / 唱徹驪駒下酒樓

한 조각 붉은 깃발 바람 따라 번득거리고 / 一片紅旂風閃閃

몇 가락 뱃노래에 물결만 일렁이는구나 / 數聲柔櫓水悠悠

비는 송아지 재촉하여 어점으로 돌아가는데 / 雨催寒犢歸漁店

물결은 갈매기를 보내어 뱃전으로 가까이 온다 / 波送輕鷗近客舟

글 읽은 선비 불우한 자 많다고 누가 말했나 / 孰謂書生多不偶

늘 왕사로 인해 맑은 놀이 싫도록 하는데 / 每因王事飽淸遊

 

[주D-001]금강(錦江) 위 …… 내려온다 : 금강은 사천성(四川省)에 있는 강이며 여구곡(驪駒曲)은 검은 말[驪駒]을 타고 가는 사람과 작별하는 것을 읊은 노래.

 

[18] 제갈공명(諸葛孔明)의 사당(祠堂)에서

 

뭇 영웅 벌떼처럼 일어나자 세상 일 어지러운데 / 群雄蜂起事紛挐

온갖 경륜 품고서 초가집에 누웠었지 / 獨把經綸臥草廬

나라 위한 의리는 삼고한 후에 높아졌고 / 許國義高三顧後

출사할 계책은 칠금한 다음에 굳어졌다오 / 出師謀遠七擒餘

목우와 유마 누가 능히 알았겠으랴 / 木牛流馬誰能了

우선과 윤건 혼자만이 이용하였네 / 羽扇綸巾我自如

일월처럼 밝은 충성 천고에 빛나는데 / 千載忠誠懸日月

그 당시 위진들은 지금 터만 남아 있네 / 回頭魏晉但丘墟

 

[주C-001]제갈공명(諸葛孔明)의 사당(祠堂) : 공명은 촉한(蜀漢) 제갈량(諸葛亮)의 자(字), 후한(後漢) 말엽 천하가 어지러워 군웅(群雄)이 할거(割據)하자, 제갈량은 양양(襄陽)의 융중(隆中)에 은둔해 있었는데, 한(漢)의 황족(皇族)인 유비(劉備)는 초려(草廬)로 세 번이나 찾아가[三顧] 도와줄 것을 청하였다. 

유비의 깊은 성의에 감동한 제갈량은 마침내 유비의 군사(軍師)가 되어 촉한을 세우고는 반란을 일으킨 남만(南蠻)의 맹획(孟獲)을 일곱 차례나 생포하여[七縱七摛] 남만을 평정한 다음, 후주(後主) 유선(劉禪)에게 출사표를 올리고는 위(魏)의 조비(曹丕)를 공격하였는데, 이때 군량을 운반하기 위하여 목우(木牛)ㆍ유마(流馬)를 만드니 매우 신기한 기계였다. 

싸울 때에는 언제나 윤건(綸巾)을 쓰고 백우선(白羽扇)을 들고 진두에서 지휘하였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군중에서 세상을 떠나니 무후(武侯)라 시호했으며, 익주(益州)의 금관성(錦官城) 등 여러 곳에 사당이 있다.《三國志 蜀志 諸葛亮傳, 資治通鑑 魏紀》 

 

[19] 우부문진(友符文鎭)에 멈추어

 

골짝 구름 솟아오르매 가을 장마 계속하자 / 峽雲蓬勃送秋霖

저물 무렵 여관이 더욱 쓸쓸하구나 / 野店荒涼生暮陰

창에 울리는 여울물 소리 듣기 싫은데 / 剛厭灘聲戰窓牖

이불 속에 젖는 장기(瘴氣) 또 견딜 수 없네 / 更堪山瘴襲衣衾

백년 동안 살아갈 이 몸 온갖 걱정이고 / 百年身世千般計

만리 밖에 계신 부모 잠시도 잊을 수 없다 / 萬里庭闈一片心

무슨 수로 긴 바람 일으켜 깨끗이 쓸어 버리고 / 安得長風吹掃盡

높은 하늘의 붉은 해 우러러볼지 / 仰看紅日上重岑

 

[20] 아미산(峨眉山)에 올라

 

푸른 구름 땅 위에 떠 있고 / 蒼雲浮地面

밝은 해는 산 허리로 굴러가네 / 白日轉山腰

만상이 무극으로 돌아가니 / 萬像歸無極

먼 허공은 제대로 고요하기만 하다 / 長空自寂寥

 

[주D-001]만상(萬像)이 …… 돌아가니 : 무극(無極)은 모든 만물의 원리(原理)이므로 우주(宇宙)의 만상이 무극에서 나와 무극으로 귀결된다는 뜻.

 

[21] 뇌동평(雷洞平)에서

 

원숭이 다니는 사다리 하늘에 닿은 듯한데 / 胡孫梯高天尺五

꼬불꼬불한 돌길 실보다 가늘구나 / 石路蜿蜒細於縷

길가에 선 큰 나무 대낮에도 놀랄 만한데 / 路傍大樹驚白晝

칠십이 신장이 한 동리를 지킨다네 / 七十二神開洞府

벽처럼 서 있는 바위 밑에는 바닥이 보이지 않고 / 奇巖壁立下無底

큰 골짝에 자욱한 구름 솟아오른다 / 鴻洞雲嵐自呑吐

깎아지른 벼랑에는 지나가기 곤란한데 / 崖崩石出絶難度

우거진 가시덩굴조차 이리저리 뒤얽혔구나 / 惡木縱橫若相補

콸콸 흐르는 물 어디서 또 쏟아지는지 / 渢渢何處瀉奔流

먼 공중에서 온갖 북 울리는 듯하다 / 俯聽遙空喧萬鼓

갠 날씨에 가끔 우박도 내리치는데 / 有時雨雹亂晴天

지나가는 나그네 누군들 감히 업신여기랴 / 過客屛氣誰敢侮

나 같은 썩은 선비는 마음이 뒤흔들리자 / 腐儒一見動心魄

두 눈이 깜깜해지고 땀이 비오듯 한다 / 兩眼昏花汗如雨

평생에 유람할 곳 많기도 한데 / 也知平地足遊觀

왜 이토록 험난한 데서 속을 썩이나 / 何事窮山愁仰俯

그대는 못 보았나, 저 하늘 위에 금문이 바다처럼 깊은 데에 / 君不見天上金門似海深

삼엄한 호위 구호를 벌인 것을 / 仗衛森嚴羅九虎

미친 지아비 날뛰다가 위기에 걸려들고 / 狂夫雀躍蹈危機

달사는 은둔하여 오두막 속에 누워 있단다 / 達士龍潛臥環堵

 

[주D-001]칠십이 신장(七十二神將) : 72는 천지의 음양 오행(陰陽五行)의 성수(成數)라 하여 수많은 것을 칭한다.

[주D-002]하늘 위에 …… 벌인 것을 : 금문(金門)은 황금으로 장식한 문으로 천자(天子)의 문을 가리키며, 구호(九虎)는 아홉 마리의 범으로 원호문(元好問)의 기양시(岐陽詩)에 “탐탐하는 구호 진 나라 관문을 호위하네[耽耽九虎護秦關]” 한 말이 있는데, 곧 원(元) 나라 황제의 궁궐이 깊고 호위가 삼엄함을 말한 것이다.

 

[22] 미주(眉州)에서

 

우리 아버지는 삼형제인데 모두 문필로 우리나라에 유명하였다. 백부와 계부는 잇달아 작고하시고 오직 아버지만이 병없이 살아계시는데 지금 연세가 칠십이 넘으셨다. 만약 이 중원(中原)에 와서 어진 사대부와 더불어 사림(詞林)에 드나들었다면 소가 부자(蘇家父子)에게는 비할 수 없다 하더라도 또한 한 시대에 이름을 떨칠 수 있었을 것인데 수륙(水陸)의 천리 거리에 난리가 십 년 동안 계속하자, 환경에 따라 분수를 지키면서 외물(外物)을 사모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에 아는 자가 없다.

미산이 궁벽하게 하늘 한 모퉁이에 있는데 / 眉山僻在天一方

온 성에 우거진 초목 가을 바람에 쓸쓸하구나 / 滿城草木秋荒涼

지나가는 나그네 말을 멈추고 꼭 묻게 됨은 / 過客停驂必相問

길가에 삼소당이 있기 때문이라오 / 道傍爲有三蘇堂

훌륭한 삼소가 때를 맞추어 태어나니 / 三蘇鬱鬱應時出

한 문호의 좋은 기운 활짝 열렸네 / 一門秀氣森開張

어른은 악와의 천리마처럼 독보로 되었고 / 渥洼獨步老騏驥

두 아들은 단혈에 봉황처럼 쌍으로 날았네 / 丹穴雙飛雛鳳凰

잇달아 날리면서 금문에 들어가니 / 聯翩共入金門下

천하에 문장들 감히 입을 벌릴 수 없었네 / 四海不敢言文章

지금까지 이백 년을 내려오도록 / 邇來悠悠二百載

높은 이름 일월과 함께 빛을 다투네 / 名與日月爭輝光

그대는 못 보았나 계림의 삼리도 인걸로서 / 君不見鷄林三李亦人傑

한묵단에서 모두 도끼를 받았다오 / 翰墨壇中皆授鉞

한계의 승추는 쓸데없음을 웃었고 / 韓洎繩樞笑無用

왕가의 주수는 아들 자랑 벽이 되었네 / 王家珠樹譽成癖

기운처럼 낙중으로 들어오지 않아 / 機雲不入洛中來

아름다운 명월주(明月珠)가 바다에 빠졌네 / 皎皎滄洲委明月

두 분은 그만 작고하여 말할 수 없고 / 兩雄已矣不須論

집에 계신 아버지도 지금 백발이라오 소동파의 말에 “주역(周易)은 걱정을 없애니, 집에 스승이 있다.[易可忘憂家有師]” 하였다. / 家有吾師今白髮

 

[주D-001]소가 부자(蘇家父子) : 송(宋) 나라 때의 미주(眉州) 미산(眉山) 사람 노천(老泉) 소순(蘇洵)과 그의 아들 동파(東坡) 소식(蘇軾)ㆍ소철(蘇轍)을 가리킨다. 이들은 모두 문장이 뛰어나 당송 팔대가(唐宋八大家)에 들었는데, 아버지 소순을 노소(老蘇), 형 소식을 대소(大蘇), 아우 소철을 소소(小蘇)라 하였으며, 삼부자를 합하여 삼소(三蘇), 형제를 이소(二蘇)라 칭하였다.

[주D-002]어른은 …… 날았네 : 악와(渥洼)는 감숙성(甘肅省) 안서현(安西縣)에 있는 물인데, 한 무제(漢武帝) 때 여기에서 신마(神馬)가 나왔으며, 단혈(丹穴)은 단사(丹砂)가 나오는 구멍이 있는 단산(丹山)으로 봉황이 산다 한다.

[주D-003]잇달아 …… 들어가니 : 금문(金門)은 천자의 궁문으로 소식ㆍ소철 형제가 나란히 진사과(進士科)에 올랐고 다시 책제시(策制試)에 함께 급제하여 벼슬했음을 가리킨 것이다.

[주D-004]한묵단(翰墨壇)에서 …… 받았다오 : 문무(文武)가 겸전(兼全)하다는 뜻. 옛날 장군(將軍)들은 출정(出征)할 때 모든 명령을 결정한다는 뜻으로 도끼를 주었었다.

[주D-005]한계(韓洎)의 …… 웃었고 : 승추(繩樞)는 기둥에 노끈으로 지도리를 매단 문으로 가난한 집을 가리킨다. 송(宋) 나라의 한계는 그의 형 한부(韓溥)와 함께 문장을 잘하여 명망이 있었는데, 한계는 늘 형을 경시하여 “우리 형님의 글은 승추와 같아서 겨우 비바람만을 막을 뿐이고, 나의 글은 아름다운 오봉루(五鳳樓)를 꾸밀 수 있다.” 하니, 한부는 촉(蜀)에서 생산되는 좋은 종이를 주면서 시를 지어 말하기를 “형은 이 종이를 얻었으나 전혀 쓸데가 없기에 너의 오봉루 꾸미는 것이나 도우려 한다.[老兄得此全無用 助汝添修五鳳樓]” 하였다.《宋史新編》

[주D-006]왕가(王家)의 …… 되었네 : 왕가는 당(唐) 나라 때의 왕복치(王福峙) 집을 가리키며, 주수(珠樹)는 선목(仙木)으로 남의 훌륭한 아들을 일컫는 말. 복치의 아들 발(勃) 등 5형제가 모두 문장이 뛰어나니 사람들은 주수라고 일컬었다. 한번은 복치가 한언사(韓彦思)에게 아들 자랑을 하자, 언사는 희롱하기를 “무자(武子)는 말을 자랑하는 벽이 있더니 자네는 아들을 자랑하는 벽이 있네.” 하였다.

[주D-007]기운(機雲)처럼 …… 빠졌네 : 중국 서울에 오지 않아 아름다운 문장을 갖고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뜻. 기운은 진(晉) 나라의 문장가 육기(陸機)ㆍ육운(陸雲) 형제이며 낙중(洛中)은 낙양(洛陽)으로 서울을 가리키는데, 이들 형제는 오군(吳郡) 사람으로 낙양으로 와서 태상(太常) 장화(張華)의 추천으로 하루아침에 이름이 천하에 가득하였다. 명월주(明月珠)는 야광주(夜光珠)의 별칭. 당(唐) 나라 적인걸(狄人傑)이 변주 참군(汴州參軍)이 되니 염입본(閻立本)은 그의 높은 재주를 사랑하여 “그대는 바다에 숨은 구슬이라 할 수 있다.[可謂滄海遺珠]” 하였다.《晉書 陸機傳, 新唐書 狄仁傑傳》

 

[23] 고국(故國)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다

 

배를 타고 떠다니니 마음 걷잡을 수 없는데 / 扁舟漂泊若爲情

사해가 모두 형제라고 누가 일렀나 / 四海誰云盡弟兄

기러기 소리 들리게 되면 먼 데 소식 고대하고 / 一聽征鴻思遠信

돌아가는 새 볼 때마다 괴로운 인생 탄식이 나네 / 每看歸鳥嘆勞生

쓸쓸한 가을비 청신의 숲에 자우룩하고 / 窮秋雨鎖靑神樹

해질 무렵 흰 구름 백제성에 가로질렀네 / 落日雲橫白帝城

순채국이 양락보다 나음 지금 바로 알겠으니 / 認得蓴羹勝羊酪

나의 행장 군평에게 물을 필요 없네 / 行藏不用問君平

 

[주D-001]사해(四海)가 모두 형제 : 《論語》 顔淵에 “사마우(司馬牛)가 근심스레 ‘남들은 모두 형제가 있는데 나만 없다.’ 하자, 자하(子夏)는 ‘공경하고 예의를 지키면 사해의 안이 모두 형제이니 형제 없는 것을 근심하는가.’ 했다.” 하였다.

[주D-002]쓸쓸한 …… 가로질렀네 : 청신(靑神)은 사천성(四川省)에 있는 고을로 미산현(眉山縣) 남쪽에 있으며 백제성(白帝城)은 사천성 봉절현(奉節縣) 동쪽 백제산(白帝山)에 있다.

[주D-003]순채국이 …… 필요 없네 : 양락(羊酪)은 양유(羊乳)로 만든 죽으로 고급 식품이며 행장(行藏)은 출처(出處)와 같은 뜻으로 세상에서 나아가는 것을 행(行), 물러가는 것을 장(藏)이라 한다. 군평(君平)은 한(漢) 나라 때의 은사(隱士) 엄준(嚴遵)의 자(字).《晉書》 張翰傳에 “진(晉)의 문장가 장한은 고향이 오군(吳郡)이었는데, 제왕 경(齊王冏)의 동조연(東曹椽)으로 있다가 가을 바람이 불자 갑자기 고향의 명산물인 순채국과 농어회[鱸膾]가 생각나므로 ‘인생이란 자기 뜻에 맞게 사는 것이 좋으니, 무엇 때문에 벼슬에 얽매여 타향에 있겠는가.’ 하고는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했으므로 굳이 행장을 물을 것 없이 돌아가겠다는 뜻이다.

 

[24] 여울로 거슬러 올라가다

 

강물 따라 동으로 내려 갔다가 또 되돌아 올라오니 / 乘流東去泝流還

떠도는 나그네 언제나 조금 편안하리 / 客寢何時得小安

물이 줄고 모래가 쌓인 데는 한푼 정도도 무겁고 / 水落沙堆銖亦重

언덕 무너지고 바위 드러날 때는 한치 거리도 어렵네 / 崖崩石出寸猶難

비오는 소리에 얼마든지 잠자는 것도 해롭지 않고 / 不妨聽雨留連睡

좋은 산 만나서 자세히 보는 일도 기쁘긴 하지만 / 旦喜逢山子細看

다만 이 큰 배를 이끄는 저 뱃사공이 / 只媿郵人牽百丈

종일토록 땀흘리면서 애쓰는 것이 부끄럽네 / 汗流終日走江干

 

[25] 촉직(促織)

 

베 짜라고 재촉하고 또 베 짜라고 재촉하는데 / 促織復促織

슬픈 울음 왜 그리 딱해 보이나 / 哀鳴何惻惻

밤새도록 베 짜는 소리 찰칵거렸어도 / 終夕弄機杼

아침에 보면 한 치의 베도 없네 / 平明無寸縷

홀어미 이 소리 듣고 눈물이 샘솟듯 하고 / 嫠婦才聞淚似泉

출정한 군사들도 한 번 들으면 얼굴에 주름살 낀다오 / 征夫一聽凋朱顔

봄바람 따뜻할 때 꽃은 열매를 맺고 / 春風融暖花着子

여름 날씨 길 때는 제비도 집을 짓는데 / 夏景舒長燕成壘

너는 왜 너 자신도 생각지 않다가 / 胡爲不自謀

찬 이슬과 된서리가 내려야만 바로 가을이라는 것을 깨닫느냐 / 直待霜淸露冷方知秋

촉직아 너는 왜 그렇게 어리석으냐 / 促織爾何愚

세월이 어찌 너를 위해서 잠시인들 멈추겠으랴 / 日月豈肯爲爾留須臾

 

[주C-001]촉직(促織) : 귀뚜라미를 말하는데, 우는 소리가 마치 베 짜는 소리와 같으므로 가을이 되었으니 사람에게 베 짜라고 재촉한다는 뜻에서 이렇게 불렀다 한다.

 

[26] 한 도사(寒道士)의 추풍곡(秋風曲) 타는 소리를 듣고 짓다

 

나는 음악을 잘 모르지만 / 我雖不能音

거문고 좋아하기는 나 같은 이가 없지 / 好琴莫如我

진실로 그 뜻만 깨달으면 / 苟能得其趣

배우지 않아도 된다고 하리 / 自謂不學可

내가 촉중에 와서 무엇을 들었느냐 하면 / 我來蜀中何所聞

분분한 피리 소리에 귀가 째지려 했네 / 鼓笛紛紛耳欲破

들으면 나의 마음만 어지럽히고 / 聽之亂吾眞

물리치면 꾸짖음당할까 두려워했네 / 斥之恐遭罵

뜻밖에 신선 같은 이 노인이 / 不謂古仙翁

세상을 깔보면서 성안에 살고 있었네 / 玩世在城中

나를 맞이해 빈 방에 앉히고서 / 迎我坐虛室

나를 위해 거문고를 타는구나 / 爲我鳴絲桐

한 가락 들을 때 속세의 생각 깨끗해지고 / 一鼓塵懷淸

두 가락 들을 때 참다운 마음 생기게 되네 / 再鼓古意生

향로에 연기 사라지자 쓸쓸한 모습으로 / 玉篆煙消人悄悄

옷깃을 여미고 추풍곡 다시 탄다 / 整襟更作秋風調

썰렁하고 쌀쌀한 이 가을 기후는 / 憀慄兮秋之爲氣也

이슬이 서리로 변하자 잎이 떨어지네 / 霜露漸漸兮木葉下

구름을 바라보니 돌아가는 기러기 슬피 우는데 / 望白雲兮征鴻哀

흐르는 강 한없이 멀고 산도 높구나 / 江水悠揚兮山崔嵬

아아 너희들 먼 데에 있으면서 / 嗟爾遠道之人兮

무엇 때문에 오려는 거냐 / 胡爲乎來哉

유리잔에 가득 부은 술 어찌 사양하랴 / 豈辭引滿玻瓈鍾

이때에 이 나그네 마음 무궁하거늘 / 此時此客心無窮

 

[27] 노상(路上)에서 촉중(蜀中)에서 연경(燕京)으로 돌아갈 때

 

말 위에 앉아 늘 촉도난 읊조리다가 / 馬上行吟蜀道難

오늘 아침 비로소 진관으로 들어가는구나 / 今朝始復入秦關

저물 무렵 푸른 구름 어부수에 막혀 있고 / 碧雲暮隔魚鳧水

가을철 붉은 단풍 조서산에 연하였네 / 紅樹秋連鳥鼠山

문자는 부질없이 천고의 한을 더하는데 / 文字剩添千古恨

공명을 누가 일신의 한가함과 바꾸랴 / 利名誰博一身閑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은 안락(安樂) 길에서 / 令人最憶安和路

죽장과 망혜로 왕래하는 거지 / 竹杖芒鞋自往還

 

[주D-001]촉도난(蜀道難) : 이백(李白)이 촉도(蜀道)의 험함을 읊은 시.

 

[28] 함곡관(函谷關)

 

험한 지형 십이제를 편편하게 보며 / 形勝平看十二齊

내려갈 길도 없고 올라갈 사다리도 없네 / 下臨無路上無梯

토낭은 모두 황하 북쪽에 머물러 있고 / 土囊約住黃河北

지축은 서편으로 이어졌구나 / 地軸句連白日西

천명은 벌써 삼척검으로 돌아갔는데 / 天意已歸三尺劍

인심은 어찌 일환니를 믿을쏜가 / 人心豈恃一丸泥

이랑에 익은 벼 가득하고 바람도 고요하니 / 秋禾滿畝風塵靜

안장에 걸터앉아 낮닭 우는 소리 듣노라 / 穩跨征鞍聽午鷄

 

[주C-001]함곡관(函谷關) : 전국 시대(戰國時代) 진(秦) 나라가 설치한 관문으로 현재의 하남성(河南省) 영보현(靈寶縣) 서남쪽에 있는데, 효함(崤函)이라고도 한다.

[주D-001]험한 지형 …… 보며 : 전국 시대 진(秦) 나라의 함곡관은 워낙 지형이 험하여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성으로 유명하였으며 제(齊) 나라 역시 멀리 떨어져 있고 땅이 비옥하여 공격하기 어려운 나라로 일컬어졌다.《史記》 漢高祖紀에 “진 나라는 백이(百二)를 얻었고 제 나라는 십이(十二)를 얻었다.” 한 말이 있는데, 이는 진 나라 지형은 두 명이 적병 백 명을 당할 수 있고 제 나라는 적병 열 명을 당할 수 있다는 뜻이다.

[주D-002]토낭(土囊) : 홍수를 막을 때 쓰는 흙주머니.《新唐書》 馬燧傳에 “황하를 가로질러 토낭을 쌓아 물을 막은 뒤에 건넜다.” 하였다.

[주D-003]천명(天命)은 …… 돌아갔는데 : 삼척검(三尺劍)은 3척쯤 되는 칼.《史記》 漢高祖紀에 “고조는 ‘내가 일개 선비로서 삼척검을 갖고 천하를 차지했으니, 이는 천명이 아니겠는가?’ 했다.” 하였다.

[주D-004]인심(人心)은 …… 믿을쏜가 : 일환니(一丸泥)는 관애(關隘)를 봉폐(封閉)하는 데 사용하는 한 덩이의 진흙. 후한(後漢) 초기 파촉(巴蜀) 지방을 할거(割據)하고 있던 외효(隗囂)는 한 광무(漢光武)에게 귀순하려 하자 이를 즐기지 않는 장군(將軍) 왕원(王元)은 “신(臣)이 한 덩이의 진흙으로 대왕을 위하여 동쪽으로 가서 함곡관을 봉폐하겠다.” 하여 스스로 왕이 될 것을 설득하였다. 외효는 이 말을 따라 귀순하지 않았다가 결국 멸망하고 말았으므로 한 말이다.《後漢書 隗囂傳》

 

[29] 민지(澠池)에서

 

강한 진 나라는 나는 범과 같은데 / 强秦若翼虎

나약한 조 나라는 관망하는 쥐와 흡사했었지 / 懦趙眞首鼠

동맹이 아니라 특별히 모인 거라 / 特會非同盟

그때의 안위가 이 한 일에 달렸었다 / 安危在此擧

인경의 담은 말만해서 / 藺卿謄如斗

긴 칼을 짚고 옆에 서 있다가 / 杖劍立左右

벽력같이 한 번 꾸짖으니 / 叱吒生風雷

만승의 임금도 스스로 질장구를 쳤고 / 萬乘自擊缶

용감한 백만 명 군사들도 / 桓桓百萬兵

그 한 말을 중히 여겼다 / 一言有重輕

염파는 의리에 굴복하고 / 廉頗伏高義

견자도 남긴 이름 사모하였네 / 犬子慕遺名

오늘날 이 민지 위에 이르니 / 駕言池上遊

몇천 년이 벌써 지나갔는데도 / 去我今幾秋

남은 위엄에 머리끝이 쭈뼛해지고 / 餘威起毛髮

온갖 나무숲도 바람에 떠는 듯하다 / 萬木寒颼颼

 

[주C-001]민지(澠池) : 현재의 하남성(河南省) 의양현(宜陽縣) 서쪽에 있는 못. 전국 시대 진 소왕(秦昭王)은 조(趙) 나라 혜문왕(惠文王)에게 사신을 보내어 민지(澠池)에 모여 우호를 다지자고 하였다. 이때 조왕은 음흉한 진 나라를 두려워하여 가지 않으려고 하자 인상여(藺相如)는 “가지 않으면 조 나라의 약점을 보이는 것입니다.” 하니, 조왕은 부득이 상여를 대동하고 가서 모였었다.

[주D-001]인경(藺卿)의 …… 중히 여겼다 : 인경은 조 나라의 경(卿)인 인상여(藺相如)를 가리킨다. 민지의 모임에 진왕은 조왕에게 “왕은 음악을 좋아한다니 비파를 한번 타십시오.” 하여 모욕을 주었다. 조왕이 비파를 타자, 상여는 진왕에게 “대왕께서는 진 나라의 악기인 질장구를 치십시오.” 하여, 보잘것없는 진 나라의 음악을 비웃는 한편 조왕이 받은 모욕에 대한 앙갚음을 하려 하였으나 진왕이 즐기지 않자, 상여는 “오보(五步)의 안에 신은 목의 피를 대왕에게 뿌리겠소.” 하며 위협하였다. 진왕의 좌우가 칼로 상여를 치려 하자, 상여가 눈을 부릅뜨고 꾸짖으니, 좌우가 놀라 위축되었다. 이에 진왕은 한번 질장구를 치고는 술자리를 파하였는데 이 뒤로는 상여를 두려워하여 감히 조 나라를 공격하지 못하였다.《史記 廉頗藺相如列傳》

[주D-002]염파(廉頗)는 …… 굴복하고 : 염파는 조 나라 장군으로 많은 전공(戰功)을 세웠는데, 조왕은 민지의 모임에서 돌아와 인상여의 공을 높이 평가하여 상경(上卿)을 시키니 지위가 염파의 위였다. 염파는 이에 불만을 품고 상여와 대전할 것을 결심하였는데, 이 소식을 들은 상여는 피하고 만나지 않았다. 

집 식구들이 의심하자 상여는 대답하기를 “나는 강폭한 진 나라도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염 장군(廉將軍)을 두려워하겠는가. 현재 염 장군과 나는 이 나라의 두 범인데 만일 두 범이 싸운다면 누군가 하나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진 나라에 이익을 안겨 주는 것이니 내가 피하는 것은 국가의 이익을 우선하고 개인의 감정을 뒤에 하려는 것이다.” 하였다. 이 말을 전해들은 염파는 매를 짊어지고 가서 사과한 다음 친교를 맺었다.《史記 廉頗藺相如列傳》

[주D-003]견자(犬子)도 …… 사모하였네 : 견자는 한(漢) 나라의 문장가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아명(兒名). 사마상여는 인상여(藺相如)를 사모하여 이름을 상여라고 고치기까지 하였다.《漢書 司馬相如傳》

 

[30] 이릉(二陵)에서 일찍 떠나다

 

내가 성도(成都)로 가려고 할 때 내한(內翰) 송설(松雪) 조공 자앙(趙公子昂 자앙은 조맹부(趙孟頫)의 자)이 고조(古調) 한 편을 보내왔는데 “금성(錦城)을 너무 좋아하지 말고 일찍 돌아오는 것이 좋다.”는 귀절이 있었다. 금년 시월에 북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마침 눈이 갠 후였다. 이릉에 이르자 도중에서 갑자기 그의 시가 생각나므로 이 시를 지어 부쳐드렸다.

꿈을 깬 여관에 새벽 등불 깜박거리는데 / 夢破郵亭耿曉燈

말을 타고 달리려 하니 말이 비틀거리는구나 / 欲乘鞍馬覺凌兢

구름은 주사가 연단(煉丹)하던 부엌에 끼었고 / 雲迷柱史燒丹竈

눈은 문왕이 비 피하던 언덕에도 덮였다 / 雪壓文王避雨陵

일이 닥칠 때 가슴이 복잡한 것을 누가 알랴 / 觸事誰知胸磈磊

시는 읊을수록 머리칼만 더 빠져 버리네 / 吟詩只得髮鬅鬠

두건은 꺾이고 갖옷조차 뚫어지니 / 塵巾折角裘穿縫

용문을 향하여 이응 보기 부끄럽네 / 羞向龍門見李膺

 

[주D-001]주사(柱史)가 …… 부엌 : 주사는 주하사(柱下史)의 약칭으로 이 벼슬을 한 도교(道敎)의 원조(元祖) 노자(老子)를 가리킨다. 연단(煉丹)은 도교에서 말하는 장생 불사약(長生不死藥)인 단약(丹藥)을 굽는 것을 말하는데, 노자는 청우(靑牛)를 타고 파촉(巴蜀)에 이르러 단약을 구웠다 한다.

[주D-002]문왕(文王)이 …… 언덕 : 《左傳》 僖公 33年에 “효함(崤函)에 두 언덕이 있으니 남쪽은 하걸(夏桀)의 조상인 하후 고(夏侯皐)의 무덤이고, 북쪽은 문왕이 풍우(風雨)를 피하던 곳이다.” 하였다.

[주D-003]용문(龍門)을 …… 부끄럽네 : 용문은 산서성(山西省) 하진현(河津縣)에 있는 나루인데 이곳은 물이 험하여 고기들이 올라오지 못한다. 이 때문에 강에서 몰려온 큰 고기떼가 용문에 모여 올라오려 하는데 만일 올라오면 용이 된다 한다.《後漢書》 李膺傳에 “이때 조정이 어지러워 기강이 해이해졌는데, 이응은 홀로 예의를 지켜 풍속을 바로잡으니 선비들이 그의 대우를 받으면 ‘용문에 올랐다.’ 하였다.” 했으므로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영광을 일컫게 되었다.

 

[31] 조 학사(趙學士)의 시를 부록함

 

삼한에서 파촉을 바라보면 / 三韓望巴蜀

거리가 만 리도 훨씬 넘는데 / 相去萬里餘

사다리 길은 하늘로 올라가는 듯하고 / 棧閣如登天

검문산도 역시 넘을 수 없지 / 劍門不可踰

누가 이 더위를 무릅쓰며 / 誰令觸炎熱

말 타고 치달리도록 했었을까 / 鞍馬事馳驅

왕실의 일 예정이 있어 / 王事有期程

사사로 편할 겨를 구할 수 없지 / 吾敢求安居

도로는 왜 이렇게 험하고 멀며 / 道路何緬邈

산천도 너무나 얽히고 서리었네 / 山川亦盤紆

다행히 가는 곳마다 고적이 많아 / 賴彼多古跡

스스로 위로하면서 머뭇거릴 수 있지 / 庶可慰躕躇

금성이 너무 좋다고 하지 말고 / 勿云錦城樂

일찍 돌아오는 것이 제일 상책일거야 / 早歸乃良圖

하늘이 높고 날씨가 깨끗한데 / 秋高天氣淸

머리를 들고 서남쪽 모퉁이를 바라봅니다 / 矯首西南隅

 

[32] 맹진(孟津)을 건너면서

 

깃발을 날리면서 공연스레 역류한다고 꾸짖었지 / 旄鉞空煩叱逆流

그 당시 산하가 서주에 소속되지 않았는데 / 山河曾未屬西周

양후의 의리도 이제에게 부끄러울 것 없었으니 / 陽侯不媿夷齊義

황룡이 하후(夏后)의 배를 짊어진 데에 비하지 마오 / 莫比黃龍負禹舟

 

[주C-001]맹진(孟津) : 하남성(河南省) 맹현(孟縣) 남쪽에 있는 나루로 주 무왕(周武王)이 주(紂)를 칠 때, 이곳에서 크게 제후들을 모았었다.

[주D-001]양후(陽侯)의 …… 비하지 마오 : 양후는 물귀신.《淮南子》 覽冥訓에 “무왕이 주(紂)를 칠 때 맹진을 건너는데, 양후의 물결이 역류하여 주 나라 군사를 막았다.” 했는데, 그 주에 “양후는 양릉국(陽陵國)의 제후인데 그가 물에 빠져 죽어 그 귀신이 큰 물결을 일으킨다.” 하였다. 이제(夷齊)는 백이(伯夷)ㆍ숙제(叔齊).《史記》 伯夷列傳에 “백이ㆍ숙제는 무왕에게 천자인 주(紂)를 치는 것은 불의(不義)라고 간하였고 뒤에 주 나라가 천하를 차지하자 수양산(首陽山)에 숨어 굶어 죽었다.” 했으며, 또《史記》 夏本紀에 “우(禹) 임금이 남방을 순행하다가 강을 건너는데 황룡(黃龍)이 배를 짊어지니, 배가 움직이지 못하였다. 모두들 두려워했으나 우 임금은 웃으며 ‘내가 천명(天命)을 받았다.’ 하고는 태연하자, 황룡은 머리를 숙이고 도망쳤다.” 하였는데, 무왕이 주(紂)를 칠 때에는 산하(山河)가 아직 은(殷) 나라 것이므로 하신(河神)인 양후가 물결을 역류하여 주 나라 군사를 막은 것은 백이ㆍ숙제의 의리와 같은 것이며 천명을 받은 우 임금의 배를 이유 없이 방해한 황룡과는 같지 않다는 뜻이다.

 

[33] 비간(比干)의 무덤

 

이 무덤은 위주(衛州) 북쪽 십리쯤 되는 거리에 있다. 대개 주 무왕(周武王)이 만든 봉분이고 당 태종(唐太宗)도 정관(貞觀) 연간에 이곳을 지나다가 친히 제문을 지어 제사했는데 그 비석에 새긴 글자는 모두 없어졌으나 몇 자쯤은 알아볼 수 있다. 대개 이 두 임금이 딴 시대의 신하를 이토록 잊지 못한 것은 그의 충성을 장하게 여기고 그의 죽음을 불쌍히 여긴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무왕은 은(殷) 나라를 이긴 후에 백이(伯夷)를 가벼이 여기고 태종도 요동(遼東)을 정벌하던 날 위징(魏徵)에게 의심을 품었으니 이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내가 이 시를 짓는 것은 역시 《춘추(春秋)》에서 현자를 책비(責備)하는 의(義)이다.

주왕이 은 나라 신하의 무덤 만들어 준 것은 / 周王封墓禮殷臣

충성으로 간하다 희생당함을 애석히 여긴 때문인데 / 爲惜忠言見殺身

무슨 일로 화양으로 말을 돌려보낸 후에는 / 何事華陽歸馬後

포륜으로 채미한 사람에게 사과하지 않았을까 / 蒲輪不謝採薇人

종래의 분욕이 양지를 가리어 / 從來忿欲蔽良知

나이 늙자 전도되는 일 하게 하였네 / 日暮令人有逆施

비간의 무덤에 제사한 것은 잘한 일인데 / 哿矣親祠比干墓

위징의 비석은 왜 넘어뜨렸나 / 胡然却仆魏徵碑

 

[주C-001]비간(比干)의 무덤 : 비간은 은주(殷紂)의 숙부로 주(紂)가 정치를 하지 않고 주색에 빠지자 직간(直諫)하다가 죽임을 당하였는데, 주 무왕(周武王)은 주를 치고 돌아오는 길에 비간의 묘에 봉분을 하였다.

[주D-001]태종(太宗)도 …… 품었으니 : 위징(魏徵)은 태종의 재상으로 충간(忠諫)을 좋아하니 태종도 그를 높이 평가하여 위징이 죽자, 몹시 슬퍼하고 손수 비문을 지어 세우기까지 하였으나 뒤에 그가 추천한 두정륜(杜正倫)ㆍ후군집(侯君集) 등이 죄를 짓자, 위징을 시기하던 간신들은 그가 아당했다고 모함하니 이것을 믿은 태종은 손수 써서 세운 비석을 넘어뜨리기까지 하였다. 그 후 고구려(高句麗)를 정벌하지 말라던 위징의 말을 따르지 않고 출정했다가 실패하자, 그제야 그의 어짊을 깨닫고는 즉시 사람을 보내어 위징에게 제사하고 다시 비석을 세웠다.

[주D-002]《춘추(春秋)》에서 …… 의(義) : 책비(責備)는 훌륭한 사람에게 조그마한 잘못도 지적하여 완전무결을 요구하는 것으로 곧 성군(聖君)인 무왕이 백이ㆍ숙제를 찾지 않은 것과 태종이 위징을 의심한 것은 잘못이라는 뜻.《新唐書》 太宗紀贊에 “《춘추》의 법은 항상 현자에게 책비한다.” 하였는데, 현자의 잘못을 두둔하지 않고 바로 쓰는 것을 춘추 필법(春秋筆法)이라 한다.

[주D-003]주왕(周王)이 …… 않았을까 : 화양(華陽)은 화산(華山)의 남쪽. 주 무왕(周武王)은 주(紂)를 친 다음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화산의 남쪽에 말을 돌려보냈으며 소를 도림(桃林)의 들에 방목하였다.《書經 武成》포륜(蒲輪)은 옛날 임금이 현자를 초빙할 때 쓰던 수레. 채미(採薇)한 사람은 수양산에 숨어 주 나라 녹을 먹지 않고 고사리를 캐 먹다가 굶어 죽은 백이ㆍ숙제로 곧 무왕은 주(紂)에게 충간하다가 죽임을 당한 비간에게는 예를 다했으면서 왜 자기에게 충간한 백이ㆍ숙제에게는 찾아가 사과하지 않았느냐는 뜻이다.

[주D-004]종래의 …… 하였네 : 원래 위징은 태자 건성(建成)을 섬겨 태종을 제거하려 하다가 도리어 태종의 세력에게 패하여 건성은 살해되고 위징은 잡혔었는데, 태종이 그의 어짊을 알고 신하로 삼았다. 그러나 위징에 대한 구원(舊冤)이 남아 있다가 지혜가 가려져 만년에 위징을 의심하게 됐다는 뜻이다.

 

[34] 연도(燕都)에서 소경(少卿) 박충좌(朴忠佐)가 귀국(歸國)할 때 전송하며

 

봄바람에 기쁜 기색 집안에 가득할 테지 / 春風喜氣滿庭闈

마음에 흡족한 새 벼슬 말 나는 듯하구나 / 稱意新官馬似飛

나는 서산에서 우는 두견새 부끄러워라 / 慚愧西山子規鳥

불여귀 불여귀 하면서 자주 일러 주는데 / 向人勤道不如歸

 

[주D-001]나는 …… 일러 주는데 : 불여귀(不如歸)는 두견새의 우는 소리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제일이라는 뜻인데 고향에 못 가는 자신을 슬퍼한 것이다.

 

[35] 조 학사(趙學士) 자앙(子昂) 에게 화답하다

 

따뜻한 봄 전정(殿庭)에서 붓을 가지고 / 珥筆飄纓紫殿春

시 한 편 휘둘러 써서 금포를 빼앗았네 / 詩成奪得錦袍新

시신들 눈을 씻고 그 풍모를 보면서 / 侍臣洗眼觀風采

본래 이는 남조에 제일인이라네 / 曾是南朝第一人

영화 풍류 부질없이 생각나니 / 風流空想永和春

한묵에 남긴 자취 여러 번 변했네 / 翰墨遺蹤百變新

천년이 넘은 오늘날 참모습을 보았는데 / 千載幸逢眞面目

더구나 집안에 위부인 같은 이도 있다지요 학사의 부인 관씨(管氏)도 글씨를 잘 썼다. / 況聞家有衛夫人

 

[주D-001]금포(錦袍)를 빼앗았네 : 금포는 비단으로 만든 도포. 당(唐) 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가 용문(龍門)에 유람갔을 적에 군신(群臣)에게 시를 짓게 하고는 우승하는 자에게는 금포를 하사할 것을 약속하였다. 좌사(左史) 동방규(東方虯)가 먼저 시를 지어 바치자, 무후는 금포를 하사하였는데, 뒤이어 송지문(宋之問)이 시를 바치니, 매우 아름다웠으므로 무후는 즉시 동방규에게 하사한 것을 빼앗아 송지문에게 입혔다.《隋唐嘉話》이 때문에 시재(詩才)가 뛰어난 것을 칭하게 되었으며, 과거에 급제한 자를 탈금지인(奪錦之人)이라 하였다.

[주D-002]영화(永和) …… 생각나니 : 영화는 당(唐) 나라 때 조효손(祖孝孫)이 지은 악곡으로 현종(玄宗)은 이것을 사당에 사용하고는 대당 아악(大唐雅樂)이라 이름하였는데, 현종은 일찍이 안록산(安祿山)의 난을 피하여 파촉으로 파천했으므로 성당(盛唐)의 문화를 생각하여 한 말이다.

[주D-003]위부인(衛夫人) : 진(晉) 나라 위항(衛恒)의 종녀이며 이구(李矩)의 아내로 이 부인(李夫人)이라고도 하는데, 종요(鍾繇)의 필법을 전수받아 예서(隸書)와 정서(正書)를 잘 써, 왕희지(王羲之)ㆍ왕헌지(王獻之)가 모두 그에게서 글씨를 배웠으므로 글씨를 잘 쓰는 부인으로 칭하게 되었다.

 

[36] 송도(松都)에서 소경(少卿) 박충좌(朴忠佐)가 북경(北京)으로 올라갈 때 전송하다

 

옥피리 서너 곡조 끝마치고 / 玉管停三疊

금잔으로 취하도록 권해보세 / 金杯勸十分

임금님 은총에 보답할 뿐 / 但應期報主

우리들 이별은 애석히 여길 것 없지 / 不用惜離群

풀이 다 마르니 낙타는 사막에서 울고 / 草盡駝鳴磧

바람이 높으니 기러기는 구름 속에서 울부짖네 / 風高鴈叫雲

평생 뜻은 사방에 한 번 나서려고 했었는데 / 平生四方志

밤에 누워 꿈을 꾸면 그대 따라가리 / 淸夢又隨君

 

[37] 곡령(鵠嶺)에 올라

 

목구멍에는 연기가 피고 땀은 물 흐르듯 / 煙生渴咽汗如流

열 걸음 걷자면 여덟 아홉 번 쉬게 되네 / 十步眞成八九休

뒤에서 오는 자 앞지름을 괴이하게 여기지 말라 / 莫怪後來當面過

천천히 가도 결국 꼭대기까지 이를 거야 / 徐行終亦到山頭

 

[38] 전첨(典籤) 종형(從兄) 군실(君實)이 삼척(三陟)으로 부임할 때 전송하면서 추후에 기록했다.

        종형(從兄) 군실(君實)은 국당공 이천(李蒨)을 말함.

 

이씨의 집안 손꼽히는 문장 명필들 / 指李家中翰墨仙

산천 좋은 곳에 위현을 차고 가네 / 湖山勝地佩韋絃

누에 올라 시의 성가(聲價) 더하리니 / 登樓更長新詩價

맑은 꿈속에 사혜련과 서로 만나리 / 淸夢相尋謝惠連

 

[주D-001]위현(韋絃) : 가죽과 활로 기질을 변화하는 교훈을 말한다.《韓非子》 觀行에 “옛날 서문표(西門豹)는 성질이 급했으므로 부드러운 가죽을 차고 다녔고, 동안우(董安于)는 성질이 느렸으므로 급한 활을 차고 다녀 스스로 경계를 삼았다.” 하였다.

[주D-002]사혜련(謝惠連) : 진(晉)의 문장가 사영운(謝靈運)의 종제인데, 또한 문장이 뛰어났으므로 자기의 종형을 사영운에, 자신을 사혜련에 비유한 것이다.

 

[39] 종형 군실(君實)의 아들 달중(達中)이 사마시(司馬試)에 장원으로 뽑히다

 

은포 입고 달려와 두 번 절하기 어려우니 / 顚倒銀袍再拜難

마루에 내려가 손 잡자 눈물 흐르네 / 下堂携手淚潺潺

아아 축하연 누가 능히 마련할지 / 咄嗟賀宴誰能辦

머리칼 자르는 사람 없어 애끊는다오 / 腸斷無人爲剪鬟

진사(進士)에 합격한 자는 대부분 유가(儒家)의 자제로 창방(唱榜)했다는 소문을 들으면 축하객이 답지하는데 이들을 졸지에 대접하기 어려워 밥만 지어 놓는다. 이러므로 세속에서 이 축하연 별명을 열반연(熱飯宴)이라고들 하는데, 그것은 잠깐 사이에 해낸다는 뜻이다.

 

[주D-001]머리칼 …… 애끊는다오 : 잔치를 마련해 줄 어머니가 없어 슬프다는 뜻.《晉書》 陶侃傳에 “범규(范逵)가 일찍이 도간(陶侃)을 찾아갔는데, 갑자기라서 음식을 마련할 수 없자, 그 어머니가 머리를 잘라 팔아서 대접했다.” 하였다.

 

[40] 구요당(九曜堂)

 

시냇물 잔잔하고 돌길 비꼈는데 / 溪水潺潺石逕斜

고요한 모습 도인의 집과 같구나 / 寂寥誰似道人家

뜰앞에 누운 나무 봄에도 잎이 없으니 / 庭前臥樹春無葉

벌들은 온종일 꽃에만 날아드네 / 盡日山蜂咽草花

빈 창에서 꿈을 깨니 달이 반쯤 비치었는데 / 夢破虛窓月半斜

숲 속에서 종소리 나자 중의 집인 줄 알았다오 / 隔林鐘鼓認僧家

새벽 무렵 부는 바람 느닷없이 험악하더니 / 無端五夜東風惡

아침 되자 남쪽 도랑에 떨어진 꽃 떠내려오네 / 南澗朝來幾片花

 

[41] 최졸옹(崔拙翁)에게 화답하다 진퇴격(進退格)

 

억지로 웃으며 세속을 따르는 것 천성이 아닌데 / 强顔徇俗非天稟

사욕을 없애고 현인을 희망하는 공부는 모자라네 / 克己希賢之近功

비록 이루지 못하더라도 각곡보다는 나을 테고 / 縱使不成優刻鵠

더구나 쓸모없다 해서 도룡을 후회할까 / 豈緣無用悔屠龍

중년에야 비로소 인정이 좁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 中年漸覺人情隘

후세인들 공정한 의논 있을 줄 어찌 알겠는가 / 後世那知物論公

평생의 삼익우에게 이 말씀 부치오니 / 寄語平生三益友

나중에 다시 괄목하고 상대하세 / 他時刮目更相從

 

[주C-001]최졸옹(崔拙翁) : 졸옹은 최해(崔瀣,1287~1340)의 호. 예산농은(猊山農隱)이라고도 한다.

                 최졸옹(崔拙翁)은 익재(益齋)와 동갑나이다.

[주D-001]비록 …… 후회할까 : 소성(小成)을 즐기지 않고 큰 뜻을 품으며 비록 도(道)를 배워 세상에 써먹지 못하더라도 후회하지 않는다는 뜻. 각곡(刻鵠)은 고니를 조각하는 것이며, 도룡(屠龍)은 용을 잡는 기술.《後漢書》 馬授傳에 “범을 그리다가 이르지 못하면 도리어 개새끼와 같아지고, 고니를 조각하다가 이루지 못하면 오히려 따오기는 된다.” 한 말이 있는데, 이는 큰 일을 배우다가 잘못되면 아무런 소용이 없지만 작은 것은 배우다가 되지 못하더라도 오히려 쓸데가 있다는 뜻이다.《莊子》 列禦寇에 “주평(朱平)이란 자가 지리익(支離益)에게 용을 잡는 기술을 배우느라 3년 동안 천금(千金)을 탕진하여 기술을 다 배웠으나 쓸데가 없었다.” 하였다.

[주D-002]삼익우(三益友) : 세 가지의 유익한 벗.《論語》 季氏에 “유익한 벗이 셋이 있으니 정직한 벗, 신실한 벗, 식견이 많은 벗이다.” 하였다.

 

[42] 배 안에서 재상(宰相) 일재(一齋) 권한공(權漢功)에게 화답하다 이때 일재가 강절(江浙)로 가게 되었다.

 

해뜰 무렵 백운루 밑에서 배를 타고 / 蘭舟晩發白雲樓

강남의 첫째 고을로 향해 간다 / 遙指江南第一州

좋은 술 취하도록 마시고 북도 울리니 / 滿酌金杯搥畫鼓

서자를 끌지 않았어도 역시 풍류라 하겠네 / 不携西子亦風流

 

[주D-001]서자(西子) : 춘추 시대(春秋時代) 월(越) 나라의 미인 서시(西施). 오(吳) 나라에 바쳐져 오왕 부차(吳王夫差)의 총애를 받았으므로 미인의 대명사로 쓰이게 되었다.

 

[43] 금산사(金山寺)

 

도솔암(兜率菴) 장엄하다는 말 옛날에 들었더니 / 舊聞兜率莊嚴勝

봉래산 조용한 모습 지금 비로소 보았네 / 今見蓬萊氣像閑

천 걸음 되는 회랑이 바다를 내려다보고 / 千步回廊延漲海

백 길도 넘는 누각 뭇 봉우리 휩싸고 있다 / 百層飛閣擁浮山

세상을 잊은 듯한 해오라기 종소리에 잠들었는데 / 忘機鷺宿鍾聲裏

탑 위에 서린 용 경 외는 소리 듣는가봐 / 聽法龍蟠塔影間

난간에 걸터앉아 고기잡이 노래 높이 부르니 / 雄跨軒前漁唱晩

질펀한 물결 잔잔한데 반달 떠오르는구나 / 練波如掃月如彎

 

[44] 초산(焦山)

 

배씨 노인 부옥산에 별장을 열고 / 裵老開浮玉

깨끗한 마음 일초에게 양보하랴 / 胸襟讓一焦

바다는 오 나라 땅을 다 삼킨 듯한데 / 海呑吳地盡

산은 초 나라 하늘에 솟은 것 같구나 / 山控楚天遙

신기루(蜃氣樓)는 햇살 따라 창에 비치고 / 蜃氣窓間日

갈매기 소리 조수 따라 섬돌 밑에 들어온다 / 鷗聲砌下潮

돌아서 가려다가 또 머뭇거리니 / 欲歸還倚杖

송죽 숲에 부는 바람 썰렁하구나 / 松竹晩蕭蕭

 

[주C-001]초산(焦山) : 강소성(江蘇省) 단도현(丹徒縣) 동쪽에 있는 산으로 일명 부옥산(浮玉山)이라고도 하는데, 삼국(三國) 때의 고사(高士) 초선(焦先)이 이 산에 은둔하였기 때문에 초산이라 했으며 초선은 천하가 생긴 이래 1인자라 하여 일초(一焦)라 불렀다.

 

[45] 다경루(多景樓)에서 권일재(權一齋)를 모시고 옛사람의 운에 따라 함께 짓다

 

양자강 남쪽 옛날 윤주에서 / 楊子津南古潤州

몇 차례 즐겼으며 몇 차례 걱정했던가 / 幾番歡樂幾番愁

아첨하는 신하 정사하기를 물고기가 미끼 탐내듯 / 侫臣謀國魚貪餌

간사한 아전 백성 괴롭힘은 새가 먹이 찾듯 / 黠吏憂民鳥養羞

풍경 소리 요란하자 저녁 조수 먼 개까지 들어오고 / 風鐸夜暄潮入浦

도롱이 두르고 섰으니 비가 누 위에 뿌리누나 / 煙蓑瞑立雨侵樓

중류에서 돛대 치는 것이 나의 일 아니니 / 中流擊楫非吾事

하늘 가에 떠가는 범려의 배 한가히 바라본다오 / 閑望天涯范蠡舟

 

[주D-001]중류(中流)에서 …… 아니니 : 전쟁 때문에 강을 건너는 것이 아니라는 뜻.《晉書 祖逖傳》에 “예주 자사(豫州刺史) 조적(祖逖)은 유사(流徙) 부곡(部曲) 백여 가호를 거느리고 강을 건너다가 중류에서 돛대를 치며 맹세하기를 ‘내가 중원(中原)을 깨끗이 소탕하지 못한다면 이 강을 다시 건너지 않겠다.’ 하여 기상이 장렬하니, 사람들이 모두 감탄했다.” 하였다.

[주D-002]범려(范蠡) : 춘추 시대 월(越) 나라 대부로 월왕 구천(越王句踐)을 도와 적국인 오(吳) 나라를 멸망시킨 다음, 고소대(姑蘇臺)에 있던 미인 서자(西子)를 데리고 공명을 피하여 오호(五湖)에 배를 띄우고 월 나라를 떠나 한가히 살았다.《史記 越王句踐世家》

 

[46] 오강(吳江)에서 또 일재(一齋)를 모시고 소동파(蘇東坡)의 운에 따라 짓다

 

십 년 동안 티끌 속에 구부리고 있으니 / 十年俯首塵土窟

꿈속에 강호 생각하니 근심이 이네 / 夢想滄洲欲愁絶

뛰어난 오강 경치 천하에 드물다는 말은 / 吳江淸勝天下稀

내가 처음 조송설에게 들었었네 / 我初聞之趙松雪

배에다 술을 싣고 미인도 데리고 가니 / 滿船載酒攜佳人

예쁜 웃음 맑은 노래에 이와 볼이 아름답구나 / 巧笑淸歌玉齒頰

수홍교 밑에는 백구가 나는데 / 垂虹橋下百鷗飛

흰 물결 하늘에 닿고 하늘은 물과 닿았네 / 白波接天天四垂

술잔을 멈추고 달 뜨기를 기다리면서 / 停杯更待江月上

배가 가는 대로 밤새도록 즐길 수 있네 / 信棹自喜風帆遲

잠삼과 두보 생각나니 / 却憶岑參與杜甫

미파에서 즐긴 일 참으로 아이들 희롱이라오 / 渼陂之樂眞兒嬉

 

[주C-001]소동파(蘇東坡) : 동파는 송(宋)의 문장가 소식(蘇軾)의 호.

[주D-001]조송설(趙松雪) : 송설은 원(元) 나라 조맹부(趙孟頫)의 호.

[주D-002]잠삼(岑參)과 …… 희롱이라오 : 잠삼은 당(唐) 나라 사람으로 두보(杜甫)와 함께 문장에 능하였다. 미파(渼陂)는 섬서성(陝西省) 호현(鄠縣) 서쪽에 있는 물이름인데, 일찍이 두보는 잠삼의 형제와 함께 이 물에서 놀았다. 그리하여 “잠삼의 형제 모두 기이한 것을 좋아하여 나를 초청해서 멀리 와 미파에 놀았네[岑參兄弟皆好奇 邀我遠來遊渼陂]”라는 시를 지었다.

 

[47] 고소대(姑蘇臺)에서 권일재(權一齋)가 이태백(李太白)의 운에 따라 지은 시를 화답하다

 

이팔 청춘 예쁜 시절 저라산(苧蘿山) 아가씨 / 苧蘿佳人二八時

옥 같은 얼굴 분바르지 않아도 예뻤다오 / 玉質不勞朱粉施

오궁에 기쁜 웃음 어느 때 끝났느냐 하면 / 吳宮歡笑幾時畢

바로 월왕이 쓸개를 씹던 날이었죠 / 正是越王嘗膽日

고소성 위에는 가을 풀 시들었고 / 姑蘇城頭秋草多

고소성 밑에는 강물만 흐르는데 / 姑蘇城下江自波

치이자피(鴟夷子皮)가 타던 배 지금 어디에 있는가 / 鴟夷一舸今在何

 

[주C-001]고소대(姑蘇臺) : 강소성(江蘇省) 오현(吳縣)의 서쪽 고소산(姑蘇山)에 있는 누대(樓臺). 춘추 시대 월왕 구천(越王句踐)은 오왕 부차(吳王夫差)에게 회계산(會稽山)에서 크게 패한 후 쓸개를 씹으며[嘗膽] 복수할 것을 꾀하다가 저라산(苧蘿山)에서 얻은 미인 서시(西施)를 부차에게 바치니, 부차는 그의 미모에 혹하여 고소대를 크게 짓고는 날마다 유희(遊嬉)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았으며 이것을 간하는 충신 오자서(伍子胥)를 죽였다. 이 때문에 결국 오 나라는 월 나라에게 멸망을 당했는데, 월(越)의 대부 범려(范蠡)는 성공한 다음 공명을 피하여 고소대에 있던 서시와 함께 오호(五湖)에 배를 띄우고 스스로 치이자피(鴟夷子皮)라고 성명을 고친 다음, 월 나라를 떠나 한가하게 살았다.《史記 越王句踐世家》

 

[48] 고정산(高亭山) 백안 승상(伯顔丞相)이 군사를 주둔시켰던 곳

 

강 위에 아름다운 산 곱게 그린 눈썹 같고 / 江上山如淡掃眉

곳곳마다 사는 집들 무궁화 울타리로구나 / 人家處處槿花籬

배를 멈추고 소나무 사이 절 찾으려다 / 停舟欲問松間寺

지팡이 짚고 대나무 밑 연못을 먼저 보네 / 策杖先窺竹下池

돛대들은 저물 무렵 방초 언덕에 연이었고 / 帆影暮連芳草遠

종소리는 새벽마다 구름 속에서 울려 나온다 / 鐘聲曉出白雲遲

난간에 기대 서서 삼오 지방 바라보니 / 憑欄一望三吳小

장군이 여기서 주둔한 때가 생각나네 / 像想將軍立馬時

 

[49] 임안(臨安)의 해회사(海會寺)에서 유숙하다

 

사찰의 누대 멀고도 높아 / 梵官臺殿遠嵯峨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밤에 비로소 이르렀네 / 沙步移舟夜始過

산 위에 밝은 달 사람 따라 비쳐오고 / 峽月轉廊隨響屐

창 밖에 시냇물 구슬을 울리는 듯하네 / 溪風入戶動鳴珂

산은 소자 때문에 벌써 이름이 났는데 / 山因蘇子知名久

수목도 전왕 때부터 여러 세대 겪었었지 / 樹自錢王閱事多

맥상에 봄 돌아와도 꽃소식 없으니 맥상화곡(陌上花曲)은 바로 이곳에 있었던 일이다. / 陌上春歸花寂寂

오직 꾀꼬리만이 촌가에 화답하누나 / 唯聞谷鳥和村歌

 

[주C-001]임안(臨安) : 현재의 절강성(浙江省) 항주시(杭州市)로 오계(五季) 때 오월왕(吳越王) 전류(錢鏐)가 이곳에 도읍을 세웠으며 송(宋)의 문장가 소식(蘇軾)이 이곳에 오래 있었다.

[주D-001]소자(蘇子) : 동파(東坡) 소식(蘇軾)을 가리킨다.

[주D-002]맥상(陌上)에 …… 없으니 : 맥상은 언덕 위라는 뜻. 소식(蘇軾)의 맥상화시인(陌上花詩引)에 “오월왕(吳越王)의 비(妃)가 봄이 되면 반드시 임안으로 돌아가자, 왕은 비에게 편지하기를 ‘맥상에 꽃이 피니 천천히 돌아가라.’ 하였는데, 오현(吳縣) 사람들이 이 말로 노래를 지으니, 이 악곡을 맥상화(陌上花)라 하는바, 매우 완전(宛轉)하여 서글프다.” 하였다.

 

[50] 냉천정(冷泉亭)

 

시냇가에 깨끗한 바위 사랑하여 / 爲愛溪邊石

지팡이 끌고 얼마 동안 서 있었네 / 扶筇小立時

잔 물결에 낙조가 비치니 / 微波含落照

나뭇가지 오르내리는 원숭이 그림자 움직인다 / 影動掛猿枝

 

[51] 도장산(道場山)에서 일재(一齋)를 모시고 놀면서 소동파(蘇東坡)의 운에 따라 짓다

 

내 걷히고 맑은 물결 산기슭까지 출렁이는데 / 煙收澄波動林麓

해 오르자 푸른 안개 골짜기에 떠 있구나 / 日上翠靄浮巖谷

솔 바람 대나무 그늘 십 리가 넘는 길에 / 長松苦竹十餘里

산중까지 이르지 않아도 흥취가 절로 나네 / 未到山中淸興足

오흥 들 넓은 전지 바다처럼 아득하건만 / 吳興田野海瀰漫

다만 이 산만은 용이 서린 듯하다 / 只有此山龍屈蟠

산중에 도장 이름 복호라 하는데 / 山中道場名伏虎

돌난간 계수나무 기둥으로 여울가에 있네 / 石欄桂柱臨風湍

도인은 문 닫고 밖에 나가지 않고는 / 道人閉戶不浪出

대나무로 의자를 만들고 부들로 자리하였네 / 竹作匡床蒲作席

처마 앞에 높이 솟은 늙은 나무는 / 壓簷老樹高十尋

옛날에 옮겨다 심었었다오 / 云昔移來自封植

사공이 예쁜 기생 이끌고 놀던 일 생각하니 / 有懷謝公攜翠鬟

깨끗한 경지에서 마음대로 즐기다가 / 任性逍遙雲水間

나중에 귀히 되자 산수에 겨를이 없어 / 富貴他年却不兎

옛날에 오르던 동산 공상만 하고 말았네 / 夢魂空想東西山

한평생 백 년이란 순식간인데 / 百歲眞同昏與旦

더구나 걱정하는 시간이 반이 넘지 / 更耐憂患常居半

세상 사람 누가 이 도인과 비등하랴 / 世人豈比此道人

나는 지금 갑자기 탄식이 난다 / 令我悠然一長嘆

 

[주D-001]사공(謝公)이 …… 놀던 일 : 사공은 진(晉) 나라 때의 재상 사안(謝安). 풍류를 좋아하던 사안은 기생을 데리고 동산(東山)에 은둔하고는 나라에서 불러도 가지 않으니, 고영조(高靈祖)는 말하기를 “사안이 나오지 않으니 백성을 어떻게 한단말인가.” 하였다. 그 후 사안은 다시 세상에 나와 많은 공을 세우고 재상의 지위에 올랐다.《晉書 謝安傳》

 

 [52] 호구사(虎丘寺)에서 시월달 북상할 때 거듭 놀게 되었다

 

합려성 밖에 옛 절이 있는데 / 闔閭城外古禪林

생공당 앞에는 나무가 우거졌구나 / 生公堂前樹陰陰

두 번째 오니 삼생의 꿈 같고 / 重遊髣髴三生夢

사방을 바라보니 만 리 같은 마음 아득하다 / 四顧微茫萬里心

산 위에 달 오르니 누각 그림자 겹치고 / 樓閣影重山月上

돌샘 깊으니 소리 멀리 들린다 / 轆轤聲遠石泉深

가마 타고 강마을로 돌아가니 / 藍輿歸去江村路

종소리가 구름 속에서 울려 나온다 / 雲際猶聞鐘磬音

 

[53] 눈이 갠 후 다경루(多景樓)에 오르다

 

누가 높으니 눈보라 볼만하고 / 樓高正喜雪漫空

눈이 갠 뒤 온갖 경치 더욱 좋구나 / 時後奇觀更不同

몇만 리 하늘은 은빛으로 에워쌌고 / 萬里天圍銀色界

육조 시대 산천은 수정궁으로 변해졌네 / 六朝山擁水精宮

떠오르는 햇살에 술취한 눈 어찔해지고 / 光搖醉眼滄溟日

쌀쌀한 바람 따라 깨끗한 시상도 더해지는데 / 淸透詩腸草木風

아아 떠도는 이 나그네 무슨 일 이루었나 / 却笑區區何事業

십 년 동안 번화가에서 땀만 흘렸지 / 十年揮汗九街中

 

[54] 회음(淮陰)에 있는 표모(漂母)의 무덤

 

가난한 선비 불쌍히 여겼을 뿐이었지 / 重士憐窮義自深

어찌 한 그릇 밥 가지고 천금을 바랐으랴 / 豈將一飯望千金

돌아오자 남창장에게 책망했으니 / 歸來却責南昌長

왕손도 표모의 마음 몰랐던가봐 / 未必王孫識母心

여자도 오히려 영웅을 알아보고 / 婦人猶解識英雄

한 번 만나 은근한 마음으로 위로해 주었는데 / 一見慇懃慰困窮

범 같은 장수 버려 적국으로 가게 했으니 / 自棄爪牙資敵國

항왕의 눈 중동이라도 소용이 없었네 / 項王無賴目重瞳

 

[주C-001]회음(淮陰)에 있는 표모(漂母)의 무덤 : 회음은 강소성(江蘇省) 회안현(淮安縣)의 서북쪽에 있었던 지명. 표모(漂母)는 빨래하는 부인으로 한신(韓信)에게 밥을 주었던 부인을 말한다. 한신이 미천했던 시절, 남창(南昌)의 정장(亭長)에게 밥을 얻어 먹었으나 그 부인이 싫어하므로 떠나가 성 밑에서 낚시질하였는데 몹시 배가 고팠다. 

이를 본 표모가 가엾게 여겨 밥을 주자, 한신은 고맙게 여겨 “내가 반드시 이 은혜를 중하게 갚겠다.” 하니, 표모는 성내며 “내가 왕손(王孫 귀공자란 뜻으로 존칭임)을 가엾게 여겨 밥을 주었는데, 어찌 보답을 바라겠는가.” 하였다. 

그 후 한신은 초왕(楚王) 항우(項羽)에게 갔으나 중용(重用)하지 않으므로 다시 패공(沛公)에게 가서 대장군(大將軍)이 된 다음, 많은 전공(戰功)을 세웠으며 결국 초 나라를 멸망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이 공로로 초왕(楚王)에 봉해진 한신은 고향인 회음에 가서 표모에게는 천금(千金)을 주어 보답하고 남창 정장에게는 꾸짖은 다음 백금을 주었다.《漢書 淮陰侯傳》

[주D-001]항왕(項王)의 …… 없었네 : 항왕은 초왕(楚王) 항우(項羽)로 이름은 적(籍). 중동(重瞳)은 한 눈에 두 개의 눈동자가 있는 것으로 훌륭한 사람의 상(相)이라 한다.《史記》 項羽紀贊에 “옛날 순(舜) 임금이 중동이란 말을 들었는데, 항우도 중동이었다 한다.” 하였는데, 영웅 한신을 몰라 보았으니, 소용 없다는 뜻이다.

 

[55] 서도(西都)에서 형통헌(邢通憲) 군소(君紹)와 작별하면서

 

찬 이슬 내리고 새벽 추위 쌀쌀한데 / 露侵征袖曉寒多

술 자리 끝나자 달조차 넘어간다 / 酒盡離觴塞月斜

누가 생각했으랴 애써 글 읽은 자네로서 / 誰料北窓螢雪客

해마다 저 변지에서 말만 달리는 것을 / 每年鞍馬走風沙

 

[56]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떠가는 기러기 가을 소리 괴로운 듯 / 斷雁秋聲苦

변방의 닭 울음에 밤이 다 된다 / 荒鷄夜色闌

등불을 켜자 하니 종놈 게으르고 / 呼燈憎僕懶

말을 타려 하니 아이가 추워한다 이때 아이를 데리고 떠나게 되었다. / 騎馬怕兒寒

풀잎에 맺힌 서리 옷자락에 나부끼고 / 草動霜飄袂

얼음 밑에 물결은 안장까지 부닥치네 / 氷穿水迸鞍

임금님 은총 아직껏 보답하지 못했으니 / 主恩猶未報

얼마든지 노력해야지 편함을 구하랴 / 努力敢求安

노 나라를 떠나는 회포 한이 없건만 / 去魯情何極

진 나라에 놀던 흥미도 사라지지 않는구나 / 遊秦興未闌

따뜻한 강씨의 이불 늘 생각나는데 / 每懷姜被暖

차가운 범씨의 도포를 누가 불쌍히 여기랴 / 誰念范袍寒

술잔을 대할 때마다 칼날을 퉁겨 보고 / 對酒頻彈劍

등불 끄고 잠시 안장 베고 잠자네 / 吹燈乍枕鞍

백운은 볼수록 점점 멀어지는데 / 百雲看漸遠

평안한 소식 어느 때 전해드리랴 / 安得報平安

 

[주D-001]노(魯) 나라를 …… 않는구나 : 고국을 떠나 있으니 부모 생각 간절하지만 옛 진(秦) 나라 지방인 사천(四川)에 고생스럽게 유람하는 흥취 또한 깊다는 뜻. 옛날 공자(孔子)는 부모가 계신 노 나라를 떠나면서 “내 어찌 빨리 가겠는가. 부모가 계신 나라인데.” 하였다. 전국 시대 변사(辯士) 소진(蘇秦)은 진 나라에 들어가 진왕(秦王)에게 글을 10차례나 올렸으나 받아들이지 않자 검은 갖옷이 다 해진 채 크게 곤궁하여 돌아왔다.《孟子 萬章下》 《史記 蘇秦列傳》

[주D-002]따뜻한 …… 불쌍히 여기랴 : 자신을 따뜻이 대해줄 형제나 벗이 없다는 뜻. 강씨(姜氏)는 후한(後漢) 때의 명사 강굉(姜肱)을, 범씨(范氏)는 전국 시대 진(秦)의 재상 범수(范睢)를 가리킨다. 강굉은 그의 아우 중해(仲海)ㆍ계강(季江)과 우애가 지극하여 한 이불을 같이 덮었으며, 위(魏) 나라에서 곤궁을 당하고 돌아온 범수는 재상이 된 뒤, 위(魏)의 사신 수

[주D-003]백운(白雲)은 …… 전해드리랴 : 부모에게 소식을 전할 수 없어 애태운다는 뜻. 당(唐) 나라의 적인걸(狄仁傑)은 부모가 하양(河陽)에 있었는데 태항산(太行山)을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백운이 외로이 나는 것을 보고는 좌우에게 이르기를 “우리 어버이가 저 밑에 계시다.” 하고는 한동안 슬피 바라보다가 구름이 딴 곳으로 간 다음에야 길을 떠났다.《新唐書 狄仁傑傳》

 

[57] 먼 곳 사람에게 부치다

 

기쁘다던 일이 도리어 한이 되도록 하고 / 懽樂翻敎恨懊新

공명도 다만 이별만 만들 뿐이로구나 / 功名只管別離頻

어여쁘다 저 좋은 누각 술잔 앞에 밝은 달은 / 可憐畫閣樽前月

변성 말 위의 사람에게도 비쳐 줄 테지 / 還照邊城馬上人

 

ⓒ한국고전번역원 ┃ 김철희 (역) ┃ 1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