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옛 사람들의 초상화

최익현 초상(崔益鉉 肖像)

야촌(1) 2020. 10. 14. 09:39

최익현 선생 壽74歲像

 

■ 최익현 초상(崔益鉉 肖像)

   보물(寶物) 제1510호

 

구한말의 대표적 우국지사(憂國之士)인 면암 최익현(勉庵 崔益鉉, 1833-1906)의 초상화로, “勉庵崔先生七十四歲像 毛冠本” 및 “乙巳孟春上澣定山郡守蔡龍臣圖寫”라고 쓰인 우측 상하단의 기록을 통해 1905년에 채용신이 그린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심의를 입고 털모자를 쓴 모습인데 심의(深衣)는 그가 위정척사에 노력한 전통 성리학자임을 잘 전해주고 털모자의 모관(毛冠)은 의병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최익현의 애국적 풍모를 잘 보여준다.

 

채용신의 초기 작품에서 풍기는 조심스럽고 근실한 화법과 소박한 화격이 최익현의 우국지사적인 분위기를 더욱 잘 살려주고 있다. 

↑면암 최익현 초상 충청남도 유형문화재248호

소장처 : 백제문화체험박물관(충남 청양군 대치면 장곡길 43-24(장곡리 153-5)

 

「면암 최익현(勉菴 崔益鉉) 초상(肖像)」은 구한말을 대표하는 문인지식인이자 항일지사의 초상화이며, 그의 말년 행적을 담은「최익현(崔益鉉) 압송도(押送圖)」함께 보관된 점이 의미가 있다.

 

최익현(崔益鉉) 초상(肖像)」은 현존하는 관복 본 전신상 중 비교적 고식의 초상화법이 적용된 사례이며, 눈동자에 수정체가 표현되지 않은 점은 채용신(蔡龍臣)의 초기화법에 해당된다.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인 채용신(蔡龍臣)이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유학자이자 의병장 최익현(崔益鉉)의 풍모를 적절히 형상화해낸 작품이다. 1910 ~ 1930년대 최익현(崔益鉉)을 기리는 추모사업의 일환으로 그려진 초상화로 추정되며, 주인공 최익현(崔益鉉)의 역사적 지명도와 화가 채용신(蔡龍臣)의 명성, 그리고 회화적 완성도 등 여러 가지 면에서 학술과 문화사 가치가 높다.

 

1833년 경기도 포천에서 출생한 최익현(崔益鉉) 선생은 사헌부 지평. 사간원 정언, 이조정랑 등을 역임했으며, 1900년 경 경주 최씨(慶州崔氏) 본가가 있는 청양으로 낙향 했다.

 

이후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것에 반발하며 전북 태인에서 의병을 모았다.

태인 의병에 앞서서는 홍성에서 홍주의병 총수를 맡아 이끌기도 했다.

 

의병장 활동으로 체포돼 일제에 의해 대마도로 유배된 선생은 단식 후유증 등으로 1906년 순국했으며, 유해는 후손 등에 의해 예산 광시면(관음리 산24~1)에 안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