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옛 사람들의 초상화

익재선생 진영(益齋先生眞影)

야촌(1) 2020. 10. 14. 16:39

작성일 2004. 03.01

 

↑보은 장산영당 소장의 익재 영정(충북 유형문화재 제72호)

 

↑일본 천리대학 소장 익재 선생 초상화

 

↑본 화상은 1999년 2월 도난 당했다가 되찾은 후 2010. 11. 26일 국립청주박물관에 기탁·보관돼 있다.

   본 화상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후손 이사균(李思鈞·1471∼1536)이 화공에 의뢰해 국보 제110호의 의모본으로 제작되었다.

 

↑길위의 시인 이제현

 

기마도강도(騎馬渡江圖) /크기 : 73.6×109.4cm

   고려 후기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1287~1367)이 그린 그림이다.

 

화면 오른편은 거대한 바위와 필선으로 처리한 왼편의 낮은 산 사이를 꺾어 저 흐르는 강을 표현하였다.

오른편의 무너져 내릴 듯한 바위에 꺾어 저 매달린 소나무가 인상적이다. 강기슭에 몇 그루의 나무가 있는데 잎이 다 지고 가지만 남아있으며 바람이 불어 오른편으로 휘어 저있다.

 

맨 앞에 서서 무리를 인도하는 고개를 떨어트린 백마의 표정이 동료를 부르는 주인의 심정과 대조적으로 무심하다. 전반적으로 가늘고 여린 필선을 사용하여 섬세하고 유연한 느낌을 준다.

 

익재라는 서명과 이제현 인이라는 낙관이 있어 고려시대 학자 익제 이제현이 그린 그림으로 본다.

‘기마 도강도’는 말 타고 강 건너는 그림이다.

 

그림의 쓸쓸함에서 원의 지배를 받던 당시 고려 지식인의 우울한 심경이 잘 나타나 있다.

호복(胡服)을 입은 5명의 인물이 말을 타고 겨울의 얼어붙은 강을 건너는 모습을 그린 사대부의 여기화(餘技畵)로, 13세기 한국 회화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얼어붙은 내를 건너는데, 두 마리 말은 이미 내를 건너고 있고 세 마리 말은 잘 가지 않으려 벗 티고 있는 모습이다. 그야말로 산천은 눈에 덮인 체 왼쪽의 나뭇가지에도 눈이 쌓였고 오른쪽 위의 소나무도 곧 부러질 듯이 위태롭다.

 

소나무의 필법은 남송 원체(南宋院體)의 화풍(畵風)에서 영향을 받았다. 활엽수 가지의 묘사에서는 아직 북송적(北宋的)인 수지 법(樹枝法)이 남아 있어, 당시 중국화(中國畵) 수용태도를 시사하고 있다.

 

공민왕의 《천산대렵도(天山大獵圖)》가 동적이고 힘찬 반면, 이 그림은 섬세하고 유연한 느낌을 준다. 이것을 수렵도로 보는 이도 있고, 그의 연행(燕行) 길로 보는 이도 있다. 사람들의 등에 메고 있는 것이 활로 보여지는데 그렇다면 이는 수렵도로 보아야 할 것이다.

 

산수의 필선(筆線)이 섬약하고, 근경(近景)의 언덕 처리가 약간 어색하여 여기 화다운 일면이 있다.

이제현이 원(元) 나라에 건너가 조맹부(趙孟 )와의 접촉과, 원대(元代) 이곽파(李郭派) 화풍의 주도적 인물인 주덕윤(朱德潤) 등과 교제한 것으로 보아 그들의 영향을 받았을 법도 하나, 구체적으로 조맹부 ·주덕윤의 남종 문인화풍이나 이곽파 화풍의 뚜렷한 영향이 보이지는 않는다.

 

조선조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공전의 히트를 날린 것은 아마 우리 것에 대한 열망이 열화처럼 터져 나온 것이 아닌가 한다. 박지원보다도 500년 전에 중국을 제집 드나들듯이 한 익재(이제현)의 스펙터클은 아직도 어둠 속에 잠자고 있다. 누가 그를 깨워주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