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제의례·제문

피난시의 간략 제사의식

야촌(1) 2017. 12. 27. 19:45

여헌 선생속집 제7권 / 잡저(雜著)

 

피난하여 숨어있는 가운데에 제사를 간략히 행하는 의식

 

현광(顯光)은 불초함이 이를 데 없으며 죄악이 크고 지극하여 병화(兵火)의 가운데에 신주(神主)를 보전하지 못하였다. 지금 즉시 다시 신주를 만들어야 할 것이나 왜적(倭賊)이 아직도 경내(境內)에 있어서 후일에 보존함을 기필하기 어려우므로 이에 세월이 안정되기를 기다리는 바이다.

 

그러므로 깨끗한 종이를 가지고 장방형으로 잘라 ‘모고 모관부군 신위(某考某官府君神位)’ 또는 ‘모비 모인 모씨 신위(某妣某人某氏神位)’라고 쓰되 대수(代數)에 따르고 신위에 따라 각각 지방을 장만하며 깨끗한 그릇에 이것을 보관하여 두고 제사 때가 되면 꺼내어 진설한다.

 

그리고 고위(考位)의 기일(忌日)에는 비위(妣位)를 함께 진설하되 비위의 기일에는 단위(單位)만을 진설한다.

제물은 맛과 품수(品數)를 정하지 않고 그릇수를 제한하지 않으며, 모든 어물과 육류와 채소와 과일을 얻는 대로 사용하며 밥과 국과 술과 젓갈을 준비되는 대로 진설한다. 제물을 구비하지 못했다 하여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보다는 단지 거친 밥과 나물국이라도 제사하는 것이 낫다.

 

또 정성이 있으면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야 비록 구하지 못한다 해도 채소와 같은 물건은 오히려 장만할 수 있다. 비록 채소와 같은 물건을 사용하더라도 만일 정성을 다하고 정결함을 지극히 한다면 오히려 선조의 영혼이 강림하여 흠향하실 것이다.

 

그리고 혹 제물을 구비하지 않음이 없고 그릇수를 갖추지 않음이 없다 하더라도 정성이 극진하지 않고 또 정결하게 하지 못한다면 어찌 영혼이 강림하여 흠향할 이치가 있겠는가.

 

또 혹 재력(財力)을 헤아리지 않고 반드시 장만하려고 한다면 경영하여 구하는 사이에 구차하게 남에게 요구하는 병폐가 없지 않을 것이니, 나의 마음에 다소라도 편안하지 못함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제사 받는 영혼도 반드시 편안하지 않을 것이니, 효자가 어찌 이러한 짓을 하겠는가.

 

기일(忌日)은 특히 그대로 지나칠 수가 없으며, 묘제(墓祭)는 만일 먼 곳에 도망하여 피난해 있는 경우에는 반드시 때때로 성묘할 수 없으나 만약 혹 왕래할 힘이 있으면 비록 제물을 성대히 구비하지 못하더라도 다만 어포(魚脯)와 육포(肉脯), 고기와 과일 등과 찹쌀 몇 되와 누룩가루 몇 홉을 장만하여, 그 때 임시로 밥 짓는 그릇에 술을 빚었다가 하룻밤을 지나 열어 보면 또한 매우 간편하게 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소중한 것은 이러한 정성이 있는 것일 뿐이다.

 

속절(俗節 시속의 명절)에 제물을 올리는 것 또한 때에 따라 얻는 것이 있으면 올려야 한다.

중월(仲月)의 대제(大祭)는 진실로 이처럼 혼란한 때에 행할 수가 없고, 비록 행하려고 하더라도 객지에서 대번에 제물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다만 그 달 안에 천신(薦新)함을 인하여 간략히 행하기를 속절의 예(禮)와 같이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나는 우거(寓居)해 있는 동안에 행할 수 있는 것은 그래도 정폐(停廢)하는 일이 드물었고, 묘사(墓祀)에는 고비(考妣)의 묘소가 인동(仁同)에 계시어 혹 때로 성묘할 수가 있었으나, 조고비(祖考妣) 이상의 묘소는 모두 성주(星州)에 계시어 난리가 난 이래로 한 번도 찾아가 성묘하지 못하였으니, 항상 마음에 애통하고 민망하다.

 

무릇 기제(忌祭)에는 지방(紙榜)을 모시고 향불과 모사(茅沙)가 준비되어 있으면 신위(神位)를 진설하고 채소와 과일과 술과 찬을 진설한 뒤에 지방을 신위의 자리에 진설하며, 분향하고 모사에 술을 붓고 고유하기를 “이제 모친 모관부군(某親某官府君), 또는 모인 모씨(某人某氏)의 먼 휘일(諱日)이므로 엎드려 존령(尊靈)께서 신위에 강림하시기를 청하여 공손히 추모하는 정을 펴려 하옵니다.”라고 한 다음 재배한다.

 

지방이 없고 향불과 모사가 없을 경우에는 신위를 진설하고 채소와 과일과 술과 찬을 진설한 뒤에 다만 그 말을 고유하되 재배는 똑같이 한다. 또 참신(參神)하여 재배한 다음 찬을 올리며 삼헌(三獻)을 하여 축문(祝文)을 갖추었으면, 초헌(初獻)한 다음 축문을 읽고 재배하며 아헌(亞獻)과 종헌(終獻)에 각기 재배한다.

 

만일 단헌(單獻)을 하여 축문이 없으면 술잔을 올린 다음 다만 축사(祝辭)를 외워 고유하되 재배는 똑같이 한다.

유식(侑食)하고 재배하되 문이 있으면 문을 닫고 문이 없으면 부복(俯伏)한다. 잠시 후에 숭늉을 올리고 사신(辭神)하여 재배한다.

 

만약 신주를 모시고 제사하게 되면 신주를 받들어 내올 때에 먼저 고유하는 말을 아뢰고 신주를 내온 다음 즉시 참신하며, 만약 속절에 천신하게 되면 각기 여러 대(代)의 신위를 모시고 제철의 음식을 진설한 뒤에 각위(各位)의 자리에 지방을 모시며 강신하여 재배하고 참신하여 재배하며 술을 따라 올리고 재배한다.

 

그리고 축문이 있으면 축문을 읽은 뒤에 재배하며 물러가 한동안 부복하였다가 사신하여 재배한다.

그리고 만약 외조고비(外祖考妣)와 후사가 없는 자형(姊兄)과 누님 및 누님의 아들과 누님의 딸을 함께 제사하게 되면 먼저 본종(本宗)의 신위와 본종의 부위(祔位)에 제사하고 철상(撤床)한 다음 다시 신위를 진설하여 외조고비 이하의 여러 신위에게 제사한다.

 

신위(神位)를 진설할 때 굳이 왕골자리를 구할 것이 없으며 음식을 진설할 때에도 굳이 제상과 소반을 구할 것이 없다. 사람들이 집에서 쓰는 자리와 상과 소반은 정결한 것이 드무니, 다만 유지(油紙)를 펴고 진설하며, 유지가 없으면 새 삼베를 가지고 폭(幅)을 연하여 펴며, 삼베가 없으면 새 띠 풀이나 깨끗한 짚을 사용하여도 모두 무방하다.

 

그릇 역시 굳이 유기(鍮器)와 사기(沙器)를 구할 것이 없으며 다만 버들고리 상자를 사용하여도 불가할 것이 없다. 나는 큰 대나무를 구하여 마디를 잘라 잔(盞)을 만들려고 하였으나 이곳에는 대나무가 없어 만들지 못하였다.

 

제물을 줄이고 예를 줄이는 것은 진실로 온당하지 못한 일이나 도망하여 피난하는 가운데에 구하기 어렵지 않은 물건이 없어서 비록 한 자의 종이와 한 치의 향이라도 또한 쉽게 얻을 수 없으니, 그렇다면 이러한 것이 없다 하여 제사 지낼 시기를 헛되이 보내서는 안 된다.

 

또 물건을 이미 구비하지 못하였는데 예를 갖추고자 하면 한갓 허례(虛禮)만을 따르는 것이니, 또 어찌 경황이 없어 혼란한 때에 합당하겠는가. 문(文)과 질(質)이 적절히 배합되어 아름다운 것은 진실로 귀하게 여길 만하나 질이 있은 뒤에 문이 있는 것이다.

 

상고(上古) 시대에는 질만 있을 뿐이었으니, 삼황(三皇)이 어찌 문이 또한 없어서는 안 됨을 몰랐겠는가마는 오직 상고 시대에는 질만 있어도 충분하였다. 그러므로 문이 갖추어지기를 기다리지 않고도 도(道)가 이미 극진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중고(中古)에는 풍기(風氣)가 점점 열려 인심이 차츰 각박해졌으니, 반드시 문이 있은 뒤에야 이것을 밝힐 수 있었다. 그러므로 오제(五帝)와 삼왕(三王)이 처음으로 문을 갖추게 한 것이다.

 

지금은 세상이 난리통이라서 온갖 물건이 모두 고갈되고 온갖 일이 모두 폐지되었으니, 이러한 때에는 반드시 모름지기 질을 숭상하고 문을 줄여서 한결같이 상고의 풍속을 따른 뒤에야 옳을 듯하다.

 

나는 이러한 뜻을 가지고 도(道)가 있는 군자(君子)에게 우러러 질문하였으면 하는 바이다.

만력 22년 갑오년(1594,선조27) 가을에 문소(聞韶)의 우거한 집에서 초(草)하였다.

 

[주01] 중월(仲月)의 대제(大祭) : 중월은 중춘(仲春)인 2월, 중하(仲夏)인 5월, 중추(仲秋)인 8월, 중동(仲冬)인 11월을 가리키며, 대제는 큰 제사로 사시제(四時祭)를 이르는데, 옛날 제사에는 사시제를 가장 성대하게 지냈다.

 

[주02] 본종의 부위(祔位) : 본종은 동성동본(同姓同本)의 가까운 친족을 이르며, 부위는 부식(祔食)하는 신위(神位)를 이른다. 부식은 조고(祖考)를 제사할 때에 결혼하기 전에 일찍 죽었거나 후사가 없는 분을 함께 모시는 것이다.