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역사이야기

통일혁명당사건

야촌(1) 2018. 2. 11. 11:14

통일혁명당사건(統一革命黨事件)

 

[요약]

통일혁명당 창당준비위원회인 서울시위원회와 전남위원회 검거사건을 말한다. 통혁당 사건이라고도 한다.
1964년 통혁당은 김종태·최영도가 창당 준비 위원회를 결성했다. 

 

서울시위원회는 위원장 김종태를 중심으로 청년지식인으로 구성되었고, 그 산하조직으로 청년문학가협회·민족주의연구회·기독청년경제복지회 등을 조직했다. 위원회 기관지로는 합법적 월간지였던 〈청맥〉이 있었다.


통혁당은 1968년 서울시위원회 158명과 전남위원회의 27명이 체포됨으로써 와해되었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김종태가 북괴 대남사업총국장의 지령을 받고 '통일혁명당'을 결성, 혁신계정당으로 위장, 합법화하여 반정부·반미 데모를 전개하는 등 대정부공격과 반정부적 소요를 유발시키려는 데 주력했다"고 발표하였다.

 

 

 

통혁당 일망타진1968년 8월 24일, 임자도 간첩단과 통협당을 일망타진했다고 발표했다.

통혁당은 1964년 3월 15일 김종태·최영도가 창당준비위원회를 결성했다. 

 

이 사건은 통혁당 창당준비위원회였던 서울시위원회와 전남위원회 검거사건을 말한다.  서울시위원회는 위원장 김종태를 중심으로 김질락·이은규를 비롯한 청년지식인으로 구성되었고, 그 산하조직으로 청년문학가협회·민족주의연구회·기독청년경제복지회·신문화연구회·불교청년회·경우회·청맥회 등을 조직했다. 

 

위원회의 기관지로는 합법적 월간지였던 〈청맥〉이 있었다. 〈청맥〉의 주요 내용은 '반미·반독재를 선전하면서 대중의 정치적 계몽을 촉구하는 것'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서울시위원회는 1968년 8월 24일 158명에 달하는 회원들의 구속으로 해체되었다. 

 

전남위원회의 경우 위원장 최영도를 중심으로 노동자·농민·사업가를 대상으로 활동했으나 1968년 7월 20일 27명의 조직원이 체포됨으로써 와해되었다.

 

당시 중앙정보부 발표에 따르면 "김종태가 전후 4차례에 걸쳐 북괴 대남사업총국장인 허봉학으로부터 지령과 미화 7만달러, 일화 50만엔, 한화 2,350만원의 공작금을 가지고 가칭 '통일혁명당'을 결성하여 혁신계정당으로 위장, 합법화하여 반정부·반미 데모를 전개하는 등 대정부공격과 반정부적 소요를 유발시키려는 데 주력했다"는 것이다.

 

통혁당이 주장하는 남한의 당면목표는 반봉건적인 사회제도를 일소하고 민주주의 제도수립과 민족통일을 위한 이른바 민중민주주의혁명 성공에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통혁당의 강령과 정책은 북한의 주장과 거의 같은 것으로 주로 미국의 식민지 지배를 철폐하고 자주적인 민주정부 수립,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건설을 위한 구체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출처 : 다음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