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경주이씨 명인록

이막배(李莫培)

야촌(1) 2018. 8. 18. 13:05

■ 이막배(李莫培) 
 

   [생졸년] 1611년 2월 13일~1674년 11월 18일
   [출생지]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화산1리  
   [묘소/단소]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화산리 
 

[가계]
조선 후기의 문인, 본관은 경주. 자는 내본(乃本), 호는 화계(華溪), 월성부원군(月城府院君) 국당 이천(菊堂 李蒨)의 후손으로 고조는 사과(司果) 이진형(李眞亨)이고, 증조는 무과 급제 후 첨사(僉使)를 지낸 이식(李植), 조부는 훈련원정(訓練院正) 이온수(李蘊秀)이다.

 

아버지는 군자감정(軍資監正) 이시손(李時孫)이고, 어머니는 목사(牧使) 이두표(李斗杓)의 딸 영천이씨(永川李氏)이다. 배위(配位)는 진사(進士) 황택중(黃宅中)의 딸 창원황씨(昌原黃氏)이고, 슬하에 4남 1녀를 두니 아들은 이만하(李萬賀)·이만복(李萬福)·이만헌(李萬憲)·이만생(李萬生),이고 사위는 함안인(咸安人) 조성채(趙成埰)이다.


[활동 사항]
공(公)은 천성이 지극하고 총명하여 7세 때 천형지체(天形地體)를 묻는 질문에 ‘방원(方圓)’이라 답하자 조부 이온수(李蘊秀)가 심히 아꼈으며, 13세에 어머니가 이질을 앓자 하늘에 기도하며 빌자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석정(石井)의 물로 고치라고 하니 바위를 뚫어 어머니의 병을 낳게 하여 주변에서 일러 효정(孝井)이라 하였다.

 

또한 어버이 묘소 앞에 조그마한 집을 짓고 ‘효심재(孝心齋)’라 편액하고, 항상 그곳에 거주하며 어버이의 뜻을 잊지 아니하매 후손들이 그 집을 마을로 옮겨 ‘효덕재(孝德齋)’라 편액하고 학문을 딲는 장소로 삼았다.

 

그는 생전에 사람들이 자신을 알 아 주기를 바라지 않고 오로지 경전 탐구에 진력하며 후진 양성에 진력하였다. 저술로는 『태극집설(太極集說)』과 『원류집설(源流集說)』 각 1권이 있다.


묘는 영천시 화산면 화산리 화촌(花村) 마을 뒤 효정제내(孝井堤內) 대등중절(大嶝中節)의 해좌(亥坐)이고 안동(安東) 권오섭(權五燮)의 갈문(碣文)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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