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경주이씨 명인록

이굉(李宏)

야촌(1) 2018. 6. 25. 01:14

■ 감사 이굉(監司 李宏) / 29世

 

   [세계] 국당공(菊堂公) 후 문정공(文貞公) 이경중(李敬中)의 11대손

   [문과] 현종(顯宗) 13년(1672) 임자(壬子) 별시(別試) 병과(丙科) 13위(17/21)

   [생졸년] 1651(효종 2)~1700(숙종 26)

   [경력] 충청도관찰사(忠淸道觀察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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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굉(李宏)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대규(大規)이다. 조부(祖父)는 오계(梧溪) 흘(忔)이고 아버지는 진시(進士)로 서윤(庶尹-한성부와 평양부에 두었던 從四品) 벼슬)을 지낸 상익(商翼)이고 어머니는 임선백(任善伯)의 딸 풍천임씨 이다.

 

충청도관찰사(忠淸道觀察使)로 재임하던 중 세상을 떠났다. 《승정원일기 숙종 26년 12월 21일》

 

1672년(현종 13) 약관(弱冠)의 22세 나이에 별시(別試) 병과(丙科)에 과거급제하고 일찌감치 벼슬길로 나아갔으니 1673년(현종 14) 7월 8일에 권지승문원 부정자(權知承文院副正字)로 임명되었다. 《승정원일기 현종 14년 7월 8일》

 

그 후 대성(臺省=조선시대, 사헌부와 사간원의 벼슬을 통틀어 이르던 말)에 드나들며 이굉은 1680년(숙종 6) 9월 28일에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으로 임명되었다. 《승정원일기 숙종 6년 9월 28일》

 

그는 이굉은 전라도 암행어사로 나가서 계문(啓聞)을 올려 장흥 현감(長興縣監) 이행성(李行成)을 파직(罷職)시켰으며, 임피 현령(臨陂縣令) 김만증(金萬增)ㆍ고산현감(高山縣監) 이세무(李世茂)ㆍ흥양 현감(興陽縣監) 박세주(朴世柱) 등의 탐관오리(貪官汚吏) 잡아다 추문케 한 후 내쫓았고 《국역 숙종실록 8년 12월 17일, 9년 4월 3일》

 

1684년(숙종 10) 7월 6일에는 사은사 겸 동지사(謝恩使兼冬至使) 사신 단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임명되어 동년 10월 27일에 연행(燕行) 길에 올라 이듬해 4월 2일에 돌아왔다. 《국역 승정원일기 숙종 10년 7월 6일, 숙종 11년 4월 2일》

 

그 후 이굉은 1697년(숙종 23) 6월 16일 장단부사(長湍府使)에, 이듬해 7월 26일에 광주부윤(廣州府尹)에 제수되었다. 《국역 승정원일기 숙종 23년 6월 16일, 24년 7월 26일》

 

그가 가는 곳마다 맡은 일을 잘 처리하여 조정으로부터 신임이 두터웠는데 마침내 이세백(李世白)이 강남서도 관찰사(江南西道觀察使=충청도관찰사)로 추천하였는데 응교(應敎) 윤지인(尹趾仁)이 배척하였으나 임금이 듣지 않았다.《국역 숙종실록 26년 10월 22일》

 

그리고 강남서도관찰사로 재임 중 임지의 진(鎭)에서 졸하였는데 향년 50세(歲)였다.

《승정원일기 숙종 26년 12월 21일》《五百家注昌藜文集 卷33 故江南西道觀察使贈左散騎常侍太原王公墓

  誌銘》

 

집필자 : 이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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