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한시(漢詩)

샘물[流泉]

야촌(1) 2018. 10. 17. 11:50

■ 샘물[流泉]

 

샘물이 졸졸졸졸 골짜기를 내려와 / 鳴泉下谷口(명천하곡구
밤낮을 쉬지 않고 길을 재촉하누나 / 不捨暮朝催(불사모조최
요란스런 울림이 바람결에 들려오고 / 亂響隨風聞(난향수풍문
차가운 개울소리 달빛을 안고 와서 / 寒聲帶月來(한성대월래
시름겨운 나그네의 꿈을 오래 깨우고 / 長搖愁客夢(장요수객몽)
늙은 시인 가슴마저 자꾸 흔들어대네 / 頻擺墨翁懷(빈파묵옹회)
이렇듯 만년세월 흐르고 흐르면서 / 萬古流無盡(만고류무진)
한 많은 인생살이 얼마나 보았을까 / 人生閱幾回(인생열기회)

 

- 이응희(李應禧) 『옥담사집(玉潭私集)』 「샘물(流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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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희(李應禧)

 

1579년(선조 12)∼1651년(효종 2).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수(子綏), 호는 옥담(玉潭). 아버지는 여흥령 이현(李玹)이고 어머니는 평산신씨(平山申氏)이다.

14세 때 부친상을 당하고 2년 후인 1594년(선조 27)에 조모 상까지 당했다.

이후 그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가업을 이어가며 학문과 예절에 정열을 다 쏟아 원근에서 그 덕망을 칭송하였다.

 

광해군 때에 이이첨(李爾瞻)이 인목대비를 폐위하고자 꾀할 때 크게 상심하여 백의항소(白衣抗訴)로 간곡히 만류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경기도 과천 수리산 아래에 은거하였다.

조정에서는 그의 학식이 고명함을 알고 중용하려 했으나 거듭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바에 의하면 선조인 안양군(安陽君)이 연산군 때 원사(寃死)를 당하면서 유언으로 관직에 나아가지 말라고 하여 그 유훈을 따른 것이라 한다.

슬하에 7남 2녀를 두었는데 7형제가 모두 진사에 급제하였는데, 모두 두(斗)자 항렬이라 주위에서는 칠두 문장가(七斗文章家)라고 칭송하였다. 생전에 저술이 많았는데, 병자호란 때 방화로 모두 소실되었고 현재 남아있는 저서로는 『옥담유고(玉潭遺稿)』, 『옥담사집(玉潭私集)』 등이 있다.

 

고향에서 류순인(柳純仁)‧심부(沈溥)‧류우인(柳友仁)‧안홍제(安弘濟)‧송규(宋珪)‧이원득(李元得)‧이경일(李敬一)‧한덕급(韓德及)‧안중행(安重行) 등과 함께 시계(詩契)인 향로계(享老契)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묘는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산 195번지에 있었는데, 1993년 경기도 화성시 봉담면 상기리로 이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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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시제 : 샘물[流泉]에서 작가는 비단 같은 금강(錦江)의 유장한 물길도 기실 그 시원(始源)은 ‘뜬봉샘’이라는 작은 옹달샘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사철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샘물은 어느새 첫 실개천인 ‘강태등골’을 만나고 다시 길을 재촉해 ‘수분천’을 지난 후 여러 지천과 합류하면서 비로소 금강으로 흘러듭니다.

 

그 뒤로도 물길은 오랫동안 이어져 옛 백제 땅을 굽이굽이 돌다가 마침내 서해 군산 앞바다의 품에 안기고서야 천리 머나 먼 대장정을 마칩니다. 이렇게 물은 반도의 산맥을 따라 수만 년을 굽이돌아 흐르면서 물고기와 새들의 고향이 되어주었고, 산과 숲과 들의 심장에도 말없이 스며가서 그 안의 생명들이 공존할 수 있도록 아름다운 환경을 만들어왔습니다.

 

우리 민족은 언제나 그 주변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며 풍요로운 물의 축복 속에 어우러지고 부대끼고 울고 웃으면서 강물 같이 유장한 이야기를 써왔습니다. 반면에 세계 최대 습지 브라질의 판타날과 아시아의 대평원 몽골 초원은 우리에 비해 훨씬 더 절박합니다.

 

그들의 삶은 우기가 만드는 초원과 황량한 건기의 사막으로 양분됩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놓이는 건기가 되면 동물들은 모래바람을 뚫고 물웅덩이와 초지를 찾아 필사의 대이동을 시작합니다.

 

판타날의 목동 판타니에로도, 몽골의 유목민들도 구름과 비와 강과 호수로 변모하는 물의 순환, 그 위대한 여정을 따라 질서에 순응하며 고난의 순례길을 떠납니다.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한다[知者樂水]’고 공자가 말한 것도 지혜로운 자의 삶이 물의 속성을 닮았으며, 늘 물에게서 지혜를 배운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물은 순리를 따르는 합리성과 아래로 내려가는 겸손함과 밤낮을 쉬지 않는 근면성과 먼저 가려고 다투지 않는 배려심과 채운 뒤에 흐르는 여유로움이 있습니다. 또한 생명을 기르지만 자랑하지 않는 덕스러움과 부딪쳐도 화내지 않는 인내심과 떨어질 때 주저하지 않는 용맹과 중도에 꺾이지 않고 끝내 목적지에 도달하는 강인함을 지녔습니다.

 

노자가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上善若水]’고 한 것도 이러한 무위(無爲)의 자연스러움을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선지자들은 이렇게 늘 물처럼 살라고 이르는데, 자유로이 흘러가라 하는데, 공존이 아니라 정복을 택한 자본은 어느새 보(洑)의 수문 안에 강물을 가두고 생명이 회귀하는 길마저 끊어버렸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 마음 속 시원의 강물도 흐름을 멈추고 온통 검푸른 녹조로 뒤덮인 지 오래입니다.

 

이제 더 이상 눈부신 햇발 아래 빗살치는 유년의 꿈이 자라던 강은 없습니다. 어쩌다가 정말 우리는, 달빛 머금은 계곡 물소리를 실컷 들으며 가슴으로 쏟아지는 별을 헤다 잠들던 여행이, 아이들의 또 다른 삶의 여정을 밝히는 영혼의 안식이 되게 하지 못한 채, 매일매일 들이치는 차디찬 일상의 순서와 희박한 생존의 굴레 속을 반복 질주하며, 영혼을 잠식해오는 메마른 불안과 두려움에 뒤척이거나 혹은 허허로운 갈망에 목말라하면서 끊임없는 탐닉과 순간의 욕망들을 소비하고만 있을까요?

 

그리하여 결국 영혼이 고갈되어버린 우리에게 이제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삶도 물처럼 흘러가야 한다는 사실을 시리게 자각하는 일입니다. 길을 떠난 순례자들이 배낭을 줄이려고 짐을 버리듯, 등이 휠 것 같은 생존의 무게 가운데 덜 필요한 것부터 하나씩 내려놓는 일입니다.

 

결국 삶은 ‘만나고 사랑하고 비우고 작별해가는 여정’임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내디딜 수 있는 오늘 이 작은 발걸음에 감사하며 햇살에 몸을 맡긴 채 충만한 풍경과 계절 속을 길동무와 함께 걷다가 마침내 다다른 바다에서 황혼을 붉게 물들이는 장엄한 일몰을 마주한 후, 나도 모르게 시원의 샘물 같은 벅찬 눈물이 솟아오를 때, 문득 ‘살아 있는 나날은 모두 순례’임을 깨닫습니다.

 

글 : 이기찬[한국고전번역원 고전문헌번역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